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배 

 

 

세배란?


나는 어려서는 세배를 잘 몰랐었다.

친정 아버지께서는 지차(둘째아들)이셨고, 설 명절이면 으레 큰댁으로 갔었는데 친정아버지 동기간이 딱 4형제셨는데 큰아버지 내가 아마 중학생이 되기도 전에 舌癌으로 돌아가시고 큰어머님은 방앗간 차원이 아닌 정미소 사업으로 치마만 두르셨지 여장부이셨고 시골에는 작은 집, 부산에도 삼춘집이 있었지만 오로지 유일하게 무시로 자주 드나들기는 우리 집 형제들 이였다.


큰집에는 정미소 일보러 오신 분들의 끼니 치다꺼리로 가족보다 손님이 늘 북적대었다.

명절이라 그 정경이 별 다를 리 없었다.

큰집 올케언니의 고생이야 말하면 뭣할까? 살림을 도와주는 분들이 있어도 늘 식당 같은 북적대는 분위기였으니~~


그런 와중이어선지, 세배를 받으시고 세배를 드리고 할 느긋한 겨를도 없었던 것 같다.

어른들은 제사를 지내고 우리들은 사촌들과 함께 뛰어 놀다가 식당 방에 들락거리며 맛있는 것만 찾아 뒤져먹기에 급급했던 명절이었다.


머리가 좀 크고 부모님이 장남이나 아니면 차남이나 데리고 큰댁으로 떠나시면 나머지 우리들은 각자 용돈을 얼마씩 추렴해서 만화책을 빌려 오는 일에 신이 났었다.


만화책 본다고 야단 할 부모님도 안 계시지를,  이런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일년에 몇 번 안 되는 멋진 기회였다.

왜 그 때는 만화책을 그렇게나 보지 말라고 다그치셨는지, 친구에게 빌려 온 만화책을 어두운 벽장 안에서 읽는다든지 하다가... 그만 난 어려서부터 안경을 끼게 되었고,


동생들이 가서 안고 오지도 못할 분량의 만화책을 빌려오고 또 하나 빠지지 않는 중요한 일은 그 당시 그렇게나 맛있는 라면을 사 오는 일이었다.

가실 때 맛있는 음식을 마련해 두고 가셨겠지만, 라면~ 그 이상 맛있는 것이 어디 있으랴~

튀겨진 꼬소한 면발이 자르르한 노오란 기름 국물에 동동~~ 아, 그 잊지 못할 맛이라니!!

어머니가 마련해 두신 음식은 쳐다보지도 않고 하루 온종일을 라면으로만 주구장창....

지금으로 말하면  한시적인 만화폐인이다. 만화책을 읽느라 정신없다가도 배가 고프면 라면을 끓여먹고,

................각설하고 요는 내게 왜? 어려서는 세배습관이 안 되어 있는지? 나름대로 그 귀추를 분석해 봤다.

....................................


 

꽃피는 봄에 시집을 왔더니 이듬해 첫 설날에 만삭의 몸으로 설음식을 마련하는 중이었다.

섣달그믐 밤늦게(자정이 넘은 시각) 나무새를 거의 다 장만할 무렵 진통이 왔다.


미리 준비해둔 산모가방을 꺼내고 세수를 하고 했지만 마음은 불안하고 황망하기 그지없는 중, 부모님 방에서도 들락날락 부산하신 게 아닌가!

알고 보니 두 분이 아침 세수를 하신 것이다. 새벽 세 시경에~


진통의 간격이 정해졌다.

진통이 왔다가 아니면 멎다가....하기를, 우리 둘은 어쩔 줄 몰라 심히 초조하고 불안했다.


그 것을 아신 어머님, 아버님께 여쭙기를, 결론은 아파도 세배는 하고가라는 말씀이셨다.

배가 안 아플 때를 봐서 세배를 드리겠노라 말씀드렸다가 마루에 나가니 방문을 활짝 열어 놓으시고 좌정하고 계셨다.

