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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화 편력기 -其7- 글/동우








그런데 여보게들.
나는 이쯤에서
나의 부끄러움 하나를 들려주고 싶으이.

*아빠 안녕*이라는 국산 영화.
김진규, 엄앵란, 조미령... 어린 첩과 서방님
시앗을 본 아내의 질투..
오빠처럼, 아빠처럼, 애인처럼 서방님을 사랑한
어린 첩..
"아빠 안녕"하고 떠나는
어린 아내며 애인이며 첩인 여인...
극장 안에는 흐느끼는 소리가 가득하였지.
나 역시 여주인공 엄앵란이 가엾어 눈물을
찔끔거렸고.


그런데 내게는 말일세.
눈물을 찔끔거리며 진지하고도 슬프게
그 영화를 감상하였으면서도 그 영화를
유치하다고 경멸하고자
똥폼 잡는 이중사고가 있었으니.
아니, 나의 진실한 감정모체가 그렇다기보다는
그것은 일종의 위선이었음이 정확한 표현일걸세.


온전한 사고의 평등을 이루려면 지금까지
요원한 측면도 없지 않겠지만.
그 시절은 특히.
대중문화와 순수문화..그대의 찬손과 동백아가씨
야담과 실화와 현대문학..
구두와 찌까다비..포마드머리와 상고머리....... 위선적 똥폼 잡기가 풍미하던 시대.


니체나 쇼펜하우어를 표지가 보이게 끼고 다니던 대학생의 머릿속에는 철학적 사유 한 조각
있었을까. 누런 서류봉투 끼고 다니면 이른바 인텔리들은. 식모가 감동하는 영화와 대학생이
감동하는 영화는 달라야 한다는 그 위선적인 사고.


정진우 감독의 ‘초우’의 주인공들의 역할이 자연스레 공감되어 히트하였던 그때.
어쩌면 나 역시 허영과 위선의 시대관념에 희생된 피해자였을는지.
여보게들, 확실히 지금보다는 그런 이분법적인 통념이 지배하였던 분위기였음을 자네는 전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겠는가.


섬유공장 근로자인 소녀가 밤낮 없이 혹사당하다가 모처럼의 황금 같은 휴일을 기다리고 기다려
만나보는 신성일에 대한 선망, 그 열정의 치열함과 이미자의 노래를 부르며 인생과 사랑의 오의를
느끼는 그 고양된 감정의 진지함을 우리는 짐짓 똥폼으로 깔아뭉개지 않았던가 말일세.
저급문화의 유치함으로서.


지사적인, 지식인적인, 문화인적인, 적어도 저급문화가 아닌 그런 종류의 것들이 세상을 이끌어
간다는 심각한 착각. 정말 꼴같잖은 엄숙주의. 표피로서만 주름잡는 거드름......똥폼.



여보게, 인생의 오의란 겪어야만 깨닫는 그런 것이런가.
무슨 교향곡에 심취한 척, 유행가 따위는 능멸하는 듯한 똥폼을 잡는 어떤 녀석은 막상 실연을
해야만 배호, 이미자, 심수봉의 그 절절한 가락이 가슴 깊이 사무쳐 와 닿는 그런 것이런가.


나는 부끄럽고 부끄럽네.
한참의 세월이 지나 내가 철이 좀 더 들었을 때에야 나는 인생에는 유치한 구석이 없다 는걸 깨달았네.
아아, 진실로 어느 필부필부의 인생에 있어서도 추호라도 유치함이란 없다네.



그러므로 나는 인구에 회자되는 영화평으로 영화를 선택하는 짓거리야말로 참으로 부질없는
영화감상 태도라고 말하고 싶다네. 영화를 선택하고 영화에 감동한다는 것은 제 멋에 겨운 매우
독창적인 행위일세. 나름대로의 정서와 감수성과 역정과 경험과 환경과 느낌으로 영화를 즐기면
되는 것이지, 무슨 얼어죽을 누구나 보편적으로 좋아해야 할 영화가 있단 말인가. 성실하고 진지하게
제작된 영화라면 제 멋에 겨워 보는 게 바로 영화라는 얘길세. 요즘은 하도 시각디자인과 카피가
화려하여 선택의 고민이 따르겠지만.



데자뷔라고 하나? 기시감이라고 번역되는 어휘 말일세.
나는 영화를 보면서 그런 경우를 때로 경험한다네.어디서 본듯한, 내 심층심리 속에 숨어있던 어떤
정황이, 분위기가, 풍경이,대사가 있는 화면.. 또 늘어놓는 영화들.


