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어제는 고구마를 캤다. 해마다 회당터 밭에 고구마를 심는다. 땅이 사토라서 물이 잘 빠지고 가파른 뒷산에서 나뭇잎들이 바람에 날려와 거름이 되어주므로 별도로 비료를 주지 않아도 해마다 곡식들이 잘 자라는 좋은 밭이다. 그리고 고구마는 연작을 해도 잘 자라주며 병충해가 없어 농약을 전혀 사용할 필요가 없는 그야말로 자연 식품이다.
고구마를 계속 심는 까닭은 순전히 어머니의 고집 때문이다. 고구마는 봄에 심어 두고 수확 때까지 내버려 두어도 잘 자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수확량이 다른 작물보다 상당히 많은 것이 어머니가 고구마를 고집하는 까닭이다.
즉, 도시에 나가 살고 있는 형제들과 가까운 친척들에게 나누어주기에 다른 작물보다 후해 보이기 때문이리라. 참깨 같은 작물들은 선심을 써도 양이 적어 주는 입장에서는 면이 서지 않지만, 고구마는 몇 개 담지 않아도 한 자루가 되니 얻어 가는 사람은 먼저 그 부피에 우선 기뻐한다.
고구마를 나누어주고 나면 어머니의 살림 장에는 선물이 가득하므로 어머니는 얼굴에 화색이 가득하고, 그걸 바라보는 나도 기분이 좋다. 물론 내가 반 강제로 선물을 지정 해 주지만.
올해는 고구마가 예년에 비해 두 배정도 크게 자랐다. 이렇게 씨알이 좋은 해는 드물다. 굵은 놈은 어린애 머리만 하다. 4 등분하여 삶아 한 쪽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사람이 심었지만, 고구마는 자연의 섭리에 충실하게 따르며 자라난다. 어떤 해에는 씨알이 쥐 불알 만하여 어머니를 실망시키고 어떤 해에는 평년작으로 자라나고, 올해에는 엄청 크게 자랐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갓 식물이지만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의 이치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사람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고구마가 같은 땅에서 이처럼 크기가 해마다 다른 이유가 참 재미있다.
봄에 고구마 싹을 잘라 꽂아두면 뿌리가 내린다. 뿌리가 내릴 때에 물을 잘 주거나 비가 많이 오면 활착이 잘 되어 뿌리의 활력이 넘치게 된다. 그런 후에 날이 가물면 이 싱싱한 뿌리는 땅 속의 습기를 찾아 넓고 깊게 퍼져나간다. 즉 습기가 없어 목마름을 느낀 고구마는 살기 위해 뿌리를 있는 힘을 다해 땅 속을 파고든다. 살기 위한 에고이즘을 이 녀석들은 알고 있다.
이때 뿌리가 느끼는 것은 극심한 목마름이며, 배고픔이리라. 얼마나 주렸으면 깊은 땅 속으로 마구 기어들어 가겠는가. 이렇게 가뭄에 시달리며 습기를 찾아 뿌리가 무성해 진 후, 단비가 내리면 고구마는 '목마름과 주린 시절'을 잊을 수 없어 있는 힘을 다해 영양분을 축적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며 그대로 실행한다. 힘차게 땅을 파고든 그 무성한 뿌리로 갈증과 주림의 기억을 되살려 영양분과 수분을 최대한 저장한다. 그 결과가 어린애 머리통 만한 고구마를 땅 속에 달고서는 어머니를 기쁘게 한다.
극심한 기아에 허덕이던 인간이 갑자기 먹고 마실 것이 생기면, 곡간이 터지도록 많이많이 저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배움에 굶주린 사람이 책을 대하면 마구 지식을 머리에 저장하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반대로 뿌리내릴 그 때, 비가 오지 않으면 뿌리는 약하다. 겨우 한 치 정도를 파고들어 간신히 버티고 있다. 이후에 비가 많이 와도 뿌리가 약해서 영양분을 많이 빨아들일 힘이 작다.
