마음이 울적하면 기차를 타고 떠나라
[마음이 울적하면 기차를 타고 떠나라]
며칠을 집에 갇혀 지내던 나는 오늘은 정말 아니겠다(강아지가 죽을 것 같아) 싶어
핑계 김에 가벼운 산에 오를 준비를 하고 나섰다.
마침 방학중인 아들 녀석도 외출을 안 한다니.
집을 나서 김밥 두 줄을 사서 색에 넣고...경원선 기차를 탔다.
12시 55분 소요산 역에 내리다.
난 언제나 혼자 가는 산행을 즐긴다. 여럿이 가면 산을 접해도 도무지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가 없다.
무조건하고 함께 헉헉대며 올라야되기 때문이다.
날씨는 무척 더웠지만.. 우선 내 코에 배인 듯 한 강아지의 배설물을 잊을 것 같았다.
땀이 났다. 쉬파리가 귓가에서 앵앵거리고 크지도 않은 눈에 벌레가 두 번이나 들어갔다.
눈물이 찔끔 새어나왔다.
언제부터 오르고 싶은 산이었는데...도전에 실패 만하던 산,
언제나 자재암 조금 더, 오르다가 포기하던 산,
300고지쯤 오르기까진... 별스런 경관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400이르러서야 드디어 등산하는 맛의 진수를 보여주는 풍경들....
울적하던 가슴이 확 뚫려나는 느낌,
소요산...
일상에 지쳐 잠깐 다녀오는 소요산도 내게는 엄연한 여행이다.
숲길로의 여행,
매월당 김시습이 시를 읊으며 소요(산책)했다고 해서
이름하여 소요산이라 불린다.
요석공주의 궁터 앞을 지나며 나는 요석공주가 되어본다.
원효가 공주에게 보낸 연서(戀書)중 "... 그대의... 도끼 자국에... 나의...
기둥을 받치게 해주오..."가 있었다고 하니,
요석공원에 입구 안내판에..도끼 운운이 있었지만...
그 것을 알고 새겨듣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원효가 요석을 사랑할 때 그 문제의 도끼 꿈을 꾸었다 한다.
그 얘기를 전해들은 ?? 가 말하기를 이 나라에 곧
큰 인물이 태어날 증조라고 했다는데,
그래서 과연 '설총'이 태어났나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던 혼란한 시기에 생존하였던 원효
(元曉 617 -686)는
의상과 더불어 당나라에 유학하려 두차례(34세, 650년 및
45세, 661년)나 시도하였으나 자신의 마음밖에 따로 법이 없음을
깨닫고 혼자 되돌아와 보편적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왕성한
저술,선교활동을 펴,그 사변력, 통찰력과 문장력에 대한 명성이 항간
에 자자하였다. 그는 광대들이나 쓰는 무애박을 치고, 무애가를 부
르며, 무애춤을 추며, 광대, 백정, 기생, 시정잡배, 몽매하고 늙은사람들
사이를 방방곡곡 떠돌며 춤추고 노래하며 술마시고 거문고를 켜며
무수한 대중에게 불법을 전하였다. 코흘리개 아이까지도 부처에 대해
알게 되었다.
김춘추의 둘째누이인 요석공주(瑤石公主)는 첫남편을 백제전투에서
잃고 홀로 되었는데 불심이 깊었던 공주는 인격이 고매하고 화랑시절
백제전투에도 참가했던 원효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원효는 667년 문무왕 7년경(51세) 부왕인 태종
무열왕의 과부공주인 요석과 만나 얼마후 설총을 낳고 이후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 小姓居士)라 하며 무애의 보살행을 행하였다 한다.
결혼전 원효는 거리에서 다음과 같이 외쳤다고 한다.
"누가 자루빠진 도끼를 주겠는가? 내가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으리라."
이를 귀부인을 얻어 어진 아들을 낳고 싶다는 원효의 결혼에의
관심으로 보는 견해도 많지만 새 시대의 지평을 열어보이리라는
사상사의 선언으로 보는 견해가 더 우세하다.
