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나무 이야기 대추나무가 잘 되는 고을엔 효자가 많이 난답니다.
훗, 요즘 그깟 대추나무 소재로 글이 심심찮게 자주 올라오지요? 창너머로 쳐다보면 왜 자꾸만 흐믓해 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다 죽어가는 자식, 살려낸 것만도 기쁠텐데... 참한 효도까지 받는 것 같아 ... 이 마음 아무도 모르실 겁니다. 대추나무는 봄이 되어도 새싹이 더디 납니다. 봄이 되면 앞다투어 피는 꽃과 나무들이 뭐라 그러면 대추는 "이래 보여도 제상에는 내가 먼저 오를 테니 걱정 말라"고 그런 다는군요. 대추나무 꽃이 너무 자잘해서 나는 여태 대추알을 매달고 피는지를 몰랐습니다. 대추나무 꽃은 아마도 넉넉히 두어 달은 지속해서 피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여느 과실수 꽃들처럼 일시에 피었다가 져 버리는 게 아니더군요. 늦은 만큼 꾸준히 피어납니다. 그러자니 먼저 핀 꽃에서 생긴 대추는 먹음직스럽게 컸는데도..계속 연이어 대추 꽃은 핍니다. 어찌 손(孫)이 자자손손 번성치 않으리오~~ 한 가지에서도 형님, 아우처럼 사이좋게 조롱조롱 매달려 익어갑니다. 아마도 그래서 폐백 드리는 신부 치마폭에다 대추를 던져 주시나봅니다. 자손 번성하라고.... 올 해 우리 집 대추는 아마 두어 말은 넘게 따지 않을까..기대해보며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소슬하니...추석 생각도 나고, 대추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올려봅니다......이 요조
효자는 부모님 살아계실 때엔 효도를 하고 돌아가시면 제사를 모신 다. 그 제사에 아무리 가난해도 빠뜨릴수 없는 제수가 대추와 밤이다. 왜 대추와 밤인가? 대추는 꽃하나가 피면 반드시 열매를 맺고서야 떨어진다 는 점에서 집안에 후손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상징으로, 밤은 땅속에 들 어갔던 최초의 씨밤이 그 위의 나무가 아름드리가 되어도 절대로 썩지 않고 남아 있어서 언제나 '근본'이 살아있다는 상징으로…. 고려대학교 홍일식교수의 '한국인에게 무엇이 있는가'라는 책에서 배운 얘기이다.
효자 마을 옛날 평안도 어느 지방에 효자 마을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같이 부모를 정성스럽게 모시기로 소문나,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마을 사람들이 한결같이 효성을 다하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알려져 있다. 효자 마을로 불리기 이전, 이 마을에는 한심할 정도로 가난한 선비가 살고 있었다.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구걸로 살아가는 동냥아치가 아닌 이상 제사 때가 돌아오면 나물 몇 접시에 과일 몇 종은 장만할 수 있으련만, 이 선비는 그 마련도 힘들었다. 마음은 그렇지 않으나 현실이 이토록 각박하니, 제삿날이 돌아오자 선비 내외는 땅이 꺼지게 한숨만 내쉬었다. "여보, 그래도 밥 한 사발에 국 한 그릇은 제사 상에 올려 놓을 수 있겠지요?" "한집에 살면서 그렇게도 눈치가 없습니까? 아침 때가 지난 지가 언젠데 아직껏 밥상 안 들어오는 게, 제가 게으름을 피워서 그런 줄로 아시는 건 아니겠죠?" "하기야 이 추운 겨울에 땔감조차 없어 냉방에서 잔 게 벌써 며칠째니, 곡식 비슷한 게 있을 리가 없지." "영감, 그렇다고 부모님 제사를 거를 수는 없잖아요." "물론이지요. 그걸 말이라고 하오?" 선비는 고민 끝에 아쉬운 대로 한 방법을 생각해내었다. '남보기에 구차하지만 어쩔 수 없지.' 선비는 사당으로 들어가 돌아가신 분의 이름을 적은 참나무인 위패를 안고 밖으로 나왔다. 