그래도 약한 뿌리로 어느 정도 씨알은 만든다. 이것은 평년작이며 보통은 이 정도에서 만족해야 한다.
사람도 어느 정도 기력이 있어야 먹을 것을 주어도 회복이 빠르다. 어릴 때 잘 먹지 못해 키가 작고 체력이 약한 사람에게 청년기에 갑자기 보약과 영양분이 풍부한 음식을 준다고 해서 키가 훨씬 커지고 힘이 세지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오히려 부작용으로 고생을 할 뿐이다.
심고 나서부터 줄곧 비가 많이 오면 어떻게 될까.
고구마를 심고 나서 계속 비가 잦으면 그 해는 고구마 농사는 망쳤다고 봐야한다. 처음부터 고구마는 고생을 모른다. 뿌리가 조금만 생겨도 빨아들일 수분이 많으므로 작은 뿌리로 만족하며 그 크기에서 성장을 멈춘다. 늘 수분이 곁에 있으므로 목마름과 배고픔을 모르는 고구마 녀석은 도대체 저장할 줄을 모른다. 하늘만 믿고 언제까지나 마실 것을 내려 주리라 생각하고, 마냥 게으름 피우며 지내다가, 그저 심은 사람의 노고를 생각한답시고 숟가락 만한 알맹이를 달랑달랑 달고 있을 뿐이다. 이런 해는 작황이 최악이며, 어머니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돈 많은 집에서 호의호식만 하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아도 늘 배가 부르므로 힘써 일할 필요가 없다. 마음 속에 용렬한 자만심과 허영으로 가득 채운 채, 돈만이 말을 하는 부평 같은 세상을 살아 갈 뿐이다. 그러나 그 사람의 먼 장래를 바라보면, 비 많이 맞은 고구마와 같지 않겠는가. 고생을 모르고 자란 사람이 마지막에 거둘 수 있는 것은 비 많은 해의 고구마와 같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부자이면서도 자식 교육을 잘 시켜 이 사회를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은 대개 훌륭하며 그런 사람은 대를 이어 부를 누릴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할 것이다. 부모와 자식은 주림의 고통을 알고 있는 것이다. 가뭄에 시달린 고구마 처럼.
우리는 어릴 때, 심한 고난을 격은 사람이 장성하여 큰 일을 하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그리고 어릴 때 부모의 덕으로 고생을 모르고 호의호식하며 자라나서, 교육을 등한시하여 머리가 텅 빈 채, 부모가 물려준 재산을 일찍이 소진시키고, 아무 쓸모 없는 인간이 되어 배회의 인생을 살다가, 말년에는 남에게 아무것도 내보일 것이 없는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는 사람도 많이 보아왔다.
한 식물의 종일 뿐인 고구마의 삶이 우리 인생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천채물리학자인 '칼 세이건'은 그의 저서 '코스모스'에서 '참나무와 우리 인간은 먼 친척이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고구마와 인간도 먼먼 친척임에 틀림없다. 자연계에서 이웃하여 함께 살아온 모든 생물들은 이토록 자연의 섭리에 스스로 순응하고 감응해 오는 동안, 진화의 과정에서 갈래갈래 갈라져 서로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뿐, 그 본성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는 뜻일 게다.
이것을 두고 성현들은 '진리는 모든 것에 통한다'라고 했음이리라.
도연명의 시
'해와 달은 조롱 속의 새요, 우주 만물은 물위에 뜬 풀잎이라'라는 시가 참으로 옳은 말이다.
올해는 봄 가뭄이 심하다가 적시에 비가 많이 내렸다. 우리 고구마가 역경을 딛고 크게 성장한 것이 나에게는 무언의 교훈을 주는 것 같아, 한 입 베어먹고 가만히 내려다보니 못 생긴 것이 오늘은 나의 참 스승처럼 느껴진다.
내일이 주말이라서 고구마 가지러 몰려 올테니, 그만 먹고 배급 보따리나 싸 둬야겠다.