아버님께 한 번, 어머님께 한 번, 두 번의 절을 드리고 오만상을 찌푸린 채 (아마 그랬을 것이다)방안으로 들어가 앉으니

본래 세배란 자시 이후에 하는데 빠르면 좋다 신다. 자시라면 밤 11시에서 새벽 한 시까지만 빼고 그러니 지금 이 시각이 세배하기 좋은 시간이 라시네  맙소사!


그래서 새벽에 세배를 받으시려고 몸단장을 하셨고. 병원을 나서려던 며늘에게 얼른 세배는 하고 가라 시는 엄명이 계셨구나,


세배가 끝나고 덕담받고 세배의 정의에 대해서 말씀을 듣던 중에 다시 진통이 와서 우리 방으로 와서 떼구르르 구르다가 조금 나아지자 통금 해제시간에 맞춰 4시경에 집을 나섰다. 다행히 설날이라 그랬는지...아파트 마당에서 택시는 쉽게 탈 수 있었다.

그 당시 신혼집은 안락동 주공 아파트였고 내가 다니던 산부인과는 부산 동래에 있는 동래산부인과였는데 여자 선생님이셨다.


병원에 가니 설날이라 간호사들 다 집으로 보내고 한 간호사만 있었는데, 의사 선생님도 역시 여느 집 며느리인지라 제사음식 마련하는 중이시란다.

우리 부부에겐 날이 밝아 아침이 오도록 그 무서운 진통을 거의 둘이서 나누며 지새웠다.

친정어머니는 그 때 큰어머니 돌아가시고 제사를 친정집으로 모셔와 지냈었는데..소식을 받았으나 오실 수도 없는 남감한 상황이셨다.

아무튼 제사를 다 지내신 친정어머님이 허겁지겁 달려 오셨을 때 그 때는 아이를 막 낳은 후였다.


그 후로도 설날아침, 캄캄한 새벽 일찍 우리 집 세배시간은 정해졌다. 며느리인 나는 따로 일찍 일어날 것도 없다. 늦게까지 음식 만들고 마무리하고는 곤히 자는 남편만 깨우면 된다.


남편과 내가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면 마치 일년 하루를 세배만 기다리신 듯이 낌새를 아시는 시어른들은  전갈 없이도 우리보다 먼저 받으실 채비를 끝내고 앉아계셨다.


TV를 보면 부모님께 한 자리 한 방안 에서 세배를 드리는 데 우리는 반드시 방문 바깥에서 절을 올려야 한다.

아버님 말씀이신즉, 부모님께 드리는 절은 꼭 방밖에서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문헌을 찾아보니 보료나 방석위에 부모님이 앉으시면 방안에서도 세배를 올릴 수 있다 하였는데

아주 옛날에는 보료나 방석이 귀해서 그렇다 치고라도 요즘에도 굳이 방 밖에서 드리는 세배가 옳은 세배라 믿고 계셨다.


세배하는 법(글과 이미지)을 펌글로 올려놓고 자세히 읽어보니 먼저 부부가 맞세배를 하라고 되어있었다.

요즘같이 부부의 존경이 사라진 세태에 참 좋은 풍습이구나 생각하고 어제 아침 세배 준비를 하며 이참에 우리부부도 그러자고 채근을 했더니 쑥스러운지, 그 양반은 날더러 자기에게만 하란다. 세뱃돈 주겠다고, 그렇게 장난 끼로 받아 넘기는 바람에 나 혼자 상상하던 바람직한 작은 뜻은 이루지 못했다.


올해로 구순을 넘으신 어머님께 세배를 드렸다.

방으로 들어가 다가앉자 덕담을 주시는 말씀이


"오냐 올해는 너들도 건강축복 물질 축복 마니 받그라~"

"예 어머님도...."


덕담은 어른이 내리는 세배의 보답이다.

요즘은 세뱃돈과 함께 주어지지만 옛날엔 덕담과 다과상이 그 보답이었다 한다.