소요산에 가면 원효가 과연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알 수 있는 자취가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그리운 님을 지척에 두고 들머리 이 곳에다 움막을 짓고 기거하면서 님을 기렸을,
님이 쳐다 볼 하늘, 달, 별, 구름, 바람까지도 가까운 곳에서
느껴보는 것만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삭여 내야만 했던 그 사랑을,
요석 공주의 사랑이 묻어나는 계곡, 앓던 사랑을 식혀주던
그, 바람이 분다. 더워서 헥헥대는 내게 아주 고맙고도 감미롭게~~~
산길을 오르다가 숲길에서 중나리도 만나고
야생화 사이트에서 익힌 앵초과의 까치수영도 만나보고....사진도 찍어보고...
이정표를 보니 어느새 해발 440이다.
조금 더 욕심내어 오르다가 사잇길로 빠졌다. 어쩌면 더 늦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내가 혼자라는 사실이 문득 느껴졌다.
난 내 산행 페이스를 알았다. 토끼처럼 날쌔진 못해도 거북이 스타일이다.
혼자서 꾸벅 꾸벅 묵묵히 오른다. 가다가 지치면 쉬고,
바위 위에 앉아서 이런 저런 생각에도 빠져 보다가... 참 이상한 것은, 산 위에서 생각하면 뭐든지... 가슴이 넓어진다는 사실~~
"그래~~ 까지 꺼... 뭐 그다지 중요한 것이라고..."
아등바등 거리던 것이 산아래 세속적인 것으로 여겨져서 참 좋다.
하산할 때는 흘려버린 땀만큼 마음이 개운해져서 참 좋다.
몸과 마음이 가뿐해져서는 다시 새로운 힘이 솟아남을 느낀다.
짊어진 색이 축축했다 마르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발이 갑갑해서 양말도 벗어 버렸다.
1시쯤에 쉬엄쉬엄 출발한 산행이...산 위에서 혼자 아래를 내려다보며 김밥 먹고 물 마시고
또 쉬었다가 가고...또 산 너머 다른 산을 훔쳐보다가 내려오니 거지반 5시다.
집 부근에 다다라서 전화를 했더니, 강아지가 곧 죽겠단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무슨 죽음이든 지켜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죽는다는 것,
사람이든 미물이든..죽고 나면 내내 뇌리에 각인되어 한 번씩 떠오를 때마다
가슴을 찌르며 힘들게 했다.
이번엔 안보리라... 그러면 기억에서도 빨리 지워지고.. 시간이 지나면 쉬 잊혀지리라
다리가 아팠지만 괜히 혼자서 정처 없이 걸었다.
여기저기 꼬불꼬불 걸어서 거리가 얼마인지 모르겠으나 택시를 탔더라면 돈 만원 어치는
족히 걸었을 것 같은...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어디서 무슨 힘이 나서?
늦은 김에 더 늦게 가려고 냉면 한 그릇으로 저녁까지 때우고 집에 당도하니... 8시 30분이다.
예상 대로다.
근데..울 엄니 코끝이 빠알갛다.
아직 저녁, 전이라 신다. 민망해서 황급히 채려드렸으나... 안 드신단다. 아니 못 드시겠단다.
못된 나... 저 혼자 쏘옥 빠져서 기차 타고 저 혼자 산에 바람 쐬러 갔다 온,
아주 나쁜...
2004,6,24
[안내참고]
경원선
전철 1호선 의정부 역에 하차
의정부->신탄리
06:20부터 22:20분 까지 매시 20분 출발
가볼만한 곳: 한탄강역(한탄강유원지 도보 5분), 소요산역(소요산 도보 15분),
신탄리역(고대산 도보15분)
요금:의정부->신탄리 까지 1,200원
소요산역에는 매시 55분도착
소요산-> 의정부 매시 50분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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