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서 아침을 밝혔습니다.

태양이 아니라...불길이 치솟는군요!!

아침바다가 활활 불 타오릅니다.

떠오르는 태양만 보았는데....이미지를 올리고 보니

소방정도 보이는군요!

물위에 떠있는 배도 불이나면 어쩔수 없이 소방정 힘을 빌려야 하나봅니다.

통영은 인연이 닿아 자주 들리는 곳입니다.

제 2의 고향같은 스스럼없는 곳입니다.

부산에 태어나 짭찌름한 갯내를 맡고 자랐으니

당연 바다의 모든 것이 엄마 품 같습니다.




 마리나리조트가 환히 바라보이는 곳이 숙소입니다.

정박해있는 요트가 보이고...

등대도 보입니다.

년전에 친정가족들이 다 모여서 밤에 등대로 나가 깔깔대며

웃고 얘기하던 일이 옛추억으로 떠오릅니다.


 

몇 번을 올랐던 통영 케블카지만

사진을 세세히 찍고보니

더욱 더 기억에 각인됩니다.

몇 년 전만해도 케블카 타기가 하늘의 별따기였었는데....

서쪽으로 남해를 거쳐 인근

여수밤바다의 케이블카가 인기를 더하면서

조금 타기가 수월해지자

숙지막해졌다지요!




참 재미진 바다 풍경입니다.

들쑥날쑥한 바다~

곶과 만이 많은 바다

<리아스식 해안>

이순신장군이 이 절묘한 바다의 지형을 역이용

왜군을 보기좋게 무찌른 해전의 바다가 아닙니까?


 

통영 미륵산에서 내다본 풍경입니다.

 저기 가로지른 섬 너머 경남 고성이 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섬 뒤쪽 바다.

뭐, 같은 바다  고성, 당항포에 내려우는 이야깁니다.

왜적이 세작을 보내

이렇게 들쭉날쭉한 바다의 지형을 해도로 그렸는데...

그만 그 세작이 대취하자

눈치 빠른 기생(제가 이름을 잊었군요)이 지도를 고쳐서 보냈다는

논개 못잖게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충절이 절절한 관기들이 많았나봅니다.

검색해서 나오면 이름 덧붙이겠습니다.

.

.

<월이군요>

설명글///아래로



당항포 해전 승리로 이끈 기생 월이


월이(月伊)는 고성읍성(邑城) 근처 무기산 아래 물맛 좋은 무기정(舞妓井)이란 우물이 있던 술집의 현명하고 아리따운 기생

이였다. 임진(1592년)년 당항포 해전이 일어나기전 승려를 가장한 일본의 간자(間者)와 하룻밤을 지내면서 이 사내가 소지한 고성읍성 주변지도를 바랑속에서 찿아 먹물로 지도를 고친것이 당항포해전을 큰 승리로 이끈 원인이 되었다. 그날 밤 월이는 붓에 먹물을 잔뜩 묻혀 소소포(召所浦,현재의 고성천하류 거류면 율천)와 죽도포(竹島浦,현재의 고성읍 수남리)사이를 일직선으로 그어 큰 뱃길이 있는 것처럼 표시했다. 현재와 마찬가지로 당항포는 고성만과는 연결이 안되니,적들이 이 바다로 들어서면 퇴로를 막을경우 독안에 든 쥐와 다름없는것이다.

 

드디어 임진년 6월 이순신의 해군은 이곳으로 잘못알고 들어온 왜선들을 대패시켰다. 그리고 고성에서는 당시 왜국의 첩자가 무기정에서 하룻밤을 자고 갔는데 그곳 기생 월이가 지도를 보고 소소포에서 죽도포에 이르는 뱃길을 그어놓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로인해 월이는 당항포해전후 왜군에 체포되어 적장의 칼에 무참히 세상을 떠났다. 당항포에서의 승전(勝戰)은 조선왕조실록 1592년 6월21일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월이의 충절은 이순신 장군의 장계(狀啓) “당포파왜병(唐浦破倭兵)“에 언급되어 있다한다.

 

논개가 2차진주성 전투가 있던 1593년 6월에 왜장을 껴안고 목숨을 버린 거룩한 일화가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실려있는것을 후세들이 밝혀 그 의절(儀節)을 높이 기린다. 이보다 일년앞서 고성땅에 있었던 연약한 여인의 충절(忠節)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그리고 왜적들이 오랫동안 방화,약탈,살상을 일삼았던 당시 바닷가에 가깝던 마암일원에서 힘든 삶을 영위하셨던 우리 선조들을 생각치 않을수 없다.


 향토작가 정해룡의 역사소설 “월이”를 읽고, 에서 옮김


 

바다위에 떠오르는 붉은 태양

이글이글 불붙듯

하늘과 바다를 마구 불지릅니다.

해가 좀 완연히 뜨면

아침바다가 금빛바다로 변하고(8시~9시)

오전 10시경이 되면 그냥 반짝이는

은빛바다로 변합니다.

