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딸아!
여행이란 참으로 많은 것을 얻게도 하고 느끼게도 해준다더니 정말이더구나.
엄마는 이번 원주 여행길에서 나 스스로도 잘못된 대화 습관을 반성도 하며 산책길에서 곁을 지나쳐가는 행인들의 흘리는 이야기를 듣고도 많이 깨달았단다.

 

여행지에 도착한 첫 날 밤,  센터빌리지까지 가는데 걷자느니 타자느니 우리는 각자 의견이 달랐다.

엄마는 여름밤을 땀을 흘리며 씩씩거리며 걷느니...모처럼 분위기를 잡고 싶은 게 더 중요했거든, 그런 생각으로 타고가자고 했는데
아빠는 먼저 엄마의 기분이 어떤지 묻고 헤아려 주셨다면 하는 게 엄마의 희망사항이었던 거다.

서로가 내 세우는 의견 방법이 달랐지 뭐냐
아빠는 엄마에게 건강상 이렇게 공기 좋은 곳에서 걷자고 엄마에게 설득을 시키든가.
엄마는 또 아빠에게 그 곳까지는 멀기도 하려니와 힘들 것 같으니 땀 흘리지 말고 우아하게 모처럼 분위기나 잡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을 하든지...
서로 자기 생각만 옳다고 우겼지 상대방에게 설득을 위한 노력은 막상  해보지 않았구나!
설득을 하더라도 역지사지, 남을 이해하려 드는 노력도 따라야 할 것이다 만,

아무튼 우리 부부는 조금 티격태격했다.
<머리만 있고 감정이 없는 양반 같으니라고~>엄마는 속으로 불평했다.
 
건물 바깥을 조금 나서서 어둔 얼굴만큼이나 무거운 발걸음으로 걸으려하자  밤길에 인도도 없을뿐더러 마침 소나기가 후드득 쏟아 내렸다. 그 바람에 엄마 뜻대로 차를 타기는 했는데  거리를 체크해 보자는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아빠는 1,7Km, 엄마는 2,2 Km 라고 짐작을 내세웠는데....그랬더니 계기에는  정확하게도 2Km! 딱 오리가 나오더구나!
ㅎㅎ 엄마 아빠 둘 다 오십보백보지만 엄마가 근접했다.

여행지 첫 날,  극기훈련처럼  어둔 밤길을  오솔길도 아닌 왕복 십리의 차도를 걸었다면  쌩쌩 달려오는 자동차들의 라이트에도 눈부시고 놀라고...아마도 엄마는 지쳐서 몸쌀이 났을지도 모를일이다.

 

 

이튿날은  아침 새벽 일찍 눈을 떴다.
센터빌리지 부근에 있는 산책길을 찾아 걷기로 했다.
2km떨어진  센터까지 가는 길에 바라보니 새벽 숲에는 버섯들이 막 머리를 내밀어 자라오르고,  호수에는 안개가  피어오르는 장관이 연출되고 있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잠깐 차를 좀 세워달라 그럴텐데, 말 하기 싫어 그냥 내처 목적지까지 갔다.

아빠 센터에 내리시고 곧 뒤따라 가겠노라며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왔다.  안개 낀 호수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다시 그 자리로 내려왔으나 단 몇 분 만에 안개는 거짓말처럼 저 멀리 달아나고 있는 중이었다.

놓친 마음에 속상해서 아쉽지만 안개가 달아나는 모습의 호수 사진을 얼른 찍고 다시 조각공원까지 되돌아갔었다.
조각공원을 끼고 산책길이 있다기에 엄마는 달리다시피 오른편으로 나아갔다.
아빠에게 전화를 했더니 엄마는 전혀 다른 길로 접어들었더구나.
이내 뒤따라가겠다는 산책길에 부랴부랴 서둘러 달렸더니 되레 더욱 멀리 어긋나버렸단다.

만나기를 포기하고 헐레벌떡한 숨을 고르며 나 홀로 산책을 즐기고 있으니...웬걸, 느긋함이 한결 좋기만 하다.

잠시나마 아주 잠시나마 혼자가  더 좋은 부분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봤구나!


