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봐야 안다.-


나는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늙기 시작할까?
그것이 늘 궁금했다.
50이 지나면서 새치가 늘어도 나는 늙는 것이 아니라고 여겼다.
"머리야 일찍 세는 사람이 있지. 젊은이도 새치는 있으니까."

60 이 지나서도 같은 생각이었다.
나이를 누가 물으면 적당히 얼버무리며 딴 소리를 했다.
"나이가 문젠가, 그 사람의 건강상태가 중요하지. 사람에 따라서 10년의 차이는 생긴다고 보거든……."

그러는 동안,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남들은 나를 할아버지로 부르게 되었다.
이제 정말 늙은 것일까?
철봉에 매달리기도 하고 수평 대에도 오르지만
언제부터인지 생각이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을 느끼면서
이젠 나도 정녕 늙었다는 사실을 실토하고 말았다.

노인의 마음!
그걸 누가 알까?
자신이 늙어봐야 노인의 사정은 알게 되리라.
세상에서 점차 소외당하는 느낌,
만사를 허무로 돌리는 마음,
잘못을 보고도 관용하려는 여유,
사회적 유대에서 풀려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망.―

자식들이나 다른 젊은이들은 형식적으로 노인을 위하는 것일 뿐,
진정한 노인의 심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늙어봐야 늙은이 마음을 알듯이
죽어봐야 진정 죽음의 의미를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야 돌아간 부모의 노년기 마음을 하나씩 헤아리게 된다.

시집간 딸이 가져온 머루술 한 병
하얀 도자기에 붉은 머루술
감악산 머루술은 이름 높은 명주란다.

얼마나 향기로울까
병마개를 딸듯하다가
나도 모르게 멈춘 손길

술을 좋아하시던 어머니 아버지 생각에
또 목이 메인다.

아버지 가신 뒤 세 번째 가을이 가고
어머니 눈감은 뒤 두 번째 봄이 오는데
내 머리는 희어져도
어머니는 보고 싶다.
아버지가 그리워 서럽다.

-2002, 1, 21. 청춘극장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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