바다는 일제히 낱낱의 비늘을 세우고 반짝이는 아침이 됩니다. 


글이 함참 늦었습니다.

5월27일 도남항 등대가 내려다 보이는 숙소의 아침이었습니다. 






 

 1억년 전, 태초에 공룡이 살았던 고성 어촌마을

 

하일면에도 공룡의 흔적이 무수히 많건만

좌(東)로는 당항포 공룡축제, 우(西)로는  상족암!   좌청룡 우백호에 가려져

공룡발자취 입구는 진입하기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고성군 하일면과  상족암군립공원 이 있는 하이면으로

넘어가려면  달막재를 넘어야 한다.

달막공원에서 고성 자란만이 휜히 바라다 보인다.

 여행목적지는 하일면이다.

 

 

500m 내외의 산과 구릉지가 많아서 고개를 넘으면 또 고개

구비구비 깊은 산골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고갯마루 정상에 오르면

차가 두 대 쯤  머물만한 공간이다. 

 

갯장어, 멸치, 생굴, 새송이, 딸기, 취나물, 대하

물론 적힌 것은 모두가 반농 반어의 고성일대의 특산물이다.

 

하일면은 천하에 제일 살기좋은 면으로 천하제일면을 줄인 말이라고 현지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

본 하일면은 서기1914년 일제 시대 조선총독부 경상남도령 제 2호로 고성군을 병합할때 하일면이라고 개칭하고

춘암, 오방,학림,송천,동화, 용태,수양의 7개리를 두었다.

 

하일면은 고성읍에서 서쪽으로 25.5Km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은 삼산면, 남쪽은  

바다건너 통영군 사량면,서쪽은 하이면 북쪽은 상리면에 접하여 바다쪽은 한려수도를 끼고 자란만에 임하고 있다.

특히 자란만은 청정해역으로 미국 식품의약국에서 인정한 해역이다./검색
  

리아스식해안(2005년 12월에 찍은 사진)

 

지도상  다도해 섬들이 지저분하게 보이지만

그 섬들은 태초에는 육지였다가 해수면이 올라와서 침식되어 형성되었다,

학교 다닐 때 달달 무조건 외우던 피오르드 해안과 리아스식 해안

우리나라 다도해는 단연코 리아스식 해안이다.

만입이 깊고 물도 잔잔하여 선박의 대피에는 유리하지만,

후배지(後背地)가 적기 때문에 큰 항만의 발달에는 불리하다.

   

2007년 6월에 찍은 사진 

 

▲마주 바라보이는 곳에 서서(보이지는 않지만) 

西(右)로는 하이리 상족암...우측으로 더 가면 남해군,

남(앞)쪽 바다 건너로는 통영의 한산대첩, 東(左)으로는 고성의 당항포, 그리고 더 좌로는 거제도 옥포, 등이 있어

임진왜란 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교묘하게 거북선을 만에 숨겼다가

왜선을 지리멸렬하게 전멸! 지리적 요건을 백분 활용하여 전승을 거두었다.

  

 

내 고향 남쪽바다 잔잔한 무울♪....눈에 보이네~♬ 

남해바다는 왜 잔잔함의 대명사격일까?

 

 

위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리아스식 해안은

만입이 깊고도  바다가 잔잔하여

수산물의 양식· 양어에는 유리하다.

온바다에 부표가 하얗게 수평선을 가로지르기도~

또는 연등처럼 ....꽃처럼,

바다 위를 수놓는다.

 

 
2004년 9월 매미의 피해로 복구된 방파제(2005년 12월 사진) 

 

2007년 6월 방파제모습

 

친구(남편)의 배도 있다.

배가 쥔이 없어  바닷물에 할일없이 늘 잠겼으니

퉁퉁 불겠다며 우스개를 했다.

 

 

배 자체의 가격보다 어업허가까지 붙었으니

작은 배 한 척값은 예상외로 비쌌다.

 

다닥냉이와 각시멧노랑나비 

 

뭐든 지나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길가의 피사체들은

내게....함성을 지른다.

<저, 여기있어요>

그 소리를 들으려면 귀를 열고....눈을 크게해서 두리번 거려야 하는....

 

낯 선 곳을 찾아 여행하는 신비함이다.

돌멩이 하나에도,

풀 한 포기에도,

 

 

바라보고 사는 이들에겐

새롭지도

경이롭지도 않겠지만

지쳐 발길 머문 나그네에겐 이 모든 생경함이

발전기처럼

삶의 에너지로  거듭난다.

 

 

여행이란?

 

언제나 마음을 열고 뭐든 받아 들이려면

빈-마음으로 길을 나서야 한다.

 

마음의 빈 폴더엔

수용이란 이름표를 달아

배낭에 챙겨넣고

길- 떠나면,

 

 

돌아갈 때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않은 이질적인 것들의 화합처럼

다소나마

모가 궁글어진 나를 만난다.

