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 수목원
참 아름다운 나무와 숲이 있었네
20세기 소년
해안선이 단조로워야 파도가 세고
파도가 세야 깎는 힘이든 쌓는 힘이든 세다.
굴곡이 심한 서해안은 좋은 백사장이 적다.
백사장이 좋아야 해수욕장이 될 터인데..
태안반도 끝자락 유명한 해수욕장 만리포.
긴 해안선에 백사장이 곱다.
그 옆이 천리포, 백리포, 십리포로 작긴 해도 다 고만고만한 해수욕장이다.
거기 아름다운 천리포에 놀라운 곳이 있다.
천리포 수목원.
귀화한 독일계 미국인 민병갈씨가 1970년에 설립한 곳이다.
식물원은 초본식물과 목본 식물을 다 포괄하는 개념인데
수목원은 주로 나무식물원이다.
수익을 위한 곳이 아니라서 일반인은 입장할 수가 없는데
인연이 있어 메모리얼데이 연휴를 맞아 고교등산회의 이벤트로
그 곳 '감탕나무집'에서 하루 밤을 지내게 됐다.
동료들이 잠든 이른 새벽 혼자서 둘러본 수목원의 아침산책은
내내 행복한 숲 속의 남자 요정이었던 순간이었다.
오전 10시 정말 요정 같은 도우미 아가씨의 정식안내를 받아
코스를 돌면서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실을 또 한번 실감했다.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충북대 임학과를 다니다 휴학을 하고
이 곳에서 공부를 하며 지내는 요정 같은 이양의 얘길 주로 옮긴 것이다.
아침산책 때 보니 열매를 매단 채 그물 망 우리에 갇힌 10여 그루의
나무를 보면서 '야 되게 비싸고 귀한 나문갑다..혹 이 게 세계에서
우리 나라 밖에 없다는 그 미선나무 아닐까...' 이런 망상을 했다.
이양의 설명인 즉, 민병갈씨가 어릴 때 블루베리를 좋아했단다.
고향의 블루베리를 10여 그루 옮겨와 고향생각 하면서 아껴 먹는 것인데
새들도 매우 좋아해서 접근을 막느라 그물망으로 가두어 둔 것이란
얘길 듣고 고소를 금치 못했다.
이 곳이 보유하고 있는 수종이 1만 여종인데
표찰에 우리 이름이 씌어 있질 않은 게 절반이 넘는단다.
4, 50여 국에서 도입된 수종이라 딱히 명명할 필요성도 없고
마땅한 이름도 없었으리라...내 한 마디 거들었다.
"누가 나에게 이름을 붙여다오
네게로 가서 너의 나무가 되어주마"
곰솔원 가는 길에 근사한 나무가 있기에
'야 이 거 되게 비싸게 생겼다' 했더니
가장 아름다운 나무 셋 중 하나란다.
마로니에, 히말라야 시다와 더불어 금송. 무령왕의 관으로도 사용됐던 나무로
일본특산종인데 당시에도 왜와 깊은 인연이 있었노란 또 다른 웅변인 셈이다.
그 역으론 일본 국보 1호인 목제 미륵반가사유상은 일본에 없는
강송이 재질이란 사실인데 우리 땅에서 완제품을 제작했는지
재료만 가져갔는지 누가 제작했는지 지금도 모르고 있다.
그 금송이 비싼 이유는 번식이 힘든 나무이고 성장도 더딘 탓이리..
수목원의 기능이 많을 수밖에 없겠지만 유전자의 보전과 그 번식에도
의의가 있어 임산자원을 통한 국부의 증진이 포함됨도 당연하겠다.
참나무 숲에 이르러 상수리,떡깔,신갈,졸참,갈참,굴참나무가
다 참나무며 별도로 참나무라는 건 없다는 설명이었다..
