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이 시로 승격한지 30년

광양 관광의 달에 시골투어의 팸투어에 참가했습니다.

몰랐던 광양을 두루두루 구경하는 가을여행입니다.

전 광양의 휴양림이 마음에 와 닿더군요!

치유의 숲 센터에 가서 힐링하고 왔습니다.



2015년도 봄 사진입니다. 광양 백운산 자영휴양림을 찾아가는 벚꽃길~

2박3일을 묵었지요. 망덕포구로 나가 벚굴도 먹으면서 힐링을.....





백운산 자연휴양림


이름을 듣고는 혹시 내가 와봤던 곳이 아닐까?

싶은 생각에 내 블로그 검색을 했다.

웬걸 2015년도에 왔었구먼.... 반가움이 와락 밀려든다. 옛 정인을 만난 것처럼!

남편 고교 동창 친구들 부부동반 모임인데 여수에 사는 몸이 아픈 친구가 여기로 하자고 해서 선선히 몰려들었다.

그 친구는 지난해에 떠났다.

주최한 친구는 조용히 일찍 눕고 싶다며 위 채에 들었고

나머지 건강해서 시끄러운 악동들은 111호에 묵었네 그때는 물레 방아가 바로 앞에 있었는데,

그땐 4월이라 벚꽃이 만발해 있었지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현관문을 밀치고 마당에 나오면 개울물 내려가는 소리가 우렁찼지





2019년 6월에 개장



새로 지어진 <백운산 치유의 숲 센터> 거기까지 가려니 예전에 2박을 묵고 갔었던 111호를 지나고

숲길을 걸어 올라가는데... 키 큰 나무 아래 차 나무가 심어져 있다.

<오잉? 담양 대나무 숲도 아닌데? 차 나무들이?>

치유의 숲 힐링센터 안으로 들어가자 따뜻한 차가 한 잔 나온다.

예쁜 차받침에 놓인.... 황차 한 잔!

대접하는 손길이 아름답습니다.

 

차의 잎이 모두 황색으로 차 물도 옅은 황색의 화엽황탕이 특징인 차이지요.

제조법은 '모모우'라고 하는 일종의 가벼운 후 발효 제법을 취하고 있으며,

녹차와 청차의 중간적인 차로서 생산량이 적어 차를 좋아하는 전문가(마니아) 층이 좋아하는 차입니다.

아~ 나무 아래 차 나무가 숱하게 심어졌더니 어느 고운 손길이 녹차를 후 발효시켜 황차로 만들어 대접하는군요.

지친 여행자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주었다.

차를 한 잔 마시고 언덕을 오르느라 가파랐던 호흡도

마음도 가라앉히고

숲 치유사 방진 사모님의 백운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숲 치유 힐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숲으로 직접 나가서 피톤치드를 한껏 마셔보는 즐거움을 느껴 보기로 했다.








자연 숲길도 좋지만 숲을 가로지르는

편안한 산책길 데크로 난 길을 먼저 걸어봤지요.

새소리 물소리 숲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청량하게 잘 어우러지는 계절은 비록 아니지만

감사함으로 산책하는데

치유사님 웬 거울을 내미시네요.

코에다 거울을 대고 숲을 바라보라네요.

저도 거울을 받아 그렇게 해보고는...

<아! 매직이다!> 하고 소리쳤지요.

여태 날씨도 소슬하여 심드렁한 숲들이 거울 속으로 바라보니

하나하나 살아서 제게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살아있더라고요!






산책길


숲길을 걸으며 심호흡 하는 방법과

숲길로 들어가 누워서 명상도 하기

여러 가지 체험을 한 후 족욕을 하는데,

치유사님 팬 플루트로 음악을 들려주시는군요!!

너무 좋았어요. 이만하면 힐링 받아 치유하고 갑니다.

 

안데스 음악의 가장 대표적인 민요로 'El Condor Pasa(철새는 날아가고)'를 신청곡으로 해주셨는데

 전 모르는 첫 곡만 (외로운 양치기)비뚤배뚤 동영상에 담았네요!

엘 콘도르 파샤는 정말 가사 뜻 그대로 <안데스산맥의 저 독수리가 아침을 열었다네>

아니라 백운산 울창한 휴양림을 독수리가 아침을 열 것 같아요!!

백운산 휴양림 정말 좋았어요!!




팬플릇 연주

숲치유사님의 <외로운 양치기>잘라내기,화질이 좀...그래요!

