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이요조

2003/3/13(목) 21:08 (MSIE5.5,Windows98;i-Nav3.0.1.0F) 211.222.168.221 1024x768


무지의 性  







      엄마가 내 엄마가 원망 스러웠다.

      위로는 언니가 하나 있었지만 언제나 골골하여서 건강이 나만도 못한 언니였고,

      엄마는 왜 어린 내게 중요한 이야기를 않하셨는지...

      난, 마당에서 한 며칠 웃고 까부는데..동참할 수가 없었다.

      난 그들이 느끼는 성과는 다른... 우울한 성을 알았기에,

      기분은 자꾸만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마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막연히 이성을 알았던 것 같다.

      그 때부터 이성에 눈을 떴는지.. 4학년 1반 급장아이에게 시집 갈꺼라 어린 마음에 생각했다.

      5학년 아마 초 여름이였지 싶다.

      어느 아이 하나가 이상한 말을 전했다.

      세상에 듣도 보도 못한 상상도 못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였다.

      그 짓.... SEX!

      난 경악했다. 세상이 드러웠다.

      전해준 그 아이 말이 너도 니 엄마 아부지가 그 짓꺼리로 널 낳았다는 것이다.

      하늘이 캄캄해 왔다.

      '아니야 우리 부모는 그럴리 없어'

      그 이야기를 듣고 한 일주일.. 나는 밥도 먹을 수 없었고 잠도 편히 잘 수가 없었다.

      집은 적산가옥이라 창호지 문으로 된..미닫이 문들인데 중간에는 유리가 있었지만

      카텐이 드려져 있어 부모님.. 주무시는 것은 볼 수 없어도 귀는 내내 그 방으로 가 있었다.

      더러웠다.

      내가 그렇게 만들어 지다니...

      1반 급장.. 그 아이에게 시집 갈려던 내 꿈은 자다가도 무섭게 도리질 쳐댔다.

      눈물도 찔끔 나왔다. 아~~ 이 더럽고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나....

      나..혼자 살리라... 시집 같은 것 더러운 짓하러 가지 않으리라....

      지금 생각해도 어린 나는 무척 심한 고민 갈등 우울에 빠졌었다.

      그 때는 가족간에 동래 온천장에 목욕을 자주 갔었다.

      방 하나 욕조 하나가 딸린 가족탕이였는데..일종의 놀이삼아 다녀 오던 온천이였다.

      찬합에다 찰밥해 담고.. 밤 삶고 과일 싸서...

      아부지랑 어머니랑.. 우리 5형제가 함께.. 목욕을 했어도 아무런 기억조차 나지도 않는다.

      나만 바보인가?

      ........................

      나보다 공부도 못하는 아이에게서 "에이~바보~" 라는 소리마저 듣고

      내내 끙끙거려 쌓는 내가 측은해 보였는지..

      보다 못한 다른 아이 하나가 나에게 보여줄 게 있다면서 자기네 집으로 가잰다.

      걔네는 실향민이였는데.. 판잣집에 살았다.

      부엌과 방이 문도 없이 하나로 된... 집이였는데.. 우르르 일곱명쯤 몰려 간 우리는

      무더위에 하나 뿐인 출입문을 꽁꽁 닫아 걸고는 거사를 치르는 대단한 일을 음모하듯

      큰 의학서적을 드디어 펼쳐 보게 되었다.

      걔네 아버진 이북에서 의사라 그랬다.

      피난오시다가 돌아가셨는지 아버진 없는 아이였는데..

      일본어로 된 두꺼운 책이 몇 권 있었다.

      사진보다도 그림이 많았던 걸로 기억된다. 아이가 출산되는 그림...

      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세상에나.. 이런 믿기지 않는 사실이..정말이구나,

      그 날 이후 내 이마에는 땀띠가 얼마나 돋았는지..

      우리 어머닌.."얘가 뭘 했길래 이리 땀띠 투성이누?" 하셨다.

      며칠.. 더 끙끙대던 나는 어느 날 수업중에 손을 번쩍 들었다.(그 게 5학년 여름)

      "선생님.. 얼라는 우째서 만들어 집니꺼?"

      급장이면서, 덩치도 제법 크고 건강한 내가 정색을 하고 전혀 무관한 수업시간에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하자 (선생님은 우리 아버지 또래셨다.)

      의외의 상황에 황당스러우셨을까?

      얼굴이 벌개지신 선생님께서는...

      (그 상황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게... 슬로우모션으로 각인되어 있다.)

