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문캠프>를 다녀왔습니다.

예천이 용궁이란 전설을 왜 가졌는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용트림을 하고 있는 건 분명했습니다.

안동을 위시하여 김천 영천 예천이 유교의 민본사상이 깊은 고장입니다.

그런고로 매너리즘에 사로잡혀서 많은 볼거리와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토리텔링을 못하다가 이제야

제대로 알려보겠다고 다짐을 한 듯 합니다.


인문학 분야의 저명인사들을 활용한 셀럽(celeb)마케팅의 일환으로 개최하는 <인문캠프>를 시작되었습니다.


1회 셀럽은 신문사 언론인 출신 작가로 <칼의 노래 ><자전거여행>등이 제가 즐겨 읽고 독후감을 써 본 그의 글입니다.

그나마 작년? 그의 책 <공터에서>를 사다놓고 절반만 읽았습니다.

 나와 비슷한 연배지만...제 느낌에는 과거 민족사가 어렵고 진부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글 속에는 불현 듯 빛을 내는 주옥같은 글귀들을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이런 <인문캠프> 정보에 어두웠던 제 자신을 실책했습니다.



제가 환호를 지르며 달려 간 2회는 안도현시인님이랍니다.

얼마나 가고싶었으면 1박 2일 집을 비우면서....한 달을 비워도 될 만큼 남편을 위한 반찬을 첩첩히 준비해두고 나왔지요. ㅎ~



실은 김훈씨에 비해 안도현시인님 글은 그다지 접해보지 않았습니다.

이제 안도현씨에게 마구 접근해 볼 계기가 됐습니다.
<너에게 묻는다> 라는 시와 소설<연어>등의 저자 안도현님 을 초청했습니다.
예천시는 또 저희들을 객석으로 초청했습니다.


향후 예천, 고향으로 들어와 사시겠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1961년 예천에서 태어난 안도현시인은 집안의 장남으로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랐나봅니다.

(안도현님의 어머니와 닭계장 이야기를 직접 듣고...

그는 이리 원광대를 졸업하고

교직에 섰다가 본의 아니게 휴직기를 맞아 고난을 겪고 장수에서도 교편을 복직,  회복했다가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을 공부하고 지금은 우석대학교(교수)에 계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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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대구매일신문 "낙동강: 등단

2007년 제2회 윤동주문학상 문학부문

2005년 제 12회 이수 문학상

경력 민주통합당 중안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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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6일 우리가 찾은 예천은 때마침 용궁 순대축제로 예천 용궁역앞 장터는 시끌벅적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이만여 관광객이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네요!

플래카드가 내걸리고 전통시장은 손님맞이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예천시의 내노라하는 용궁순대 잔치가 떡 -벌어졌군요.

용궁이니 용왕님도 어련히 계실까마는....용궁하고 순대는 또 무슨 상관일까요?

전...그건 아직도 잘 몰라요,  ㅎ





안도현시인님 글을 먼저 공부해야했습니다.

그 명성이야 두루 알고 있었지만 부끄럽게도 정확하게 아는 게 별로 없었거든요!

집으로 달려오자...안도현님의 국경을 넘어 셰계적인 우화 Top5 안에 <연어>라는 이 동화가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 그리고 <갈매기의 꿈>등과 함께 스테디셀러로 그렇게나 유명하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습니다.

백만부나 팔렸다는군요.


안도현시인은 1990년대  '민중시인'으로

소설같은 동화, 동화같은 소설로  은은한 울림을 주며, 세상을 날카롭게 통찰하는 눈을 가지신 분

이라고 그렇게 되어 있군요!


저 블로그 역시나 그냥 <이요조` s 나비야 정산가자>에서 <이요조` s 창작실버동화 청산나비>로 바뀐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부끄러웠어요.

동화도 제대로 모르면서 실버동화를 써보겠다고 덤볐으니...

도서관에서 얼른 연어를 찾아 대출해왔지요.

연어의 가장 아름다운 생이...마지막 알을 낳고 삶을 종료하는 순간이라는...그 글이 삶과 죽음, 종족보존!  

우리네 인생과 별 다름없다는 것을 잔잔하게 깨닫게 해주는 글입니다.

그림도 좋군요, 동양화를 공부하신 한병호 선생님의 그림이 살아있습니다.



안도현시인님은 차분하지만 약간 피곤하신 듯...

