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웃을 때면 언제나 몸을 앞뒤로 흔들며 깔깔대고 웃었다.
즐거워 죽겠다는 시늉을 하면서...
그녀는 내가 제일 처음 사랑한 사람이다.
나는 그녀와 같이 점심을 먹고 도서관 가고 산책하고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도 같았다,
비오는 날이면 서로 마음이 통하여 큼직한 우산아래 데이트를 즐기곤 했다.
언제나 그녀의 감성은 남달랐으며..
나는 그런 그녀를 이해하면서도 약간의 과대 포장이 된 듯한
그녀의 감정 노출로 나는 간간이 타인의 시선을 우려 했었다.
그녀와 나는 똑 같은 고장에서 태어났고 같은 정서를 누리고 있었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도 같았다...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바라는지...
서로가 물어오지 않아도 각자 마음대로 하면 ..
바로 그 일이 늘 바라던 일이였다....
그러곤 우린 결혼하고 각자의 길을 가며 우연히 헤어져 버렸다,
내가 멀리 떨어진 경기도 땅까지 왔음에.. 더 말해 무엇할까...
벌써... 학창시절을 뒤로 한지 까마득해지고.....
객지에 살면서
아예 고향친구들 하고는 인연이 끊어지다시피 되어 버리고.....
내, 친정 부모님 돌아 가시고 나니 더욱 그러하였다.
유난히도 자주 아프던 내 아이들과.......
집안에서도 소문나신 시어른들을 모시고 살자니 아예
내 시간이란 꿈조차 꿀 겨를이 없었다.
시댁과 종교가 달랐기에...
난 친정 부모님 기일조차도 챙길 수가 없었다.
그 일을 빌미 삼아서라도...형제들 얼굴이라도
보고싶었지만......
어쩌다 시가일로 부득히...고향엘 가도
볼일만 끝나면 지체 할 겨를 없이 밤기차로 라도 올라와야 했으므로...
한 7~8년 전쯤 되었나
어느날 나는 연락을 하나 접했다 내게 전보가 하나 온 것이다.
주소지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도 다시 보내주는 회신을 이용하고 있을 때 였다.
알 수 없는 전화번호 였다 . 급히 전활 해 달라는 ... 이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친인척의 전화번호가 아니었다.
“그럼 식구 중에 누가 입원을 했을까?”
그래 아마 병원 전화 번홀꺼야.. 틀림없어.. 이 일을 어쩌지??”
“뚜~ 뚜~” 신호가 가더니 웬 낯 선 여자 목소리가 전화를 받는다
‘”아마 사돈 댁내 식구들이겠지 도대체 누가 아픈 거야?’
“여보세요” 바짝 긴장해서 말했다 그 순간 “너, 혹시 요조 아냐?”
“누~ 누구 세요?”
“나다. 요조야 ! 영숙이 나, 노 영숙, 모르겠니?~~”
“ 어머나, 세상에 니가 왠 일이니?”
“얘, 친구들에게 아무리 네 소식을 물어봐도 다들 널 모르겠다 그러고
소문만 분분하더라~~ 네가 미국 갔다고도 그러고 일본 갔다고도 그러고....
누구는 네가 죽었다고...”
“아니 내가 언제부터 국제 족으로 놀았지? 아무튼 날 어떻게 찾았니”
그녀는 살면서도 ...
시집살이가 엄청 힘들면서도 간간이 날 생각했다고 그랬다.....
난 그냥 거의 인연을 끊고 살았었는데.....
그녀는 내 이름이 특이한지라 주민번호 정확하게 몰라도 대충 넣고
신원조회를 했단다...
그랬더니 뜨는 주소엔 달랑 아들 하나....
세대주가 되어있어 불길했단다.
난 그걸 이용해 친구를 놀렸다
"난, 이혼했어...”
"정말?”
"정말이잖구 얘, 그 얘긴 담으로..”
그 당시 나는 아이들 학군제 문제로 떨어져 따로 기재되었었다.
우선 신원조회를 해본 그녀의 심정이 당연히 싸-아 했으리라.
