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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온단다.

그 영향권으로 토요일은 흐리고 일요일도 비가 오고 월요일도 또 비가 오고...

그러다가 비켜갈는지...아무튼 한국은 추석을 지나봐야 안다.

내 어릴 적 추석빔을 곱게 입고는 '사라호'의 엄청난 해일을 보았기 때문이다.

바다가 제법 먼데도 바닷물이 마당까지 밀려온 것을 보고는 어린 소견에도 겁이 더럭 났었다.

제발...

농사는 추석이 다 지나야 안다.

자식농사도 결혼해서 손자를 받아봐야만 겨우 안심인 세상이란다.

그만큼 모든 것에 대한 잠복된 인생의 복병 같은 블랙홀들이 여기저기 숨어있다는 것을...

우린 차마 알지 못한다.

 

자월도, 바지락 젓갈이 참 맛있다.

호박찌개에 새우젓대신 넣으니...

조개는 언제 사왔냐고 물으신다. 어머니께서....
치아가 시원찮으시니 흐믈흐믈한 것이 좋으신가 보다.

 

조개젓갈을 조금 무쳐두려 고추를 따왔다.

머리가 가무스름한 강냉이도 두 개 따 왔더니... 이 모양이다.

 

아까워서 어디 먹을 수 있나?
언제나 수확은 요 모양으로 하면서 어디다 심든 강냉이는 심었었다.
요 것 하나라도 삶아서 건네야지 그는 옥수수를 참 좋아한다.
"여보, 내가 기른 강냉이야...첫 수확, 아직 서너 개는 남았는데..이보단 실해" 그러면서

 

여름이 가긴 갔나보다.
매일 아침잠을 깨우는 매미 울음소리가 사라졌다.
매미는 대체 몇 시에 일어나는가? 아마 센서 같은 게 있어, 조도에 예민한 것은 아닐까?

그랬었는데....

그 궁금증이 풀렸다. 한여름 밤 불면이 내게 밤을 밝히고 들은 첫 매미 울음소리... 
잠에서 덜 깬 듯....찌르르르 시작을 하더니... 곧이어 동료들을 죄다 깨우나 보다.
매미는 한여름..새벽 4시 50분~ 5:00시면 깨어 울음을 시작한다는 것을...
3~4년, 길게는 7년을 땅 속에서 지내다가 겨우 15~17,8일을 살다 갈 것을....

그리고 8월15일 광복절을 기점으로 매미음악회는 마무리 된다는 것을...


매미울음은 동시에 울다가 동시에 쓰러진다./그래서 쓰르라민가?
지금은 정오인데도 마당에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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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IMF 가 시작되던 그해 늦가을...
나는 통영만에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아 새벽에 깬 나는 해는 어디서 어떻게 어떤 얼굴로 떠오르는지...
갈매기가 몇 시에 일어나는지 새벽바다를 지켜보기로 했다.-

 

1997년 11월 1일 새벽 5시.

 

칠흑 같은 어둠뿐이다. 바다와 하늘 모두---
잠결에도 간간이 들렸던 소리, 통통배 소리가 살그머니 아련하게 들린다.
지금은 조용하다. 적막과 어두움뿐이다.
큰 창으로 보이는 하늘엔 별들이 초롱초롱하다.
리조트 야경, 가로등불에 저 아래 있는 선착장으로 가는 철재 다린, 노란 페인트 칠을 하고 마치 연극 무대에 설치된 소품처럼 아름다운 피사체로 다가온다.
배우는 없다. 관객은 오로지 나, 하나. 적막 속에 묘한 분위기만 연출 할 뿐,
마주 보이는 섬마다 몇 개씩 켜진 불빛들이 바다 위에 아주 길게 흔들리고 있다.