      말없이 길따란 칠판에 있는 글들을 천천히 실로 천천히 지우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오른 쪽에는 둥그런 달을 하나 그리시고 왼 쪽에는 올챙이들을 그리셨다.

      그리곤..피상적인 말씀만 나열하셨다.

      그 후 나의 몸에도 이차적인 성징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근데.. 죽고만 싶어졌다.

      유독 나만 무슨 천형을 받는 것만 같았다.

      가슴이 볼록해지자 쉐타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옷을 앞쪽으로 불룩하게 잡아다녀 입었다.

      엄마는 고무뜨기 해논 아랫단 늘어난다고 야단이셨지만...

      어깨까지 꾸부정해 다니는 딸의 속내를 이해하진 못하셨다.

      그 때 우리 옆집에 여고생 언니가 있었는데 교복의 흰카라는 깊이 패이고 가슴은 너무 불룩하고

      허리는 잘쑥하고... 꽤나 꼴불견이였다.

      '어쩌나 나도 자라면 저리 가슴이 커지면..콱, 약 먹어버리고 죽어야지...'

      그 땐 정말, 왜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불행중 다행이였는지.. 그 때 그 옆집 언니만한 가슴이 안되기 얼마나 천만 다행인가?

      정말이지 큰일 저지를 뻔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러구러 나도 아이가 셋이다. 참말로 웃읍다.

      나의 어두운 性은 아직도 내재해 있다.

      젊음이 한창인.. 본능으로는 잠시 성이란 아름답다고 생각 안해 본 것은 아니지만...

      비율로 보자면... 아닌 쪽이 1% 라도 우세하다.


      나도 딸을 키우면서... 우리 엄마처럼 그렇게 맹탕으로 있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다짐했다.

      웬걸 세상은 흘러서 큰 아이 5~6학년 때.. 학교에서 벌써... 영상으로 다 보여 준다지 않는가?

      내 딸아이 초경에는 일본 사람들처럼 팥밥을 해 주고 케익을 사오고 축하를 해 주었다.

      나의 우둔했던 성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그리고 봉긋 돋아나는 가슴을 축하해 줬더니... 아이는 자기 가슴이 유난히 더디 자란다고

      아빠에게 이르기 까지 한다.

      그 아이가 중학교 때 거울 앞에 섰는데.. 교복 상의 아래로 뭔가 삐죽히 보인다.

      "너 그 게 뭐니?"

      깔깔깔 웃으며 쭈욱- 빼 내는데.. 엄마 스타킹이다.

      세상에도~~ 브래지어 사이에 쑤셔 넣은 물건인 모양이다.

      일순..웃음에 앞서 참 부러웠다. 당당한 性~~

      그 날로 나는 당장 아이에게 맞는 뽕이든 브래지어를 선물했다.

      아이가 좋아했음은 물론이였다.

      아무튼 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많이 변했다.

      백지 상태에서 처음으로 성을 전달 받을 때... 올바른 성 교육이 있어야 한다.

      난, 그 당시 우리 학교 인근의 완월동 출신 아이에게 아주 막된 말을 들었던 게

      그리도 충격적이였으니...

      그러나 요즘의 내노라는 성교육도 한참 문제가 있긴 있다.

      이웃 이야긴데,

      유치원 다니는 손자가 차에서 내리자 마자

      손님들이랑 함께 계시는 할아버지 사무실에 와서는 대짜고짜 하는 말이

      "할아버지 질이 모야?"

      "응 무슨 질?"

      "에이 할아버지는 그 것도 몰라 여자들이 아이 낳는 질...오늘 배웠따~"

      그래서 모두 황당해 했다는 웃지못할 이야기가 있다.

      모자라서도 안되고 넘쳐서도 안되고... 참으로 조심스러운 게 성교육임을,





      글/이요조


      무슨 일이든 사람마다 그 느낌이 같을리가 없습니다.
      누구는 그런 교육을 하나 받지도 않고 잘 성장하는가하면..
      나처럼 아주 부정적으로 암울하게 받아 들이기도 합니다.
      내가 딸아이에게 해 주듯.. 초경잔치라도 해주고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라도 계셨다면
      난 아마 지금하고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두려워하고 창피해하고 여자라는 자신을 저주하고...
      중학교에 들어가니.. 그제서야 초경에 대해서 가정시간에 가르쳐 주었습니다만...
      한참이나 늦은 뒤의 교육.. 그리고 집에서 우리엄마는 딸들에게 왜 함구 하셨는지..
      나보다도 건강도 부진하고 여린 언니에게 그나마 울면서 물어보았던 큰 두려움,,,
      평생 두고 두고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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