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령 휴게소 계단에는 묵직한 돌이
매달려있다.
겨울, 눈이라도 내리면 맨 먼저 끊기는 고개
첫 눈 소식은 설악산, 태백산맥 북부의 횡단로(해발 826m) 미시령 고개서부터 온다.
설악의 관문인 '미시령' '진부령' '한계령'
설악은 그 모습을 이렇게 험준한 령을 힘겹게 넘어서야지만 그 자태를 어렵사리 보여준다.
고개마다 모습과 그 느낌이 다 다르지만 이번에는 미시령 쪽으로 넘어가서 설악을 만나보고
주문진으로 해서 영동고속도로로 둘러 올 참이었다.
언제나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미시령 고갯마루 일명 '바람골' 휴게소, 여름날에도 모질게 바람이 불던 고개,
미시령 휴게소는 주차장 광장을 지나 고갯마루 정상에 위치해 있다.
화장실이 급한 사람들 보다는 힘겹게 오르막을 오른 차들이 우선 거친 숨을 고쳐 쉬는 곳이다.
미시령 고개를 힘겹게 올라온 차들의 더운 열기 속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호드락 바람(돌풍)이 불어제치는 미시령 고개에서 행여 쓴 등산모가 날아가지나 않을까 손으로 부여잡느라, 열어젖혔던 옷자락을 여미느라, 모두는 정신이 없다.
바람 속에 머리는 흐트러진 채로 사진 한 장 겨우 찍고는 황망히 자리를 뜨는... 그런 고개,
산 아랫동네는 무르익는 가을이어도 매 번 첫 눈 소식을 먼저 알리는 미시령 고개,
산 아래에서는 말짱하던 날씨가 운무에 뒤덮이기도, 비가 내리기도 하는 변덕스런 기온 변화에
그 휴게소에 무심코 몇 번을 드나들었어도 휴게소 오르는 나무계단에 이런 돌 추가 매달린 줄은 까맣게 몰랐었다.
언제나 바람에 쫓기듯 몰려 휴게소로 난 계단으로 우르르 몰려들 가지만 그 나무계단 아래 구멍을 뚫고 와이어에 매달린 돌덩이들은 모르고 지나칠 것이다.
바람이 얼마나 드쎄면?
제주도에나 있음직한 바람을 견뎌내기 위한 추로 매달려 있다.
미시령은 자동차와 사람만 넘나드는 고개가 아닌가보다.
바람이 태백재를 동서로 넘나드는 통로, 일러 바람재라 부르고 싶다.
아름다운 능선들과 무심한 듯 뻗어가는 굴곡의 서기가 괜히 느껴지는 게 아닌가보다.
아무튼 별종 미시령 고개의 바람은 감히 유난스러워 관광객의 혼을 빼앗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렇게 아름다운 고갯마루 모습도 잠시 잠깐..
홀깃보고는 총총히 떠나는 곳이기에 미시령의 심술과 변덕은 더 한지도 모르겠다.
서쪽 사면에서는 북한강의 지류인 북천이 발원한단다. 그러니, 미시령 서쪽으로 떨어지면 구비 구비 흘러서 북한강이 되어 흐르고 흘러 서해로 다다른다니...원,
아무래도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 꽂히듯 흐른 동쪽 물은 동해로 흘러들어 노도와 같은 파도로 돌변하고,
천릿길의 절반이 넘는 먼 여정의 북한강은 들판을 지나며, 그 성정을 삭히고 또 삭혀 서해의 굼뜬 듯, 간조의 차이가 말없이 무서운 서해 바닷물이 되나보다.
그런가보다.
작은 빗방울 하나도 어디에 떨어져 흐르느냐에 따라서 그 물의 성정이 달라진다는데.... 하물며,
나는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지금 나는 과연 어느 골짜기로 향해 흐르고 있을까?
글/사진/이요조
구멍을 뚫어 와이어/wire에 매달린 돌덩이을 보자니, 나 또한 흔들림없는 묵직한 무게의 추를 달고 싶다.
미시령은 고개 중의 별종(別種)
미시령은 참 이름도 많다. 그 중에도 오래인 기록의 이름은 『신증동국 여지승람』의 미시파령이고 오늘날은 다만
미시령으로 통한다. 50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무슨 곡절이 있었는지, 또 무슨 까닭으로 미시파령이 미시령에 이르렀는지 알 길은 없지만 예나
지금이나 부르기에 크게 다름이 없으니 다만 미시령은 아직도 본명을 따르는 셈이다. 어떤 이는 농담 삼아 미시파령(彌時坡嶺)을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고개'라 하는데 그도 어차피 뜬구름 잡는 일에 다름 아니다.
도적 폭포에서 진부령 길이 시작되는 용대 마을의 '바람도리'까지는 10리 남짓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옛 글에 "동류동해(東流東海) 서류서해(西流西海)"라 하였다. 말 그대로 미시령 동쪽의 물은 동해로 가고 서쪽의 물은 서해로 간다는 뜻이다. 고갯마루에서 서쪽으로 운명을 바꾸어 도적 폭포로 떨어지는 골 물은 장차 소양강이 되고 북한강이 되어 서해로 흘러간다. 미시령 동쪽의 물이 불과 30리 어름에서 동해와 만나는 일에 견주면 물경 천리 길의 절반이 넘는 머나먼 여정이다.
백두대간의 고개로 걸려 매칼없이 녹록한 고개가 몇이나 되랴마는 미시령은 유독 깐깐하고 쟁쟁하다. 굳이 초목의 생리를 따른다면, 비록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결코 휘지는 않는 대쪽같은 성정을 품었다. 그런 품성은 늘 밖으로는 모가 나되 안으로 둥글고, 겉으로는 거칠되 그 속내가 뜻밖으로 여리다. 산천에 그런 고개 하나쯤 걸려 무릇 전범(典範)을 업수이 여기는 바 있다 해도 별다른 뒷탈은 없다. 행여 미시령에 가거들랑 여느 세상에서 쓰던 마음은 단단히 동여매고 허튼 상식의 문은 아예 닫아 거는 게 편하다. 그러나 상피와는 멀다. 미시령은 아무래도 꽤 아름다운 별종일 뿐.
김하돈 글 『함께 사는 길』(98/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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