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관광휴양도시 경남 통영의 강구안 병선마당에 있는 거북선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본시 한강에 설치되었던 거북선이 제 고향을 찾아 내려와 정박하고 있다는군요.

통영에는 가로수가 주로 동백입니다.

 

 

통녕어항 강구안의 시장길도 기웃거려 보다가....

 

강구안 풍경입니다.  파도도 피해갈 만큼  오목하게 생긴 아늑한 항입니다.

 

좌측이 시장길이고,,,,정면이 유명한 충무김밥집이 즐비한 골목이 있습니다.

상호엔 서로 원조라고 되어있지만....아무데나 들어 가셔도 다 맛있습니다.

넓적하게 썰은 무와 한치를 넣어 잘 식힌 깍두기가 충무김밥의 참 맛입니다.

통영인데 왜 충무김밥이냐고요?

옛날이름인 통녕에서 충무로.....다시 옛이름 되찾기로 통영시로 복원되었기 때문입니다.

 

 

 100년전 통영항의 모습(사진출처 : 통영민박넷 tyminbak.net)

400년 전 이 일대는 “병선마당”이라 불렸다.
조선 수군의 본영인 삼도수군통제영이 이 고장 두룡포(현재의 통영시)에 있었고 통구선(통영 거북선)을 포함한 그 예하 함대가 위풍당당하게 정박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우리 수군의 정기가 어린 이곳에 일제는 개간사업이란 명목으로 많은 부분을 매립하였다.
해방후, 그 매립된 터에 부산~통영~여수를 오가는 연락선 선착장(구 여객선터미널)이 있어, 수많은 배들이 오가며 수많은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80년대 “엔젤호”(현재 사량도에 그 때 그 배가 전시되어 있다.)는 선수가 물위로 부상하여 달리는 쾌속선으로‘날으는 여객선’이라 하여 선풍적 인기를 모았다.
그리고, 뱃사람들과 부산~여수를 오가는 여객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던 ‘충무김밥’은 ‘국풍 81’에서 전국방송을 타며 일약 충무(현재의 통영)의 명물이 되었다./검색



강구안 병선마당

 

예전 여객선터미널이 있던 자리엔 ‘문화마당’이라는 조그만 광장이 생겨 시민들과 여행객들의 쉼터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도시 한 가운데에서 바람에 실린 갯내음을 맡으며, ‘물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그리 흔하진 않을 것입니다. 

 

바로 그 곳 병선마당에 정박해 있는 거북선입니다.

 

- 임진왜란시기 거북선 유형

1. 통제영 거북선

☞ 한편에 노가 10개씩 20개. 좌수영 거북선보다 크며 화력이 강함. 좌우에 각각 12개의 포혈.

2. (전라)좌수영 거북선

☞ 한편에 노가 8개씩 16개. 통제영 거북선보다 소형으로 좌우에 각각 6개의 포혈을 갖춤.

 

- 임진왜란 후 거북선

장대가 있는 거북선으로 19세기까지 건조 및 수군에서 운용.

 

 

거북선이 좀체 길어서 한 샷에 들어오질 않습니다.

 

나눠서 앞부분 뒷모습으로....

 

자, 이젠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임진왜란때 전과를 거둔 조선 수군의 돌격용 전선으로 거북 모양의 등 위에는 창칼을 꽂고 배의 앞에는 용머리를 달았으며,  배의 좌우에는 각 6개의 대포구멍을 내었습니다.

승선 인원은 130여명이었으며,  사천포 해전때  처음 실전에 투입되었습니다.

거북선은 한산대첩 학익진의 중심에서 출충한 활약으로 승전의 깃발을 더 높이 올리게 했으리라 봅니다.
 

 

거북선내부에 설치된 화포

 

 

들어가자 마자 장군님이....얼떨결에 목례를.....(...당연 해야지요. ㅎ^ㅎ^ㅎ^)

 

 

거북선의 선장방

 

거북선 수기

 

 장령방(officer room) 좌측

 

 

 장령방(officer room) 우측

 

거북선을 정박시킬때 쓰던 닻 -

 

나무로 만들어졌고 묶는 부위만 쇠붙이였음
 

 

그저 멋지기만 합니다. 전쟁에 쓰인  철갑선이 아니라....무슨 예술품을 만난 듯 하더군요.

