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을 다시 만난 건 거의 10년만 이었다.
    그때 나는 남편의 백수생활로 떠나온 둥지로(친정동네)다시 날아들었던 때였다.
    동생이 그곳에서 살고있었기에 퇴근을 하고 나면 의례 한번씩 들르곤 했었는데
    어느 날 10여 년 전의 모습과 별 달라진 것이 없는 소년을 동생 네 근처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다.


    처음엔 걔가 이 동네 살았었나? 하곤 갸우뚱거리며 지나쳤다.
    그런데 어느 날 동생이랑 얘기를 주고받으며 동네를 들어서는데 또다시 마주친
    것이었다.
    다시 한번 갸우뚱하다가 동생에게
    "너 저 사람 아니? 이 동네 사는 것 같은데...?"
    "어? 언니가 저 사람을 어떻게 알아? 우리 뒷집에 사는데."
    "옛날에 통근할 때 같은 차를 타고 다니다가 엄마한테 엄청 혼났었잖아.
    그때 쟤는 농아학교에 다녔고..같이 얘기 많이 했었다. 참 착한 애야."


    그 소년이란 사실을 알고는 자연스레 걔라는 말이 나왔다.
    동생의 얘기를 들으니 같은 장애우를 만나 결혼을 하고 친가에서 단둘이서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신이 장애를 가져서인지 후천적 장애였음에도 자식을 포기했다고 동생에게서 들었다.
    부인은 선천적인 장애인이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2세를 포기했다는 말에는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


    뚜렷한 직업이 없어 겨울엔 호떡장사를 여름엔 날품을 파는 모양이었다.
    동생이랑 그 부인과는 이웃이라 잘 지내는 까닭에 어느 날 부인이 동생을 찾아왔는데
    너무나 아기를 갖고싶어 소년 몰래 임신을 감행했단다.
    그러나 그만 들켜버려 불같이 화를 내는 바람에 병원에 가야한다며 수술비를
    빌리려 왔다는 말에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정말 잘 살기를 바랬었는데... 그로부터 며칠 후 마산에 볼일이 있어서 버스를 탔는데
    그 소년도 마산에 가는지 버스에 올랐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첨부터 날 알아보았던 것 같았다.
    근데 매번 동생이랑 같이 있을 때 마주쳐서 그런지 아는 체를 않더니
    그날은 곧바로 내 자리로 오더니 여전히 알지 못하는 수화로 반갑다는 인사를
    하는 모양이었으나 난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었고 소년은 답답했는지
    자기 가슴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치며 자기를 알아보게 하려고 했다.


    그 순간 차안에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친구 분이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
    남의 말 좋아하는 이웃사람들이 타고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계속 버스에 오르고 소년은 도저히 기억을 하지 못하는구나
    그렇게 판단했는지 마침내 자기 자리로 가버렸다.
    마산까지 가는 내내 양심이 아파 왔다.


    여린 영혼에 상처를 입힌 것 같아서, 나 또한 옛날의 이웃집 아주머니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그 이후에도 몇 번 길에서 마주쳤지만 소년은 그때마다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고
    나는 무표정을 가장했다.
    내가 모른 체 한다는 걸 알고있는 눈치였다.
    동생에게 내가 이상하게 큰 죄를 지은 것 같다고 얘기를 했더니 동생은 아는 체를
    안한 것이 잘한 거라나. 별 사연도 없는데 괜히 구설수에 오른다고 아직도 남의
    말하길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냐고..


    한동안 가슴 한 쪽이 아려옴을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하든 혹시라도 내가 세상의 때에 찌든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님을,
    그래서 예전의 그 해맑은 웃음을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며칠을 고심하던 끝에 남편에게 얘기를 했다.
    그간의 사정을 얘기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함께 연구(?)했다.
    남편의 조언은
    "그 부인하고 친해 보는 게 어떨까?
    처제 집에 들릴 때 자주 마주치니 부인하고 동생하고 있을 때 인사를 터놓았다가
    다음에 부부가 함께 있을 때 자연스레 인사를 하면 좋지 않을까?"


    바로 이거였다.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걸 남편과 생각했던 것이다.
    내생각과 같은 생각을 하는 남편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그 다음날로 동생 네로 휘리릭~ 바로 뒷집이라 기회를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그 부인도 동생이랑 자주 같이 있는 나를 봐 왔기에 자연스레 얘기를
    했고
    그 후로 몇 번을 더 동생이랑 같이 인사를 나눈 뒤 드디어 두 사람이 나란히
    외출하는 날이 왔다.


    반갑게 인사를 하니 소년의 부인이 그 옛날 소년의 얼굴에서 보았던 벚꽃 같은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흔들었다.
    소년은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이내 얼굴에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 했다.
    그 옛날 소년이 그랬던 것처럼 소년의 부부는 손을 흔들었고 난..
    그들을 향해 한껏 밝은 미소를 보내주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우리는 마산으로 이사를 했고 그 눈빛 맑은 부부는
    다시 볼 수 없었다.
    건강하게, 그리고 그릇된 사고를 깨치고 귀여운 자녀를 두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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