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의'누실명'  


"문학계의 이단아들 교산 허균(許筠)"
★누실(陋室.누추한 집)명


심홀쯤되는 방에

남으로 지게 문 둘을 내니

한낮볕 밝고도 다사롭네 짐이라야 벽뿐이지만

책은 고루 갖추었네

쇠코잠방이 입은 이 몸

탁문군의 짝이라네 반 사발 차 마시고 향 하나 사르며

천지고금을 생각하노라 사람들은 좁은 방이라

누추해서 어찌 사노라지만 내가 보기에는 신선의 경지구나

마음과 몸이 편하거늘 그 뉘라서 누추하다 하리

내가 생각하는 누추함은 몸과 명성이

함께 썩는 것 원헌은 봉호에 살았고

도연명은 띠집에 살았다네

군자가 산다면 어찌 누추하리오



[현대에 맞게끔 조금 새롭게 번안한 것]


방넓이는 스므자 가웃인데
남쪽으로 두 문이 열려서
낮 해가 들어와 비치면
밝고도 따뜻해라
집이래야 겨우 바람벽이나 둘렀을 뿐이지만
책만은 4부서(四部書)를 갖춰 놓았네
남은거라고는 쇠코잠방이 하나에다
사랑하는 문군(文君)이 함께 있을 뿐
차를 반 사발 따라 놓고
향도 한 자루 피웠어라
하늘과 땅, 옛일과 요즘의 일을
벼슬에서 물러난김에 생각해 보네
남들은 누추한 방이라고
누추해 살지 못하리라 하지만
내가 보기엔
하늘위의 신선세계만 같아라
마음이 편하고 몸도 따라 편하니
누추한 곳이라고 어찌 말하리요
내가 누추하게 여기는 건
몸과 이름이 함께 썩는 것
원헌(原憲)은 쑥대로 엮은 지게문에 살았고
도연명도 울타리만 휑한 집에 살았다네
군자가 이 곳에 머물러 사니
어찌 누추하다 말 할 수 있으리요





사천에 있는 허균(호:교산)시비



☆활빈당(活貧黨)을 만들어 교묘한 꾀와 도술로써 팔도 지방 수령들이 불의로 거둬들인
재물을 백성에게 나눠 주는 내용을 그린 홍길동전(洪吉童傳)은 우리 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로 교산(蛟山) 허균(許筠)이 작품이다.☆


지족지락(知足可樂)이요 무탐즉우(務貪卽憂)니라 하는 글귀가 생각이 난다.
만족할 줄을 알면 즐거울 수 있는 것이요 욕심을 부리면 근심이 따르기 마련인 것이니라.

이 말은 『명심보감』에 있는 글귀다. 이 평범한 말을 삭이지 못해 욕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만 했던 재주꾼이 있었다. 이름하여 허균(許筠)이다.

허균(1569년∼1618년)은 화담 서경덕의 수제자였던
허엽( 선조 2년 강원도 명주군 사천면 애일당에서 부제학까지 오른 경상 감사)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허엽에게는 아들 셋, 딸 둘(육남매라는 설도 있음)이 있었는데
봉(둘째 아들)과 난설헌(막내딸). 균(막내아들)은 후처 김씨 소생이었다.

허균의 집안은 당대의 명문으로 형 성과 봉, 그리고 누나 난설헌 등
모두가 학문이나 문장에 뛰어났다. 이러한 명문가에서 태어난 허균은 누이인 난설헌과 함께
5세 때 형들의 어깨 너머로 글자를 익히고, 9세 때 시를 지을 만큼 뛰어나 주위의 칭찬을 받았다.

12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자 허균은 어머니와 난설헌,
봉과 함께 서울에 살면서 누이와 함께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손꼽혔던 이달에게 글을 배웠다.

하지만 스승 이달은 어머니가 천한 종이었으므로 벼슬길에 나가지 못한 불우한 처지에 있었다.
허균은 이 때 스승으로부터 당시 사회의 잘못된 제도 등에 대해 자세히 배웠다.
그가 사회 개혁 소설인 '홍길동전'을 저술한 것과 뒷날 벼슬길에 나아가서도
서자 출신들의 편을 많이 들어준 것은,
같은 처지에 놓인 자신과 스승의 불행을 보고 느낀 바가 커서였다.

17세 때 결혼한 허균은, 20세 때 형을 잃는 아픔을 겪는다.
슬픔을 가라 앉힐 사이도 없이 2년 후에 사랑하는 누이와 헤어져야 했던 허균은,
그 외로움을 시문과 성리학 연구로 달랬다. 하지만 고난은 잇따랐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선조 25년,
허균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부인과 어린 딸을 데리고 피난 길에 나서야 했다.
그 해 7월 부인이 함경도 단천에서 첫 아들을 낳았으나 산후 조리를 잘못해 죽고
자식도 잇달아 죽는 참사를 겪는다.

계속되는 불행을 이기지 못한 허균은 26세 되던 선조 27년 강릉으로 내려가 애일당에서 지냈다.

그의 첫 저술이라고 할 수 있는 '학산초담(鶴山樵談)'을 지은 것이 1593년 10월이었다.
허균은 그 해 다시 상경, 정시 문과에 급제한 후 29세때 문시 중과에 장원 급제하며
이듬해 황해도 도지사가 된다.

