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는 요일
"제발, 이러시면 안 돼요.
이런 곳에서는 할 수 없어요.
당신의 불타는 마음과 기분은 이해하지만..."
아그네시카는 약간 저항하며 불만섞인 몸짓으로 청년의 손을 떼어 놓고 켜 올려진 스커트 자락을 내리며 옷매무새를 고쳤다...(中略)...
"사랑하는 아그네시카여,
왜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나눌,
사랑을 속삭일 오직 세쪽만이라도 막힌 방이 없을까요?"...
학교시절 읽은 폴란드의 플라스코라는 작가가 공산학정의 절망속에서 살아가는 민중의 생활상을 그린 <第8曜日> 에 나오는 장면으로 기억된다.
게오르규의 <25시>가 1970년대 젊은이들에게 많이 읽혀진 작품이라면, <제8요일>은 1960년대에 공감하던 그 시절의 생활상이 담겨진 작품이었다.
우리 나라의 현실도 중산층이상에서는 의식주문제가 겨우 해결되고 있지만 주거환경은 형편없이 낙후되어 있다. 그래서 가장 걱정되는 생활의 현실이 주택문제이다. 곧 세쪽만이라도 막힌 방의 문제 - 즉 집이라는 큰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우리의 주거문제는 단순히 먹고 자고 쉬는 공간일 뿐만이 아니라, 그 가정의 전체 재산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집이 중산층이하의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택문제 해결에는 단순한 안식처에다가 재산증식의 역활까지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주택의 개념을 소유라는 인식에서, 안락하면서 두려움없는 주거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려면 국가나 공공기관에서 주택문제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고,또 실제에서는 그렇게 많은 이 드는 일에 선듯 나설 수 있는 형편이 못 되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젊은 세대나 커가는 자식들의 장래를 바라보는 세대 모두가 이 문제에 신경을 곤두 세우게 되는 것이다.
우리 열마 카페 회원 여러분께서는
이 글이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실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말은 필자가 어느 대학에서 주관한 주부와 새로운 가정을 이룬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통합 세미나에서 그 당시 대학로에 있던 카톨릭학생회관에서 한 강의의 첫 서두부문이다.
왜 이 글을 썼느냐고 묻는다면 요즈음의 사람들은 이런 귀한 나의 안식처이면서 내 재산인 우리 아파트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은 다른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내 자신이 이번에 아파트 문제에 뛰어들어 과거에 집을 옮겨 다니면서 재산을 늘여 나가고, 또 아이들이 친구를 사귈만하면 이사를 다니게 된 일이 몹시도 자식들에게 죄스러움으로 점철되기 때문이다. 아들애가 하던 말 "아빠, 우리 또 이사가야 돼요?" ("미안하다, 아들아" - 조용히 고백하는 능력없던 아버지의 말)
새벽 2시반에 웬 이상한 사람이 2,3번이나 전화해서 잠을 깨워 놓고는 나를 또 아파트문제에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혼자서 괜히 옛날 생각하고, 또 그 시절 살아오던 어려움과 즐거움을 되뇌이면서 우리 아파트의 여러 난관들이 잘 풀리기만을 바라고 있다.
그리고 같은 또래의 사람들이 대부분 컴맹 내지 넷맹이라 더욱 외로워 지는지도 모른다. 우리 사랑하는 입주민 모두가 이번 기회로 더 많은 관심
과 성원을 보내 주셔서 고마운 마음이 그지 없다.
글을 쓰다보니 초점이 흐려졌는지도 모른다. <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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