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이요조

2002/2/3(일) 14:40 (MSIE5.0,Windows98;DigExt) 211.198.117.130 1024x768


고도리  










    나에게
    '고도리'란 파일명은
    영원히 입력 되지 않을 ‘X 파일’이다.

    내가 만약에 잡기쪽으로 흘렀다면
    난, 아마 대단한 '꾼'이 되어있을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내 주위엔 사람이 들끓었고…
    난, 항상….. 그런 쪽으로 준비되어있는 사람이었다.
    몇 날 몇 일을 하얗게 새울 수 있는 열정,
    뭔가 빠지면…..
    그 것을 하지 않으면 질식할 것 같은 고집,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천만다행이지 않는가?

    어디서도 이야기 했지만…..
    난, 시골이 좋아 외가를 방학이면 빼 놓지 않고 달려가는 이상한 아이였다
    그 때는 TV 도 없었고… 고즈넉한 시골이 그 냄새마저도 좋았다.
    외할아버지가 계셨는데…..농한기 겨울이면 할아버지는 외손녀가 유일한 친구셨다.
    할아버지는 외손녀에게 민화투를 가르쳐주시고…..
    외손녀는 목적을 둔 게임에 승부를 걸었다.
    내가 이기면(아마 여러 번)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해 주셔야 했고
    내가 지면 계속해서 친구를 해 드려야 했다.
    어느 날은 계속 내가 지면 화투 판을 엎어버리고 휘저어 버리기도 했으나
    할아버지의 신비한 옛이야기는 영 포기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 치는 화투 ,
    그 것은 오락이 아니라 나에겐 노동이었고 지겨움이었다.

    어느 해 겨울은 그 좋아하는 시골도 못 가는 일이 벌어졌다.
    왜 그랬는지 난 발에 동상이 왔다.
    어머니는 두부 간수를 구해 오셔서 그 물에 발을 담그게도 하시고
    콩 자루를 만들어 발을 넣으라고도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둘 다 혈액순환을 도모하는 한 방법이리라
    아픈 다리를 뻗고 앉아 있자니……..
    너무 심심하고 따분했다.
    어머니는 뒤채에 사는 내 또래 ‘상호’라는 아이를 방에서 함께 놀게 하셨다.
    우린 놀 수 있는 마땅한 게 없어서 화투 놀이를 하기로 했다.
    이불 속에 아픈 발을 뻗치고 앉아 낮 동안 내내 함께 놀았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그 날 밤에 일어났다.
    아마 어머니의 지극정성의 민간요법도 통하지 않았나 보다.
    밤새 난 상처가 곪는 고통에 밤을 하얗게 밝혔다.
    그 때 당시에 방바닥은 장판지 대신 비닐장판이 유행하였는데…..
    (그 것을 나이롱 장판이라고 불렀었다)
    무늬가 책받침 만한 네모의 기하학적인 무늬였었다.
    그 비닐 방바닥의 네모가 화투 짝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불에 나있는 꽃무늬마저
    구월 국화와 유월 모란이 되어 거기 피어 있었다.

    또 하나 그 때는 벽지와 천장지 무늬를 따로 썼었는데…
    벽지는 꽃 무늬였지만 천장지는 역시 또 네모 형태의 무늬였었다.

    나중에는 온 방안이 화투 짝이 되어 빙글빙글 돌아 다녔다.
    나는 그렇게 밤새 고문을 당했다.
    온통 방안이 화투였다.

    그리고는 그 화투장이 무서워졌다.
    그 두번째 이유의 공포에 또 하나 더 보탠 이유가 있었으니….

    그 당시에는 특별한 오락이 없었으므로 …..
    간혹 어른들도 화투를 하셨고…
    우리들도 ‘나이롱뻥’이란 게임을 즐겼다.
    내 언니는 착하고 자상해서 언제나 나를 돌보고 져 주는 착한 언니였는데
    사촌언니는 달랐다.
    부산 사상,
    지금은 다 같은 부산 시내지만 그 때는 ‘포푸라마치’라 부르는 시골이었다.
    길 양옆으로 미루나무가 주-욱 서 있었고 길바닥은 재첩 껍질 투성이였다.

    그 곳에 큰집이 있었는데,
    사촌언니는 경남여고를 다니면서 기차 통학을 어렵게 하고 있었다.
    주말이면 간혹 우리 집에 들리곤 했었는데…
    나이가 같은 바로 위의 언니는 부산여고를……
    둘은 오랫만에 만나면 서로 자기네 학교가 더 좋다고 언쟁을 벌였고…..
    밤에는 놀이삼아 곧장(게임)화투를 쳤는데
    신패 맞기나(진 사람의 팔뚝안쪽을 검지와 중지만으로 때리는 것)
    아니면 진 차례대로 손을 포개 포개 올려놓고… 위에서 승자가 내려치는 것이다.
    아~~ 그 때의 조마조마함이란…..
    그런데, 그 사촌언니는 내 언니와는 달라서 얼마나 눈치도 빠르고 잽싼지 우린 번번이
    팔뚝을 걷어 상납을 해야 했고 인정사정 없이 내려치는 사촌언니의
    표독한 승자의 행패!…
    맞는 상대라고 해보았자 모두가 내 형제들 뿐이었다.
    2촌과 4촌이 어찌 같을 수가 있으랴? 난 언니나 동생이 맞아 얼굴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지는 것에 내심 크게 분개했었고….
    벌겋게 퉁퉁 부어오른 팔뚝들을 하고
    난 사촌 언니를 꼭 이겨 먹으려고 온 밤을 이를 갈아 마시며 지새우다…..
    번번이 지쳐 포기하고 말았었다.
    아마 철저한 패자의 인식만 심어주었나 보다.

    결혼하고 난 후,
    간혹 남편의 손님들이 집들이다 애기 돌이다…방문을 할 때마다
    내어놓는 화투……
    늦은 밤, 대충 걷어두고는…… 다음날 한 장이 빠져 있으면 그 것을 줍지 못하고
    쓰레받기로 쓸어 휴지통으로 버려버린다.
    설령,…오늘 밤에 화투를 사러 또 구멍가게를 나갈 일이 생길지라도…
    아마 그럴 때……그 넘의 예리 공포증도 한 몫을 단단히 도운 것 같다.
    화투 장을 집어 들기가 싫었다.
    물론 화투를 가지런히 모을 때도 나는 얼굴을 찡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정리를 해 버린다.

    화투는 성격이다.
    사촌언니는…… 그렇게 그악스럽게 잘 살고 있다.
    내 친언니도 간혹 분위기에 어울려 하는가 본데…
    날더러
    “야야 니는 이 것도 못하믄 양로원 입학도 몬한다 아이가”
    하지만…
    안되는 것을 어쩌랴,

    난 정말 바보 멍청인가 보다
    모두들 한바탕 와그르르 웃고 떠들어대어도
    난 왜 그런지 도통모른다.
    완전한 외계인이다.
    그 게 왜 우스운지.....그 게 무에 그리 신나는지...
    전혀, 전혀, 화투의 언어들이 내겐 무서운 외국어처럼 낯 설다……
    나의 둔한 두뇌는 영원히…..그 쪽으로만 유독 높은 담장을 쌓아버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 득이 되었을까?
    아님 내가 영영 불치의 모난 못난 인간이 되어버렸을까?

    아무튼 잘 모르겠다.

    허나, 어찌 되었던
    외할아버지와의 옛 기억으로 가는
    회상열차의 티켓이 되어줌은 나에게 아주아주 기분 좋은 일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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