 

5시50분

 

새벽 미명에 바다는 마치 고등어 등처럼 푸르스름한 빛으로다가 온다.
작은 통통배와 소리 없는 작은 배들이 좀 부산해졌다.
시커먼 섬마다 열매처럼 매달고 있던 불빛들이 바다 위에 흔들리던 빛 줄기를
슬금슬금 그물로 걷어 올리고 있었다.
섬들이 어둠에 포개져선 그냥 하나로 보인다.
섬, 섬들은 불그레한 조명을 등뒤로 받으며 아직 잠이 덜 깬 채 미명 속에
비스듬히 누워 있다.
붉은 기운이 점점 뻗어 나가는가 싶더니 하늘 위쪽으로 점차 푸르스름한 빛을
띄우기 시작하는 신 새벽이다. 막 새날이 밝는 중이다.
배가 지나간 자리엔 자국이 길게 남는 게 보인다.
마치 제트기가 지나간 창공에 생기는 흰 줄 띠구름처럼----
배들이 지나간 자리마다 발자국 같은 긴 자국 자국들---
맨 앞의 섬, 옆 그 중간 섬, 또 그 뒤섬의 포개진 실루엣이 낱낱이 드러나는 걸 보니 날은 꽤나 밝았나 보다.

 

6시25분

 

제일 먼저 잠에서 깬 부지런한 갈매기 한 마리가 높이 날아 올랐다가 곤두박질 치며
자맥질한다. 곧 이어 또 한 마리? 뒤 이어 두 마리------
이제 정말 아침이 열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선 통통배 소리가 조심조심, 가만가만 들려 왔는데---
이젠 제법 통통배다운 씩씩한 소리를 내는 건 마음의 귀 탓인가?
통! 통! 통! 통! 마음놓고 편안하게 소리를 잘도 낸다.
맞은편 섬의 밝디 밝은 불빛이 제 빛을 잃어 버렸다.
조용하던 바다가 기지개를 켜며 잠에서 지금 깨어나고 있다.

 

6시30분

 

제법 큰 어선 세 척이 어디에서 나타나 위풍도 당당하게 저 너머 큰 바다를 향해 돌진한다.
누가, 바다 한 가운데서 부르는 것일까?
배란 배는 모두모두 어린 아이들 학교엘 가듯 올망졸망 달려 나간다.

 

6시45분

 

아니다. 벌써 부지런한 배는 되돌아 오는 것도 보인다.
어림잡아 틀림없이 만선이리라.
바다가 아니라 영락없는 호수라는 생각이 또 든다.
붉은 여명도 어느새 걷히고 그냥 날이 싱겁게 밝아 버렸다.
그런데 도대체 해는 어디에 있는 걸까? 어디에서 뜨는 걸까/
6시50분
내가 앉아 있는 맞은편에 있는 섬 그림자가 드디어 동이 터 오는 징조를 알리는 불그레한 빛, 빛이 아니라, 정말이지 이건 일출 하는 진통의 붉은 이슬이 어리어 오나 보다.
산, 뒤편의 붉은 스포트라이트가 점점 붉게 밝아온다 드디어---


6시55분


섬, 산 능선 모습이 흡사 사람의 프로필 같은 실루엣으로 떠 오르면서
정작 산은 더 검게 어두워 온다.
사람의 옆모습을 한 산은 그 입에서 마치 용이 여의주를 뱉어내듯 구슬을 뱉어냈다.
오! 붉고 빛난 큰 구슬! 눈 깜짝할 사이의 신비다. 일출이다.
서서히 가 아니라 토악질하듯 일순간이다.
아! 눈부심! 정녕 새 날이 밝고야 말았다.

 

7시00분


해가 완전히 떠올랐다. 해가 떠오르자 바다는 길을 열었다.
바다에 길게 새로 난 황금 빛 실크 로드----
태양하고 곧장 곧은길을 틔어 놓았다.

이렇듯 매일의 일출이 진통처럼 떠오르는데,
나는 하루를 그저 건성으로 넘긴 나날이 얼마나 숱했던가? ...............'마리나' 에서

 

(제가 그 날 바라 본 11월1일 해는 우리나라 IMF 비운을 알리는 해였습니다)

 

 

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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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구름 흘러가는곳 ..... 정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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