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밤 KBS에서 방송한 한국의 美라는 프로를 보았다. 우리들 기억 속에서 스러져 가던 6 - 70년대 모습은 간직하고 있는 어느 시골마을의 이발소 이야기였다.

무너질 듯 초라한 건물 추녀 밑 연통에서 새어 나오는 연기는 지붕 위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고, 겨울 밤 이발소를 지키는 사인볼은 쉼없이 돌아가고 인적이 끊긴 골목 어귀 이발소 안에는 50대 후반의 손님의 머리를 다듬는 50대 초반의 이발사가 오늘, 어제, 그리고 코흘리게 시절의 추억을 나누고 있었다.

긴 세월의 빛이 켜켜이 쌓인 거울 앞 선반에는 녹이 쓴 바리깡이 놓여있고, 작은 유리상자 안에는 머리를 고를 때 사용하던 색이 퇴색해버린 분통이 덩그러이 놓여있었다. 연탄난로 위 들통에서는 끓는 물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한 쪽에 아이들 머리를 깎을 때 의자 위에 올려놓는 손때가 묻어 까맣게 된 판대기가 이발소의 긴 세월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얀 타일을 붙여 만든 세면대. 머리를 행굴 때 사용하는 물조리개, 수건을 빨 때 사용하는 빨래판이 세면대 벽에 기대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듯했다. 겨울이라 그런지 이발소 천장을 가로지른 빨래줄에는 노란 타올들이 널려 있었다.

어릴 적 고향에 있던 이발소에는 전기가 없었다. 전기가 없던 관계로 영업은 낮시간 동안만 영업을 했고 손으로 움직이는 바리깡과 가위가 전부였다. 가죽벨트에 날을 세우던 면도칼, 면도 거품을 작게 자른 신문지에 닦았고, 세면대 옆에는 항상 큰 물통이 있었다. 수도가 없던 시절이라 수시로 물을 길러 다니던 더벅머리 견습생이 생각이 난다.

무궁화표 세탁용 빨래비누로 머리를 감아야 시원하다던 시절, 머리를 감기는 이발소 견습생의 손톱은 왜 그렇게 거칠었고, 그 것도 부족해 플라스틱으로 만든 솔로 머리를 빡빡 문지를 때, 신음소리도 못내고 참던 기억이 난다.

40년 전의 이발소 분위기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이발소에서 긴시간 가위질을 견디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사용하는 전기 바리깡의 기계음에 선반 위에 놓여있는 녹이 쓴 바리깡에 시선이 머무는 이유는 무엇일까?

30분간의 짧은 이야기였지만, 이발소라는 작은 공간안에도 긴 세월 우리가 잊고 있던 많은 이야기들이 아직 살아 숨쉬는 모습은 한 편의 장편 서정시처럼 다가왔다. " 세월을 가는 소리 " " 세월의 빛이 가라앉은 곳" 이라는 대본작가의 표현 속에 지난 40년의 이야기가 녹아 있었다.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너무 휼륭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동주 200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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