뒤이어 우린 만났고 놀랍게도 그녀는 나의 잠자는 옛날 추억에다 불을 질러버렸다.
아~ 우리가 얼마나 사랑했던가?
젊음을, 詩를,낭만을, 책을 그리고 얼마나 뼈 저린 시대를 공유했던가...
함께 앓으며, 함께 울분을 토하며, 함께 눈물 흘리며....
그녀를 만나는 날,
전철 입구를 마악 빠져 나오는 그녀는 세월이 그렇게나 흘렀어도...
한 눈에 제깍 알아 볼 수 있었다.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힘주어 껴 안았다.
살아 있었다 그 때 그 감정이 고스란히.......
만나자마자 이야기는 봇물이 터진 듯 흘러 넘쳐 났다.
그녀가 결혼하고 시집살이가 힘들었다는 것까지만 알고 서로 연락이 끊겨 버렸다.
"그래 지금은 어때?” "
"응, 딴 살림 났어~~”
"야~ 잘됐구나~~”
우린 도로 젊음을 환불 받은 것처럼 신이 났다.
그녀가 힘 들게 물어왔다.
"넌 글 안 쓰니?”
"글은 무슨, 얘 연필 안 잡아 본지도 스무 해도 더 넘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밝게 얘기하는 나를 보고 안심이 되었는지
그녀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아직도 자기는 글을 쓰노라고....
나더러도 써 보지 그랬냐며.....
"야야, 글은 아무나 쓰나. 너나 많이 써, 나는 안 된다 정말 나는 아니다”
그랬는데 그녀가 가고 얼마 뒤 나는 두툼한 소포를 하나 받았다.
혹시나 내가 상처 입을까 못 가지고 온 그녀의 책이었다.
그녀는 부산에서... 수필가로 ..시인으로.... 대단한 열정으로 ...
활동하고 있었다.
그녀를 만나던 그 날은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했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게 아니었다.
가슴 저 아래 쪽에서 알싸한 냉기가 번져나고 있었다.
그 냉기는 내 몸의 살갗을 자극하고 옴 몸에 소름이 돋아나게 하고 있었다.
잠자던 욕구가 기인 동면을 깨는 아픔 이였다.
내게 다시 글을 가까이 하게 만들어 준 그녀......
그녀가 하루는 약속했던 여행을 떠나왔다.
우리 시골집에서 함께 기거하며 옛날 일을 배 부르도록 회상하고자
꾸민 계획 이였다,
나는 근처에 있는 좋은 카페를 순회하고 새로 지은 통나무 카페에선
아직 이름이 제대로 없음을 알고 그녀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 게 그녀 특유의 성격이다. 마음이 쓰이면 쓰이는 대로 행동에 옮겼다.
여느 사람은 그러려니 하거나 내심 몰라라 할 텐데
그녀는 그런 일에 즐겨 나선다.
어떨 땐 내심 그녀가 거북살스럽고....
튀어 보이는 것 같아 유난스러울 지경 이였다.
裸木 카페... 지금도 그 곳은 여전히 나목으로 남아있다.
우리 둘은 서울까지 나가선 아는 동창들과도 재회했다.
그 자리에서 까마득히 잊고 있던 옛날의 나,
미처 모르고 있던 나 자신을 친구들의 눈을 빌려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여럿 동창들의 얘기가
나는 오로지 그녀 뿐이였다 한다.
옆도 뒤도 안 보고 오로지..그녀만,
아~, 그러니까 이해가 된다 본래 내 성격 탓 이었구나,
지금도 외곬 수로 여전한게.....
그녀는 또 다르게 여럿을 사귀어선지.......
그 날 나온 친구는 다 그녀 몫 이였다.
한 달포가량을 우린 붙어 지나면서....
그간의 격리된 세월을 좁혀 보려 애 썼다.
그런데... 막연히 무언가 우리의 옛날과는 많이 어긋나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나는 드세어졌고 그나마 많이 영악해졌고...
세상에 발 맞추느라 실리적이 되어있었다.