모처럼 늦잠자려는 아이들을 다 일깨워 세수를 하라 이르고 할머니께 먼저 세배~

할머니 덕담이 뭔가 귀 기울였더니

"오냐 올해는 너들도 건강축복 물질축복 마니 받그라~"

'아니? 아이들에게 건강은 통용이 되지만...뭔 물질?'

우리 어머님이 자본주의의 묘를 안다는 말씀? 아직 젊은 아이들에게도?

'차라리 지혜의 축복이나 주시잖코..... '


다음은 우리 부부 차례다.

각각 한 배씩 받고 나는 우리 세 아이들에게

"신명나는 한해가 되어라" 하고는 주방으로 급히 일어섰다.


아빠는 한참을 아이들에게 긴-덕담인지...훈계인지 나누고 있었고.


주방 일을 하다가 나는 혼자 피식 웃었다.

'맞아 덕담이란 자기가 늘 소망하던 것이 자기도 모르게 절로 새어나오는 거야~'


실은 내게도 신명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신명나다 보면 건강해지고 건강하다 보면 모든 일이 긍정적으로 쉬 풀릴 테니~


우리 어머님 구순이 넘은 연세에 바라시는 건 자나 깨나 당신의 건강기도시다.

가끔은 아뜩하신 정신이지만 돈에 한한한 며느리보다는 얼마나 총기가 맑으신지,


어르신들께 세배를 올리고 난 후,(직계부모만 아니면 방안에서 세배, 더러 사위도 자식이라고 굳이 방 바깥에서 하는 데..나쁠 건 없음)일단은 조용히 다가앉는다.


먼저 말씀(덕담)이 있으시도록 기다린 연후에 입을 뗀다.

세배하는 법에도 따로 나오겠지만 아예 연세가 높으신 분이시라면 건강하세요~가 합당한

인사말인지 몰라도 어중간한 분들에게 건강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결례가 될 수도 있다한다.


언젠가 시아버님 말씀인즉슨 세배 후에 누가 건강하신 시어르신을 보고는 흡족타 못해

"어르신 백수(99歲)하시겠습니다" 했다고 늘 두고두고 못 배웠다고 역정하신 일이 있다.

연만하신 어른들에게[만수무강]이란 적절한 단어가 있다는 걸 아마도 깜빡했었나 보다.


그만큼 어른에게 드리는 말씀은 어른의 나이를 감안해서 적절히 잘 가려 써야한다.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덕담 역시나 그 사람에게 잊지 못할 귀감이 되고 상서로운 멋진 덕담을 세배를 받기 전 마련해 두어야 하는 것도 어른으로서 잊지 않아야 할 도리가 되겠다.



글/이요조

 

 

아래는 펌글,


 민속명절인 설이다. 설이 되면 부모와 친지, 스승을 찾아 인사를 드린다.

이 때 드리는 새해의 첫 인사법이 바로 ‘세배’다.

일년에 한 번 하는 ‘세배’를 제대로 알고 하면 어떨까? 지난 13일 홍보대행사 ‘프레인’에 근무하는
유재준(31)씨와 김정애(29)씨가 서울 성균관 유림회관 혼인의 집에서 성균관 전례연구위원회 황의욱 부위원장에게서 세배하는 법을 배웠다.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세배를 했는지 남아 있는 기록은 없다. 다만, 약 400년 전 사계 김장생의 ‘사계전서’에 제시된 배례법을 전통으로
따르고 있다.

세배는 아침 차례를 지낸 후 하는 게 정석이다.

절을 받는 어른이 앉는 자리를 북쪽으로 보고 동서남북 네 방위를 정한다. 실제 북쪽이 어디냐는 중요치 않다.

아버지와 어머니 등 남녀 어른이 자리를 같이할 때는 동쪽에 남자 어른, 서쪽에 여자 어른이 앉는다.

절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남자가 동쪽, 여자가 서쪽에 선다.

이는 음양의 이치를 따른 것으로, 동쪽은 양을, 서쪽은 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황 부위원장은 “먼저 내외가 절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준다.

가족이 모여 세배할 경우 첫째아들 부부부터 어른 앞에서 부부간 절을 하고 어른에게 세배를 드린다.