 

 

임진왜란 이후 해전이 없자 수군에서 거북선을 건조하였으나(19세기)그 이후 거북선은 사라지고

현재는 고증에 의하여 다시 복원, 그러나 그 내부가 3층이었다, 아니다 이층이다. 복층이다는라는 말이 많다고 한다.

 

 

상상외로 내부가 꽤나 넓직합니다.

 

 

내부가  무척 깨끗하기도 합니다. 아직도 해군은 청결을 중시한다는 말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통영 강구안

 

  거북선 내부의 천자총통

 

임금님께 받았던 교지(임명장)

 

이순신 장군이 받으셨던 교지등이 전시되어 있었고, 전자총통 시연 사진등이 있는데..아마도  조선시대 말에 찍은 듯,

 

사진에 교지처럼 참으로 얼룩진 세월이었고 이순신장군님의 삶도 눈물이었고 시름이었겠지요.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한산섬 달 밝은 밤

                                                          이순신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歌)는 나의 애를 긋나니

 

 

閑山島月明夜  上戍樓

한산도월명야  상수루

撫大刀深愁時

무대도심수시

何處一聲羌笛更添愁

하처일성호가갱첨수

 

             「閑山島歌」

              한산도가

 

-일성호가(一聲胡?): 한 가닥의 날라리(태평소) 소리

 애를 긋나니 에서 현대어로는 끊나니

 

 복층(다락?)으로 된 거북선의 수병 휴게소

 

이 사진은 가져왔습니다. 제가 미처 못찍었나봅니다.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화장실이랍니다.

 

 

항구가 아늑하게 생겼지요?  美港인 이 곳이 일제강점기, 우리 수군의 정기가 어렸다니 좀 믿어지지 않지만 이곳에 일제는 개간사업이란 명목으로 많은 부분을 매립하였다니~ 안타깝고 어이없습니다. 

 

 

우리 수군의 정기가 어린 바다라니...보고 또 바라보며 갑니다.

지금도 대통영고속도로를 통하여 많은 분들이 통영을 방문하여 병선 마당의 거북선과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의 비경과 여러 먹거리를 탐미하러 관광객들은 연일 발길이 멈추질 않습니다.

 

 

 

좋은 정보로는 2007년 4월 20일부터 통영시티투어가 개설되어.....친절한 가이드가 하루 종일을 자세한 설명과 함께 즐거운 통영 여행의 안내를 책임진다고 합니다. ........................글:사진/이요조

 

 

 

 

 

천혜의 절경과 문화가 함께하는 해양관광휴양도시 


여행경비 계산하기
http://tour.gnty.net/sub7/index7.html
시티투어 http://tytourday.com/tytour_ctour_intro.php

통영찾아가기 교통편 http://tour.gnty.net/sub7/index2-2.html

 

 

 

 

 ...  

 

 

4월 중순이라지만 비는 흩뿌리고 날씨는 춥고 변덕을 부렸다.

통녕, 세병관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세병관은 통영 여황산 자락에 있다는데, 충렬사처럼 번듯한 사거리에 있는 게 아니어서 동네 골목길로 접어 들어야 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차안에서 대충 촬영을 했다.

 

 

충렬로 사거리에 있는 충렬사도 지나치고...

충렬사는 두세 번 왔었지만...그 땐 딱히 여행글을 쓸 때가 아니어선지 아니면 나이 어려 철이 없었는지.......그저 칼이 차암 크구나~ 무지 무겁겠는 걸?

역시 (이순신) 장군은 뭐가 달라도 달라~ (그런 생뚱맞은 느낌이 아직도 남아있다) 

 

 

 골목길로  접어 들어간 곳은 마치 동네 주차장을 방불케했다.

복원도를 클릭!  크게 확대해서 보세요~  국보 305호인 세병관이 통제영의 일부이군요~

복원사업이 어머어마한 규모로군요!  앞으로 복원 완료될 통제영은 통영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생생한 역사의 현장으로 다가 올 것으로 기대됩니다.

 

통제영 복원사업, 5일 유적지 발굴조사 성과 보고

 ▲ 발굴 작업이 마무리 되어가고 있는 통제영지 발굴현장.

뒤로 보이는 건물이 통제영의 일부인 세병관(국보 305호)

 

 

세병관 오르는 돌계단에서 .....  고맙게도 어느정도 웃비가 그쳤다.