그녀는 우리 나이에 지나치리만큼,
아니 내가 느끼기엔 호들갑스러움이 우스웠고
모든 감수성이 어린아이 살갗 마냥...유난히 여리고 보드라웠다.
내심 "쯧쯧 ? 저러니... 원,... 시집살이 힘 들었지....”
나는 그녀가 부쳐 준 수필 책을 읽고 그녀의 생활은 이미 잘 알고 있는 터 이였다.
속 마음은 그렇지않은데....
한 20여 일쯤 같이 살면서....
난 그냥 해 줄건 다 해주면서....특유의 잔 소릴 했나 보다......
그 때가 겨울 날이었다.
나무가 하얗게 눈꽃처럼 서리를 달고 있는 귀한 풍경이 펼쳐 지던 날
그녀는 불현듯 떠나갔다.
난, 가슴 아픈 그녀를 그렇게 보내버리고 말았다.
함께 기거하며 그때서야 들은 이야기로 그녀는 시댁과 사이가 벌어졌고
급기야 남편과도 좋지않다고 했다.
그녀는 친정 김해 농장으로 은둔해서는 다시 집필로 들어갔다.
전화로로 소식을 전하면서... 지내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가 증발해 버렸다.
일이 있어 부산 내려 갈 때마다 나는 그녀를 찾아보고
그녀의 친정에다 전화하고..... 그러나 전혀 오리무중 이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 나도 모르겠소 마` 내가 골치가 다 아프요”
하시곤 일방적으로 전활 끊으셨다.
그랬다. 그녀가 이렇게 된 것은 어머니 탓도 적잖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부자였다.
그녀는 독립하겠다고 손을 내밀면 언제나 일을 꾸려 주셨다
물론 선뜻 그러는 부모가 어디에 있으랴마는
아무튼 그녀, 어머니의 돈이 문제였다.
오늘은 이 일, 내일은 저 일로 사흘이 멀다 하고 다른 사업에 손을 대더니......
이젠 아예 잠적까지 해 버렸다.
내 어머니는 돈이 많진 않았지만 지금껏 살아계신다면
나는 마음이 미진 할 때마다 어머니를 찾았을 터 이고 나 역시나
그녀와 흡사했을 것이다.
들리는 풍문에는 그녀가 경남 어디 운문산지 하는 절로
들어갔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또, 글 쓰러 들어갔겠지....
또 별난 고집이 도졌나 보네 스님은 아무나 되나”
그러구러 세월이 꽤 흘렀다.
그런데 바로 엊저녁에 전화가 왔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그녀는 잔잔히 웃고만 있었다. 마음이 급한 내가 다그쳐 물었다.
“너, 절로 들어 갔다는 게 사실이야?”
“그래, 나, 스님 됐어~”
“ 어- 아니, 야,~ 너 그런 법이 어딨어?”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는 내게 그냥 이야기는 핵심을 잃고
허공을 빙~빙~ 돌고 있었다.
"여기 전화세 많이 나와”
"그럼 내가 할께, 몇 번이니?”
아, 전화가 잠잠하다.
휴대폰 배터리가 다 되었다.
그녀가 아는 유일한 전화번호였는데.....
그 번호를 내가 휴대폰에다 착신 해 둔 것인데.....
어쩌나....그나마 다 얘기도 못하고 끊겼으니.....
그녀는 나름대로 내게 이야길 다 한 것이리라,
"그럼, 글은 쓰고 있니?”
"다 버린 마당에 글은 무슨...글.....”
그녀의 말이 계속해서 환청으로 귓가에 맴돈다.
그녀의 전부였는데..........
기여이.....
봄날 언제쯤 날 잡아 그녀가 있는 절을 찾아봐야겠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로 몸을 앞뒤로 흔들며 웃을 그녀를 만나보러......
언제나 널 사랑하노라는 그 말을 전해주러............
2001년 1월 10일 아침에 요조.
산다는 게 뭔지 여태 난 그녀를 못 만나 봤다.
그림/조카, 효석 http://myhome.netsgo.com/cipher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