방금 돋아난 버섯들하며 ...이슬 맺힌 잔디하며...신선한 아침, 맑은 공기를 폐부 깊숙이 받아들이며 느릿한 걸음으로 되돌아가는 중이었다.

산책길 맞은편에서 한 가족 일행이 오고 있었다.
어림짐작하건대 나보다는 나이가 댓살이나 더 됨직한 아주머니의 내외와 그 아들 둘,
시동생이나 친정동생일 것 같은 사십대 남자 한명 그렇게 다섯 명이었지 싶다.

5m 앞 마주보는 지점에서 아주머니는 <버섯이네~>를 외침과 동시, 서슴없이 톡 분질러 따는데...버섯모양은 20cm 길이의 기다란 자루에 갓은 조그맣고 봉긋한 그런 모양의 버섯이다.  나는 흔하지 않은 버섯 사진을 찍지 못해 아깝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이것...갓버섯이야 아침에 끓일 된장찌개에다 넣어 먹어야지>
그 말에 삼촌 같은 중년이 얼른 되받았다.
<버섯은요 비슷해도 몰라요. 그냥 버리세요.>
<내가 왜 몰라, 먹는 거 맞아>누가 뺏어 갈세라 버섯든 손을 아예 뒷짐 졌다.
<안돼요. 어머니 클나요!>
<맞다는데 뭘 그래?>
<......>
모두 묵묵부답이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곁을 지나다가 듣게 된 나 역시 <그건 아닌데...> 싶었는데 하물며 가족들 생각이야 오죽할까?

나이든 여자의 고집이다. 가족들은 독버섯을 먹을지도 모를 공포에 ....일순 이상한 분위기가 잠시 흘렀는데, 그랬는데,
<여보~ 버려!>라는 말이 들린다. 아주 부드럽고도 단호한 남편의 한마디다.
버렸는지...어쨌는지 그 후 일은 모른다. 순간 그들 곁에서 멀어졌으므로...

<여보~ 버려!>
그 부드러운 말 한 마디라면 고집 센 나도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버렸을 것 같았다.

그 때 내가 들었던 어투는 얼마나 다정하고도 사려 깊은 어감이었는지, 녹취가 아닌 담에야 글로는(문자)아주 짧지만 리듬이 실린 정감어린 말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구나!
여자란 모름지기 나이가 들면 야생마처럼 코만 드세어지는 법이지! 어쩔 땐 어느 누구도 꺾지 못할 정도로,

오늘 난 가슴으로 느꼈다.
남편이 곁에 있어 함께 가면서 잘못된 것은 수정하며 바른 길만 가도록 도와주는 당근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남편이 있어 흔들리지 않고 중심 잡을 수 있다는 것을, 그런 과정으로 비로소  완성된 인생으로 가꿀 수도 있다는 것을,

얼굴을 미처 보진 못했지만 그 남편이 참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에 남편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버섯은 비슷한 게 많다잖아!  버리라면 버릴것이지~ 식구들 다 죽일 일 있어?>

하고 눈을 홉뜨며 비아냥끼의 말투로 자존심까지 건드렸다면 모르긴 해도 그 가족들은 모처럼의 여행기분을 다 망칠지도 모를 일이다.

 

결혼상대로 우선 여자들이 일순위로 꼽는 착한 남자!
그러나 나는 착한 남자위에다 하나를 더 보탠다면 말을 아주 점잖게 뽄새 있게 할 줄 아는 남자였으면 해~

물론 여자도 당연하지.

 

부부가 살다가 보면 얼마나 숱한 말에 상처를 많이 주고받게 되는지... 무심코 내뱉는 말이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가슴에 흉터로 남는 말이 되지는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말이란 내뱉는 사람은 잘 모른단다.
얼마만한 독성을 지니고 상대방에게 튀어 나갔는지, 그 말을 들은 상대방은 평생을 잊지 못하는데도...

사랑받기를 거부하고 미움, 증오만 받을 심산이 아니라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솜씨처럼 말에도 씨가 붙어 말씨라 불리듯이 말이다.

딸아!  모든 이 들에게 사랑 받으려면 먼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목소리를 낮춰서 나긋나긋, 조신하게 말을 하여라.

귀는 열어두되 혀는 함부로 쓰지 마라.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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