 

입구 돌계단 위로 보이는 근대에 복원한 누각   망일루

 

 

예전에는 바다가 한 눈에 바라다 보이는  언덕의 높은 곳이었겠지만 지금은 통영시내가 복잡해져서

바다가 있으리라는 짐작뿐인 조선소의 호이스트만 보일 뿐...위치는 아늑한 곳에 자리잡았다.

 

 

 

춘백이 길손을 반긴다.

 

 세월의 궤적이 담긴 돌계단

 

망일루 사이로 통영시가  바라다 보인다.

지붕위에 있는 용머리는 잡상이 아니고 용의 얼굴을 한 토우다 잡상은 궁궐이나 기타 임금님과 연관있는 건물에만 오릴 수 있다. 홀수로 올린다. 물론 용머리 토우는 뺀 숫자가 잡상의 수인데, 항상 홀수가 되도록 한다.

 

 

그 곳에는 봄이 한창 시작되고 있었다.

한국의 나포리라 부르는 미항, 통영! 통영시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해 있었다.

 

 

수항루 (受降樓)

조선 전기에 북쪽 변경에서 자주 노략질하던 야인(여진족)의 항복을 받고서 이것을 징표로 남기기 위하여 누각을 짓고 붙인 이름인데, 함북 종성(鐘城)의 성내에 있는 3층 누각

 

 

 

귀한 금목서 나무가 눈에 띄었다. 정성어린 손길에 무척 단아한 모습이다.

 

남쪽에서만 생육이 되며 만리향이란 다른 이름도 있으며 서향이라고도 불리운다.

노란꽃이 피는 금목서, 흰꽃이 피는 은목서...꽃이 피면 그 향내는 무척이나 대단하다.

격이 있는 선비를 비교하는 대표적인 나무이다.

 

 

 

 지과문(止戈門)

'창을 거둔다'는 뜻으로 '세병'과 함께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바란다는 의미을 담고 있다.


 

  

止와 戈를 합하면 굳셀 무(武)가 된다.
어쩌면 전쟁으로 맞서 싸우는 굳센 의지가 내포되었다는 일설도 있다고 한다.

 

 

 문화재명 : 통영세병관 (統營洗兵館)
 
지정번호 : 국보 305 호 (지정일 : 2002-10-14) 
 
소개 : 경상남도 통영시 문화동에 있는 건물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관아 (1동)
 
시대구분 : 조선시대 중기
 
소재지 : 경남 통영시 문화동 62-1

 

왜 이름을 세병관(洗兵館)이라 했을까?

중국의 시성 두보의 시 '洗兵馬行'의 마지막 두 구에 그 답이 있다. '어찌하면 장사를 얻어서 / 하늘에 있는 은하수를 끌어와 / 갑옷과 병기를 깨끗이 씻어서 / 다시는 전쟁에 쓰이지 않도록 할까?'에서 '병기를 깨끗이 씻는다'는 뜻의 한자말인 '세병'을 따다가 이름을 붙여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한다.  ------------------- 이봉수<이순신이 싸운 바다>에서

 

 

 

 

우물마루 연등천장을 설치하여 멋을 한층더내었다.

 

 

 

안쪽의 중안3칸은 한단을 올려 전태단을 만들고 상부를 소란반자로 꾸민후 3면에 분합문을 두어 위계를 달리 하였다.

 

 

'통영 세병관'은 삼도수군을 총지휘하던 통제영의 객사(客舍)입니다.

경상남도 통영시 문화동에 있는 목조 건물. 조선 선조 때 통제사 이경준(李慶濬)이 이순신 장군의 전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웠는데, 전면 9칸·측면 5칸의 단층 팔각지붕으로 되어 있다. 창호나 벽체가 없이 통간(通間)이어서 그 규모가 웅장하다. 보물 제293호.

