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방문인 부석사에 '문화해설사'가 빠진다는 것은 참으로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여행기를 즐겨쓰는 내게 있어

'영주부석사'는 그만큼  힘에 부칠 정도의  태산준령같은 미션이기 때문이다.

 

영주여행길에 오르면서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다시 한 번 더 뒤적여 볼까 생각다가 관 두었다.

일전에도 어느 글에 그런 내용을 적은 적이 있다.

여행준비를 혹자는 미리 세세히 뒤져서 공부를 하고 정보를 익히고 떠나는 일이다.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그냥 떠나는 것이다. 오래전에 읽었던 책은 책으로 두고 그냥 아무것도 머리에 담지말고 천진한 어린 아이처럼 그냥 느끼는 것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여행길 나만의 글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연히.....아주 우연히....오래전에 읽었던 글들이 소화되어  살이되고 피가 되어 흐르던 것이 따악 비슷하게 맞아 떨어지는

기쁨을 맞볼 수 있게 된다.

- 아! 내 청맹과니 눈에도 그랬어...그 것이 보였어!!- 바로 그런 기쁨인 것이다.

이번 여행길에도 부석사 구석구석 산재해 있는 건축미학이 있다는 정도로만 알고 나는 룰루랄라~ 어린아이들 마냥 즐겁게 여행길에 올랐던 것이다.

여행은 여행이다.  공부가 되어서는 안된다.

먼저 눈으로 마음으로 충분히....느낀 다음 해설사의 도움을 받으면 좋을 것이다.

처음부터 해설사의 도움을 받노라면 자기가 발견한 소중한 느낌 따위는 점점 퇴색되기 때문이다.

 

길가다가 동행이 셋만있어도 그중에 스승이 있다고 했거늘...

적어도 부석사는 네 번을 와야지만 제대로 알수 있다는 데... 몇 번 왔다는 강경원님이 급조한 해설사가 되어주기로 했다.

무량수전을 지나 조사당까지 다다라 흠씬 느낌을 받고 내려오는 길에 늦게 당도한 해설사님이 아까부터 설명하고 계신단다.

 

-이런~ 이런~

저 아래  종무소 앞마당에 우르르 모여있다.

막 들어오기 시작한 관광객들과 뒤섞여서 ...해설사님이 누구신지 얼굴도 못뵈었다.

그 때  일행 한 분이 앞뒤 설명 제하고 무조건 나를 끌어당겨  저기 부처님 그림을 보란다.

-어디에 어디?

-뭐가 보여요?

-안양루에 부처님들이 가부좌하고 앉아 계시잖아요!-

눈이 나쁜 내게는 희미하기만 하다. 얼른 카메라를 꺼내어 줌으로 당기니....<아! 보여요!!>

딱 이자리에서만 서서봐야 보인단다. <뭔 그런 그림이 있어?>

여섯분이 다 보여야 한단다. 난 속으로 그랬다. (무슨 매직아이 하는 것도 아니고...원 참!!!)

 

무지한의 소치

 

그랬다. 내 눈에는 다섯분만 보였다.

한 분은 으례히 나무기둥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거라고...단정짓곤  대수롭잖게 생각하고 부석사를 떠나왔었다.

집에 와서 사진을 불러 모니터로 보고서야.....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 내 눈에는 흰 옷에 붉은 가사를 어슷하게 걸친 부처님들로 보였다.

길게 늘어뜨린 흰 수염과 흰 옷과 붉은 가사는 분명 형광색으로 찬란하게 보이기 조차했다.

 

그 그림의 실체를 더 크게 확인한 순간....그 것은 부처님의 모습이 아니라..안양루의 공포의 공간으로  보이는 저절로 생겨난 그림이었다.  안양루 공포는 유난히 화려한 구조였다.

붉은 가사는 무량수전의 처마 바로 아래의 채색이었던 것이다.

그 공포의 각도에 따라 가부좌 자세는 같아도 다른 형상으로 각각의 여섯부처 형상이 드러난 것이다.

어쩌면 시야의 각도가 그리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는지...우연이라 치기엔 너무 아름답다.

 

과연 우연일까?

  

무량수전/고려 공민왕 친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조건물이라 불리우는 무량수전은 완벽한 조화와 비례 그리고 기능과 구조의 아름다움이

있다는데,

 글 하나 더 보태어서 최순우1(미술사학자)님의 저서로 인해 배흘림기둥의 미학은 더욱 유명해졌다.

 작은 이미지는 클릭하시면 크게 보입니다. 

 

'배흘림기둥'을 감히 설명하기엔 능력밖의 일이지만 배흘림기둥은 마치 항아리 모양 가운데 부분을 불룩한 모양을 한 기둥으로 멀리서 보면 가운데 기둥이 가늘어 보이는 시각적 착시를 현상을 막아주는 기법으로 만들어진 것이란다.

