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 때 생각이 납니다
그 때 세 송이 Daffodil 꽃을 보고 크게 기뻐 감탄했던 일이...,
벌써 한해가 흘러 또 그 때가 되었군요
오늘도 창문 넝쿨 잎 사이로
밖을 내다보는 것으로 나의 하루는 시작됩니다
일어나 층계를 내려와 제일 먼저 하는 일이란
커튼을 젖히고 창 밖 아래 누운 향나무 밑으로 자리잡은
납작이 크로커스를 보는 것이
내 일과의 첫 시작입니다
그것부터 살피고 난 다음에 나머지 커텐들을 돌아가며 열고
식물들에 물을 주고 금붕어 먹이도 주고
비로소 나의 먹이인 생수 한잔을 주~욱 크게 들이킴으로써
하루는 시작되고
또 한잔의 커피를 보글보글 끓여 손에 들고
향기를 맡으며
컴퓨터를 켜고 T-V를 켜야
이제 제대로 되는 하루가 열리는 것입니다

난 생각이 날 때마다 창가로 가
납작이 노랑, 보라 크로커스를 보는 것이 요즘의 낙입니다
왜 납작이란 별호를 붙이느냐 하며는
키가 7~8cm미만이기 때문입니다
꽃대가 한 2~3cm, 꽃 높이가 한 3~5cm정도이니까...

작년 5월쯤 타지로 이사가는 한 한국인 주택 정원에서
멋대로 잡초 마냥 자란
온갖 이름 모를 꽃들의 구근들을 캐어다
여기 저기 대충 구근크기로 짐작하여 심어 놨더니
올 봄에 이렇게 예쁜 꽃들을 피워주는군요

이 곳 날씨가 하도 변화무쌍하여
한 10여일 전에도 눈이 6인치씩이나 내리고
그 후로도 눈이며 우박이며 진눈깨비,
심한 돌풍에 비바람까지...,
연일 찌뿌둥한 날씨 때문에
꽃은커녕 잡초하나 어디 실하게 없었는데,
어느 비바람 몹시 부는 날
무심코 내다보는 창 밖에서
노랑색 꽃잎같은 것이 땅에 붙어 흔들거리기에
두터운 잠바에 터틀넥 쉐타로 입을 감싸 가리고 나가 보니
아니 그 어름 눈 사이로...,
땅 뿌리로부터 곧바로 꽃송이가 붙어서
노랑 꽃몽우리가 피어나고 있었어요
생명의 지혜...,
정말로 신기했습니다

한송이는 벌써 바람에 나부낄 정도로 피어났고,
다른 한송이는 땅속에 묻힌 채
꽃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생명의 신비란...,
얼마나 대견하고 신기한지...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보니까 여기저기 낯 설은 새 싹들이
그 모진 강풍을 이겨내면서
"겨울은 가셔요 이제부턴 우리들의 세상이예요"이라고
고함이라도 지르듯 예쁜 손들을 여기 저기서 내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운 새 싹들이 이미 반은 토끼 밥으로
물어 뜯겨져 버렸드군요

그 후 건강이 좋지 않아 토끼 먹이가 되는
예쁜 싹들이 있는 것에 신경을 쓰지도 못하다가
며칠 전 나가보니
이미 여러 개의 꽃들이 그 예쁜 침입자의 입에
다 먹혀버려 싹쓸이가 되었드군요

망설일 수가 없었습니다

난 기침을 쿨룩거리며
잠바에, 모자에, 마스크까지 쓰고
쌩쌩 날아 갈 듯 부는 바람 앞에 꽃을 지키려는 투사처럼,
작년에 썼던 그 돌돌 말린 닭장 망들을 펴고 잘라서
납작하게 땅을 덮는 땅거미 그물망을 만들어
그 가엾은 크로커스들 위에 덮었습니다
모자라는 그물망을 최대로 늘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것은 잘라내서 또 덮고 하면서...,

지금 밖은 햇볕이 화안합니다
내다보는 창밖에
키 작은 10~15여개의 예쁜 노랑, 흰색, 보라의 크로커스가
그물망 안에서 바람에 살랑거리며
햇님에게 웃음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느새 피어난 하얀 아기초롱꽃 모양의 Snow drop도
망속에서 수줍게 미소를 보냅니다

어젯저녁 늦은 밤,
자려고 계단을 오르려다
언제나처럼 현관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는데
바로 계단 아래 잔디 밭 가운데에 서 있던
한 마리의 아기 토끼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녀석은 몇 초를 앞발을 들고 정지한 채로 쳐다보다가
이내 꽃밭 앞 길 쪽으로 뛰어 갔습니다
나는 얼른 창가로 가 커튼 사이로
달빛이 환히 비취는 화단에
꽃잎을 접고 단잠을 자고 있는 크로커스들을 살폈습니다
토끼는 건너 잔디밭에서 무엇인가를 연신 오물거리며
따먹고 있었지요
나는 기다렸습니다
그 땅그물망까지 와서 먹지 못하고 애쓰는 그 토끼 모습이
보고 싶어서지요
얼마나 통쾌할까요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녀석은 그 자리에서 돌려 앉아가며
무엇이 그리 맛있는지 후벼파고 오물거리느라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커텐을 젖힌 팔이 아파 아예 커텐줄로 커텐을 열어젖히고 기다렸으나
녀석은 제자리에서 움직일 줄을 몰라,
내가 졌습니다

아침에 나가 보니
참으로 별 볼일 없는 삐죽이 나온 잔디덩어리 한 개 뿐이였습니다
"미안하다 토끼야."

올해에는 더 많은
여러 그루의 Daffodil 꽃나무에서
여러 송이의 봉우리들이
벌써 살포시 고개들을 떨구고 때를 기다리고 있고
작년에도 풍성했던 Allium들도
올해에는 더 많은 보라빛 꽃들을 보여 줄 것입니다
여러 빛깔의 아이리스들과 순백의 데이지들, Dusty Miller들도
이미 예쁜 싹들을 내 보내고 있습니다

한송이 꽃을 보면서도
정말 숭고하신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의 귀함을 느낌은
귀한 일입니다.

-------------------------------------------------
(주) : 캐나다에서 <이슬초>님이 2002.3.30 에 쓴 글입니다.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