*비운* 벤센트 미넬리 감독. 글렌 포드, 잉글릿 듀린, 샤르르 보아이에..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묵시록의 네기사’가 원제.. 아르헨티나는 2차대전전까지만 해도 부유한 강대국.대저택의 대가족
나치 추종자와 연합군 측으로 갈려 파괴되는 비극적인 가족사...


*아무리 옷이 날개라지만* 김승호.
*아파치 요새* 존 웨인, 헨리 폰다.. 패전의 삶보다 죽음을 택하는 기병대장.전멸하는 기병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박노식, 조미령
*팔월 십오야의 찻집* 말론 부란도, 글렌 포드...말론 브란도의 일본인 분장은 웃겼었지..
*내가 설 땅은 어디냐* 문정숙, 최무룡...북한 부수상이었던 허헌 딸의 수기를 영화화..
남과 북..그녀가 설땅은 어디..당시의 연좌제는 삼엄하였고..


*성난 능금* 신성일, 방성자, 최남현.. 고독하게 성장한 고아..아버지 곁에서
생활하고 싶은 열망.. 상실의 회복.. 의무적 사랑... 라스트신이 그럴 듯.
*혈맥* 김승호, 황정순, 신성일, 엄앵란... 유현목 감독이었는지는 아리송하지만 지극히 오발탄적인
분위기의 영화.. 빈민촌.. 벗어날길 없는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인간군상...


*지옥의 대지* 공룡영화...
*천국과 지옥* 박노식.. 탈옥수..불신과 배신.. 믿을 놈은 이 세상 없다..
*청춘교실* 신성일, 엄앵란... 어머니에 대한 반항.. 연애... 방학이 끝나고 시험걱정을 하는
일상으로 돌아오는 젊은이들..아마 일본 소설을 각색한 것..
*4인의 무뢰한* 챕 찬드라
*푸른 꿈은 빛나리* 신성일, 남석훈, 태현실.. 당시는 일본 청춘소설을 각색하여 영화한 것이
많았는데 이 영화도 그러할 듯..


*전쟁과 정조* 하워드 킬, 티나 루이스... 사랑하였던 여인은 적국의 스파이..자신의 총으로 쏘아
죽이고 나서.. 그녀는 나를 진정 사랑하였나? .
.멍하게 걸어가는 폐허의 거리..
*성난 코스모스* 김진규, 엄앵란
*혈* 탈옥영화는 늘 재미있었지..흑백의 화면.. 사실적인 묘사.. 끈질기게 탈출구멍을 파는 탈옥수..


*하타리* 존웨인.. 당시로서는 전혀 새로운 배경인 아프리카 사파리 영화..삽입곡인
‘아기 코끼리의 걸음마’가 생각날걸세.
*대평원* 김석훈, 이경희.... 패잔병.. 거지,,
*내 무덤에 비를 세우지 마라* 제임스 다렌, 에드워드 G 로빈슨.. 아편중독자..주정뱅이.. 변호인..
시카고의 범죄골목.. 이 곳을 탈출하라.. 그리고 이름 없이 뒷골목에서 죽어간 내 무덤에 비는
세우지 말라는 포스터 카피...


*방랑의 검호* 스튜어드 그렌저, 실바 코시나, 크리스티네 카프만.. 팬싱은 일종의 무용적인 느낌.
*5인의 독수리* 신영균, 박암, 엄앵란... 황야의 7인의 한국판 아류..
*엘 시드* 찰톤 헤스톤, 소피아 로렌...스페인을 점령하였던 사라센 제국..전설적 영웅 엘시드..
백마에 몸을 싣고 창을 비껴들고 바다 저편으로 사라지는 영웅 엘 시드.. 찰톤 헤스톤은 역시 역사극에
어울리는 배우.


*단골손님* 신성일, 엄앵란
*유쾌한 삼 형제와 사십 인의 처녀* 이대엽, 구봉서
*말띠 여대생* 엄앵란, 신성일, 최지희
*무덤에서 나온 신랑* 박노식
*하녀의 고백* 도금봉, 이예춘
*판문점* 장동휘

*빨간 마후라* 신상옥 감독, 최무룡, 신영균.. 산돼지 나관중..파일럿..
지금 다시 본다면 전투기의 공중전은 되게 유치할 것..그러나 조종사들의 낭만은 그런대로..
*가슴에 꿈은 가득히* 신성일, 장동휘.. 사생아.. 사생아라는 쓰레기들의 표상이 되기 위하여 이겨야
한다..
*식모* 김지미
*평양감사* 신영균, 최은희, 김혜정


