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이요조

2002/10/9(수) 21:00 (MSIE5.0,Windows98;DigExt) 211.195.197.249 1024x768



쉽게 사랑을 하는 자 쉽게 잊을 터이니  
















    오리

    '누가 쉽게 사랑한다 말하는가?'

    17년 전 어느 화창한 봄날,
    이사를 와서는 아는 사람도 하나 없고 너무나 무료해서
    다섯살 난 막내와 함께 오일장터에 나가서
    오리 한 마리와 병아리 한 마리를 사왔다.

    갓 사와서는 방에다 두었더니
    병아리는 무조건하고 사람만 쫓아다니는데..
    오리는 절대 그러지 않는다.

    좀체 곁을 주지 않는다.
    혼자서 자꾸만 구석으로 피해 다니며 숨는다.
    저러다 내가 살릴 수는 있을까?
    은근히 걱정이 앞섰다.

    어느덧
    두 마리는 중병아리 중오리로 자라나는데
    병아리는 이제 엄마처럼 따르던 사람을 잊었다.

    간혹 배가 고프면 나를 알아보는지..
    어쩌는지는 모르지만
    집 앞.. 공원에서 놀다가 밤이면 집이라고 찾아드는 것 뿐,

    그런데
    무심결에 알아차린 놀라운 사실하나,
    오리가 병아리의 보호자 역할을 해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찾으러 나서고
    어느새 닭이 되어 높은 곳을 훌쩍 뛰어 넘으면..
    위험하다고 꽥꽥거리는 간섭마저도 마다 않았다.

    모래더미가 있으면..
    닭이 올라앉아 모래 헤집기를 하노라면..
    저도 모래더미 위에 멀거니 함께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고
    둘이 꼭 친구처럼 붙어 다니기를
    이웃사람들이 보고 웃기를 시작하였다.
    "마치 부부 같다고"


    내가 외출했다가
    택시에서 내리면..
    놀던 우리 아이놈들은 힐끗 보고는 하던 놀이를 계속하는데
    오리는 뒤뚱대며 쫓아 나와 반긴 줄도 알았다.
    "허허~~ 테레비젼에 한 번 나와도 되겠는걸?"
    기사 아저씨들이 꼭 한마디씩 하셨다.

    내가 외출할 때면.. 어느새 알고 달려와서는 길바닥에 넙죽 엎드린다.
    쓰다듬어 주고 가라고...
    절대로 그냥 가면 안 된다.
    비가 와서 질펀할 때도 엎드린다.
    등을 한 번 건드려 주기라도 하고 가야한다.
    모른 척 그냥 가면.. 어느새 내 앞으로 얼른 와서는 다시 엎드린다.
    또 모르는 척하면..
    심술궂게 "깩깩~"거리며... 죽어라 양보를 않는다.
    그냥은 절대로 못가게 한다.
    몸만 더럽지 않다면..꼭 안아주기라도 못할까?

    밥을 먹으라고 공원언저리에 놀고 있을 오리를 부르면
    그러면 언제나 닭도 나타나므로

    "오리야~~~~~~~"

    조금만, 정말 조금만 있으면..
    어디서인지 나타나는.....마치 보잉 707처럼..날개를 좌악 피고는
    발이 채 땅에 닿지도 않고
    날아오듯이 오는 오리.

    추운 밤이면..
    지하실.. 연탄 보이러 있는 곳에 가서 닭이랑 잠이 드는데
    우리 남편..
    아무리 술이 취해도 지하실 입구까지 가서
    오리를 불러봐야 성에 찬다.

    "오리야?"
    " 꽥꽥( 아빠..전 여기 잘 있어요 에구 아빠 약주 많이 드셨군요 어서 들어가서 주무세요)"
    "그래 잘 자라~~ 오리야"
    "꽥꽥~ (그래요 제 걱정 마세요 여긴 따뜻하고 좋아요 아빠~)"

    *♪오리♬ click~*
    꼭 그래야만 들어오는 남편,
    내가 좋아하는 꽃나무를 위해 한 트럭이나 갖다 부려주는 남편,
    내가 좋아하는 짐승들을 더 잘 챙겨 봐주는 남편,
    나를 좋아해 주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잘 챙겨주는 남편,
    마누라가 좋아하는 것 하나라도 챙겨 준다는 것,
    관심 기우려 준다는 것, 사랑의 감동이다.
    나는 솔직히 그럴 때 남편이 가슴 뭉클하도록 좋다.

    내가 시조를 하게끔..
    서울로 나다니며 공부하게 도와 준 것도 남편,
    지금 이렇게 컴퓨터와 친하게 허용하는 것도 남편,
    열린마당 출판 일로 P님과 만나..다른님을 마중가는(버스정거장)길이였다.
    책발간 일 때문에 싸구려를 하나 마련한지 얼마 되지않던 핸드폰인데... 삐리릭~ 울린다.
    운전중이라 옆자리에 앉은 P님(남자 분)더러 좀 받아달라고 했다.
    버스 타고 부랴부랴 오는 y님인 줄 알고 대신 받으시라했다.
    '이런! 남편이다'
    모든 일을 그래도 날 믿어주고 성원해 주는 남편이기에
    난, 뭐든.. 그에게 숨길 필요가 없다.

    그래, 사랑은 그런 것이다.
    쉽게 곁을 주지 않아도 한 번 주면..믿고 끝까지 가는 것,

    요즘은 조금만 좋아해도 사람들은 쉬 사랑한다고 말해버린다.
    병아리 사랑이다. 그리고는 쉽게 잊어버린다.

    오리는 절대로 곁을 잘 주지 않는다.
    반면...한번 섬기면..목숨이 다하도록 섬긴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오리도 집을 지키는 거위처럼 상당한 지능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왜? 나와 연(緣)이 닿는 모든 짐승들은 한결같이
    평범하지가 않은지 모르겠다.
    작은 새들마저도....

    우리 집 그 오리는 어느 날..
    지나던 아이들의 돌팔매에 머리를 맞아 죽었다.

    동네아이들의 호들갑에 나가보니..
    머리에 정통으로 맞은 상처엔 피가 흥건하고 검은 눈만 날..바라보는 듯 했다.
    눈물이 내비친 것도 같았다.


    동네 아이들도
    동물병원 데리고 가라고 아우성 이였고
    우리아이들은 울기 시작했다.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기에
    이미... 아니었다.

    나는
    이렇게 숱한 동물과의 숨겨진 이별 이야기가 많다.
    사람에게서 해야할 업 (業) 의 고를 어쩌면
    짐승과의 관계에서나마 풀고 사는 것이나 아닌지...
    감사해야 할 일일까?


    글/이요조


    요즘...컴퓨터 단말기 증후군(VDT 증후군)으로 몹시 힘이 듭니다.
    오늘역시나 그런데...

    게임프로그램을 제 좋아 즐겨 만드는 프로그래머들은 전혀 이런 증후군이 없다는군요

    해서 증후군...계속 이어 글을 쓰지 않고
    제가 즐기는 동화처럼.. 좀 슬프지만 옛 이야기에 젖어 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전 언제나.. 기분이.. 정화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글/이요조



    *♪오리♬ 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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