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가까워지면서 날씨만큼이나 시중 인심들이 썰렁해지면서
너도나도 옷깃을 세우며 움츠러드는 것을 보니 동장군의 등장과 함께
우리네 심사도 겨울나기만큼이나 시큰둥한가 보다.
하나 반만년 역사를 앞세우고 내달려 온 배달의 자손들인 우리가 누구인가 ?
이 역시 가볍게 이겨낼 수 있는 저력들을 각자 지니고 있지 않을까 .
아득한 옛적 일들이 떠오른다.
당시 산부인과 병동에서 인턴 직책을 맡으면서부터는 이상스런 일들이
연속으로 벌어졌었지.
그 때의 대학 병원 산부인과에는 애들을 밴 산모들은 별반 보이지도 않고
극히 위중한 산모들이거나 이런저런 합병증으로 인하여 자연분만이 불가능한
경우에만, 그것도 은밀히 입원하여 소리소문도 없이 퇴원해 버리던 시절이었지.
주로 찾아오는 분들은 고위층 인사의 부인들이거나 결혼은 잘 했는데
후속 반응들이 없어 생 고민하던 부부들이나 찾아드는 요즘의 산부인과
형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었다.
그러다 보니 외래 진료실은 온갖 커튼으로 칸칸이 다 막아놓아 대낮임에도
어두컴컴한 미로로 인해 이런 분위기에 익숙지 못한 초짜 인턴들은
아무 데나 급한 걸음으로 불쑥불쑥 얼굴을 들이밀다간 새치름한 간호원들이나
선배 의사들로부터 눈총을 맞아야만 하는 왕따 신세들이었다.
하루는 출근 하자말자 선배 의사로부터의 엄명이 떨어졌었다.
지금 즉시 가서 정자를 구해 오라고 하는 게 아닌가 ?
잠시 님들의 이해를 돕고자 부연 설명을 좀 하자면 ...
당시엔 애기를 가지지 못하는 부인들은 거의 대부분 대학병원 산부인과로
몰려들었고 검사결과 난소나 기타 임신 유지에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지면
배란기에 맞추어 인공으로 정자를 주입하여 임신을 유도하게 되는데 마침
그 날 정자를 주입시켜야 할 환자가 예약되어져 있음에도 선배인 의사는 잊어버리고
아침을 맞았다가 급히 생각난 김에 만만한 나에게 총알보다 더 빨리 급하게 준비해
오라고 지시를 했던 것이었다.
어디 그 뿐이랴 만 ...
대학 시절 우리들은 부속병원을 거쳐 강의실로 가게 되어있는 길목에서 늘상
선배의사들이나 교수님들이 바쁘게 왔다갔다하는 게 눈에 자주 목격되어지곤 했었다.
그러면 대개들 자신은 "언제 이 지옥 같은 곳을 벗어나 저 곳 패러다이스와도 같은
병원 안에서 꿈의 날개들을 펴 보고 살꼬? " 라든지 ,
멀리서도 잘 들리는 병원 안내방송을 통해 "닭갈비님 ~ 응급실로 !" ,
"오리발님 ~ 중환자실로! " , "동강아지님 ~ 수위실로!" 등의 매스컴은
언제 타보나 ... 가 그냥 작은 소망으로 여기면서 살다가 눈앞으로 흰 가운
입은 천사( ? ) 들만 보이면 거의 자동으로 고개가 굽실거려지곤 하였지.
그러다 아주 가끔씩 그 천사님들이 "야 ~ 너 이리 좀 와."하고 손짓이라도 하면
드디어 존경해 마지않는 선배님한테 안면이라도 좀 팔릴 일이 생겼구나 ~
하면서 강아지처럼 쪼르르 달려가 위를 쳐다보면 십중팔구는
"너 실험 좀 하는데 도와 달라 ~ ." 라거나
"피 좀 빼자." 라는 주문들이 대부분이었지.
그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과가 바로 산부인과인데 그기에 걸리는 놈은
거의 대부분이 "물 쫌 빼라 !" 이다.
그 엄명을 듣는 즉시 속으로는 "아이고 선배님 살려 주이소." 이지
겉으로는 "염려 붙들어 매십시오!, 십 분이면 됩니다." 하고는 건네주는
play boy 잡지 같은 야릇한 책 두서너 권과 시험관 튜브들을 받게 되지요.
