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나무의 기원

    한여름

    폭염의 뙤약볕과

    장맛비,

    가을 햇살과

    초겨울 무서리

    다 견뎌내며

    땀방울로 키워 온

    까맣게 여문 씨앗

    어디로 보내야만

    어디로 가야지만

    잘 자라줄까?

    잘 가거라

    멀리 멀리~~

    낯- 선 땅에 활착하여

    부디 잘 살거라~~~

    이요조









 


      2003년 12월 20일

      요 며칠 날씨가 추웠다.
      낌새가 아마도 동지 추위를 오지게 몰고 오려나보다.

      해 넘어가자 진즉에 커튼까지 묵직하게 내리고 있었는데
      바깥에 무슨 소리가 들려도 온도를 급강하하려고 지나는 바람소리겠거니 했었다.

      20일
      그제야 타닥거리는 소리에...

      "아고 맞어!"

      근데.. 예전에는 김장 담그는 날이었는데...
      하고 써 둔 글을 찾아보니 올 해는 무려 20여 일이나 늦었다.

      우리집 등나무의 축포 연례행사가...
      나도 날 잡아 꼭 무슨 일이라도 할 요량이면
      매해 저도 맞서서 함께, 기일을 잡음이 기특하다.


      아마도 습도와 온도 뭐 이런 삼박자가 맞아야지만
      콩깍지 같은 열매가 폭죽처럼 터트려 지나보다.

      마치 누가 장난하듯 왼종일 새총을 쏘아 대는 것 같다.
      유리창에도 마당에도 지붕에도 담장너머에 까지도
      하루종일 "타다닥....타닥!" 소리에...까만 바둑알 같은 씨알이 나르고...
      씨앗(콩)깍지가 떨어져 나가며 바스라지고,
      나무 잔 가지나 약한 웬만한 가쟁이는 맞아서 스스로 꺾어져 떨어지고,
      뜨락이 온통 지저분해졌다.
      그러나... 내 어이 찡그릴 수 있으리~

      여름내내 키워 온 씨앗,
      분통 속같은 꽃향기로 호박벌을 유인해 불러다 놓고
      소나기와 뙤약볕과 무서리 속에 땀방울로 기른 씨앗을 터트리는 제례처럼 엄숙한 행사임을,

      22일이 동짓날인데...
      주말에야 겨우 다 만나 볼 수 있는 가족들에게
      앞당겨 팥죽을 쑤어 먹이려는 이, 에미 맘이나...

      어찌하든 멀리 날려 보내려는 등나무의 그 마음이나
      자식 사랑하기는 매일반인 것을...





      2001년 11월 28일
      <살아 갈 준비>

      얼마 전, 급히 김장을 하는 11월 28일, 한참 배추 속을 버무리는데,
      돌이 탁!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아이들이 그러나 보다, 하는데--- 또 돌이 날아온다.
      소리로 짐작컨데 별로 큰 돌은 아니지 싶지만 언제 큰 돌을 던질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다 관 두겠지 그러면서 하던 일을 계속하는데---
      타-다닥! 연달아 그런다.
      벌건 고추 물 든 장갑을 한 손으로 바깥에 나왔다.
      마침 나와 있는 아주머니 더러 여기 아이들 돌 던지는 것 못 봤어요?
      하니까 아이들이 아예 없었다는 대답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들어 오는데,
      또 돌이 날아 왔다. 하늘을 올려 봤다. 어디서,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장난을 하는 것 일까?
      또 돌이 날아 왔다.
      아니, 놀랍게도 범인은 등나무 였다.
      등나무는 콩과 식물로 꽃이 지고 나면 콩처럼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리게 된다.
      마치 작두 콩 길이만큼 20센티는 된다. 보통 콩 같은데 길이만 엄청나게 길다.
      저 많은 열매가 콩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저건 먹을 수 없을까?
      하고 도감을 펼쳐보고 나중에야 한방 동의보감 구석재기 어디메서
      그 씨앗을 달여서 지사제로 음용 하라는 답만 보았을 뿐-----

