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본사 방문겸 휴가겸 겸사겸사 떠난 길이었다.

공항에 내리자 마자 한국농어촌공사 제주본사로 직행, 택시를 탔는데 날씨는 분명 해가 났는데도 비가 내리는 이상한 날씨다.

이런 날씨를 일컬어 햇살이 한창인 여름하늘에 갑자기 쏟아지는 비.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 혹은 ‘여우가 시집가는 날’

택시기사가 씨익 웃으시며 제주도 날씨는 변덕이 심해 늘 이렇다고 한다.

제대로 비가오는날은 바람이 몰아쳐서 비온다는 표현보다는 비바람친다는 표현을 쓴다는데~ 제주도 여름 날씨는 우산을 지참하는 게 좋단다.

 

어차피 공항에서 한 참을 가야 된다고 하니 택시기사분게 제주도 물사정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비행기타고 오시면서 보셨지요? 마을이 바닷가 쪽으로 몰린 건  제주도 한라산은 화산토라 물을 흡수해 버려서 산에서는 식수를 구하기 어렵고

바닷가쪽으로 용천수(스민물이 다시 솟아오르는 물)가 많이 솟아나고 있어 식수를 해안가에서 조달 허벅에다 날라서 생활을 해서 그래요

허벅에다 길어오는 물로만 의존하던 제주도는 34년 전 1970년대에 상수대가 개통되고 살만해졌어요!>

 

그나마 무수천에 의지 (평소에는 물이 없다가 비오면 많이 생기는 말 그대로 건천,  요즘이사 통상 관광객들은 그저 근심이 사라지는 川이다, 쉽게 부르고 있지만)

5~600mm로 쏟아지면 그 물을 가둬서 농식수로 사용하던 제주도 물의 역사가 서린 川이기도 하다.

 

제주도의 연간 강우량은 국내 평균강우량의 1.4배가 되는 1,872mm로 국내최다우 지역이며,  총강우량의 44% 정도가 지하로 스며들어

제주도의 지하수자원을 형성시켜 주고 있고 전문가의 연구보고에 의하면 그 양이 700억톤 이상일 것으로 추정하고

부족 농업용수는 지표수를 개발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제주도하면 얼핏 떠오르는 대표 이미지로는 비바리와 물 허벅을 많이 떠 올린다.

그랬던 허벅도 마을에 수도시설이 생기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언제부터 사라지게 되었을까?

제주본사에 들어와 차장님의 말씀을 듣고는 뿌듯한 긍지감이 생겼다.

 

요즘에는 집집마다 상수도 시설이 설치되어 있어서 볼 수 없는 풍경이지만,

예전에는 아침저녁으로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 오는 것은 나이를 불문하고

여성들의 몫이었다. 제주 지역에서는 물을 긷는 데 사용하는 물동이를 ‘

허벅’이라고 부른다.

 

  제주도 물의 제-1 혁명 

 

제주도는 화산섬 특유의 지형지질 여건상 수자이 개발되지 않던 1970년 이전에는 허벅으로 식수를 날라다 먹는데 의존하던 것을

한림읍 동명리쪽에 최초로 농어촌공사가 동명 지하수 관정  제주도 제 1의 물혁명 이루었다.

 

그러나 제주도 농경지 5400ha 중 2400ha는 농업용수 공급이 원활하지만 3000ha는 개발이 안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는 적정 계발량의 97%까지 착수! 지하수 관정은 거의 다 진행했다고 보면 된다.

제주도 지하수 개발수위는 상승세를 타는 반면 강우량은 감소세를 보이면서 제주도는 지하수 과다개발 억제 시책과 함께 빗물 이용시설

확충 및 저수지 개발 등의 대체수자원 개발에 나서고 있다.