음률만...들으세요!





광양시 백운산자연휴양림  
http://bwmt.gwangyang.go.kr/bmt/
 문의전화 061-797-2655




 

 

  주님, 깨어나 당신을 뵈옴으로 흡족하오리다.

                                          (시편 17)


    눈을 뜹니다.
    당신을 찾을 수 없지요
    그러나 생각합니다.
    성체안에 계신 당신을

    기쁨은 힘이되어줍니다
    다시 눈을 감고
    당신은 살아계시다고
    참으로 나는 믿습니다.

    당신은 나의 힘이십니다.
    내 안에서
    당신을 찾을 수 없을 때에도
    주님, 당신은 계십니다.
    더 가까이

    당신의 기쁨은
    언제나 제 몫이었습니다.
    당신은 십자가를 지시고
    그 고통을 사랑의 잔에 담아 주셨습니다.

    당신의 행복을 압니다.
    내가 있다는 것,
    그리고 당신의 이 바람은
    이제로부터 영원히
    당신곁에 사는것입니다.

 

내가 갔던 날은 10월25일 토요일 오전 10시경이었는데,

무슨 미사가 있는지 아래 사진에 보이는 성모상 끄트머리 좌측 계단으로 성의를 차려입으신

신부님이 계단을 내려오셨다.

마음이야 신부님을 찍고 싶었지만 삿된 카메라를 함부로 들이댈 수가 없었다.

그냥 평복을 입고 계셨더면 함께 찍자고도 해 볼 것인데... 

성당 뒷마당 자연석 돌계단 예닐곱 개를 천천히 내려오셨다.

"오늘은 무슨 말씀의 양식을 준비하셨는지...."

 

 

풍수원성당?

성당 앞에 붙은 이름, 풍수원은 그 어원이 무엇일까?

심각하게 생각했더니 성당 주차장 초입에서 마을이름이 풍수원이란 걸 알고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난 또 심각한 뜻이 있는 줄 알고 나름 고뇌했었는데...

 

주차장에 차를 두고 걸어 들어가는 초입부터 단풍들이 예사롭지 않다했는데, 성당 마당에 들어서자 그만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 그루 단풍나무인 듯, 그림인 듯 아름답게 서있는 성당!!

 

한국인 신부가 최초로 지은 성당, 고색 짙은 로마네스크 서양식 건물이란다.

화강석과 붉은 벽돌을 쌓아올린 성당은 온통 추색 짙은 낙엽들과 잘 어우러졌다.

 

풍수원성당은 한국인 신부가 지은 최초의 성당으로 한국에서 네 번째로 지어진 유서 깊은 성당으로 그 보존적
가치가 높아 1982년에 지방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고목이 된 느티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 낙엽이 잔득 든 채로 붉은 성당을 살짝 가리고 있다.

이거야 말로 가을의 환상이다. 가을 톤으로 제대로 깔 맞춤한 성당!

 

낙엽이 발목에 사그락거린다.

나는 시월의 마지막 단풍을 횡성에서 실컷 누리고 있다. 영적으로나 뭘로나 가을의 최대 럭셔리한 호사다!!

 

 

고목이 된 느티나무가 두 그루가 성당의 역사를 말해준다.

냉담자로 얼어버린 내 신앙에도 가을볕처럼 따쓰함이 스며든다.

언제나 주님의 사랑은 그러할진대  미련한 내가 모르고 있는,,,아니 외면하고 있는 것이리라!

 

성당 내부로 들어갔다.

때마침 스테인드글라스가 빛을 받아 절묘하게 아름답다.

무겁고 엄숙하기만한 성당 내부에 누가 먼저 이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했을까? 

성소를 밝고 화사하게 생명의 기를 불어넣고 희망의 건강한 메시지를 주는 듯하다. 

몇 안 가본 성당 내부지만 마치 오래전 부터 와 본 성당처럼 마음이  이끌린다.

그래서일까? 풍수원성당은 강원도 경기도 일대 많은 성당의 모태가 되었다 한다,

 

내가 카메라를 들고 있자니 부모와 함께 온 세 살배기 어린천사가 귀요미 포즈를 취해준다. (어여쁜 천사다)

나는 성당은 모르지만...말로만 듣던 고해성사 실에 무릎을 꿇었다.

얼마나 죄를 많이 지었나!  이 천진한 세 살배기 천사를 보라~~

나는 그보다 20배 이상 세상을 살아오면서 원죄 말고도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가 얼마나 크던가?