제사를 지낼 때는 반드시 이 위패를 중앙에 모셔두어야 한다. 장터로 가자 섣달 대목이라 사람들이 붐볐다. 선비는 우선 과일 가게 앞에 서서 가슴에 품고 있는 위패를 내려다보며 소곤거렸다. "아버님, 저기 대추가 있네요. 그 옆에는 배와 곶감도 있고요. 아버님, 평소에 곶감을 즐겨 잡수셨죠? 아주 먹음직하네요. 이 다음에 사는 형편이 나아지면 이런 과일들로 제사 상을 차리겠습니다." 과일 가게에서 얼마를 머물다가 이번에는 어물 가게로 갔다. 거기에 이르러서도 선비는 가슴의 위패를 내려다보며 아까처럼 소곤거렸다. "아버님, 보십시오. 저기 명태가 있고 저기엔 문어, 대구, 홍합이 있습니다. 모두 싱싱하지요? 언젠가는 이 불효 자식도 저런 싱싱한 것들로 제사 상을 차리겠습니다. 참, 나물도 드셔야죠?" 선비는 다시 나물 가게로 갔다. 나물 장수는 몰려든 손님들을 맞느라 바빠 선비 쪽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아버님, 여기 고비, 도라지, 무 나물이 있습니다. 저기엔 아버님이 좋아하시던 취 나물도 있군요. 많이 잡수십시오." 끝으로 선비는 밥집에 이르러 앞서 하던 식으로 소곤거린 다음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 밤, 잠을 자는데 선비의 아버지가 꿈에 나타났다. 선비는 제사를 소홀히 지낸 게 마음에 걸려, "아버님, 자식이 변변치 못해 그런 식으로밖에 제사를 지낼 수 없었습니다. 그걸 꾸짖으러 오셨죠?" 하고 머리를 조아리자 선비의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난 배불리 먹었다. 그러나 너희들이 주렸으니 보기가 딱하구나." "저승에까지 가셔서 이승 걱정을 끼쳐드려 면목이 없습니다." "내가 네게 물려준 게 없어 그리 된 걸 어찌 네 탓이라고 하겠느냐. 도리어 내가 미안하구나.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내일 아침 일찍 동구 밖에 있는 개울가로 가 그곳 자갈밭을 일구도록 해라. 그런데 거기서 솎아낸 자갈을 삼태기에, 그것도 반드시 사리로 만든 삼태기에 담아 집으로 가져오너라. 꼭 내가 시킨 대로 해야 한다."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그러나 꿈치고는 너무나 생생하여, 그냥 지나쳐 버리기에는 아쉬운 구석이 있었다. '아무리 꿈이라고 해도 아버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는 없지.' 이렇게 생각한 선비는 옆집에서 쟁기를 빌어 동구 밖에 있는 개울가로 갔다. 앙상하게 말라비틀어진 물풀사이에 총총이 박혀 있는 자갈을 쟁기로 거두어내는 일도 힘들지만, 과연 밭이 될까 의문스러웠다. 농사짓는 일을 잘 아는 한 농부가 개울가의 선비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딱해라. 저 선비 며칠 굶더니 머리가 이상해진 모양이군. 다 헛일인 것을, 쯧쯧." 이웃 사람들이 비웃거나 말거나 아랑곳 않고 해가 서산으로 꼴깍 넘어가도록 쟁기로자갈을 솎아낸 선비는, 피곤한 몸을 이끌로 집으로 돌아오려다 말고 '아차'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솎아낸 자갈을 집에 갖다 놓으라고 하셨지? 그것도 싸리로 만든 삼태키로.' 선비는 아내에게 싸리로 만든 삼태기를 빌어 오게 하여, 끙끙거리며 자갈을 집으로 가져왔다. 옆집 농부가 그 광경을 보고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글만 읽던 선비가 느닷없이 자갈밭을 일구지를 않나 또 아무 짝에도 소용없는 자갈을 집으로 가져오지 않나, 아무래도 제정신 이 아닌 게야." 선비의 아내는 남편이 가져온 자갈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건 왜 가져왔죠?" "아버님이 꼭 그렇게 하라시니, 말씀을 어길 수가 있어야지요." "잘 하셨어요. 