 

제주 함덕 송당지구, 농촌용수 개발지구로 농촌용수개발사업을 발주할 예정이며

 옹포지구는 지하수가 풍부하고 군데군데 용천수가 많은 (용천수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글로)지역 특성을 살려 저수지를 개발중이며

성읍지구는 물이 잘 고이는 곳으로 지표수를 이용하는 저수지를 농어촌공사에서 현재 개발 공사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정면에 야자수가 있어 그런지 이국 분위기 물씬 풍기는  한국농어촌공사 전경

 

 제주도 본부 사무실에 들리자 사업계획팀 전광희 차장님, 사업계획팀 홍탁균 계장님이 반가이 맞아주셨다.

이에 필요한 자료도 챙겨 주시면서 옹포지구와 성읍지구는 제주도의 동과 서로 나뉘어져 둘러보기에 좀 불편한 점도 없잖아 있다시며

옹포에가면 서영석 차장님을, 성읍에 가면 박위식 소장님께 먼저 전화를 넣으면 저수지공사현장을 둘러보기에 용이하다시며

일일이 메모를 해주시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제일 중요한 것!! 옹포지구에 가면 용천수를 꼭 확인하고 취재해보라며 일러주셨다.

 

제주본부에서 볼일을 마치고 가족과 합류하기 위해 짧은 만남의 작별을 고했다.

이번 제주도 여행엔 한국농어촌 공사의 시각으로 바라 본 제주도의 물 이야기만 눈에 띌 것 같은 예감에 빠졌다.

제주도'산굼부리'억새밭

 

현무암이나 화산토로 형성된 지질상 이유로 물이 잘 고이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불현듯 떠오르는 곳이 있었으니

2004년도에 가 본 억새 군락지 '산굼부리'가 생각이 났다.

분화구지만 물이 전혀 고이지 않고 현무암 사이로 물이

쑥숙 다 빠져 버리는 특이한 지형이다.

◀산굼부리 분화구 

아무리 많은 비가 와도 산굼부리는 모든 물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백록담처럼 물이 고여있질 않다.
굼부리는 화산체의 분화구를 이르는 제주어이다.
마르(maar)형 화구로서 귀중한 존재인 이 굼부리는
보기 드믄 분화구 식물원이기도 하다.

 

가족들과 만나 서귀포에서 점심을 하고 마라도로 가는 배에 올랐다.

마라도는 6년 전에도 다녀갔지만 그새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 때만해도 한적하고 자전거를 대여해주었는데 이젠 골프 잔디밭을 누비는수많은 골프차량들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도로도 보완되었고...대신 천혜의 자연은 훼손되어지는 듯 그 차이를 보였다.

6년전에 왔을 때 만났던 갯가바위틈에 무성한 백년초와 갯방풍 큰 키의 기름나물등은 신경쓰고 찾아야 보일 듯.....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물공부 좀 했다고 마라도의 물은 어떻게 해결되는지 그 문제가 부쩍 궁금해졌다.

  

마라도의 화장실과 화장실안의 물절약 캠페인로고!

  

주민 60여명이 산다는 마라도의 전력은 태양광설치

Q물은? 해수담수화시설(2009년 완공)로 그나마 식수고민 해결!

 

 

 

 마라도엔 물 웅덩이가 4군데나 있다.

마라도가 무인도였던 것은 무엇보다 식수(食水) 난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라도에는 샘물이 없다.

따라서 먹는 물은 모두 빗물을 이용하게 된다.  마라도를 거닐다 보면 물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파 놓은 물 웅덩이가

동서남북으로 4군데나 있는데 이는 주민들이 허드레 물을 쓰기 위해서 빗물을 받아 모아두는 곳이다.

 

 

마실수 있는용천수 (절물약수터) 제주시 봉개동 위치

 제주시가 지정한 제1호 약수터 절물약수터

 

 

 

 

 

 

 

 여행을 자주 다니는 필자에겐 늘 이 점이 매우 궁금했다.

늘 가차이 있는 "삼다수!"