나무가 탈 때 자작나문 자작자작타며, 회양목 닮은 꽝꽝나문
꽝꽝하고 타며. 집에 심지 않는 버드나무는 남편이 바람날까 해서고,
등나무는 집안 일이 꼬일까 봐서인데 등나무 집의 흰 꽃피는 등나무는
밑동이 버혀진 채 벌을 받고 있었는데 얘 때문에 좋은 소나무가 두 그루나 죽었단다.
나무를 감고도 서로 피해를 주지 않는 아이비 종류완 다르게
숨을 못 쉬게 하여 감고 올라가서 다른 나무를 죽인단다.
너 죽고 내 살자는 식물의 세계에도 있어 저 역시 벌을 받고 있다.
굴거리나무란 놈은 새 싹이 난 끝자락 10센티 정도는 하늘로 향하고
바로 아래 작년 것 10센티 정도는 땅으로 향하고 있는데 아우에게
보다 많은 햇빛을 주려고 양보하느라 그런 이질적인 방향성을 보여준단다.
인간의 살이나 식물의 살이나 알고 보면 다를 게 없다.
역설로 보면 이해가 빠른, 돈나무는 똥나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나무의 향취가 너무 좋다보니 많은 벌레나 새들이 꾀어들어 똥을 싸제낀다나
그래서 똥나문데 본성과 다르게 사람들도 싫어하게 된 나무란다.
바람둥이들이 이쁜 여잘 안 고르는데도 깊은 이유가 있었네 그랴~~
그리고 잎 끝이 새의 부리 모양인 조구나무는 많은 열매들이
그냥 달린 채로 인데 그 열매를 새들이 사양한 결과란다.
대극과 식물의 대부분은 독성을 지녀 그렇다는데 새 똥에 섞인 씨가 있는
그 열매는 먹어도 안 괜찮겠나...싶다.
후박나무-잎이 매우 넓은, 법정 스님이 다이호우잉의
"사람과 아 사람아'를 후박나무 잎에 돋는 빗소리를
들으며 읽다가 울었다는-후박은 기실 '일본 목련'이고
진짜 후박은 잎이 작고 나무도 전혀 다른 나무인데
울릉도에 군락을 이루고 있고 유명한 울릉도 호박엿은 사실 후박엿이란다.
말채나무로 말 채를 만들며, 오이풀나무는 오이냄새가나며,
모감주나무 열매로 염주를 만들며, 마취목이 피어리스며,
낙엽이 깃털처럼 떨어지는 침엽수인 낙우송과 가로수로 식재 되어,
또는 살아있는 화석으로도 불리는 메타세콰이어는 분간하기 힘든 데
엇나기 잎과 마주보기 잎으로 구분하며 후자가 메타세콰이어.
자주색 꽃이 아주 크고 이쁜 녀석의 이름은 어김없이 꽃아카시아 이지만
아카시아란 잘못 부르는 이름일 뿐 아카시가 맞단다.
만 종의 나무에 만 가지의 사연이 왜 없으랴만 임학도인
이양이 다 알겠나, 그렇다고 내가 다 알며 시간이 무한하랴...
꽃이 진 꽃자루가 저리 예쁜가 하며 다가가서 본 미포비아.
그 자체가 꽃이라는데 단단한 통꽃이라 오해를 불러올 만 했겠다.
꽃자루를 살짝 치니 꽃꿀이 손등으로 살랑살랑 떨어진다.
많은 희귀 초본들도 잘 가꿔져 있었지만 여기선 나무 얘기로 그치는 게 좋겠다.
숲길을 걸으며, 나무를 보며, 만나며 숲이 주는 향기와 평화 속에서
수목원을 도는 두어 시간은 행복어 사전을 뒤지는 순간이었다.
이 곳의 여러 면을 자세히 보려면 통합검색해서 천리포수목원
사이트로 들어와서 샅샅이 살펴보면 그 자체로도 너무 좋다.
천리포 수목원의 앵초
천리포 수목원의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