부모에게 인사를 다 한 후에는 형제자매 간에 평절로 인사하고, 부모 옆에 앉아 아들딸의 세배를 받는다.

◇유재준(가운데)씨와 김정애(오른쪽)씨가 황의욱 성균관 전례연구위원에게 세배법을 배우고 있다.
 

    평소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어른이라도 제대로 격식을 갖춰 세배할 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유씨가 선 자세에서 무릎을 꿇으며 손을 내밀어 절하려다 황 부위원장의 지적을 받았다.

    절은 시작부터 끝까지 정해진 동작이 있다.

    먼저 양 손을 포개 양 팔꿈치와 손이 배 부근에서 수평이 되게 한다.

    이때 남자는 왼손이 오른손 위로 올라간다.

    좋은 일에는 왼손이 위로 올라가고, 상과 같은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는 오른손이 위로 올라간다.

    이 상태에서 허리를 굽혀 손으로 땅을 짚고 왼발을 먼저 구부린 후, 오른발을 구부려 오른발바닥이 왼발바닥 위에

    올라가도록 앉는다.

    엉덩이를 발에 붙이고 손을 구부려 양 팔꿈치가 땅에 닿은 상태에서 얼굴이 손에 닿을 듯 말 듯 할 정도로 머리를

    숙여 절한다.

    절을 하고 일어날 때는 오른발을 세우고 손을 바닥에서 뗀 후, 손으로 오른 무릎을 짚으면서 한 번에 일어선다.

    ◇남 세배법 = 왼쪽부터

    ①양손을 포개 양 팔꿈치와 손이 배 부근에서 수평이 되게 한다.

    ②허리를 굽혀 손으로 땅을 짚고 왼발을 먼저 구부린다.

    ③오른발을 구부려 왼발 바닥위에 오른발을 포개 앉는다.

    ④얼굴이 손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굽혀 절한다.

    “TV를 보면 양손을 옆으로 내리면서 절을 하던데 알고 보니 큰절을 하는 게 맞네요.”

    전통무용을 배워 우리 문화에 비교적 익숙하다는 김정애씨도 이날에서야 세배하는 법을 제대로 알았다.

    여자는 남자와 반대로 오른손등이 왼손등 위로 해 어깨 높이까지 오게 든다.

    이때 손과 팔꿈치의 높이를 나란히 하고 고개를 숙여 바닥을 바라본다.

    이 상태에서 먼저 왼발을 구부린 뒤 오른발을 구부려 앉은 후 허리를 반쯤 굽혀 절한다.

    절을 마친 후에는 오른발을 올리고 그다음 왼발을 올려 일어난다.

    남자의 경우 평절은 큰절과 같은 요령으로 하되 절 동작을 하자마자 바로 일어나고,

    여자는 왼발만 구부린 무릎앉기 상태에서 팔을 양쪽으로 펴는 점이 다르다.

    ◇여 세배법 = 왼쪽부터

    ①손과 팔꿈치가 수평이 되도록 어깨 높이로 들고 고개를 숙인다.

    ②포갠 양 손 사이로 시선은 바닥을 향한다.

    ③왼발과 오른발을 차례로 구부려 앉는다.

    ④허리를 반쯤 구부려 절한다.

    세배를 마친 후 덕담을 들을 때는 남자는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손을 모아 허벅지 중앙에,

    여자는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두 손을 모아 오른쪽 허벅지 위에 얹는다.

    유재준씨는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제대로 절하는 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며

    이번 설에는 격식을 갖춰 부모님께 세배를 드려야겠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한복을 입고 예를 갖춘다고 생각하니까 마음까지 경건해지는 기분”이라는 김정애씨는

    “빨리 결혼해서 남편과 함께 부모님께 인사하러 가야겠다”며 웃음을 지었다.

 

    ◇⑤덕담을 들을 때는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남자는 허벅지 중앙에, 여자는 오른쪽 허벅지 위에 손을 얹는다.

    글 엄형준, 사진 황정아 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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