기왕 집에다 둘 바에야 깨끗하게 씻어둡시다." 싸리 삼태기에 담긴 자갈을 우물가로 가져가 하나하나 씻어내던 선비의 아내는, 갑자기 눈을 커다랗게 떴다. "아니, 이건 노란 돌덩이잖아. 노란 돌? 혹 황금이 아닐까?" 선비의 아내는 허겁지겁 남편을 불렀다. "영감, 여기 좀 내다보세요." 아내의 자지러지는 소리에 선비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마지못해 마당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기에 그리 호들갑이요?" "이것 보세요. 영감이 가져온 자갈을 씻다보니 노랗게 되지 않겠어요? 혹 이것들이 모두 황금이 아닐까요?" "뭐라고요?" 이번에는 점잖은 선비가 자지러지게 놀랐다. 아내가 정성을 다해 씻어낸 자갈을 살피니 과연 누렇게 빛나고 있는 황금이었다. 이렇게 하여 부모 제사도 치르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던 선비는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되었다. 이 소문이 온 마을에 퍼지자 사람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효성이 지극하면 저승에 계신 조상께서 돌봐주는 모양이지?" "그렇다면 나도 이제부터 지성을 다해 제사를 올려야겠군." "아따 이 사람아, 돌아가신 조상 제사도 좋지만 살아계신 부모부터 깍듯하게 모시게나." "누군지 말 한번 야무지게 했다. 자 우리 모두 효자, 효녀, 효부 되어 저 댁 선비처럼 복받아 보세." 그 뒤, 선비가 사는 마을을 이웃 마을에서는 입을 모아 효자 마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효는 무엇인가? 이 글을 통해, 결국 자신을 위해서 복되다는 사실을 우리는 배우게 된 것이다. 소년소녀 삼강오륜, 배영기 편저/김동리 추천, 민서출판사(1991) pp.184~189 이와 반대되는 이야기
매일 노름만 하며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던 사내가 있었다. 하루는 아버지 제삿날이 돌아오자, 아무 것도 없어 걱정이 된 부인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이 사내,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었던지 “제삿날이 되거든 딱 머리나 빗고 목욕이나 하고 있거라” 했다. 부인이 목욕을 하고 있노라니 남편은 제상에다 냉수 한 그릇 떠다놓고 이웃집에 가서 황소 한 마리 빌려달라고 했다. 이웃은 이 사내가 매일 노름만 하는 자라 팔아먹을까 봐 빌려주지 않았다. "딱 한시간만 빌려달라”고 하도 사정을 해 빌려주었지만 혹 황소를 팔아먹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 밤에 그 집에 들르니 그 사내 축문이랍시고 읽는데,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에 현비 유인 모공 모시에 아, 요사이 아버님 소식이 여하여하 하옵신지. 유령이 들어 오시와 영물을 그대로 올리오니 아버님 구미대로 응감하옵소서. 도죽에는 산 소를 올리오니 구미대로 잡수옵고, 사각과 두미족(頭尾足 : 소머리, 꼬리, 족)은 곰탕을 하여 잡수옵고, 불고기를 잡수시려면 불고기를 해 잡수시고, 또 생선을 잡수시려면 소상강 동정호에 가옵시고, 채소를 잡수시려면 보성시장으로 가옵시고, 과일을 잡수시려면 대추는 전남 고흥으로 가옵시고, 사과를 잡수시려면 대구나 경상 하양으로 가옵시고, 감을 잡수시려면 상주 오복동으로 가옵시고, 배를 잡수시려면 삼량진이나 김해 대저면으로 가옵시고, 향불이 없으시거든 거제 봉산 백무통으로 상향이라”며 되지도 않는 말로 축을 읊는 것이었다.