(참여하러 한양서 내려오신 분들과 예천관광지를 함께 들러보는 이벤트도 계속하셨다네요)

세상을 예리하게 바라본 통찰력 있는 이야기거리를 내심 기대했건만 저으기 속내를 절제하시는 듯 했습니다.




따끈한 신간이라면서 오신 객석에 계신 운좋은 몇 몇 분들에게 돌아 간 <남방큰돌고래>는 당첨자에게 선물로 돌아갔습니다.

부러움을 받은 신간을 잠깐 빌려 흔들리는 버스에서 몇 컷 찍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다음날 곧장 달려간 도서관에서 대출하렸더니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는군요.

<연어>의 세계를 확장한 환상적인 돌고래 이야기, 연어보다는 글도 많고 좀 더 철학적 사유의 세계를 열어준다는데 얼른 읽고 싶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인문캠프>가 예천용궁역광장 앞에서 열렸는데....

제가 그 날 낮에 가 본 곳!

선몽대가 얼마나 좋은지....이런 장소에서 서로 툭 터놓고 예기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혼자만의 생각이겠지만 말입니다.

그랬다면 아마도 격의없는 전정한 이야기가 오가지 않았을가요?

저도 맘껏 질문하고,

쥐꼬리 만큼이라도 더 배워오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ㅎ~~


잠깐 선몽대의 여름경치를 좀 감상하고 가실까요? 너무 좋았어요!






 7월 6일 첫째날은 용궁역 앞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바로 대형 스피커 앞에 앉아서 아가씨의 소프라노에 귀가 따가웠고 질문자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내세우기 바빴고,

화장실에 터져 냄새는 진동했고...장소는 좁고 불편했고...

그래도 꾹 참고 다들 견뎌주고 있었습니다. 음력 유월 초나흘 초승달이 반짝이며 ...저도 귀 기우려 동참했습니다.




<인문캠프>의 즐거운 한때



하늘은 무척이나 쾌청했습니다.

용문사에도 들렀습니다.


용문사의 목어를 찍어 일러스트레이터인 지인님깨 보냈더니 영락없이 똑 같은 그림 그려둔 것을 보내왔군요!

어느 게 실물인지 모를 정도군요.



용문사 절집으로 주차장에서 옆으로 들어갔다가

계단 정중앙부로 내려오니 눈이 부리부리하지만 정겨운 사천왕도 만나고

강아지풀이 꽃보다 더 예쁜 자연과도 만나집니다.

시간만 나면 이곳 절집 아랫길이 더 좋았는데...

시간이 축박해 갈 길을 재촉했습니다.



둘째날 인문학 캠프는 초간정입니다.

못다한 이야기는 초간정에서 나누실 모양입니다.

시낭독과 여기서도 노래가 한층 분위기를 고조시킬 모양입니다.


초간정1 ">/경북문화재자료 제143호  조선시대 정자


<초간정> 앞에 선 "안도현시인"




의자없이 여기저기 쪼그리고 앉으라니 영 불편했습니다.

저같은 허리통증환자는 엄두도 못 낼 자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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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간정에 얽힌 이야기나 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7년전...초간장을 처음 만나고

홀딱 반했지요.


그해 추석날 ...갓 시집 온 며느리를 데리고 고향(창녕) 선산을 돌보고

시가 일가분들께 인사 시키고 예천 초간정에 붙어있는(민박)에서 하루를 묵어갔습니다.

문화재와 붙어있으니, 초간정에서 묵어가는 거나 진배없었습니다.


조선 중기의 학자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의 후손으로 초간정과 맞닿은 이 곳에서 묵어갔습니다.

추석이래도 늦더위로 많이 더웠는데 모기장을 치고

밤새 정자를 감돌아 흐르던 물소리,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온가족이 하룻밤을 묵어갔던 추억울 잊지 못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방청소를 하느라 방문을 열었더니

바로 초간정 마당입니다.

이런 행운이...

.

.

얼굴이나 한 번 뵙고 가려고

초간정 맞은편에 위치한 안채에 들어갔더니,...

처음엔 의아해 하다가 이내 기억해 내시고는 화들짝 반갑게 맞이해주신다.

그동안 건강이 좋지 않았다가 이제야 회복했다는...그녀!

.

어언

7년의 세월이 흘러간 것입니다.

.