제주도엔 물이 늘 풍족할까? 제주도 지하자원인 식수가

뭍으로까지 와서 이렇게 많이 유통되고 있다는 것에 저으기 놀랐다.

제주도 농산물은 거의 산다수를 먹고 자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냥 솟구치는 옹포지구 용천수 물과 한라산 빗물을 모으고

그대로 흘러 바다로 나가는 한림지구 지표수를 모아 저수지를

만드는 일이 농어촌 공사에서 진행중인 제주도 물개발 사업이

지금 이 시간에도 쉼없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제주도 물 이야기는 2,3부로 계속 이어집니다. 

 

 

 

 

 

 

 

제주도 올레길 10코스중 백미격인 이 곳은

산방산이 마주보이는 송악산 입구 앞에 보이는 방파제 같은 곳은 년전에 왔을 때만해도 마라도 가는 선착장이 있었다.

이번 제주 여행길에  생뚱맞게도 모슬포 뱃머리에서 마라도로 출발했다.

대신 송악산 입구에는 눈에 익은 모습의 드라마 세트장이 있었다.《인생은 아름다워》는 제주도를 배경한 SBS의 텔레비전 드라마이다.

 제주도 송악산을 트레킹 하노라면 바다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이다. 

산방산(395m)의 남쪽, 가파도가 손에 잡힐 듯 보이는 바닷가에 불끈 솟은 산이 산방산이다. 99개의 작은 봉우리가 모여 일명 99봉이라고도 한다. 남제주군 산방굴사에서 송악산  초입까지는 풍치 좋기로 소문난 해안도로이다. 그 길을 달려 송악산에 이른다.  송악산은 한라산처럼 웅장하거나 산방산처럼 경치가 빼어나지는 않다. 그러나 송악산 정상에 오르면  누구나 감탄사를 토해낸다.

앞으로 가까이 보이는 최남단의 마라도와 가파도, 형제섬, 우뚝 솟은 산방산, 멀리 보이는 한라산, 그리고 끝없는 태평양, 바다를 씻겨온 바람과 능선에 이어지는 푸른 잔디의  풋풋한 감촉 때문이다. 송악산은 그 모양새가 다른 화산들과는 달리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모여 이루어져 있다. 주봉의 높이는 해발 104m. 이 주봉을 중심으로 하여 서북쪽은 넓고 평평한  초원 지대이고 서너 개의 봉우리가 있다.  주봉에는 둘레 500m, 깊이 80m 정도되는 분화구가 있는데 그 속에는 아직도 검붉은 화산재가 남아 있다. 그리고 바닷가 해안 절벽에는 일제 때 일본군이 뚫어 놓은 동굴이 여러 개 있어 지난날의 아픈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송악산 아래 해안은 감성돔이나 뱅에돔, 다금바리가 많이 잡히는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이국적인 바다풍경이 물씬 풍기는 곳이다.

 드라마 세트장 길 건너편에는 조립식건물을 지어 연기자들과 관계 스텝들이 기거하는 곳이었다.

 이민우 (이수일) 의 모습도 보이고...

 세트장....영락없는 멋진 주택으로 보이는데..전면 뿐, 방송국 스튜디오와 이곳을 오가며 드라마를 연결 편집하여 짜집기 하는가보다. ㅎㅎ 전문용어를 모르니~~

 어엿한 뜰도 텃밭도 있는데...단순한 세트장이라니 허무한 느낌!!

 이왕지사 짓는 김에 완벽하게 지었으면 좋았을텐데...

남규리 (양초롱) 도 보이고....

 급한 일로 다음날 첫 비행기로 먼저 간 가족중 하나의 전언에 의하면 이들 팀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 서울향발했다고 한다. 무척 고되고 힘들겠다.

 이상윤 (양호섭) 이 차를 타고나가는 장면 .....

