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삐용과 나



    내 느낌에는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네가 퍽이나 행복해 보인다.
    오늘만큼은...

    작은 생수병에서 한달도 넘게 키워진 달팽이 용이,
    그저 내가 잘 디려다 보려고
    주방 창문곁에 두고 야채를 조금씩만 넣어주던 삐용~

    엊저녁에 시든 야채를 인심 쓰는 척 많이 넣어 주었더니
    맙소사! 오늘아침에는 작은 병이 초록색에 질려있다.

    예전에 열대어를 기를 때.. 빛이 잘 드는 쪽에 어항을 두었더니
    금방 금방 수초가 잔뜩 자라나서는 열대어가 제대로 보이질 않을 지경이면
    솎아서 아는 이에게 건네고 또 다른 이에게 건네주고
    나 이러다 수초장사하면 잘 될 것 같아.. 하던 때가 있었으니

    용이에게 야채를 늘 자주 갈아 줄 셈으로 조금씩만 주다가(청소도 그렇거니와
    설겆이를하다가도 용이가 어쩌고 있나...수월하게 지켜 볼 요량으로)
    어젠 시든 야채를 줄기 채 그냥 넣었더니
    병 바닥에 있는 물을 먹고 싱싱하게 되살아나서 푸르러졌다.
    다시 싱싱해져서는 작은 병이 터지도록 푸르른 야채로 가득 채워졌다

    용이가 어디갔나 좀체 작은 병을 돌려도 보이질 않더니,
    병 하나가득 살아난 야채 그 구부러진 채소이파리 하나를 해먹삼아
    작은 몸을 편안하게 뉘이고 오늘 아침 늦게까지 늦잠자는 귀여운 삐용이,



    내 눈에는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삐용이를 한 달 훨씬 넘게 잡아둔
    (어느 야채에서 묻어왔는지, 야채를 다듬고 난 주방 싱크대에서 생포한)
    동안 나는 용이의 그리움을 즙짜듯 짜내어 유린하는 잔인한 놀음이 아닌가도 생각했었다.

    [친구와...촉촉한 습기..신선한 먹거리...너른 초장의 품...그리운 짝... 시원한 공기..이슬,등]

    그래서 얼마전 시골 갈 때 놓아줄까 생각하다가 잊고는 그냥 나갔었는데,
    패트병을 공기구멍은 뚫었지만 뚜껑은 닫겨있어 갑갑했는지,
    시원한 물갈이를 해주면
    삐용이는 그 물에 잠수해서 한참 목욕을 즐긴다는 것도 알았고,

    며칠 전에는 옥수수를 사와서 까보니..
    샴 쌍둥이처럼 두 개가 덜영근 채 들어있는 걸 "뭐 이래" 그러다가
    "차암! 그래 달팽이가 옥수수도 즐겨 파먹지" 하는 기억이 얼핏 나서는
    사탕수수처럼 달콤할 거라는 생각에 씨알도 안 박힌 여린 옥수수를 잘라 넣어주었다.
    그랬더니 정말 얼마나 맛있게 먹어대는지.. 삐용이는 연신 코를 박고 있었다.
    기억하고 있는 맛이라서?
    언제부터 알고 있는 단맛인지..?

    옥수수 끄트머리를 잘라서 넣어준다.
    실컷 먹으라고..그러면 눈물겨운 네 그리움이 좀 상쇄될지 뉘라서 알리,




    옥수수를 까면서 모아진 수염을 보니..
    도심지를 활보하는 요즘 아이들 염색한 머리카락마냥 색깔이 다양하다

    세 개만 나란히 두어도 마치 모발염색제 샘플 같다.
    흡사 결곱고 윤기나는 소녀의 머리카락이다.




    ㅎㅎ~ 내가 10살만 더 젊었어도,
    옥수수 수염을 머리에다 붙인 인형을 만들어 볼텐데..
    아니지..손녀를 둔 할머니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만들어 볼텐데,

    긴-머리결이 보드랍고도 고운 작은 지지배 인형을..

    당장,





    글/사진:이요조













'가납사니 > 이요조의 동물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몽마르뜨가 아닌, '몽마리똘'  (0) 2004.05.15
읍! 저 눈!  (0) 2004.02.18
강아지 수필  (0) 2002.11.02
오리/산문으로  (0) 2002.10.16
가엾은 아빠 비둘기  (0) 2002.09.1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