유림면 지곡리 손곡마을의 대추나무단 전설 유림면 지곡리 손곡마을에 조선 선조때 효자 진효선이가 살았다. 효선이는 아버지가 병환으로 드러눕게 되자 온갖 수발을 다 드리면서 병 간호에 힘썼다. 어느 날 아버지가 날 대추를 먹었으면 하였다. 그 때는 엄동설한이라 모든 잎이 다 떨어지고 열매도 없을 때여서 날 대추를 구할 수가 없었다. 요즘 같으면 혹시 온실에서라도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4백년 전에 겨울에 날 과일을 구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할 때였으나 효성이 지극한 효선은 아버지가 먹고 싶어하는 날 대추를 구하지 못함을 슬프게 여겨 집 앞에 있는 대추나무를 안고 밤새도록 울부짖었다. 날이 새어 동쪽이 밝아 오니 대추나무에 붉은 날 대추가 수십 개 달려 있었다. 이 어찌된 일일까. 효선의 지극한 효성에 하늘이 감동하여 기적을 낳은 것이라 하겠다. 효선이는 즉시 나무에 올라가 날 대추를 따다가 아버지에게 드리니 그 대추 맛있게 드신 아버지는 병이 씻은듯이 낫게 되었다. 효선의 효성이 널리 알려져 하늘이 낳은 효자라고 칭찬이 자자하였다. 그 후 효선은 타계하고 대추나무만 무성하게 자랐다. 그 어느 해 앞 개울에 다리를 놓기 위해 무지한 사람들이 이 대추나무를 베어서 다리를 놓았다. 그랬더니 그 이듬해 여름에 대 홍수가 있었다. 대추나무도 물살에 떠 내려 갈것만 같았으나 오히려 마을 위로 거슬러 올라오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본 마을 사람들은 효선공의 효성이 다리의 유실을 막아 주었다고 생각하고 원래 대추나무가 섰던 자리에 단을 쌓고 세웠다. 높이가 10m 가량이고 둘레가 한 아름쯤 되는 고목 대추나무가 수 백년이 지나도 썩지도 않고 지금도 효성의 거룩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소금의 고마움은 소금이 떨어졌을 때 알고, 아버지의 고마움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야 그 고마움을 안다는 말이 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행하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으며, 귀로 들을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 부모님의 은혜에 무심하다가 어버이가 돌아가신 후에 뼈저리게 후회하며 안타까워하는 일이 흔하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섬기기를 다하여야 할 것이다. 공자의 제자였던 증석은 생전에 무척이나 대추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의 아들인 증자는 대추를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공손추가 맹자에게 물었다. "회나 불고기와 대추 중 어느 것이 맛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회나 불고기 쪽이겠지!" "그렇다고 해서 증자는 회나 불고기만 먹고 대추는 먹지 않았다는 것입니까?" "회나 불고기는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이지만, 대추는 특수한 사람만이 좋아한다. 마치 부모의 이름은 감히 부르지 않지만, 성은 꺼리지 않는 것과 같다. 성은 공통적인 것이고, 이름은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증자는 그의 아버지가 유별나게 좋아하신 대추라 차마 먹지 못했을 것이다." 유명한 효자로 알려진 증자는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대추를 보면 아버지 생각에 여념이 없어 평생토록 대추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에 대한 극진한 존경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다. 공자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부르시면 머뭇거리지 말고 속히 대답할 것이며, 입에 음식을 물었을 때는 곧 뱉고 대답해야 한다고 하셨다. 항상 부모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 매일 스스로에게 물어 보자.
