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의 '인상, 해돋이'. 캔버스에 유채, 48×63㎝, 1872년.
파리 마르모탕미술관 소장
이른 아침 안개가 낀 항구에 떠오르는 태양. 붉게 물들어 반짝이는 잔물결. 유유히 떠가는 조각배 한 척. 두 사람이 탄 조각배의 형상이 자세하지 않다. 물과 하늘은 푸른색으로 서로 녹아든다. 짧은 붓터치와 빠른 손놀림으로 한창 그리다가 그만 둔 듯하다. 르 아브르 항구의 해돋이 광경을 포착한 '인상, 해돋이'는 '인상파'라는 명칭을 낳은 그림이자 인상파의 출발점이 된 그림이다.
사실적인 묘사가 그림의 기본이던 시절, 제1회 인상파전(1874년)은 도발적이었다. 찰나적인 인상을 강조한 그림 일색인 탓에 전시에는 악평이 쏟아졌다. 특히 이 그림은 해돋이 광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특정 순간에 대한 화가의 '인상'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주제를 알 수 없는 그림', '벽지보다 못한 그림'이란 비난을 받는다. 이때 한 기자가 '사고'를 친다. '인상' 따위나 그리는 화가라고 조롱하듯이 기사를 쓴 것이다. 그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인상파'의 명칭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 같은 일화에만 귀 기울이고, 정작 그림은 자세히 보지 않는다. 사실 묘사력이 뛰어난 그림에 익숙한 눈으로 보면, 진짜 볼품없는 그림이다. 당시의 일반적인 그림 경향과 비교해 봐도 마찬가지다. 그림의 행색이 대단히 거칠고 불친절하다. 그렇지만 조형적인 면에서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아주 불량스러운 그림의 출현
전통적인 미술에서 풍경은 주제의 배경일 뿐이다. 그것도 현실적인 풍경이 아니다.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꾸민 이상화된 풍경이다. 그러다가 인상주의에서는 일상적인 자연이나 도시의 풍경이 주제가 된다. 풍경이 자주독립을 한 것이다. 그것은 종교 역사 신화를 다룬 신고전주의 그림이나 그 반발로 일어난 낭만주의 이상화된 그림, 또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자 한 사실주의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이었다. 심각하지 않았다. 특별할 것이 없는 자연과 도시 풍경을 인상파 화가들은 스냅사진 찍듯이 그렸다. 고전주의 그림처럼 역사적인 교훈 따위도 없었다. 단지 화가의 눈에 비친 한 순간의 인상적인 풍경이 있을 뿐이다.
뿐만 아니다. 붓터치도 거칠다. 전통적인 그림에서는 붓자국을 발견할 수가 없다. 여자의 얼굴에 메이크업 하듯이 곱고 부드럽게 물감을 칠한다. 그림의 표면이 매끈하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는 붓질이 불량스럽기 그지없다. 칠한 대로 터치를 생생하게 남겨두었다. 왜 그랬을까?
풍경에서 받은 시시각각 변하는 순간적인 인상을 포착하기 위해서다. 소재의 형상보다 변화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경쾌한 붓질에서 화가의 감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전통적인 시각에서 보면 이 그림은 본격적인 그림을 그리기 위한 밑그림이나 스케치쯤 된다. 그럼에도 모네는 서명을 한다.
'서명'으로 꽃이 된 그림
그림의 화룡점정은 서명이다. 화가는 그림이 충분히 '완숙'된 후 비로소 이름과 제작연도를 표기한다. 서명은 조형적인 생명을 불어넣는 최후의 작업이다. 못생기면 못생긴 대로 잘 생기면 잘 생긴 대로 서명을 받는 순간, 그림은 예술계의 시민증을 획득한다. 일반인이 보기에 미완성인 듯한 '인상, 해돋이'도, 모네의 서명에 의해 어엿한 생명체가 되었다. 서명은 그림의 마침표다. 서명은 화가다. 설익은 그림에 서명을 하는 화가는 화가가 아니다.
이 그림의 왼쪽 하단을 보면, 모네의 이름과 숫자가 나란히 적혀 있다. 'Claude Monet. 72'. 여기서 '72'는 그림을 그린 해인 1872년이라는 뜻이다. 모네도 몰랐다. 이 서명으로 인해 '인상, 해돋이'가 근·현대미술로 나아가는 신호탄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로써 전통적인 미술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형태의 단단함과 입체감 등이 흔들리고, 다채로운 빛과 색채와 형태가 연출하는 무궁한 조형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현대미술은 인상주의의 젖꼭지를 문 채 무럭무럭 자랐다.
정민영 (주)아트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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