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날의 한 잔 술과 늦게 잠자리에 들다보니

새벽에 일어나기가 버거웠다.

아마 예약되어 있는 뱃시간이 아니었다만

조금만 더를 외치며 새벽 단잠을 즐겼으리라.

여러 사람과의 약속에서 자신 때문에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 안되기에

망설임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렵사리 일어난 후의 차가운 새벽공기는

언제나처럼 상큼함으로 대해준다.


동녘 하늘에서 아침 단장을 하는동안 서해안으로 달리니

그제서야 떠남에 대한 설렘으로 아이같은 마음이다.

단장을 마친 해가 모습을 보일 무렵 바닷가 해안도로로 들어 섰다.


언제나 예외없이 바다가 보이면 뛰는 가슴인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리.


비로소 졸던 일행들도 작은 환호와 함께

펼쳐진 아침바다 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부안 변산반도의 송포라는 작은 어촌.


빠짐없이 등장하는 갈매기의 안내를 받아 목적지에 당도 하여

아침식사를 주문했다.


그러나 미처 식사 준비를 못했다는 선장 내외의 당혹한 모습에

거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원래 맹수도 배가 고파야 사냥을 잘 하는 법이니 그냥 갑시다."

투덜거린다고 없는 밥이 생기는 것도 아니기에

아까의 기분 좋음을 유지토록 서로 독려하며 배를 탔다.


고깃배 치고는 제법 크다.

왁자지껄한 일행을 뒤로 하고 난간에 서서

주변 감상에 몰입해 보았다.

특별할 것도 없는 늘 생각하고 보던 것들,

그럼에도 항시 새로운 느낌이다.

넘실대는 바다, 바다와 어우러지는 맑은 하늘, 유유자적한 갈매기,

가을 하늘의 효과를 더 해주는 뭉게구름, 영상미의 작은 섬들,

그 사이에 비치는 고기잡이배등등.

거기에 아직 집에 가지 않은 하현달이

중천에서 빙긋하며 같이 하고 있었다.

이 모든 걸 가슴에 담아 보려 애를 썼으나

'좋다'라는 단 하나의 생각외에는 그냥 멍한 즐거움이다.

이미 낚시가 시작 되었음에도 한참을 주변 정취와 함께 하였다.

실은 낚시를 해 본적이 없기에 별반 관심도 적은 게 사실이다.


여기 저기서 터져 나오는 탄성 소리에 슬며시 구미가 당긴다.

고기를 낚어봐야 세월도 낚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자릴 잡았다.

모두들 몇 수씩 하는 동안에도 초보자를 희롱함인지

내게는 통 소식이 없다.

얼마가 지난 후 드디어 내게도 소식이 왔다.

제법 묵직한 느낌이 오기에 '이런 게 손맛인가 보구나.' 생각하니

첫 포획에 작은 떨림으로 전해오는 느낌이다.


첫 수 치고는 엄청 큰 게 걸렸는지 촛자인 나로서는 감당키 어려워

선장을 불렀다.

낚시를 건네 쥔 선장이 찡긋하며 말한다.

"낚시 바늘과 추가 바닥에 걸렸어요."


일행들은 그 모습에 재밋어라 웃는데 난 심각해졌다.

생애 처음으로 드리운 낚시에서 지구를 낚을줄이야.

이제 당기기만 하면 지구는 내 것이라 큰소리로

초점없는 넓은 곳에 외쳤다.

그러나 이를 어쩌랴!

지구는 홀로 소유하기엔 희생 당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은 것을.


그리하여 세상 모든 이들과 공유 하기로 마음 먹고

과감히 바늘과 추를 포기 하였다.


이상하다.

아마도 그 날은 지구가 내게 정복 당하고픈 강한 욕구였나보다.

낚시를 드리우기무섭게 거푸 거푸 지구만 걸리니

갸륵함에 대한 인내심 테스트라 여기며 계속 놓아 주었다.


잡고 놓아 주고를 연속적으로 다섯 번이나 한 통 큰 낚시 뒤

줄을 걷어 올렸다.


바늘과 추를 계속 희생시키는 미안함도 있었으나

얼굴 간지럽히는 해풍과의 대화가 차라리 좋았기에.

조금 후 부르는 소리에 가보니 즐거운 선상 파티가 벌어졌다.

한 쪽에서는 밥 익는 소리와 매운탕 끊는 소리가 장단을 맞추며

군침 도는 흥을 돋구고 있었다.


잡으라는 고기는 한 마리도 못 잡고 지구만 가지고 놀다 온 나에게도

자격이 부여됨을 감사하며 파티에 동참 하였다.

웃음이 끊이지 않는 정겨운 모습이나 자연과 함께 하는 멋스러움은

지난 날의 '타이타닉호' 선상파티가 이만 했으랴.


바닷 바람과 함께 한 만찬이 끝날 무렵 1시부터 물 때이니

많이들 잡으라는 선장 소리에 모두들 다시 자릴 잡고 앉았다.

실적없이 공술과 공밥을 먹은게 미안하기도 하고

또 이왕 나온 김에 몇 마리 잡아 볼 요량으로 다시 낚시줄을 드리웠다.

희안하다.

선장의 말이 맞는지 자리가 좋은 탓인지

모두들 넣기만 하면 줄줄이 사탕이다.

잠시만에 낚시 문외한인 본인도 무려 다섯 마리의 우럭을

잡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곤 또 거두었다.

한꺼번에 많이 잡으면 씨가 마르니 나중에 와서 또 잡겠노라 너스레 떨며

이리 저리 해찰만 하고 다녔다.


의외로 많이 잡혀 두어시간 앞당겨 철수키로 하고

꾼들의 2차 소주 향연까지 곁들였다.


돌아오는 뱃길에서 다음에 또 볼 수도 있으련만 떠나면 아쉬울 듯한

풍광을 가슴 가득 담아보며 그리운 이들을 생각하는 즐거움이었다.

다시금 해안 도로를 들어서니 맑은 하늘이 언제였냐는 듯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다.

비!

어려서부터 사랑하는 친구, 변함없는 내 좋은 친구인 비가 내린다.

하루의 즐거움을 축하하며 세파의 덜 씻긴 찌꺼기가 남았거든

마저 씻으라는 배려일게 틀림 없다는 생각으로

달리는 내내 비와 함께 하였다.

슬며시 차창을 열고 서로의 얼굴을 부비면서.

2001. 09. 20

-북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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