 

 

 

 

세병관은 17세기초에 건립된 목조단층 건물로 경복궁경회루(국보 제224호), 여수진남관(국보 제304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에 속하고,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그 역사성과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세병관은 여수 진남관보다 작은 규모이지만 웅장한 풍채만은 크게 뒤질 바 없는 객사이다. 선조 37년(1604) 삼도수군통제영이 통영으로 옮겨오면서 세병관을 중심으로 통제영성과 관아를 지었으나 세병관만 유일하게 남아있었다. 그러다가 1973년 보수되었으며 이때 경내도 대대적으로 정화되었다. 세병관이라는 이름은 당나라 시인 두보의 세병마(洗兵馬)라는 시에서 따온 것이다. 세병마는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두보의 대표적인 시다. 세병관이라는 이름에 담긴 뜻뿐아니라 현판 글자 하나의 크기가 2m나 되는 것을 보면 당시 사람들이 전쟁이 끝난 것을 얼마나 기뻐하였는지 짐작이 간다. <답사여행의 길잡이>에서

 

문들은 다 올려져 있다.* 그림들이 오랜세월 퇴색하여서 흐리다.

  꽤나 방대한 객사이다.

 

 

 

문에도 드나드는 법이 있다한다. 東入西出이란다. 중간문은 영혼이 드나드는 문이라고 한다.

문설주에 작은 해태가 받치고 있었다. 해태는 물에 사는 상상의 동물로 화재를 예방해 준다고 믿었다.

 

뭘까? 어디선가 말을 매어두는 것과 비슷한데....이 위에는 계단으로 올라....사람이 머무는 객사 지금으로 치면 영빈관인데....웬 주차장? (뭘까?)

 

 

 

 

비를 머금은 동백꽃~

  

 

 

 

두륭포기사비

 

세병관 경내 수항루 뒷편 팔작지붕 비각 안에 있는 두룡포기사비는 이경준 제6대 통제사가 우리 고장(당시 두룡포)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한 치적이 새겨진 통영의 뿌리를 밝히는 사적비이다.
이 비는 조선 인조 3년(1625) 구인후 제19대 통제사가 세웠는데, 당시 창원대도호부사 박홍미가 지은 비문의 내용은 이 비를 세우게 된 경위, 이경준 통제사의 가문과 약력, 통제영을 두룡포로 옮기게 된 이유, 그리고 이경준 통제사의 혜안과 업적 등을 기록하고 있다. 이 비는 원래 통제영 남문 밖의 바닷가 큰 길가에 세워져 있었는데 광무 8년(1904) 이곳 사람 이학재, 이승주 두 사람이 세병관 앞뜰에 옮겨 세웠다.
이 과정에서 귀부가 없어진 듯하고 비신의 아랫부분은 땅에 묻혀 오랫동안 비문의 완전한 판독이 어려웠다.
1996년 4월 12일, 지금의 자리에 새로 비각을 짓고 하대를 새로 만들어 옮겨 세움으로써 1세기만에 비신의 하부가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수는 운문(雲紋) 위에서 용 두마리가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상으로 조형미가 특히 뛰어나다.

 

 

 

 

아름다운 수항루 모습!

 

 

 

'통영 세병관'

 

아는 것 만큼 보인다 했던가? ..... 이순신장군과 직접적인 연관이야 없지만...조선 선조 때 통제사 이경준(李慶濬)이 이순신 장군의 전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웠는데,  통영을 지나치며 안 가볼 수 없는 곳,  세병관이었다.

 

 

이순신의 후일담은 드라마로 불멸의 이순신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으나, 어디까지나 그 건 소설이요 드라마였다. 선조는 난을 피해 다니며 전전긍긍 왕좌를 유지했지만 이순신은  철저한  계획의 전란으로  무수한 공을 거뒀으나 선조는 그 공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한다.

학설에는 선조와 이순신은  한번도 만나보지 않았다는 역사의 아이러니도 있다한다.

아무튼 아주 치밀한 전투계략을 도모한 영웅임에는 틀림이 없다.

통영를 여러번 왔지만  한산대첩이 있었던 한산도에는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

아쉽지만  다음으로...기약해얄 밖에...

 

 

글:사진/이요조

 

 한산도 한산대첩현장/시 홈페이지에서

 

 

             

 

 

 찾아가시는 길

 

1) 대중교통

통영시외버스터미널앞 시내버스(도남동,봉평동 방면 승차) → 중앙동 백화점앞에

서 하차 → 세병관까지 도보로 5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2) 자가교통

통영시 원문검문소를 지나 시내 간선도로 진입 → 세종병원(직진) → 북신사거리

(2차선에 붙어 시내 방면 진입) → 중앙동 백화점 앞 신호등 우회전 →문화동 샛

길(사거리 우회전) → 세병관까지 200미터 정도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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