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찰 영주부석사1는 종교가 불교가 아니라는 이유 말고도 참으로 근접하기에 어렵다고만 느끼고 있었다.

지난 번 답사 때에도 무량수전을 (주심포의 팔작지붕 정도만 익히고)감히 이야기 하지 못하고 입구의 은행나무길만 생뚱맞게 쑤석거렸다.

 

 

 부석사2는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주심포계 건물로 손꼽히는 무량수전과 여기에 봉안된 소조 불좌상, 현존 최고의 사찰 벽화인 조사당 벽화, 당간지주와 석등, 고려각판 등의 유물들은 모두 당대를 대표할 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무량수전의 매력은 함부로 논하기가 어려운 건 사실이다. 한국의 유명한 미술사학자시며 미술평론가인  최순우(崔淳雨)님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어 서서' 란 글이 베스트셀러가 되어서일까?  한국에서 가장 너른 정원을 가진(소백산자락) 절집이면서 한국 최고의 목조건물로 이만큼 아름다운 절집이 없어서?

 

늦더위의 따가운 땡볕에도 숱한 발걸음은 부석사로 이어지고 또 이어지고 있었다.

9월인데도 열대야가 왔다는 무더위 속이라 그런지 무량수전에서 바라다보이는 시야는 그리 맑지를 못했다.

 

절집을 찾는 사람들은 벼르고 별러 어쩌다가 찾지만 절집에 머무는 스님들은 철마다 변화하는 이 아름다운 부석사의 사계와 시시각각

태양의 위치에 따라 그 조명을 달리하는 모습의 자연을 대할터인데 달리 부럽다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처음 이 절을 찾았을 때는 나 스스로가 낯을 가렸다.

이젠 좀 친학 척 해보려고 무량수전에 올라서서는 아미타불(阿彌陀佛) 가까이 다가서기도하며  옆모습을 앵글에 담아도 보고 광배도 렌즈에 담아보고,

슬그머니 배흘림기둥을 어루만져도 보다가 종내는 슬쩍 기대어 서기까지 하였으니~~~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은 건축물 기둥의 중간이 굵게 되고 위·아래로 가면서 점차 가늘게 된 주형(柱形). 쉽게 말해 기둥의 위와 아래만 오목하고 가운데 부분이 볼록하게 나온 것을 말한다.

 

부석사....아무래도 서너번은 더 찾아와야지만 그 깊은 속내를 조금은 알 것만 같은.....

지금은 공사중이라 템플스테이도 2011년이 되어야 재개된다는데....와서 며칠은 잠시 속세를 잊고 아침저녁으로  부석사 무량수전에 안긴다면

며칠동안만 그리한다면  배흘림기둥 거랭이에 묻어 둔 침묵의 속살거림이라도 ..아니 향내라도 맡아지지 않을까?  천년 그윽한 .....

 

  지난 해 봄에 왔던 맑은 사진으로 대체해 본다.

안양문(安養門)계단

 『安養』은 곧 『極樂』을 일컬음이니 이 절은 바로 땅 위에 극락세계를 옮겨 놓은 격이라 한다.

안양문 계단을 오르자 무량수전 앞 석등이 보인다.

 

무량수전앞 석등

사각의 이중 기대석 위에 8각을 기본으로 한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팔각석등으로 무량수전과 자오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계단에서 올라와서 곧장 무량수전의 아미타불께로 향하지 말고 우회하라는 뜻도 있다한다.

 

 무량수전은 우리나라 팔작지붕의 시원(始原)으로 알려져 있고, 주심포 기둥이 절묘한 배흘림기둥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신라유물인 무량수전 앞 석등(石燈)(국보 제17호)

 

석등 앞으로 배례석이 놓였다. 상면 중앙의 연화문은 이중원의 자방을 두고 주변에 8엽의 잎을 돌렸는데

사이에는 간엽이 새겨졌다. 통일신라 이후의 일반형에 속하는 배례석이라 할 수 있다.

석등의 간주석은 팔각주이며  八正度 라고도 하는데,

1,정견 2.정언 3, 정업, 4정사선.....등의 교훈이 들었으며 바로보고, 바로 말하고....반듯한 생각과 반듯한 행동의 가르침등을 나타낸다고 한다.

 

 무량수전의 주심포

 배흘림기둥

기둥의 직경이 밑에서 1/3지점에서 가장 크고 위와 아래로 갈수록 작아지는 기둥을 말한다. 서양 그리스, 로마의 신전건물에서도 이러한 기둥을 사용했는데 이를 엔타시스Entasis라고 한다. 주로 큰 건물이나 정전건물에서 사용했다. 고구려시대 고분벽화의 건축도에서 배흘림기둥이 나타나는 것을 볼 때 배흘림은 고대서부터 사용되었으며 조선시대 말까지 이 기법은 이어진다. 현존하는 건물 중에서 고려시대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강릉객사문 등과 조선시대 대부분의 건물에서 나타나는데 이중에서 강릉객사문이 배흘림 정도가 가장 강하다. 또 맞배집이 팔작집보다 배흘림의 정도가 강하게 나타난다. 통일신라기의 목조건물은 남아있는 것은 없지만 쌍봉사 철감선사부도(858년) 등의 석조물에서 배흘림 정도가 강한 기둥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는 배흘림이 강했지만 조선시대 다포 팔작지붕이 유행하면서 그 정도가 약해졌다고 할 수 있다.