예천여행은 

내겐 정말이지 용궁을 다녀온 것처럼

그렇게 신비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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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43호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전20권)을 저술한 조선 중기의 학자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가 1582년(선조 15)에 지은 정자이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린 것을 1612년(광해군 4)에 고쳐 지었지만 병자호란으로 다시 불타 버려 1642년(광해군 2)에 후손 권봉의가 다시 세웠다. 현재의 건물은 1870년(고종 7) 후손들이 새로 고쳐 지은 것이다. 정자는 용문면 원류마을 앞 굽이쳐 흐르는 계류 옆 암반 위에 막돌로 기단을 쌓고 지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면에 사각기둥을 세우고 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집이다. 내부에는 왼쪽 2칸에 온돌방을 만들어 사방으로 문을 달고, 그 외의 부분에는 대청마루를 깔고 사방에 계자난간을 둘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 정자의 현판을 잃고 근심하던 종손이 오색영롱한 무지개가 떠오른 정자 앞 늪을 파보았더니 거기서 현판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두산백과 [본문으로]

 

 

 

*장안사 잠자리*

 

가을에 떠난 1박2일 가족여행

 

그 곳에 그리 바쁠 것도 없이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영주에 내려서 이 좋은 경치를

가족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글로 썼던 예천 여행기~

 

예천은 1300여년의 오랜 전통과 문화가 어우러진 경북 북부의 소백산맥에 위치한 배산임수의 명당지역으로 물길 따라 걷는 길..........

수려한 산과 맑은 물이 감돌아 흐르는 강! 모래톱이 많아 물의 자정능력이 뛰어나 깨끗하다. 금방이라도 닿을 듯한 푸른 하늘과  정강이까지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걸어 들어가면 모래가 발을 간질일 것 같은 냇물이 자꾸만 머리에 떠오르던 예천!

 

추석 지나고 주말을 기해 고향, 창녕 선산 묘소를 다녀왔다.

시가 큰집 부근 선산에 계신 아버님께 올 봄에 결혼한 며늘아기 인사를 드리러 가는 길이다. 큰 며늘아기는 임신초기라 움직이는 게 좋지 않을 것 같아 작은아들 내외와 우리 부부 넷이 떠난 여행이다.

 

 

조상님 묘소를 둘러보고 큰댁에 가서 인사드리고는 우포늪을 둘러보고 경북 예천으로 향했다.

혼자 8월초에 여행을 다녀온 후로 예천이 너무 좋아 가족들과 함께 떠나고 싶었던 곳, 1순위가 되었기 때문이다. 고향을 등지고 올라오는 길은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민박을 예약하고 저녁을 먹고 들어가려고 예천의 명물 용궁순댓국집으로 향했다.

저녁시간인데도 빈자리는 없었다.

예천 용궁순대는 막창으로 만들고 구 국물 맛이 깊고 구수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맛집이 되었다.

 

 

숙소는 초간정에 붙어있듯 지어진 민박이다.

명승지인 초간정에서 머무는 것이나 진배없다. 해가 까무룩 저물고서야 민박집을 찾아들었다.

인가가 있는 마을이 없는 곳이라 불빛도 없는... 문화재 명승지에 자동차 라이트에 의지해서

찾아든 곳은 모기장이 쳐진 .....민박을 들고보니 영락없는 수도승의 선방같은 느낌이다.

 

  

 

하룻밤 잠을 잘 청하고 일어나 방에 붙은 문을 열고 보니 바로 초간정 마당이다.

사면이 ....명승지의 풍경이니 내가 마치 옛 선인이 된 듯...

헛기침을 하며 댓돌을 밝고 내려서고 싶다.

 

밤새 물소리가 마치 오래된 선풍기 돌아가듯 돌돌돌돌...들려왔다.

아침에 일어나 주변을 ,,,산책했다. 벌서 가을인가? 떨어진 낙엽이 수북하다.

벌써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안테나를 자꾸만 콕콕콕 쪼아대는 새 한 마리... 딱따구린가?

 

 

아침은 시골이라 대충 준비해 간 라면으로 한 끼니를 대충 때우려는데 

민박주인이 귀한 송이버섯을 권한다.

가족은 아침을 흡족히 먹고 간단한 복장으로 회룡포전망대가 있는 비룡산으로 향했다.

 

 

 

초간정은 조선 선조 때 학자인 초간 권문해(1534~1591)가 오랜 관직생활과 당쟁에서 벗어나 자연을 즐기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창건한 정자로 맑은 계곡과 푸른 소나무림 사이의 암석 위에 위치하고 있다.