어제는 고구마를 캤다. 해마다 회당터 밭에 고구마를 심는다. 땅이 사토라서 물이 잘 빠지고 가파른 뒷산에서 나뭇잎들이 바람에 날려와 거름이 되어주므로 별도로 비료를 주지 않아도 해마다 곡식들이 잘 자라는 좋은 밭이다. 그리고 고구마는 연작을 해도 잘 자라주며 병충해가 없어 농약을 전혀 사용할 필요가 없는 그야말로 자연 식품이다.
고구마를 계속 심는 까닭은 순전히 어머니의 고집 때문이다. 고구마는 봄에 심어 두고 수확 때까지 내버려 두어도 잘 자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수확량이 다른 작물보다 상당히 많은 것이 어머니가 고구마를 고집하는 까닭이다.
즉, 도시에 나가 살고 있는 형제들과 가까운 친척들에게 나누어주기에 다른 작물보다 후해 보이기 때문이리라. 참깨 같은 작물들은 선심을 써도 양이 적어 주는 입장에서는 면이 서지 않지만, 고구마는 몇 개 담지 않아도 한 자루가 되니 얻어 가는 사람은 먼저 그 부피에 우선 기뻐한다.
고구마를 나누어주고 나면 어머니의 살림 장에는 선물이 가득하므로 어머니는 얼굴에 화색이 가득하고, 그걸 바라보는 나도 기분이 좋다. 물론 내가 반 강제로 선물을 지정 해 주지만.
올해는 고구마가 예년에 비해 두 배정도 크게 자랐다. 이렇게 씨알이 좋은 해는 드물다. 굵은 놈은 어린애 머리만 하다. 4 등분하여 삶아 한 쪽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사람이 심었지만, 고구마는 자연의 섭리에 충실하게 따르며 자라난다. 어떤 해에는 씨알이 쥐 불알 만하여 어머니를 실망시키고 어떤 해에는 평년작으로 자라나고, 올해에는 엄청 크게 자랐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갓 식물이지만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의 이치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사람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고구마가 같은 땅에서 이처럼 크기가 해마다 다른 이유가 참 재미있다.
봄에 고구마 싹을 잘라 꽂아두면 뿌리가 내린다. 뿌리가 내릴 때에 물을 잘 주거나 비가 많이 오면 활착이 잘 되어 뿌리의 활력이 넘치게 된다. 그런 후에 날이 가물면 이 싱싱한 뿌리는 땅 속의 습기를 찾아 넓고 깊게 퍼져나간다. 즉 습기가 없어 목마름을 느낀 고구마는 살기 위해 뿌리를 있는 힘을 다해 땅 속을 파고든다. 살기 위한 에고이즘을 이 녀석들은 알고 있다.
이때 뿌리가 느끼는 것은 극심한 목마름이며, 배고픔이리라. 얼마나 주렸으면 깊은 땅 속으로 마구 기어들어 가겠는가. 이렇게 가뭄에 시달리며 습기를 찾아 뿌리가 무성해 진 후, 단비가 내리면 고구마는 '목마름과 주린 시절'을 잊을 수 없어 있는 힘을 다해 영양분을 축적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며 그대로 실행한다. 힘차게 땅을 파고든 그 무성한 뿌리로 갈증과 주림의 기억을 되살려 영양분과 수분을 최대한 저장한다. 그 결과가 어린애 머리통 만한 고구마를 땅 속에 달고서는 어머니를 기쁘게 한다.
극심한 기아에 허덕이던 인간이 갑자기 먹고 마실 것이 생기면, 곡간이 터지도록 많이많이 저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배움에 굶주린 사람이 책을 대하면 마구 지식을 머리에 저장하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반대로 뿌리내릴 그 때, 비가 오지 않으면 뿌리는 약하다. 겨우 한 치 정도를 파고들어 간신히 버티고 있다. 이후에 비가 많이 와도 뿌리가 약해서 영양분을 많이 빨아들일 힘이 작다.