      지난 봄에 등꽃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열려, 보라 빛 분통 향내가 뚝뚝 떨어지더니,
      기어코 올해는 열매가 많이 달렸다.
      콩깍지를 열어보면 바둑알 같이 동그랗고 납작한 새까만 씨앗이 나란히 5~6개 누워 있다.
      나는 이, 겨울을 날 김장 준비를 하고,
      등나무는 이 겨울을 지나, 내년 봄, 종자를 퍼트릴 제례 같은 행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콩깍지가 연이어 화창한 날씨에 부풀어 터지면서
      마구 튕겨져 나가는 것이다.
      바둑알만한 씨앗들을 세상 밖으로--- 타-다닥-, 거리며
      터지면서 마른 잔가지도 꺾여서 저절로 떨어진다.
      자연의 이치라니---
      높은 곳에 있어 가지치기도 불편한데?
      비록 자잘한 가지지만 마당이 어지럽도록 쏟아져 내린다 작년에도 느끼지 못한 일인데---
      하기사 여기저기 쓸데 없이 돋아나는 싹을 뽑아내기 힘들었었는데----
      이, 축제는 한 열흘 가량 더 지속 되었다.
      뜰은 마구 어질러지고---
      살겠다고 저도 살아보겠다고 체면 불구하고 멀리 멀리로 새총 놀이하듯 꿈을 쏘아대며
      미래를 기약하고 있다.
      진정 살아 있음에-------


      글/이요조






      오늘 2003년은 12월 20일/까치 돌아와 울음소리 다시 요란한 날...팥죽을 쑤며,








.....

*세계 민속박물관의 새총(홍천/비발디파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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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도현 - 등나무 그늘 아래에서


      길이 없다면

      내 몸을 비틀어
      너에게로 가리

      세상의 모든 길은
      뿌리부터 헝클어져 있는 것,
      네 마음의 처마끝에 닿을 때까지
      아아, 그리하여 너를 꽃피울 때까지
      내 삶이 꼬이고 또 꼬여
      오장육부가 뒤틀려도
      나는 나는 친친 감으리
      너에게로 가는

      길이 없다면




      * '등나무'



      꼬투리를 보니 확실히 '콩과'식물이 맞지요?
      등나무는 '콩과'의 낙엽 덩굴식물입니다.


      *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때의 갈(葛)은 칡이고, 등(藤)은 등나무다.
      둘이 전혀 다르게 생겼으나 살아가는 방식은 비슷하다.
      주위의 다른 나무들과 피나는 경쟁을 해 삶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손쉽게 다른 나무의 등걸을 감거나 타고 올라가 어렵게 확보해 놓은
      광합성의 공간을 점령해 버리는 것이다.

      두 무법자가 선의의 경쟁에 길들여져 있는 숲의 질서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릴 때
      나무나라의 '갈등'도 골이 깊어진다.
      사람이나 나무나 갈등의 근원은 지나친 욕심에서 비롯된다.
      한 발짝만 비켜서서 보면 부질없는 욕심이 허망할 따름이다.






      보기와 달리 등나무 꼬투리는 무지무지 단단하고 씨앗도 돌처럼 딱딱하답니다.



      *
      옛날 '진나'란 스님이
      으스름 저녁에 등나무 토막을 뱀으로 보고 놀랐다는 이야기를 비유로 들면서
      사물과 그에 대한 의식을 부정하고 있다.
      사물이란 참된 의미에서는 무(無)이고 세속적인 의미에서만 유(有)란 것이다.

      또 조선의 선비들은 등나무가 똑바로 독립하여 서지 못하고
      다른 물체에 신세를 지는 특성에 대하여 아주 못마땅해 했다고 한다.
      오늘날에야 아름다운 꽃으로 봄을 풍요롭게 하고
      한여름 햇살을 비켜서게 해주는 고마운 나무일 따름이다.

      보드라운 털로 덮인 열매는 콩꼬투리 모양이며
      알맞게 자란 등나무 줄기는 지팡이 재료로 적합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등나무로 만든 가구'가 유행하였다.
      그러나 등가구에는 등나무가 없다.
      쌍떡잎식물인 등나무와는 사돈의 팔촌도 넘는 '래탠(Rattan)'이란 가짜 등나무다.
      래탠은 열대지방에 자라는 외떡잎식물로서 대나무와 가까운 집안이며
      속이 꽉 차있고 거의 덩굴처럼 수십 미터씩 길게 자란다.

      (* 참조: 궁궐의 우리 나무 - 박상진/눌와)




      만지면 벨벳(비로드. 우단羽緞)처럼 부드러운 등나무 꼬투리의 겉모습




      등나무 꽃과 벤치


      이 글은 꽃방(정가네님/사진/글)을 옮겨와서 보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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