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코코슈카의 <폭풍우>(1913)


[폭풍속의 신부]

마구
내 심장을 난도질하듯
파문을 일으키며
이 그림이 내 가슴에 닿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폭풍 속의 고요**
난 그렇게 이름하여 부르고 싶다.

작금의 시대는 연일
모진 폭풍우 속이다.
우린 지금 처절한
피 튀는 전쟁 중이다.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우린 이 시대의 새로운 전쟁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IMF 를 필두로
우리의 실체가 그렇고.....
서로 싸움질하는 국회가 그렇고,
그 덕에 등터지는 국민이 그렇고,
가믐에 목말라하는 작은 영토가 그렇고,
중산층이 증발한 빈민격차가 그렇고,
누구말처럼
"위암에 걸린 환자에게 배위에 그저 소독약이나 바르고 있는...."
우리 조국의 못난 위정자들의 모습이 그렇고,

세상이 빨리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원심력과 구심력은 더 커진다 한다.
있는자는 더 가지고 없는자는 더 뺏기고,
가벼운 건 더 가볍게 무거운 건 더더욱 무겁게,
외로운건 더 외롭게
고독한건 더 고독하게...

그나마 서민에게 위안을 주던
[비가 오면 누구나 비를 맞는다]
는 말이 탈색과 변종을 일삼더니
범상치 않게 돌아가던
세상 작태의 말로는
[폭풍우가 쳐도 피할 이는 피한다]
는 노랑머리 정체불명의 트기를 낳고
시니컬하게
비웃는 특권층이 있는한
폭풍우는 절대 잠들지 못한다.

차라리 그 소용돌이의 와중에
정말이지 오스카 코코슈카 그림처럼 편하고 싶다.
쉬고 싶다. 누군들 안 그럴까?

잡동사니? 생각을 죄다....
가믐의 땡볕 속에서 바싹 건조 시켜버린다면 이렇게 될 수가 있을까?

아~~
어젠 하늘에서
기껏 스프레이로 물장난하더니......
더욱 더 조갈만 난다.

난,
그림 속의 신부처럼
죽음 같이 고요한
혼곤의 잠을 청하고 싶다.

폭풍우치는
와류 속에서
그 늪에서
영영 깨어 날 수 없더라도
영원같은 숙면이
진정 꿈처럼 그립다.



글/이요조

가믐이 극성일 때 쓴 글 아마 내자신 모든 것도 바싹 말라 있었나보다


 

오스카 코코슈카의 *폭풍속의 신부*


표현주의적 화풍 묘사
제1차대전이 발발한 1914년에 제작되었다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창백한 남자를 안고 있는 신부의 모습은 혼란기 속에서
한줌 희망을 안고 평화를 기다리는 대다수 민중으로도,
혹은 탈근대의 싹을 피워나가고자 하는 예술가들 자신으로 보이기도 한다.
 
오스트리아 화가인 오스카 코코슈카(1886-1980)가 그린 "폭풍의 신부"
"트리스탄과 이졸데"라는 부제가 붙어 있기도 하다.
이졸데 공주의 약혼자와의 결투끝에 이졸데의 약혼자를 죽이게 된 트리스탄.
무슨 인연에서인지 트리스탄은 콘윌 왕국의 국왕인 삼촌의 신부로 이졸데 공주를
데려가는 임무를 맡게 되고 이졸데와 트리스탄을 태운 배는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나고 삼촌의 신부가 될 사람을 사랑하게된 트리스탄, 자신의 약혼자를 죽인
사람이자 남편의 조카를 사랑하게된 이졸데...
사랑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






yojo-lady@han 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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