초간정은 1582년(선조 15)에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전20권)을 저술한 조선 중기의 학자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가 창건하였다는데 처음에는 조그마한 초가집으로 초간정사(草澗精舍)라고 하였는데, 임진왜란의 병화로 폐허가 되어 터만 남겨졌다가   후손이 권문해를 추모하기 위하여 재건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870년(고종 7) 후손들이 새로 고쳐 지은 것이라 한다.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43호로 지정되었다.

초간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면에 사각기둥을 세우고 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집이다. 내부에는 왼쪽 2칸에 온돌방을 만들어 사방으로 문을 달고, 그 외의 부분에는 대청마루를 깔고 사방에 계자난간을 둘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 정자의 현판을 잃고 근심하던 종손이 오색영롱한 무지개가 떠오른 정자 앞 늪을 파보았더니 거기서 현판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권영기가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조선시대 사림의 은일(隱逸)생활과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바탕으로 하는 선조들의 자연관을 보여주는 명승지로 바위를 휘돌아 흐르는 계류가 시원한 운치를 자아내는 등 경관적 가치가 크다.

 

비룡산 중턱에 있는 장안사를 통과 절집 마당에서 동전붙이기를 하는 아이들을 두고 전망대로 오르는 230여 계단을 나는 천천히 오르고 있었다.

ㅎ 그런 나의 뒷모습을 남편이 찍었나 보다.

 

드디어 전망대를 올라 하트산 앞에서 하트 만들어 셀카 찍어대는 막내 아들내외를 바라보며 절로 미소가 번져났다.

 

회룡포(回龍浦) 지명 유래는 청룡과 황룡이 여기서 만나 하늘로 올라갔는데 빙글빙글 돌아 올라가는 모습을 빗대 회룡이라고 했다.

회룡포는 물돌이 마을로 영주 무섬마을 안동하회마을 중에 제 1로 뽑혔다고 한다.

무려 350도나 돌아가는 내성천 강물이 .....

뭍속의 섬, 아름다운 회룡포의 경관을 자아냈다.

고운 모래펄을 만들어낸 곳이다.

 

 

회룡포를 가로질러 이어주는 뿅뿅 다리도 건너보고 ...

이 다리는 물이 불어 찰랑일 때는 구명 사이로 물이 차올라 걸을 때마다 그 소리가 뿅뿅난다고 해서 붙여진 재미난 이름이다.

인기가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이 회룡포를 보러오는 즐거움 중에 하나가 되었다.

 

 

1,300리 낙동강 물길이 내성천과 금천을 만나 어우러지는 곳이라 해서 삼강(三江)리라 불리는 이곳은 원래 나루터가 있었다. 일제 때만 해도 삼강나루는 물자의 왕래가 비번한 곳으로 번잡하였다고 한다.

 

금세기 최후의 주막인 삼강주막에 들러 주모인 할머니가 글씨를 몰라 정지깐 황토흙벽에다  빗금을 그어 외상장부를 대신한 부엌의 모습을 신기한듯 둘러보고...

 

애들은 처음 먹어본다는 배추전과 막걸리 그리고 잔치국수를 한 그릇씩 먹고 나니 먹장구름이 몰려왔다. 황급히 상경 길을 서둘렀다,

길에는  때 이른  낙엽이 가을바람에 우수수 흩날렸다.

모처럼의 고향방문 계기를 기회로 만든  멋진 가족여행이었다.

                                                                                                                                   이 요조 

 

 


 

 

윗 글은 여성가족부에 기고한 글입니다.

마음 설레이는 조선시대의 아름다운 정자, 초간정 (예천)
http://blog.daum.net/yojo-lady/13746568

'이 글을 쓰고 두 달도 채 안되어 초간정에 와서 (엄격히 말하면 옆집) 묵어보았습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글로

또 초간정 원림이야기도 꼭 올려야겠습니다.

 


다음 여행길에는 반드시 여기에 묵어서 초간정의 물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초간정 바로 옆에 마치 한 몸인 듯 거슬림 없이 붙어있는 가옥 한 채,

 한옥체험 민박이라고 씌었다.

 아마도  초간정을 관리하는 후손이 하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마치 초간정을 스쳐가는 바람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잠들고 싶다.

권문해의 .초간정(草澗亭)의 매력에 흠뻑 빠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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