큰인심, 작은인심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까지는 아니지만, 아무튼 까마득한 옛날 옛적 이야기다. 어느 산골에 가난한 사람들만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이 있었다. 명절 때가 아니면 하얀 쌀밥은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이 마을 사람들은, 하루 세 끼 조밥 위에 얹은 감자가 고작이었다. 그들이 얼마나 가난했는가하면 마을 사람들 중에 거울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이런 가난한 마을에 순진하고 고지식하기 이를 데 없는 한 농부가 있었다. 그는 부지런하기로 소문이 났지만, 그보다 효자로 더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데 이 마을 사람들이 신기해 하는 것은, 그 효자 농부가 제 아버지 얼굴을 그림으로 그린 듯이 빼닮았다는 점이었다. 그들 집 앞마당에는 해묵은 대추 나무가 두 그루 있었는데, 가을만 되면 그들은 불그스레하게 익은 대추를 따 집집에 골고루 나눠주는 등 인심이 후했기 때문에, 마을에서는 그들 부자를 '큰인심, 작은인심'이라고 불렀다. 그 해 가을에도 그들 부자로부터 탐스럽게 익은 대추를 한 양푼씩 얻은 산골 사람들은, 장난삼아 이런 말을 나누고 있었다. "얼마 전에 작은인심을 만났는데 병으로 몹시 고생을 했다는군. 얼굴이 절반으로 줄어서 처음에는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니까." "허허, 자네 아직도 그 집 부자를 구별하지 못하는구려. 앓은 사람은 작은 인심이 아니고 큰인심이었다네." "뭐라고? 그럼 내가 아버지뻘 되는 분한테 '자네 얼굴이 아주 못쓰게 되었네그려.'하고 하대를 한게 아닌가. 이게 죄송해서 어쩌지?" "괜찮네. 그들 부자는 하도 그런 일을 당해 별로 마음에 두지 않는다네." "부자가 닮아도 그렇게 판에 박은 듯이 같을 수가 있을까? 걸음새며 음성까지 말일세." "누가 아니래나. 큰인심 젊었을 때 모습 알려면 지금의 작은 인심 얼굴을 보면 되고, 작은인심 늙은 모습 알려면 지금의 큰인심 얼굴 보면 될 걸세." 그런 일이 있은 뒤 몇 날 뒤에, 이른바 큰인심이 숨을 거두었다. 작은 인심은 아버지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눈만 뜨면 아버지 산소로 가 넋을 잃고 앉아 있다가, 땅거미가 어둑어둑해서야 어슬렁어슬렁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예의 작은인심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아버지가 어디에 숨어 살아계시는 것만 같았다. 그런 어느 날, 작은인심은 무슨 일로 장엘 가게 되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날따라 봇짐 장수들이 떼로 몰려와 보도 듣도 못하던 물건들을 펴놓고 손님을 부르고 있었다. 별로 살 물건도 없으면서 눈요기나 할 양으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던 작은인심은, 뜻밖의 일에 놀라 숨을 헉 들이쉬며 걸음을 멈추었다. 한 봇짐 장수가 펴놓은 물건 중에 손바닥 두 개 만한 둥근 것이 있는데, 그 안에서 며칠 전에 세상을 뜨신 그의 아버지가 눈을 멀뚱멀뚱하게 뜬 채 저를 올려다보고 있지 않은가. "아버님, 여간 어인 일로 누워 계십니까?" 작은인심은 앞 뒤 살필 것 없다는 듯 거울 앞에 덜컥 엎드려 큰 절을 올렸다. 세상사에 닳고 닳은 봇짐 장수는 속으로, '보나마나 거울이 무언지 모르는 산골 촌것이구나.' 하고, 터무니없는 값에 거울을 팔았다. "내 손님에게 누누이 일러두지만, 이걸 숨겨놓고 혼자 보아야지 만일 돌려 보면 손님 아버님의 모습은 영영 사라지고 말 거요. 그 점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명심하고 말고요. 돌아가신 아버님의 모습을 다시 뵙는 것만도 댁의 말대로 하늘이 도운 일인데, 내가 어찌 주의를 소홀히 하겠소. 벽장 속에 깊숙이 감춰 놓고 혼자서만 볼 테요." 그 날부터 작은인심은 새벽같이 일어나 벽장 속으로 들어가 거울 앞에 엎드려 절을 하며 '밤새 잘 주무셨습니까?' 하고 아버지께 아침 문안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하루 일이 끝나면 자기 전에도 가족 몰래 벽장 속에 들어가 '아버님, 편안히 주무십시오.' 하고 저녁 인사를 드렸다. 그럭저럭 며칠이 지났다. 이제 작은인심은 아침 저녁으로 아버님을 만나뵙는 게 그의 가장 소중한 일과가 되었다. 작은인심은 밭에서 일을 하다가도 벽장 속의 아버지 생각이 떠오르면 혼자 피식 웃었다. '마을 사람들은 내가 아침 저녁으로 아버님과 상봉을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겠지. 그 봇짐 장수 말대로, 내 효성이 지극해서 염라대왕께서 아버님을 유리 그릇에 담아 이 세상으로 도로 돌려보낸 거야.' 순진하고 고지식한 효자는 봇짐 장수의 참기름보다 반지르한 말솜씨와 속임수에 걸려 단단히 바보 노릇을 하고 있는셈이었다. 