배낭  한 가득히 채워진

나에게 주는

선물꾸러미다.

 

 

말없이 엎드린 산처럼

제 그림자를 그러안고

오늘도

묵묵히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세상은 아름답다. 

 

 

숭어들이 

잔잔한 수면을 가르고 

 은빛 몸으로 솟구치듯 높이 뛰어 오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 곳!

 

 

매미태풍으로 보상받은

새로 지은 멋진 집들은 해안가를 한발자욱이라도 뒤로 물러났다.

두고 떠나간 빈 집은

내버린 집주인 대신 바다를 품기로했다.

 

 

 키 큰 자리공

여릿한 분홍꽃대를 피워물고

자라올라 바다를 향한 채  빈-집을 홀로 지키고 있었다.

 

 

하얗게

피어났다가

노랗게 시드는 금은화

<인동초>도 갯가 돌틈에서 힘들게 피어나고,

 

 

精苟縱心(정구종심)
추사 선생님 말씀에 <정을 주면 이 세상에 예쁘지 않은 풀이 없다>네!

 

 

 빈-집은 어구를 넣어두는 창고로 바뀌었다.

 

 

여름철이면 바빠지는 

고성의 특산물인

하모(갯장어)를 잡아 올릴 주낙(줄낚시)이다.

 

 
 
하일면도 공룡발자국이 있다.
하이면의 상족암이 20여년 전 개발되고
2006년  공룡 세계엑스포로 고성은 세계에 알려졌다. 하지만....,
 
 
막상 엑스포가 열린 당항포도 동으로 두고 상족암의 하이면은 서쪽을 두고있는
하일면은 좌청룡 우백호 탓에 빛을 발하지 못하고,
하일면 공룡자취 길은 날카로운 가리비, 조개껍데기가  지천이라 진입하기가 어려웠다.
 
 
 

자란만은 청정해역으로

미국 식품의약국에서 인정한 해역답게 바다지만 고요한  면경지수가 따로 없다.

 

 

 

 

물이 호수처럼 잔잔하고 맑다.

 

1억년 전, 태초에 공룡이 살았던 어촌마을  

 

고성은 쥐라기공원 아닌 백악기공원  

 

특히 하일면의 공룡발자국은

세갈래 난  큰 새의 발자국 같은 형태였는데....

보긴했는데 <...설마? 공룡?...> 하고 그냥 지나쳤다.

 

 

 <그 자리에다 팻말을 두면 파도에 휩쓸릴까?

표시석이라도...그럼 또 훼손일까?> 

 

  

돌아 나와서 팻말 뒷쪽을 읽어보니...

바로 그 발자국은 세계에서 유일한..... 공룡 긴뒷발굽 발자국이라네요....에혀,

 

 

 사층리(斜層理,Cross bedding)
이 곳에서는 사암으로 구성된 한 지층에서 사층리 구조가 잘 나타나며 수평면을 따라 길게 연장되어 있다.

 

 

 

이렇게 물맑고 경치가 좋은 곳인데,
안내가 따로 없으니
관광객들은  이 곳은 전혀 모른채 그저 스쳐지나가 버리는 곳이 되었으니
어찌 안타깝지 않으랴~

 

아래 사진은 두 개를 동시에 보려고 찍은 것!!'

1억년전 발자국 표시가 날만큼

지금의 우리 눈에도 흡사 진흙 구덩이처럼 유난히도 물렁하게 보이는

▼ 표층이다. 

 

 

 짤피라고도 하고 찔피라기도 하는 해초!!

예전에는 많이 먹었단다.

 

 

 해안을 걸어나오며

떠 밀려온 부표에 매달린 싱싱한 청각을 많이 따왔다.

나중에사 동네 주민말로

썰물 때, 청각을 하러(줏으러) 가는 곳으로 알려진 곳이란다.

 

외지 사람들이 와도  종아리정도의 물에만 들어가도 큰 양파자루로 서너자루는 해간단다.

잘 씻어서 깨 마늘파 참기름, 식초 약간에 무쳐두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꺼내면 국물이 잘박한 시원한 해초무침이 된다.

그냥 말려두었다가

김장김치 속으로도 사용하고

동치미에도 넣으면 시원하다.

요즘은 보기드문 귀한 해초가 되었다. 

 

 
지도를 클릭하시면 이동,확대,축소가 됩니다. 
 
 
 하일면 용태마을 앞
자란만을  물들이던  낙조는 오늘도
곤한 몸을 잔잔한 바다의 품에 스며누이고 있었다.
 

글:사진/이요조

 

 

등대에서 언니,형부

 

 

 
 

 

 

 

 

 

 

 

식사 후, 포만감에 운동삼아 늘 걷던 곳이라....주머니엔 언제나 똑딱이 디카 뿐...
사진이 조금 그렇습니다. (솜씨 없어 안반 탓하는 격이지만~) 올 여름 여행에 좋은 정보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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