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키가 쑥쑥 자라나서*










    우산꼭지가 주는 작은 행복









    전철을 탔습니다.
    제법 사람들이 듬성듬성 서 있습니다.

    저 쪽에서 누가 자리 양보를 합니다.
    너 댓 살 난 분탕질 심한 사내아이를 데리고
    있는 젊은 엄마에게...

    아이는 마다합니다.
    아이의 관심은 다른 데 가있습니다.

    제 키로는 어림도 낼 수 없는
    높으당한 손잡이를 잡고싶은 욕망에 안달을 냅니다.

    엄마가... 30kg은 좋이 넘을 것 같은 아이를
    안아 올립니다.

    한참을 그러던 엄마가 팔이 아파 내려놓으면..
    아이는 금세 뗏장을 부립니다.

    젊은 엄마는 낭패한 표정을 짓습니다.
    어린 아이의 투정에, 비 오는 늦은 밤..
    전철 안의 무료한 시선은 몽땅 그리로 쏠립니다.

    이해가 갔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그랬다니까요.

    왜 그렇게 높기만 해 보이던 전차 손잡이가 그렇게도 잡고 싶었던지...
    고개를 뒤로 젖혀야 보이던
    마치 이리 저리로 흔들대며 달랑거리는 그 모습이
    어린 저에게 '나 잡아봐라~'며 약을 올리는 것도 같았고

    그 손잡이만 잡는다면..
    어린 내게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어른들처럼 키가 쑥쑥 크게 자라면
    어른들처럼, 무엇이든 할 수가 있고
    어른처럼...어른처럼....
    키만 그렇게 커진다면...
    오로지 어린 날의 제 소망 이었습니다.

    전차만 타면 안달을 하는 제게
    우리 어머니는 어느 날 묘안을 내셨답니다.

    양산(파라솔) 손잡이를 전차 손잡이에다 걸어
    제 모자란 키에다 보태 주시는 방법을 터득하신 것입니다.

    전철 안의 아이는 점차 칭얼거리고
    젊은 엄마는 한쪽 손에 들것과
    우산 두 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산 하나는 손잡이 대가 밋밋한 것이었고
    하나는 어린이용 인데 손잡이가 마침 구부러진 것입니다.

    좀 멋 적었지만...
    네댓 사람을 헤치고 지나가야 하는 장소에서
    제가 큰맘 다그쳐 먹고 그리로 다가갔습니다.

    젊은 엄마에게 손잡이가 구부러진 우산을 건네 받아서
    전철 손잡이에 걸었습니다.

    생각보다 혹시
    아이의 키가 너무 작아 닿지 않으면 어떡하나?'
    손잡이를 거는 그 짧은 순간에도 잠시 잠깐 우려했는데...
    어쩌면... 우산 뒤 꼭지 부분이 손에 딱 맞게 쥐어지는 것입니다.

    아이가 환히 웃습니다.
    젊은 아이 엄마가 환히 웃습니다.
    전철 안에 모든 이들이 기분 좋은 얼굴입니다.

    아이는 마치 세상을 다 얻은 듯...
    우산 꼭지를 잡고 즐거워합니다.

    그로써, 모든 우주와 다 연결이 되는 듯한 마냥 행복한 얼굴입니다.

    저도 덩달아 행복해졌습니다.
    바깥에는 태풍이 뒤흔들어도 전철 안은
    따스하고 평화로운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9월14일 밤 7호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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