그러면 벌써 건축을 짓기전부터...착시와 시각의 안정을 생각하는 분이라면 얼마든지 한 군데 쯤 멋진 착시의 그림 하나 쯤 숨겨 놓고도 남음이 있지 않을까?

나의 깨달음은 건축물 구조를 그렇게 시각적인데 까지 속속들이 배려해서  

 (무량수전의 기둥의 안쏠림이란 건물 모퉁이 기둥의 윗부분을 수직선보다 약간 안쪽으로 기울여 세우는 기법이다 이 기법은 지붕하중에 의해 건물의 양끝이 벌어져 보이는 것 같은)

보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안정감을 주는 건축양식이라는데...참으로 아득한 옛날 선인들의 지혜에 차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기법들이 적용되었기에  무거운 지붕을 머리에 이고 있지만 안정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자! 그럼 우리 함께

숨은 부처님, 현현불을 찾아볼까요? 

나무가 가렸지만 안양루의 공포 사이로 보이시지요?

멀리서 바라보면 이렇게 보입니다.

부러 그림을 작게 만들었습니다.

 

 

다섯분이 보입니다.

왼쪽 기둥에 한 분이 가려졌습니다. 

 

 

한 분의 가사자락만 약간 보입니다. 

 

 

안양루의 공포는 매우 화려하게 조각되었군요.

바로 이 공포2(栱包/貢包)의 공간 사이로

무량수전의 채색벽과 맞닿아 (멀리서 바라보면)

불현불이 보이는 것입니다. 

 

 

욕심많게 자리를 제일 앞으로 당겨 섰습니다.

그중 제일 잘 보입니다.

여섯 불현불의 형체가... 

 

'부석사' 현판은 故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

사진을 잘라내기 했더니

우측에서 두 번째 기둥에 가려져 보이는군요,

이제 여섯분의 불현불을 저와 함께

다 보신 것입니다.

 

 

또 하나 부석사를 둘러보다가 급조한 강해설사(블로거), 석축과 담쟁이 넝쿨을 보라더군요.

그 말인즉슨  사진도 찍어 두라는 말도 내포되었지요.

 

그 말에 생각없이...댓바람에 <그깟 담쟁이를 뭐라고...>했더니 묵묵히 통과~~

 

여행 후,

돌아와서 자료수집 정보검색에...<아차!> 했습니다.

석축과 돌계단 역시나 그저 만든 게 하나도 없는 의미깊은 것이었음을..

어찌나 부끄럽던지...늦게서야 스스로 깨달아 후회하면서  다른 이미지에서 급하게 잘라 오려 붙입니다.

안양루 아래로 보이는 무량수전의 석축입니다.

 

 

부석사에 한번쯤 다녀온 사람들은

누구나 석축과 돌 계단을 특별히 기억한다.

이 석축은 부석사를 창건할 당시 비탈을 깎고

평지를 고르면서 만든 것이다.

물론 석축의 목적은 사찰을 짓기 위한 땅 다짐에 있지만,

석축 돌계단 그 자체에도 상징하는 바가 있다.

부석사 계단은 모두 9개 석단 108개로 이루어졌다.

이는 극락세계에 이르는

단계로 속세, 수행,극락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반듯하게 다듬은 규격화된 돌들로 석축을 쌓지 않고,

돌의 자연 생김새를 그대로 이용해 잘 짜 맞추어 쌓았다는 것이다.

 

둥글든 모났든 크든 작든 돌들의 본래 모양새와

개성을 버리지 않고도 조화롭고 짜임새 있으며

견고한 석축이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현대의 우리들에게 커다란 가르침을 준다.

 

 

 

 


 

 

 

 현현불 이야기/이요조 2008, 9월

 

 

 

 

 

  1. 최순우 (한국 미술사학자) [崔淳雨] 브리태니커 1916 경기 개성~1984 서울.미술사학자·미술평론가.최순우 /최순우본명은 희순(熙淳). 호는 혜곡(兮谷). 개성 송도고등학교를 나와 개성박물관에 근무했으며 당시의 관장 고유섭(高裕燮)의 감화로 한국미술사를 연.... [본문으로]
  2. 공포/[명사] [건설]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하여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나무쪽.연관단어 : 포작 [본문으로]

 

 

금 가고 버림 받은 것들 끌어안기
                                   

아침 햇살에 물든 은행잎!!
은행나무의 배경은

동쪽에서 해가 비껴 떠오른 오전 9시경이었다.

한 달만 더 기다리면, 내가 그렇게나 보고싶어 했던 부석사 황금빛 은행나무길을  걸을 수 있을텐데...


 

9월 하순이라지만 늦더위가 한여름 무더위 못지않다. 
그래선지 은행잎들은 아직도 여름처럼 싱그럽도록 푸르다.