"주님 이 죄인을 용서하소서!" 



 

 

이 성당엔 의자가 없다.

방석을 깔고 앉는 마룻바닥이다. 햇살이 따스하게 스며든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다녀갔을까?

이 마룻바닥에서 죄를 회개하고 그리고 위안을 얻어가고....삶의 희망을 그리고 용기를 북돋아 나갔을....

 

그러기 앞서 이 마룻바닥에 많은 이들의 눈물자국들이 .....숱하게 마룻바닥에 떨어졌을...

그 눈물 방울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피로  거듭나는 삶이 이어졌을  진솔한 곳이다.

 


 

 

 

 

 

풍수원성당 뒤쪽으로 돌아가면 2층 건물이 보인다. 성당 뒤편에 있는 유물전시관이다.

거기엔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이라고 씌어있다.

신발을 벗고 조용히 들어가면 성당의 많은 유물들이 조곤조곤 역사를 대변해주듯 전시되어 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반잘반질 윤이나는 나무 계단을 조신하게 올라가자면~~

 

(뭔지 모르지만 호흡을 가누며 조신해진다.

 근대문화유산인 유물관은 두꺼운 커튼 암막으로 유물들을 보호하고 군데군데 습도 조절하는

애씀도 역력한데 어찌 유뮬들 앞에 나의 호흡이 생각없이 그저 뱉아지겠는가!)

 

거기에는 초기에 사용하던 성경필사본들을 비롯한 귀중한 서적들과 성수그릇, 유해, 묵주, 십자가, 성복 등이 전시되어 있다.

 

연전에 나는 모 성당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무안을 당한 적이 있다.

왜그랬을까?  성소도 아니고  그냥 유물관이고 그렇게 까지 엄중할 필요가 진정 있는 것일까?

당시 기억에 남는 특이한 것이라곤 옛날 성당과 신부의 생활사를 미니어처로 근간에 만들어 표현한 장면과

화면에 내가 찍혔다가 나비로 흩어지는 영상물 들이었는데...

 

그 곳 성당보다 더 소중하게 보관된 혼이 깃든  유물들! 형언치 못할 감동이 찌르르 밀려온다.

거리낌 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풍수원성당!!

 

사진을 찍어 널리 알리는 것도 진정한 선교도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온갖 박해를 받으며 40여명의 신자들이 8일 동안 헤매다가 자리 잡은 이 곳 횡성땅에 정착하여 신자들이 손수 뱍돌을 굽고

나무를 심고  한국인 신부가 지은 최초의 성당~

 

한국최초의 신앙공동체

"숨어서 지킨 신앙, 풍수원성당"

 

 

1801년 신유박해 이후 1802년 혹은 1803년경 경기도 용인에서
신태보(베드로)를 중심으로 하여 40여명의 신자들이
팔일동안 피난처를 찾아 헤매다가 정착한 곳이 바로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앙촌인 풍수원이다.

풍수원에서 80여년동안 신자들은 성직자 없이 신앙생활을 영위해오다가
1888년 불란서 성직자 르메르 이 신부님을 맞이하여 정식으로 교회가 설립케 되었다.

1866년(고종 3년) 교회 대박해(병인년)와 1871년(고종 8년) 신미양요때
신자들이 피난처를 찾아 헤매던 중
산간벽지로서 산림이 울창하여 관헌들의 눈을 피하기에 알맞는 곳이라
사방으로 연락하여 신자들을 모아 한 촌락을 이루어 일부 화전으로,
일부는 토기점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20년간을 지내다가
1888년 6월 20일 조선교구장 민대주교께서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 주임신부로 불란서 르메르(Le Merre)이신부가 부임하여
춘천, 화천, 양구, 홍천, 원주, 양평등 12개군을 관할하였으며
당시 신자 수는 약 2,000명이었고 초가집 20여간을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 정규하 신부님 >
1896년 2대 주임으로 정규하(아우구스띠노)신부가 부임하여
중국인 기술자 진베드로와 함께 현재의 성당
(벽돌 연와조 120평)을 1905년에 착공,
1907년에 준공하여 1909년 낙성식을 가졌다.

신자들이 벽돌을 굽고 아름드리 나무를 해오는 등
자재를 현지에서 조달했다.
풍수원 성당은 한국인 신부가 지은 한국 최초의 성당이며
강원도 최초의 성당이고 한국에서 네 번째로 지어진 성당이다.