천년의 느낌을 어루만져보다. (13세기경 ) 고려시대 목조건물

 소조아미타여래좌상 (국보 제45호) 

소조불이라함은 흙으로 만든 불상이란 뜻이다.

 안양루 계단에서 아래로 바라보다.

안양문(安養門)을 세웠으니 『安養』은 곧 『極樂』을 일컬음이니 이 절은 바로 땅 위에 극락세계를 옮겨 놓은 격이 되는 것이란다.

이 안양루의 공포가 멀리서 바라보노라면 공포불 현현불로 비취는 신비의 모습!! 부석사의 숨은그림찾기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안양루를 받치고 있는 기둥과 거랭이돌

안양문을 통과 무량수전에 올라와 배흘림기둥에 기대어서 굽이굽이 소백산자락 능선을 바라보노라니..

홍진의 모든 업보가 말그라니 다 씻겨나가는 듯......

무량수전 뜨락에는 떨어진 돌배 몇 개가 나뒹굴고 배롱나무 꽃만 붉디 붉더라!

 

 

 

부석사라 이름하게 됨은 무량수전(無量壽殿)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돌'이라 부른데서 연유하였다고 한다.

옛문헌'택리지'에 의하면 명주실이 이 돌 아래를 통과했다고 전한다.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8 (TEL : 054-633-3464)

 

1. 자가운전
         서울->중부고속도로->호법분기점->영동고속도로->여주->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제천단양영주예천
               ->풍기IC->부석사
         대전->4번국도->옥천->37번 국도->보은->25번 국도->상주시->예천->영주방향->부석사
         대구->중앙고속도로->풍기IC->부석사
         부산->경부고속도로->풍기IC->부석사
         광주->올림픽고속도로->대구->중앙고속도로->풍기 IC->부석사
         전주->호남고속도로->대전->경부고속도로->구미->중앙고속도로->풍기IC->영주방향->부석사
         청주->36번국도 괴산->충주 문경 연풍방향->중앙고속도로 단양IC 진입->풍기 IC->부석사

      2. 대중교통
          가. 고속버스의 경우
              서울 출발의 경우 강남센트럴터미널과 동서울터미널 모두 영주행 고속버스가 있으며,
              그 시간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강남고속터미널 영주행 버스 출발시각
              ( 호남선 터미널 이용 ) 07:10 08:40 10:10 11:40 13:10 14:40 16:10 17:40 19:10 20:40
              온라인예매; http://www.easyticket.co.kr/
              동서울터미널 영주행 버스 출발시각 06:15 첫차부터 21:45 막차까지 약 30분 간격으로
              버스가 자주 있습니다.
              온라인예매; http://www.ti21.co.kr/ 영주 시외버스터미널에 하차한 후,
              길 건너편 노상의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부석사행 시내버스를 탑승합니다.
              (진우경유와 풍기경유 둘다 부석사로 갑니다)

          나. 기차의 경우
              서울의 경우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며,
              3시간반 소요. 출발 시각 07:00 09:00 11:00 13:00 15:00 16:00 18:57 21:00
              온라인예매; http://qubi.com *서울역은 영주행 기차가 없습니다.
              하차는 영주역과 풍기역 모두 가능합니다. 풍기역에서 하차하면 역 바로 앞에서 부석사행 버스
              탑승 가능합니다.
              풍기경유 버스 경로: 영주-풍기-순흥-단산-부석-부석사 영주 기차역에서 하차하면
              영주 시내버스터미널까지는 택시/버스로 이동해야 하며, 부석사행 시내버스 시간표는 아래 참조.

              
      
      

부석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삼국사기>〈삼국유사〉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신라 문무왕의 뜻을 받들어 676년에 창건하고 화엄종을 널리 전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을 비롯해 국보5점, 보물4점, 도유형문화재2점 등 많은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10대 사찰중 하나

 

 

금 가고 버림 받은 것들 끌어안기
                                   

아침 햇살에 물든 은행잎!!
은행나무의 배경은

동쪽에서 해가 비껴 떠오른 오전 9시경이었다.

한 달만 더 기다리면, 내가 그렇게나 보고싶어 했던 부석사 황금빛 은행나무길을  걸을 수 있을텐데...


 

9월 하순이라지만 늦더위가 한여름 무더위 못지않다. 
그래선지 은행잎들은 아직도 여름처럼 싱그럽도록 푸르다.

