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수능일이다.

수능일 그날 새벽에 비가 내렸나보다.

천지를 노랗게 물들이던 은행나무가 훌훌 옷을 내어던지고,  나무들도 잎들을 떨어뜨리고 나목으로 섰다.

연민에 서로 떨어지지 못하는 낙엽들, 나무와 낙엽들의 떨어지기 아쉬운 이별의 눈물들이 지난밤, 한꺼번에 다 내렸다.


잠이 도통 오지를 않는다.

밤을 하얗게 밝히고 병원 아래에 있는 약국을 먼저 가서 물었다.

<수면유도제, 처방 없이 살 수 있어요?>

해서 단 돈 1,000원을 주고 나는 잠을 사왔다.


집에 들어서자 발에 밟히는 낙엽들....낙엽들,

나는 일 년치 잘 빌려 쓴 빚을  갚기로 했다.

무덥고 긴- 여름 내내 그늘을 주고 신선한 공기를 나눠주던 나무들,

그 낙엽을 모아두었던 낙엽들을 모아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물은 한대야 가득 떠다놓고 나는 가을을 보내는 축제를 나 혼자 벌인 것이다.

어지러웠다. 마당 청소하랴, 불 지피랴

요즘 목줄이 풀린 채로 내싸두었던 똘똘이는 신이 났다.

엄마가 마당에서 자기와 놀아주는 줄 아는 모양이다.

눈물 그렁한(그 넘은 매번 그렇다) 눈으로 그윽히 눈 마주치기를 하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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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건 어제 일이었고

낮에는 마당 치우느라 고단했을 터, 지난 밤 잠자리에는 10시경에 잘 들었는데,

오늘은 새벽에 잠이깨어 뒤척이다가 도대체 다시 잠이 오질 않을 것 같아 일어나 버렸다.

시계는 4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얼추 3시경에 깼나보다.


힘들다.

책을 만들 원고도 실상은 요구한대로 다 올렸는데

나 스스로 뭐가 빠지고 뭐가 없다며 내가 딜레이 시켜가며 자진 납세다.


�까?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가슴 밑바닥 앙금으로 가라앉은 상처를 건져내기가 내겐 무척 힘겨운 일인가보다.

딸에게 보내는 엄마의 편지를 쓰게 된 동기를 프롤로그용 원고로 써달란다.

아마도 그 게 제일 비중이 큰가보다.


다 나은 듯 보이는 상처의 딱지를 역부러 건드려서 선연하게 붉은 피를 내어 보이는 일이다.  내겐....

그 일이 두려워 나는 차일피일 핑계거리를 대는지도 모른다.

어둑새벽에 일어나 앉아 물기 젖은 마음을 티슈로 닦아내듯 지긋이 눌러본다. 

과연 잘 하는 짓인지...


이맘때면 원고를 다 넘기리라 넉넉잡았던 여행 일정이 빠듯하고 나는 그 앞에서 초조하다.

탈고 기념으로 내게 내리는 상이다.

비록 짧은 여정이지만 김해공항에서 20일 아침 비행기로 출국하는 여행이다.

그러자면 19일전에 일손을 놓고  떠나야한다.


그 기일 안에   깊숙한 곳을 휘저어 올린 앙금을 다시 바라볼 일이 무척 두려운게다.

어차피 뿌우옇게 일으켜 세운 기억의 편린들!

낙엽과 함께 활활 불에다 태워버리고 이젠 기억속에서 영영- 지워버릴테다.


이번 가을은 보내기가 무척 어렵다!

연거푸 오는 불면의 밤을 마중물로 캄캄하게 깊은 내 기억의 펌푸질을 시작하고 있었나보다.

오늘밤에는 준비했던 약을 먹고 깊은 잠에 빠져야겠다.

그러면 마음이 좀 편할란가..... 

 

 

2007,11,16일 

 

 

 

 

 

 

 

 

 

매미굼뱅이

 

봄이면  때 아니게 마른 사사의 잎을 잘라주어야 한다.

겨우내 푸른색으로 잘 버텨주던 사사( 조릿대 원예종)는 이른 봄 찬바람을  막으며 그 속에서 새 잎을 자라게 하고 저는 그제사 말라 시들어진다.  때아닌 봄에 시들은 사사잎을  잘라주어야 한다.

마당 한켠에 사사 잘라낸 것을 썩으면 화단에 거름으로나 쓰려고 (실은 내다버릴 쓰레기 봉투값도 아깝고) 두었다가 어제 그냥 태워버렸다.

그런데 그 속에서 이런 굼뱅이가 나오는 게 아닌가?

아마도 추측컨대 매미의 굼뱅이 같다.

열심히 낙엽을 나르는 작업중이라  나중에 어디 묻어주어야지 하다가....하다가.....

이노매 건망증!

내 발로 밟아 버렸나보다. <오호! 애재라!>  불태우려던 낙엽에 묻어 오는 지렁이도  들어내어 버렸거늘....

내가 너를 밟다니~~

 <참말로 미안쿠나!>

.

.

그랬는데, 또 있다.

또 한 마리가 있는데, 이 넘은 움틀 움틀 움직인다. 내게서 아주 무서운 살의를 느낀게야!

미안쿠나,  좋은 장소로 데려다 줄께....구겅이를 조금 파내고 굼뱅이를 눈히고 낙엽으로 잘 덮어주었다.

어느정도 움직일 수 있으니 저가 더 좋은 곳으로도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봄에 죄 잘라놓은 대나무 잎 같은 사사잎이 마치 잘 마른 지푸라기 검불 같아서 거처하기에 좋았을 게다.

날이 어느정도 밝으면  내다 보고 와야겠다 지난 밤에 추웠을 텐데....

 

(방금 나가보았다. 덮었던 낙엽을 헤치니 얼었는지..미동도 않는다. 낙엽을 충분히 더 덮어주고는 큰 돌러 그 부근을 약간 비켜서 눌러 두었다. 똘똘이는 먹을 것을 숨기느라 걸핏하면 마당 여기저기 구덩이를 잘 파기 때문이다.)

 

 

꿈틀거리며 몸을 좌우로 흔들어 댄다.

매미유충이 맞다면 이런모습으로 3년내지 7년을 견뎌야 된다는데....

네 안태자리를  내가 동티를 냈구나!!

<정녕 미안타....>

 

 

 

낙엽태우는 연기도 많이 마시고 보니 어지럽다.

지난 밤을 제대로 눈 붙이지 못한 탓인지 몇 번이나 핑글-  아득한 현기증을 느꼈다.

연기로 뿌옇던 다라이 물이 말끔해졌다. 불 태우는 중에도 낙엽은 계속해서 떨여져 내렸다.

 

목줄이 풀려 요즘 살맛 난
마당의 똘똘이도
물 위에 뜬 한 올의
터럭으로
분명

동.

참.

했.

다.
                                                              .

.

.

.

.

.

af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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