강원도 전체와 경기도 일대의 성당은 풍수원 성당에서 분당된 것이다. 그런데 본 성당은 지난 1982년 강원도에 의해 지방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된 바 있다.
아울러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을 기해 1920년에 제1회 성체대회가 실시되어 매년 행사가 치뤄지고 있다.(6.25동란으로 3년간 본 행사가 치뤄지지 못했다.)
신앙의 요람터요 선조들의 얼이 담겨져 있는 역사의 현장인 이곳에서 30여명에 달하는 한국인 사제들이 탄생되어 풍수원은 참으로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땅이라 하겠다.

풍수원성당 홈페이지 발췌문

 

 

 

 

 

 

 

 

 


▲ click~ 하시면 그나마 큰 사진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

똑딱이를 가져간 날이라 화질은 별로입니다.


 

풍수원성당 http://www.pungsuwon.org/

 

 

 

 

 

 

 

 

 

 

*장안사 잠자리*

 

가을에 떠난 1박2일 가족여행

 

그 곳에 그리 바쁠 것도 없이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영주에 내려서 이 좋은 경치를

가족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글로 썼던 예천 여행기~

 

예천은 1300여년의 오랜 전통과 문화가 어우러진 경북 북부의 소백산맥에 위치한 배산임수의 명당지역으로 물길 따라 걷는 길..........

수려한 산과 맑은 물이 감돌아 흐르는 강! 모래톱이 많아 물의 자정능력이 뛰어나 깨끗하다. 금방이라도 닿을 듯한 푸른 하늘과  정강이까지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걸어 들어가면 모래가 발을 간질일 것 같은 냇물이 자꾸만 머리에 떠오르던 예천!

 

추석 지나고 주말을 기해 고향, 창녕 선산 묘소를 다녀왔다.

시가 큰집 부근 선산에 계신 아버님께 올 봄에 결혼한 며늘아기 인사를 드리러 가는 길이다. 큰 며늘아기는 임신초기라 움직이는 게 좋지 않을 것 같아 작은아들 내외와 우리 부부 넷이 떠난 여행이다.

 

 

조상님 묘소를 둘러보고 큰댁에 가서 인사드리고는 우포늪을 둘러보고 경북 예천으로 향했다.

혼자 8월초에 여행을 다녀온 후로 예천이 너무 좋아 가족들과 함께 떠나고 싶었던 곳, 1순위가 되었기 때문이다. 고향을 등지고 올라오는 길은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민박을 예약하고 저녁을 먹고 들어가려고 예천의 명물 용궁순댓국집으로 향했다.

저녁시간인데도 빈자리는 없었다.

예천 용궁순대는 막창으로 만들고 구 국물 맛이 깊고 구수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맛집이 되었다.

 

 

숙소는 초간정에 붙어있듯 지어진 민박이다.

명승지인 초간정에서 머무는 것이나 진배없다. 해가 까무룩 저물고서야 민박집을 찾아들었다.

인가가 있는 마을이 없는 곳이라 불빛도 없는... 문화재 명승지에 자동차 라이트에 의지해서

찾아든 곳은 모기장이 쳐진 .....민박을 들고보니 영락없는 수도승의 선방같은 느낌이다.

 

  

 

하룻밤 잠을 잘 청하고 일어나 방에 붙은 문을 열고 보니 바로 초간정 마당이다.

사면이 ....명승지의 풍경이니 내가 마치 옛 선인이 된 듯...

헛기침을 하며 댓돌을 밝고 내려서고 싶다.

 

밤새 물소리가 마치 오래된 선풍기 돌아가듯 돌돌돌돌...들려왔다.

아침에 일어나 주변을 ,,,산책했다. 벌서 가을인가? 떨어진 낙엽이 수북하다.

벌써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안테나를 자꾸만 콕콕콕 쪼아대는 새 한 마리... 딱따구린가?

 

 

아침은 시골이라 대충 준비해 간 라면으로 한 끼니를 대충 때우려는데 

민박주인이 귀한 송이버섯을 권한다.

가족은 아침을 흡족히 먹고 간단한 복장으로 회룡포전망대가 있는 비룡산으로 향했다.

 

 

 

초간정은 조선 선조 때 학자인 초간 권문해(1534~1591)가 오랜 관직생활과 당쟁에서 벗어나 자연을 즐기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창건한 정자로 맑은 계곡과 푸른 소나무림 사이의 암석 위에 위치하고 있다.