아침 식사 후 바로 들린 부석사엔 지난 밤 많이 내린 비로 인해 아직 먼저 오른 사람은 거의 없어 보였다. 

천년 고찰의 신비를 안은 부석사를 답사하기에 더 없이 고즈넉한 시간이다.

 

 

은행나무길은 우거진 숲그늘로 어두운 듯.. 비쳐보이다가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받은 곳은 연신 눈부신 연둣빛으로 환해보이다가...

혼자서 길을 오르노라면 ...제절로 깊은 생각에  마냥  잠겨서 걷고 또 걸어도 지루하지 않을 명상의 길이다.

신경숙의 소설이야기를 빌자면 상처받은 자들끼리 부석사를 찾아 떠났지만 끝내 도달하지 못했던 곳이다.

설마 소설탓이겠냐마는 영주부석사엔 상처받은 사람들이 오면 치유를 받는다는 잔잔한 설이 생겨났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상처 한 두 번 받지 않은 사람 어디 없을까마는

상처 받은 사람들이 부석사에 다다르면 치유가 되는 그런 절집이란다.

상처받아 딱지가 채 굳지 않아 가끔씩 딱지 아래서 선혈이 흘러 내리는 아픈 사람들에게 영주 부석사는

세상에서 지치고 다친 사람들의 꿈의 이상향이 되어버렸다.

 

 

삿갓 김병연이 부석사를 찾아들어 세상 사느라 백발이 희끗해진 년후, 늦게사 부석사를
찾아들었다는  싯귀처럼 나 역시나 백발이 희끗해서야 부석사에 첫 발을 내 딛었다.

이 나이에  아직까지 무슨 아픈 상처가 짜다라 남아있겠냐마는...
나도 남에게서 받은 흉터 한 두개 쯤은 지지않을 흔적으로 남아있어
살아오면서 내가 누구에게 몹쓸 상처를 주며 살지 않았는지, 뒤집어 생각해 볼 일이다.

 

 

 

안양루를 오르는 길은 좁은데다가 올라가면서 점차 좁혀지는 느낌이다.
무지한인 내 소견에도 짐작컨데  좁은 문은 생명을 뜻하지 않나 싶다.
좁은 문이란 힘든 길,  기피하는 길, 하지만 생명으로 향한 길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형태적으로 본다면 혼자 들어가야 하는 길이고  많은 것을 가지고 가지 못하는 길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탯속에서 어둡고 좁은 길을 통과해서 중심에서 약간 좌측으로 비껴선 듯한 석등을 피해

오른쪽으로 오르면 고고성을 내며 태어나는 신생아처럼 부지불식간에 무량수전 불당위에 솟아 오르게 된다.

이 어찌 새로 태어나듯 하는 생명길이 아니고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목조건물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는 무량수전의 날아갈듯한  팔작지붕의 선과 

무뚝뚝한 듯 무량수전을 말없이 떠받치고 있는 배흘림기둥과 하이얀 창호의 문틀과 문살의 아름다운 모습이 그 곳에  있다.
눈에 가슴에 늘 익혀져 온 것 같은 천년의 세월이 살아 숨쉬는 배흘림기둥의 불룩한 나무결을 쓰다듬노라니 아!
손바닥으로 해서 온 몸에 전달되는 촉감은 세밀하면서도 따뜻하다.

 


  
세상의 물결에 이리저리 부대낀 상한 마음을 위로하고 다스리려 한다면  명상로를 시작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보라!
주말이라면 사람들이 한창 붐비는 한 낮을 피하고...
아침 일찌감치 올라 태백 산봉오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은 운해를 바라보거나
관광객들이 내려오는 오후 느즈막히 올라 부석사의 석양을 바라만봐도 좋으리라~


 

소백산 자락을 딛고서서 태백산맥의 등허리가 물결로 출렁이듯 바라보이는 곳에 허리를 쭉 피고 바로서서
침묵으로 구순하게 엎딘 태백을 보노라면  .... 세상사 아무것도 아닌 듯,  별일 아닌 듯,
저 아래 세상일이 하찮은 것인 양  갑자기 큰 해탈의 도량이 밀려들 것이다.


눈물이 나면 와락 쏟아내도 좋을터,  이내 서럽던 마음이 차분하게 씻겨나가리라~~

 

 

비바람 치는 날에나,
은행나무 앙상한 겨울,
발이 푹푹 빠지는 눈내리는 날에도...


 

영주부석사를 찾은 느낌을 옮기다.  사진:글/이요조 2008,9,21

 

 

 

은행나무 명상길

 

 

 

 

 

 postscript

거의 인적이 안 보이는

은행나무길을 찍은 것은

함께 간 팀원들이

포토라인의 규율을 지켰기 때문이다.

 

은행열매가 떨어진 길바닥

우리는 정지선을 정하고 일제히 샷!!!

또 걷다가...정지하고,

 

 

제일 어눌한 줌마 포즈 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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