그래도 약한 뿌리로 어느 정도 씨알은 만든다. 이것은 평년작이며 보통은 이 정도에서 만족해야 한다.
사람도 어느 정도 기력이 있어야 먹을 것을 주어도 회복이 빠르다. 어릴 때 잘 먹지 못해 키가 작고 체력이 약한 사람에게 청년기에 갑자기 보약과 영양분이 풍부한 음식을 준다고 해서 키가 훨씬 커지고 힘이 세지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오히려 부작용으로 고생을 할 뿐이다.
심고 나서부터 줄곧 비가 많이 오면 어떻게 될까.
고구마를 심고 나서 계속 비가 잦으면 그 해는 고구마 농사는 망쳤다고 봐야한다. 처음부터 고구마는 고생을 모른다. 뿌리가 조금만 생겨도 빨아들일 수분이 많으므로 작은 뿌리로 만족하며 그 크기에서 성장을 멈춘다. 늘 수분이 곁에 있으므로 목마름과 배고픔을 모르는 고구마 녀석은 도대체 저장할 줄을 모른다. 하늘만 믿고 언제까지나 마실 것을 내려 주리라 생각하고, 마냥 게으름 피우며 지내다가, 그저 심은 사람의 노고를 생각한답시고 숟가락 만한 알맹이를 달랑달랑 달고 있을 뿐이다. 이런 해는 작황이 최악이며, 어머니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돈 많은 집에서 호의호식만 하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아도 늘 배가 부르므로 힘써 일할 필요가 없다. 마음 속에 용렬한 자만심과 허영으로 가득 채운 채, 돈만이 말을 하는 부평 같은 세상을 살아 갈 뿐이다. 그러나 그 사람의 먼 장래를 바라보면, 비 많이 맞은 고구마와 같지 않겠는가. 고생을 모르고 자란 사람이 마지막에 거둘 수 있는 것은 비 많은 해의 고구마와 같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부자이면서도 자식 교육을 잘 시켜 이 사회를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은 대개 훌륭하며 그런 사람은 대를 이어 부를 누릴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할 것이다. 부모와 자식은 주림의 고통을 알고 있는 것이다. 가뭄에 시달린 고구마 처럼.
우리는 어릴 때, 심한 고난을 격은 사람이 장성하여 큰 일을 하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그리고 어릴 때 부모의 덕으로 고생을 모르고 호의호식하며 자라나서, 교육을 등한시하여 머리가 텅 빈 채, 부모가 물려준 재산을 일찍이 소진시키고, 아무 쓸모 없는 인간이 되어 배회의 인생을 살다가, 말년에는 남에게 아무것도 내보일 것이 없는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는 사람도 많이 보아왔다.
한 식물의 종일 뿐인 고구마의 삶이 우리 인생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천채물리학자인 '칼 세이건'은 그의 저서 '코스모스'에서 '참나무와 우리 인간은 먼 친척이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고구마와 인간도 먼먼 친척임에 틀림없다. 자연계에서 이웃하여 함께 살아온 모든 생물들은 이토록 자연의 섭리에 스스로 순응하고 감응해 오는 동안, 진화의 과정에서 갈래갈래 갈라져 서로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뿐, 그 본성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는 뜻일 게다.
이것을 두고 성현들은 '진리는 모든 것에 통한다'라고 했음이리라.
도연명의 시
'해와 달은 조롱 속의 새요, 우주 만물은 물위에 뜬 풀잎이라'라는 시가 참으로 옳은 말이다.
올해는 봄 가뭄이 심하다가 적시에 비가 많이 내렸다. 우리 고구마가 역경을 딛고 크게 성장한 것이 나에게는 무언의 교훈을 주는 것 같아, 한 입 베어먹고 가만히 내려다보니 못 생긴 것이 오늘은 나의 참 스승처럼 느껴진다.
내일이 주말이라서 고구마 가지러 몰려 올테니, 그만 먹고 배급 보따리나 싸 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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