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감나무





    병치레 끝에 수술도 하고 그럭저럭 못 가본 게
    두어 달만에 처음 가는 비어둔 집은
    정말 입이 따악 벌어질 정도로 작은 마당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다.

    나리꽃은 흐드러지게 피다 못해 제풀에 픽-픽 쓰러져있고
    굳이 미신을 믿진 않지만
    여기 사람들은 유난히 모든 일이 꼬인다고 믿어 꺼리는 등나무를,
    옆집 빗물받이를 자꾸만 잡아 당겨 뽑아놓는 밉쌀머리에 큰 맘 먹고
    작년에 모두 잘라 베어 냈는데 모질게도 죽은 둥치에서
    줄기가 다시 살아 올라 얼기설기 제 맘대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올 여름에도 다시 매미들 꽤나 꼬이게 생겼다.

    땅대(竹)는 뿌리가 번져 보도 블럭 사이로 기어나와 무성히도 번졌다.
    길이 없어졌다.
    똘똘이가 없는 주인잃은 빈 밥그릇들은 뒹굴어져 담긴 빗물에 이끼가 끼이고
    그것도 고여있는 물이라고 모기 유충만 잔뜩 고물거린다.

    재작년 봄이던가?
    집사님이 지팡이만한 감나무를 하나 갖고와서 심어주시더니
    하도 곁가지가 없어 막대기같아 보여 별반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세상에나 감이 12개나 맺혔다.

    너무 신기하고 좋았다.
    난, 감나무를 유난히 좋아는 하지만 윗지방으로 이사와선 심기를
    아예 포기하고 살았었는데...
    꼬물 꼬물한 놈이 여러번 세고 다시 세어봐도 기특하게 딱 12개가 달렸다.

    언제 감꽃이 피었고, 언제 나 몰래 감이 맺혔을까?
    동안 따듯한 눈길 한 번 제대로 건네 준 적이 없었는데도....
    참으로 신기했다.

    기쁨에 일하던 흙손으로 집사님께 전화를 했다.
    "심어주신 그 감나무있잖아요...감이 벌써 열렸어요 무려 12개나요"
    호들갑스럽게 수다를 부렸다.

    ..........................

    우린 둘 다 생각없이
    반팔 티-셔츠에다 칠부바지를 입고 갔다가
    장갑은 꼈어도 팔뚝에는 풀독이 올라 회를 친 것처럼 되었다.

    어제 부산서 올라온 언니와 형부를 만나러
    분당 조카네로 가려고 서둘러 일을 마쳤다.
    와중에도 꺾어져버린 수국과 나리꽃을 챙겼다. 집에 가져다 꽂으려고 ..

    출발하면서도 내내 나를 힐끔거리던 양반은
    "안색이 안좋네... 사람이 생각없이 멍해 보이네..."
    그랬었는데... 땀 좀 흘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기분이 썩 괜찮아졌다.
    아마도 내 혈색이 좀 돌았나 보다.

    "살만한가 보네~"

    "친정 갈려니 그런가?"

    "여자들은 시가(媤家) 간다 생각만 해도 서리맞은 호박꽃이 되고
    친정 갈라치면 이슬맞은 나팔꽃처럼 생기가 돈다더니... 당신도 그래?"

    남편 농담도 무리는 아니다.
    내가 생각해도 훨씬 낫긴하다.
    아마 12개의 감이 오종종 달린 작은 감나무 덕일게다
    우울증이 훨씬 가셔졌다.

    내년에는 더 많은 감꽃을 볼 수 있겠지...

    우리집 양반은 마눌 건강을 위해서라도
    이사를 해야겠다고 우기는데...

    글쎄...??



    이요조








    2003년 7월 14일 자정너머
    불현듯 [작은 감나무] 글이 쓰고싶어 쓰며...
    꽃도 토요일 꽂아 두고 외출했다가 1박하고 늦게 오니 어째 벌써 시들한 것 같으네요
    카메라 준비가 안되어 감나무를 찍어 오지 못했지만,
    네이버[감나무] 이미지를 찾아 그와 꼭 닮은 감나무를 발견하고 그대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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