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계집


      별똥 떠러진 곳,

      마음해 두었다

      다음날 가보려,

      벼르다 벼르다

      인젠 다 자랐오.

      -정 지용님의 '별똥' 전문-



      전의 그녀석이 맥주 마시자고 전화가 왔습니다.
      술도 못마시면서...
      가지고 간 책을 꺼내다 제 가방에서 사진이 한장 떨어졌지요.
      얼른 줏어서 한참을 보더니 내 눈을 보며 말했습니다,

      '오빠, 이때만 만났어도 나 오빠랑 연애할 수 있었을텐데...'
      ' 너 이쁜 고짓말도 할줄 아네?'

      '...... ......'

      늘 재잘대던 녀석이 가만 있으니 잠깐이지만 무척 어색하더군요.

      '야, 닭살이다, 그냥 형이라 그래라, 마시지도 않고 취했냐?'
      그래놓고는 그저 애꿎은 술만 웬수삼았더랬습니다.

      차마 그게 작년 봄에 찍은 거라는 말은 끝까지 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짓말; white lie -비가비 단어장에서-



      이틀간의 나비


      나비가 날아가네
      마치 이 세상에
      실망한 것처럼

      - 一茶 -



      보고팠던 사람에게는 고작 '안녕',
      그것도 겨우 입술만 달싹이다 말면서도 그다지 반갑지 않은
      이와는 얼싸안고 호들갑을 떨다시피 하고...
      그런 경우 겪어들 보셨는지요?

      그건 그렇고 장자는 왜 나비가 되어서도 날아가버리지 못했는지...
      모든 것 다 버린 뒤에도 이름 하나 버리는 것은 그렇게도 어려운 건가 봅니다.
      내게는 참 아쉬운 일입니다.
      장자에게도 무척 안타까운 일이 아니었을런지요...



      결코 만만치 않은 핑계


      우리의 만남을
      헛되이
      흘려버리고 싶지 않다
      있었던 일을
      늘 있는 일로 하고 싶은 마음이
      당신과 내가 처음 맺어진
      이 자리를 새삼 꾸미는 뜻이라

      우리는 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살며 있는 것이다

      -인 병선님의 '申東曄生家' 전문-



      어제 오후는 날씨에 홀려 내도록 여기저기 쏘다녔습니다.
      날씨 한 번 경치게 좋더군요,
      오늘도 만만치 않네요.
      걱정입니다.
      오늘은 할 일도 적잖은데...
      어젠 글쎄, 술 마시는 것도 빼먹었다니요,
      오늘도 숙제 밀릴까 걱정이 됩니다.

      -인 병선님은 '아사녀'의 신 동엽님의 각시랍니다,
      그 우리 짚, 풀 문화를 보듬고 가시는 바로 그분이요.-



      강호에 밤길을 나서본들...


      누란으로 가는 길은 둘이다
      陽關을 통해 가는 길과
      玉門關을 통해 가는 길

      모두 모래들이 모여들어 밤까지 반짝이는 길이다

      -오 규원님의 '길' 전문-



      한 곳에 이르는 길이 한갈래 뿐이라면
      얼마나 삭막할까요, 얼마나 각박해질까요.

      우루무치, 그 눈빛 파란 여인들.
      중원 밖의 세상은 늘 가슴 뛰게 합니다.

      오늘도 낙타 대신에 술병을 타고 중원을 헤맵니다...,
      세외를 그리게하는 홍진에 고삐잡히어.



      날은 아직 길기만 한데...


      목련은 또 그렇게
      지저분하게 꽃잎을 떨구었읍니다.
      이파리도 없는 가지에 희고 큰 꽃잎으로
      며칠을 그렇게 환하게 살더니만
      땅바닥에 떨어져 또 그렇게
      지저분하게 갔읍니다.

      따뜻한 봄 햇살에 마르는 꽃잎을 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읍니다.

      -박 상천님의 '遺書.2' 전문-



      오늘은 철 바뀌는 채비 단단히 한다고 출근도 안했습니다.
      엔간한 옷들은 모두 상자에 넣기,
      -세탁소에 갈 옷만해도 한 짐이더군요,
      물론 옷이 많아서가 아니고 순전히 내 둔적스럼 탓이지만.
      몇 개 안되는 그릇 햇살 쬐이기.
      냉장고 청소,
      -세상에 크지도 않은 그 속에 별게 다 들어 있어 놀랐습니다.
      이불 바꾸기.
      -겨우내 펴두었던 요 밑에서 횡재도 했습니다.
      겨우내 쌓인 책더미를 추려 헌 책방 갖다 줄 것과 또 누구누구에게 줄 것
      가리기.
      수시로 동네 가게엘 드나들며 쓰레기 봉투랑 비눗곽이며 세제 따위를 사느라
      한참 바빴습니다.

      마지막으로 느긋이 가까운 곳에 있는 상설 할인점에 여름 옷가지며
      뭐좀 사러 갔더니 그만 문을 영 닫았네요, 며칠 않되었더라구요.
      일찍부터 부산 떤 것이 허망하기까지 하더군요.

      궁리 끝에 얼마전 생각이 나서 부러 골목으로 어슬렁대며 돌아오는 길엔
      목련 하나 보이지 않더랍니다...
      하, 이제부턴 무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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