그걸 받아 쥐고는
"아이고 ~ 내 신세야 ~ 이 넘들이 애비를 잘못 만나 엄청 생고생을 하는구나."
하면서도 어렵사리 생산하여 가져다 받치면 심드렁하게 받으면서
양이 많니 적니 , 색깔은 왜 이 모양이냐는 둥 온갖 트집이나 잡다가 기분이라도
좀 좋으면 "내 이름 달아놓고 밥이나 한 그릇 먹고 가거라." 하거나 ,
자기 기분이 영 별로 이면 "너 뭐 먹고 싶은 것 있어?" 라고 강압적으로 나오는데 ,
그러면 "하이고 ~ 아무 것도 먹고 싶은 것 없습니다요! 안녕히 계시다가 앞으로
또 뺄 일 있으면 불러 주이소." 하고 나오면서 18 을 백 번 이상 연발탄으로
쏘아 젖히곤 했었지.
이제 나도 비록 인턴이지만 어엿한 의사가 됐으니 이에 합당한 대우를 해 줘야지
식전부터 열심히 근무하려는 후배의사를 잡고 급하게 물이나 빼오라고 시켜대니...
게다가 학생들이나 등교를 했으면 나도 덩달아 좀 시켜먹을 수도 있을 텐데 시간이
너무 일러 학생들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
자존심이야 엄청 상하지만 '인턴 주제에 갈 길이 천리만리인 판에
찬밥 더운밥 따져대다간 그나마 잘 못 보여 찍히면 평생 의사길 오그라들게 뻔한데
이 지경에 뭘 마다 하누 ...' 하면서 ,
"알겠심다." 하며 적진을 코앞에 둔 용감한 진진돌이가 되어 시험관 튜브 몇 개를
들고 나와서 병원 건물에서 제일 후미진 곳이 수술실 옆에 붙어있는 화장실로
쏜살같이 달려갔었다.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선배를 염두에 두고 작업에 충실하긴 했는데 너무 몰입을
하다보니 ,
아뿔싸 ~
이게 마지막 단계인 조준에 실패하여 그 작은 시험관 튜브 속으로 쏙 들어가질 않고
몇 방울만 명중하고는 대부분이 상. 하. 좌. 우로 지들 마음 데로 날아가 버리는 게
아닌가 ?
애고 ~
이를 어쩌나 ~
어렵사리 만들어 낸 아기들이 각자 다들 지 기분 나는 데로 도망가 버렸으니 ...
도망간 그 넘들을 일일이 시험관 속으로 붙들어 집어넣고는 다시 거울보고 엄숙한
매무새 갖추고는 냅다 달려 아기들을 갖다 바쳤는데 ...
이런 쓰발 ~
"양이 왜 이리 적냐 ? " 느니 , "좀 깨끗하게 갖고 올 수 없냐?" 느니 ...
온갖 투정 다 부려대는 데 ...
하이고 ~ 인턴의 세월이여 ~
영원할 것이라면 내사마 다리 밑으로 다이빙이라도 할 끼다 고마 ~
하나 엄연한 현실 앞에서 꿀 발라놓은 벙어리가 되어 조용히
그리고 얌전한 내시처럼 읍소한 자세를 유지하며 다음 지시만을 기다리고 있었지 .
하기사 요즘 인턴들은 그딴 짓 하는지 안 해도 되는지는 내사마 그 놈의 과를
안 하니 그 내막이야 알 바도 아니고 ...
그라고 ~
그 여자 분들 열이면 열 ! 모두 하나같이 부탁하는 게
"꼭 쫌 의과대학생 것으로 부탁해요." 한다나 ...
나 참 !!! 죽여라 죽여 ~
요즘은 정자 은행이 생겨나고 냉동기술 또한 발전하여 인공수정에서 유전자
조작까지 가능한 시절이 되었으니 ...
하나 그 은행만큼은 여러 님들의 힘을 모아서라도 망하지 않게 막아야지
생사람 잡습니다요 ~
덤으로 ..........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 님들께 간곡히 부탁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혹은 지하철을 기다리시다가 아님 육교를 오르시다가 저처럼
생겨 먹었거나 아님 비슷하게라도 생긴 아기들이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저를 본 듯 따뜻하게 격려라도 해 주시길 빕니다.
가들이 무신 죄가 있겠습니까요 ?
해서 요즘 지가 밤이면 밤마다 편치가 않답니다.
금융 위기 !
그거 빨리 이겨내야 합니다 여러분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