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크족은 결혼했으되 아이를 갖지 않은 사람들이라 합니다.
아이를 갖지 않고는 일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혼생활을 성공적으로 유지 할려면 두 사람의 인품이
그야말로 수준급이어야 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부모는 자식에 있어서 버팀목 내지 특별한 혈육이지만
자식은 부모에게 있어서 언제나 온 천지나 진배없으니까요.
자식을 기르면서 비로소 사람이 된다 생각합니다.
애물단지 하나 내 인생의 전부가 되어 나를 훈련시키고
나를 생의 진창에 무릎꿇게 합니다.
나의 경우는 인생의 모든 이해가 자식을 통해서 왔습니다.

자식을 통해서 세상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자식은 세상에 대한 해석의 촉매가 되었습니다.
지난날 은근히 경멸했던 수많은 어버이들에 대해서 용서를 빌고
온갖 것에 중독이 되어 낙엽처럼 짓밟혀 사라지는 절망의 목숨들에게
한없는 애정의 눈길을 보낼 수 있게 되는 것도 저는 자식을 통해
가능했습니다.

나를 스쳐간 나의 제자들에게 한없이 사죄하고
날이면 날마다 회개의 기도를 바칠 수 있게 된 것도
책이 아니라 자식을 기르면서 가능했습니다.

책이나 음악, 예술작품들은 저를 변화시키는 단계까지는 못 가더군요.
책을 통해 희열을 느끼고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믿은 순간도 많았지만
모두가 거짓이었고 관념의 속임수에 스스로를 가두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물네시간 일을 하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연극을 보고
온갖 고상한 형이상학적인 시간들로 스스로를 교육시켜도
그건 강 건너 불구경하는 꽃놀이패 인식의 밀도라면
자식을 기르는 일은 쇠가마 솥에서 스스로를 연단하는 일에 비깁니다.
전자는 자의로 하는 학습이고 후자는 타의로 하는 학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의로 하는 학습은 중간에 멈출 수 있어도
하나님 손길에 떠다 밀린 학습은 멈출 수도 없습니다.
자식을 기르면서 하늘의 섭리를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자식을 통해 불완전한 부부는 공통의 아픔에 결속되고 서로를 위로하게 됩니다.
자식 없는 부부는 그 결속의 끈이 없기에 항상 자신을 끊임없이 변화시켜
배우자에게 권태를 느낄 틈을 주지 않도록 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고 생각 드는군요.
자식을 갖고 싶어도 불임으로 못 갖는 부부는 공통의 아픔이라도 있지만
피임으로 자식을 거부하는 부부는 그 이기심의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공짜란 정말 없거든요. 허무의 나락으로 떨어져도 그 원인도 모를 수 있지요.

저는 딩크족을 비판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들어서 딩크족이 되는게 한 편 이해가 되고,
성공하는 딩크족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가능하다면 성공적으로 산 딩크족의 전기나 자서전을 읽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눈으로 보지 않아 회의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군요
생의 길목마다 크거나 작거나 저를 변화시킨 것은 자식이기 때문이고
눈물 흘려 기도하게 한 원인제공자들이 자식이기 때문이죠.



★며칠 전 딩크족을 다룬 신문기사를 보고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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