*맨발의 청춘* 김기덕 감독, 신성일, 엄앵란 ...흥행 대성공이었던 영화...송충이는 솔잎 운운..
정사..그러나 그들은 순결하였다는 마지막 세리프.당시의 소박한 관중은 감동의 물결..신성일
연기 폼의 아류들이 양산되었었지..
*아편전쟁* 신영균, 박암


*악마의 제자* 버트 랭카스터, 커크 다그라스.. 신도 역사도 인간도 시간도 믿을 수 없다..
불신..오직 믿을 수 있는 건 악마뿐이다..세기말적인 대사들.. 제도와 법률로서의 처형..아무리
가장하여도 살인은 살인이다..
*양자강* 박노식, 김혜정
*살아야 할 땅은 어디냐* 김진규, 주증녀.. 간첩
*불가사리* 최무룡, 엄앵란


*검은 장갑* 박노식, 문정숙... 문정숙은 참 독특한 분위기를 발산하는 배우..이만희감독은
신상옥, 홍성기, 유현목, 김기영 등과는 다른 참 유니크한 스타일의 감독...
*나바론* 그레고리 팩, 안소니 퀸, 데이빗 니븐, 제임스 다렌.. 철벽 요새의 기지 폭파..
한때 밋밋한 젖가슴의 여자를 나바론이라고 놀려 주었던 기억..
*무명가* 리처드 위드마크.. 리처드 위드마크의 스토익한 표정은 갱의 캐릭터에는 적역..


*노트르담의 꼽추* 안소니 퀸, 지나 로로 부리지다.. 짚시 에스메랄다.. 꼽추 카지모도..
적역의 연기...카지모도는 얼마나 순정한 영혼의 시인이었던지..시인뿐이었겠는가, 행동인이기도
하였지..에스메랄다와 카지모도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심장을 후벼파는 아픔이 있는..노트르담의 꼽추
..에스메랄다는..시인이었지.


*부리바* 율 부린너, 토니 커티스, 크리스티네 카프만.. 몇 번째 영화화되었지..고골리 원작..
아들을 죽이는 부리바..이런 주제는 알퐁스 도오테의 단편에도 감동적으로 묘사되었고..
*정글지대*
록 허드슨 주연의 영화. 3류 극장에서 보았는데, 기대도 하지 않고 들어갔던 극장에서 의외로 좋은
영화를 만났던 것일세.


신이라는 의미.

신을 부정하고, 신의식을 비웃는 철저한 무신론자, 록 허드슨. 인간의 신경조직을 조정하면
누구나 신의식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변증을 자신하는 오만한 과학자. 그러므로
신은 시험관 속에 있다는 그.


전형적인 물질주의자며 이성과 논리 이외에는 아무 것도 믿지 못하는 합리적 사고를 자랑하는
그에게 있어서는 형이상학이란 하나의 헛소리에 불과한 것. 비변증법적인 모든 사유방법은
호모 사피엔스의 존엄을 모독하는 허황된 잠꼬대라는 사고.


그런 그가 어떤 계기로 정글에서 홀로 방황하게 되지.
그야말로 단독자로서 원시자연 속에 내던져진 것.
시시각각 엄습하는 고독과 초현실적인 공포.
인간이란 근원적인 실존으로서 자신의 모든 외부의 것들과의 벌거벗은 배면.


처절한 공포와 단독자의 고독 속에서...
마침내 신학적인 명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지.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부르짖기 되네.
“Oh My GOD!"


그 때에는 늦가을이었을 게야.
나는 앉은자리에서 두 번을 연거푸 보고서 어두운 거리를 지나 서늘한 바닷바람을 뺨으로 맞으며
영도다리를 건넜지.


가슴 속 소용돌이치는 명제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신의 존재.. 난해한 신학과 철학의 책으로서는
느낄 수 없는 단순하고도 명확한 명제.
신은 있는가? 아니, 신은 있어야 하는가?


어줍잖으나마 진지하게 신을 사유하는 계기가 바로 삼류 극장의 한 이름 없는 영화에서 비롯되었다면..
영화의 효용성은 한낱 오락으로 서만으로 설명되어질 무엇은 진정 아닐 걸세.


그후.
이제껏 목숨을 살아오면서 나는 정글 속 록 허드슨의 상황 속에 내던져서 '오 마이 갓'을
부르짖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네.


그리하여 오늘날 나는. 나일론일 망정 크리스천이 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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