초간정은 1582년(선조 15)에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전20권)을 저술한 조선 중기의 학자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가 창건하였다는데 처음에는 조그마한 초가집으로 초간정사(草澗精舍)라고 하였는데, 임진왜란의 병화로 폐허가 되어 터만 남겨졌다가   후손이 권문해를 추모하기 위하여 재건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870년(고종 7) 후손들이 새로 고쳐 지은 것이라 한다.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43호로 지정되었다.

초간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면에 사각기둥을 세우고 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집이다. 내부에는 왼쪽 2칸에 온돌방을 만들어 사방으로 문을 달고, 그 외의 부분에는 대청마루를 깔고 사방에 계자난간을 둘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 정자의 현판을 잃고 근심하던 종손이 오색영롱한 무지개가 떠오른 정자 앞 늪을 파보았더니 거기서 현판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권영기가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조선시대 사림의 은일(隱逸)생활과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바탕으로 하는 선조들의 자연관을 보여주는 명승지로 바위를 휘돌아 흐르는 계류가 시원한 운치를 자아내는 등 경관적 가치가 크다.

 

비룡산 중턱에 있는 장안사를 통과 절집 마당에서 동전붙이기를 하는 아이들을 두고 전망대로 오르는 230여 계단을 나는 천천히 오르고 있었다.

ㅎ 그런 나의 뒷모습을 남편이 찍었나 보다.

 

드디어 전망대를 올라 하트산 앞에서 하트 만들어 셀카 찍어대는 막내 아들내외를 바라보며 절로 미소가 번져났다.

 

회룡포(回龍浦) 지명 유래는 청룡과 황룡이 여기서 만나 하늘로 올라갔는데 빙글빙글 돌아 올라가는 모습을 빗대 회룡이라고 했다.

회룡포는 물돌이 마을로 영주 무섬마을 안동하회마을 중에 제 1로 뽑혔다고 한다.

무려 350도나 돌아가는 내성천 강물이 .....

뭍속의 섬, 아름다운 회룡포의 경관을 자아냈다.

고운 모래펄을 만들어낸 곳이다.

 

 

회룡포를 가로질러 이어주는 뿅뿅 다리도 건너보고 ...

이 다리는 물이 불어 찰랑일 때는 구명 사이로 물이 차올라 걸을 때마다 그 소리가 뿅뿅난다고 해서 붙여진 재미난 이름이다.

인기가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이 회룡포를 보러오는 즐거움 중에 하나가 되었다.

 

 

1,300리 낙동강 물길이 내성천과 금천을 만나 어우러지는 곳이라 해서 삼강(三江)리라 불리는 이곳은 원래 나루터가 있었다. 일제 때만 해도 삼강나루는 물자의 왕래가 비번한 곳으로 번잡하였다고 한다.

 

금세기 최후의 주막인 삼강주막에 들러 주모인 할머니가 글씨를 몰라 정지깐 황토흙벽에다  빗금을 그어 외상장부를 대신한 부엌의 모습을 신기한듯 둘러보고...

 

애들은 처음 먹어본다는 배추전과 막걸리 그리고 잔치국수를 한 그릇씩 먹고 나니 먹장구름이 몰려왔다. 황급히 상경 길을 서둘렀다,

길에는  때 이른  낙엽이 가을바람에 우수수 흩날렸다.

모처럼의 고향방문 계기를 기회로 만든  멋진 가족여행이었다.

                                                                                                                                   이 요조 

 

 


 

 

윗 글은 여성가족부에 기고한 글입니다.

마음 설레이는 조선시대의 아름다운 정자, 초간정 (예천)
http://blog.daum.net/yojo-lady/13746568

'이 글을 쓰고 두 달도 채 안되어 초간정에 와서 (엄격히 말하면 옆집) 묵어보았습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글로

또 초간정 원림이야기도 꼭 올려야겠습니다.

 


다음 여행길에는 반드시 여기에 묵어서 초간정의 물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초간정 바로 옆에 마치 한 몸인 듯 거슬림 없이 붙어있는 가옥 한 채,

 한옥체험 민박이라고 씌었다.

 아마도  초간정을 관리하는 후손이 하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마치 초간정을 스쳐가는 바람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잠들고 싶다.

권문해의 .초간정(草澗亭)의 매력에 흠뻑 빠져볼 일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