 세트장 가까이 일반인은 갈수 없도록 되어있었고...본격적인 촬영은 스탭포함 200여명은 좋이 되어 보였다. 장비나 소품을 실은 탑차도 10대나 되어 보이는 듯 했다.

 스탭들 얼굴이 새카맣다. 마치 노가다 같다. 힘든 작업인가보다.

 송악산 동굴은 드라마 대장금의 엔딩장면을 찍었던 곳!!

지난 번에는 못 가봤지만...이번에는 파도가 드쎈 저 곳을 건너 다녀왔다.

카메라 렌즈 접점이 맞지 않아 error 99이 뜨더니 역시나 송악산을 마지막으로 end~

떠밀려 온 쓰레기들

자세히보니....일본에서 온 게 대부분이다. 대마도를 건나 온 쓰레기들~~

이끼 낀 동굴~

제주도엔 이런 동굴이 부지기수란다.

이 곳 동굴은 일본군이 직접 뚫어서 작은배를 숨겨놓고 함대가 나타나면 가미가제식으로 돌진하려고 했다한다.

송악산에서 마주 바라보이는 산방산은  1하멜이 표류한 곳이다. 

 

 

제주올레체험 10코스

코스 경로 (총 15.5km, 4~5시간)

화순항 화순선주협회사무실 - 화순해수욕장 - 퇴적암 지대 - 사구언덕 - 산방산 옆 해안 - 용머리 해안 - 산방연대 - 산방산 입구 - 하멜상선전시관 - 설큼바당 - 사계포구 - 사계 해안체육공원 - 사계 화석 발견지 - 마라도 유람선 선착장 - 송악산 입구 - 송악산 정상 - 송악산 소나무숲 - 말 방목장 - 알뜨르 비행장 해안도로 - 하모해수욕장 - 모슬포항(하모체육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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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해수욕장에서 시작해 산방산 옆을 지나 송악산을 넘어 대정읍 하모리 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해안올레. 국토 최남단의 산이자 분화구가 있는 송악산을 넘는 것이 특징이다. 송악산 분화구 정상에서 마라도와 가파도를 가까이 볼 수 있고, 산방산과 오름군, 영실계곡 뒤로 비단처럼 펼쳐진 한라산의 비경도 감상할 수 있다. 제주올레를 통해 대중에게 처음 소개된 산방산 밑 소금막 항만대의 절경 또한 눈길을 사로잡는다. 화순해수욕장은 파도가 너무 세지도 잔잔하지도 않아 맨몸으로 파도타기에 적합하고 용천수 야외수영장까지 있어 여름철 물놀이에 제격이다

 

  1. 한국에 관한 서양인 최초의 저술인 〈하멜 표류기〉(일명 〈蘭船濟州島難破記〉)의 저자이다. 1653년(효종 4) 1월 배를 타고 네덜란드를 출발하여 바다비아를 거쳐 타이완에 도착했다. 그해 7월 64명의 선원과 함께 무역선 스페르웨르호를 타고 일본 나가사키[長崎]를 향해 가던 도중 폭풍을 만나 8월 제주도 부근에서 배가 난파되어 일행 36명이 제주도 산방산(山房山) 앞바다에 표착(漂着)했다. 제주목사 이원진(李元鎭)의 심문을 받은 후 이듬해 5월 서울로 호송되어 훈련도감에 편입되었다. 그뒤 1657년 강진의 전라병영, 1663년(현종 4) 여수의 전라좌수영에 배치되어 잡역에 종사했다. 1666년 9월 7명의 동료와 함께 탈출, 일본 나가사키를 거쳐 1668년 본국으로 돌아갔다. 귀국 후 13년간의 한국 억류 경험을 바탕으로 〈하멜 표류기〉를 저술했다. 이것은 한국을 서양에 소개한 최초의 책으로 당시 유럽인들의 이목을 끌었다. 1980년 한국과 네덜란드의 공동출연으로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산방산 해안에 하멜 기념비가 세워졌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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