아침 식사 후 바로 들린 부석사엔 지난 밤 많이 내린 비로 인해 아직 먼저 오른 사람은 거의 없어 보였다. 

천년 고찰의 신비를 안은 부석사를 답사하기에 더 없이 고즈넉한 시간이다.

 

 

은행나무길은 우거진 숲그늘로 어두운 듯.. 비쳐보이다가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받은 곳은 연신 눈부신 연둣빛으로 환해보이다가...

혼자서 길을 오르노라면 ...제절로 깊은 생각에  마냥  잠겨서 걷고 또 걸어도 지루하지 않을 명상의 길이다.

신경숙의 소설이야기를 빌자면 상처받은 자들끼리 부석사를 찾아 떠났지만 끝내 도달하지 못했던 곳이다.

설마 소설탓이겠냐마는 영주부석사엔 상처받은 사람들이 오면 치유를 받는다는 잔잔한 설이 생겨났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상처 한 두 번 받지 않은 사람 어디 없을까마는

상처 받은 사람들이 부석사에 다다르면 치유가 되는 그런 절집이란다.

상처받아 딱지가 채 굳지 않아 가끔씩 딱지 아래서 선혈이 흘러 내리는 아픈 사람들에게 영주 부석사는

세상에서 지치고 다친 사람들의 꿈의 이상향이 되어버렸다.

 

 

삿갓 김병연이 부석사를 찾아들어 세상 사느라 백발이 희끗해진 년후, 늦게사 부석사를
찾아들었다는  싯귀처럼 나 역시나 백발이 희끗해서야 부석사에 첫 발을 내 딛었다.

이 나이에  아직까지 무슨 아픈 상처가 짜다라 남아있겠냐마는...
나도 남에게서 받은 흉터 한 두개 쯤은 지지않을 흔적으로 남아있어
살아오면서 내가 누구에게 몹쓸 상처를 주며 살지 않았는지, 뒤집어 생각해 볼 일이다.

 

 

 

안양루를 오르는 길은 좁은데다가 올라가면서 점차 좁혀지는 느낌이다.
무지한인 내 소견에도 짐작컨데  좁은 문은 생명을 뜻하지 않나 싶다.
좁은 문이란 힘든 길,  기피하는 길, 하지만 생명으로 향한 길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형태적으로 본다면 혼자 들어가야 하는 길이고  많은 것을 가지고 가지 못하는 길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탯속에서 어둡고 좁은 길을 통과해서 중심에서 약간 좌측으로 비껴선 듯한 석등을 피해

오른쪽으로 오르면 고고성을 내며 태어나는 신생아처럼 부지불식간에 무량수전 불당위에 솟아 오르게 된다.

이 어찌 새로 태어나듯 하는 생명길이 아니고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목조건물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는 무량수전의 날아갈듯한  팔작지붕의 선과 

무뚝뚝한 듯 무량수전을 말없이 떠받치고 있는 배흘림기둥과 하이얀 창호의 문틀과 문살의 아름다운 모습이 그 곳에  있다.
눈에 가슴에 늘 익혀져 온 것 같은 천년의 세월이 살아 숨쉬는 배흘림기둥의 불룩한 나무결을 쓰다듬노라니 아!
손바닥으로 해서 온 몸에 전달되는 촉감은 세밀하면서도 따뜻하다.

 


  
세상의 물결에 이리저리 부대낀 상한 마음을 위로하고 다스리려 한다면  명상로를 시작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보라!
주말이라면 사람들이 한창 붐비는 한 낮을 피하고...
아침 일찌감치 올라 태백 산봉오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은 운해를 바라보거나
관광객들이 내려오는 오후 느즈막히 올라 부석사의 석양을 바라만봐도 좋으리라~


 

소백산 자락을 딛고서서 태백산맥의 등허리가 물결로 출렁이듯 바라보이는 곳에 허리를 쭉 피고 바로서서
침묵으로 구순하게 엎딘 태백을 보노라면  .... 세상사 아무것도 아닌 듯,  별일 아닌 듯,
저 아래 세상일이 하찮은 것인 양  갑자기 큰 해탈의 도량이 밀려들 것이다.


눈물이 나면 와락 쏟아내도 좋을터,  이내 서럽던 마음이 차분하게 씻겨나가리라~~

 

 

비바람 치는 날에나,
은행나무 앙상한 겨울,
발이 푹푹 빠지는 눈내리는 날에도...


 

영주부석사를 찾은 느낌을 옮기다.  사진:글/이요조 2008,9,21

 

 

 

은행나무 명상길

 

 

 

 

 

 postscript

거의 인적이 안 보이는

은행나무길을 찍은 것은

함께 간 팀원들이

포토라인의 규율을 지켰기 때문이다.

 

은행열매가 떨어진 길바닥

우리는 정지선을 정하고 일제히 샷!!!

또 걷다가...정지하고,

 

 

제일 어눌한 줌마 포즈 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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