그런데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는 동안에 작은인심의 아내는 남편의 거동이 수상쩍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아침 저녁으로 가족의 눈을 속여 벽장 속으로 기어들어가 누군가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나누다가 나오곤 했겠다. 딴에는 쥐도 새도 모르게 행동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뭐 귀머러기에다 소경이던가?' 그 날, 효자 농부의 아내는 남편이 들일을 나간 틈을 타 살며시 벽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렇다 할 것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남편이 분명히 벽장속에 누군가를 숨겨놓고 있으리라 넘겨짚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자 당황했다. '아니지, 그이는 분명히 아침 저녁으로 누군가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어. 더 깊은 데 숨겼나?' 농부 아내는 벽장에서 다락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그녀는 까무러칠 듯이 놀랐다.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그랬다. 거기에는 그녀 또래의 젊은 여자가 얼굴만 빠끔하게 내놓고 바닥에 누워 뻔뻔스럽게도 얼굴 하나 붉히지 않고 자기를 빤히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농부의 아내는, 푸르락붉으락한 얼굴로 허둥지둥 벽장을 빠져나와 시어머니한테 달려갔다. "어머니, 그이가 해도 너무 합니다. 다락에다가 새파랗게 젊은 계집을 감춰놓고 있었어요. 지금 방금 제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왔습니다." "아무려면 그런 짓을 했을려구." 효자 농부의 어머니는 곧이들리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락으로 올라갔다가 화들짝 놀라며 내려오더니 며느리보다 더 펄쩍 뛰었다. "네가 본 건 새파랗게 젊은 계집이라고 했지? 내가 본 건 늙은 계집이었으니 새파란 계집의 어미까지 데려다 놓은 모양이로구 나. 그 놈이 집안 망치려고 별 해괴한 짓을 다하는구나." 효자 농부 집의 이 거울 소동은 온 마을에 퍼졌다. 그러나 거울이라는 물건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인지라, 이 문제를 속시원히 풀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마침 풍류를 즐기는 한 선비가 우연히 그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밥집에서 점심을 사먹고 쉬다가 효자 농부 집 소동을 전해 들은 선비는 이야기의 앞뒤로 미루어 대뜸 뭐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아차리고 스스로효자 농부 집으로 갔다. 가서 보니 예상했던 대로 거울 때문에 빚어진 웃지 못할 촌극이었다. 선비는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나서 효자 농부 가족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 모두가 알아듣도록 찬찬히 설명을 한 다음, 이렇게 말 끝을 맺었다. "끝으로 한 마디 더 합시다. 자나깨나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효자의 눈에는 거울 속에서도 아버지 모습만 보였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의심하는 아내의 눈에는 새파란 계집만 보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거울 속의 주인공은 다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에게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은,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사실입니다. 다들 이 효자 농부를 닮으십시오." 그 후 효자 농부도 아들을 얻었는데, 커가면서 하는 행실이 꼭 제 아버지 그림자 같았다. 그리고 효성도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모습까지 점점 제 아버지를 빼닮더니, 나중에는 먼발치에서 보면 누가 아버지이고 누가 아들인지 얼른 구별을 못할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 효자 농부의 아들에게 또 '작은인심'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고 한다. 소년소녀 삼강오륜, 배영기 편저/김동리 추천, 민서출판사(1991), pp.167-173
뉴스레터 받아보시고 부족한 글에 답 글 보내 주시는 님들, 고맙습니다. 일일이 감사의 글 드리지 못함을 칼럼지면을 빌어 부족한 인사드립니다./이 요조 삼가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