여러 벼슬을 두루 거친 허균은, 명나라 사신들과 외교 활동도 활발히 했다.
1606년 명나라의 사신 주지번을 맞이할 때, 종사관으로 나가 중국 학자들 앞에서
조금도 막히지 않고 달변을 토해 중국 명사들을 놀라게 했다.

그와 반대당이었던 신흠도 이를 보며
"허균은 분명 사람인데 그의 재주는 도저히 사람의 것이 아니다."고 감동했다고 한다.

하지만 허균은 세상을 알게 될수록 회의와 사회에 대한 환멸, 그리고 자기 갈등에 빠졌다.
풍월이나 읊고 거드름을 떠는 양반의 행태가 그의 눈에는 아니꼽게만 보였고,
그들의 근엄한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모순.거짓.권위.부패에 항거하여
비뚤어진 것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라고 결심한다.
이러한 허균의 반항아적 기질과 언행에 비판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스승이 냉대받는 쓰라린 현실,
어린시절 친구인 시인 권필 등의 인재가 가난과 운명 때문에 차별 대우를 받는 것을
참다못한 허균은 마침내 부패한 정치와 사회를 바로잡을 수 있는 '혁명'의 길에 나선다.

하지만 비밀 누설로 첫번째 혁명은 실패하고 만다.

그 뒤 전라도 부안으로 낙향, '누실(陋室.누추한 집)을 짓고 숨어 살며
민중 소설인 '홍길동전'을 쓴다. 소설 '홍길동전'은 이렇듯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았던
허균의 혁명 구상이며 원대한 이상의 나래 이기도 했다.

그 후 서울로 상경, 다시 꾀를 내어 실력자인 이이첨과 의도적으로 손잡고
한때 형조판서 등 요직을 차지하기도 한다.
인목대비를 유폐시키는 데 이이첨과 협조한 허균은,
하지만 위장 행적이 밝혀져 도리어 이중 역적의 누명을 쓰고 1618년 8월 24일 참형되는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150여 편의 시를 남긴 그의 나이 50세 때의 일이었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구하며....
★"또한 허균이 『홍길동전』을 썼다고 하는 것도 잘못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시를 잘했다"김진세 인문대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

이런 일설도 있다는 걸 밝힙니다.저도 오늘에야 알았습니다만
어디까지나.추정일 뿐 올바른 가늠은 지난 역사만이 할 일입니다.



이 요조

첨부/許筠은 부안에 낙향하여 누실명을 짓고 살 제에 기생(梨化雨 흩날릴 제....) 매창과
돈독한 우정을 맺고 서로 詩文으로 마음을 트고 지내왔음이 지금도 문헌에 전합니다.
 
 
 
 
정말 오래전 글을 가져왔습니다.
카페글에서 찾아,
제글에서는 검색이 안 되기에...
 
2005년 6월 마지막날...비오는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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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처구니없다.                             

 

.

 

 

어처구니없네~

 

 

- 어이없다-

 

'어이'는 '어처구니'의 유의어라고 합니다.

어처구니는 맷돌을 돌리는 데 쓰이는 손잡이를 일러 말한다는 TV, 우리말 방영을

얼마 전에 보았습니다.

맷돌을 손으로 돌릴 때 쓰는 흔히 나무 손잡이의 명칭이 바로 어처구니입니다 .

맷돌을 돌리려는데..손잡이가 사라졌으니...어처구니가 없다. 라는 말이지요.

정말 재미있는 우리말입니다.

 

아래 사진 맷돌 위에다 팥을 왜 올려놨냐구요?

'맷돌에다 갈려고요' 대답하면 모두들...어이없어 하시겠지요?

 

여담으로

제가...

한 20년 전에 집에 팥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달달~~ 볶았지요.

팥도 콩 科니 그런 줄로만 알고있었지요.

 

남편 사무실에다 두고 담배대신 먹게 하려고요.

근데... 더 야문 돌덩이가 된 팥,,,,

"에게게~````"

그 사실을 아신 시엄니.. 당연히 [어처구니없어 하셨지요]

혹시? 또 팥 마저? 맷돌에 갈까봐서요?

에이, 그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왜 해요? 나이가 몇 인데...

이젠..저도 누구에겐가...가르쳐주고 싶어서요. 아주 작은 살림의 지혜요~

전, 팥을 아주 아주 좋아해요. 팥죽도 그렇고, 팥시루떡도 그렇고, 팥밥도... 그런데..

팥을 삶아서 냉장고에 두니...참으로 부담스럽더라구요 주로 깜빡 잊는 바람에,

자주 삶긴 뭐하고...삶아두면 빨리 먹어야지...하는 부담감에 쫓겨 ...이젠 꾀가 나서

그냥 물에다 씻어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불은 것을 한 줌씩,,,꺼내어 밥을 지으니

너무 편하고 좋았어요 삶아 둔 게 쉬 상할까 그런 걱정 안 해도 되구요.

요즘엔 전기밥솥이 좋아서 잡곡밥으로 취사를 하니...딱 좋았지요.

 

.

 

 

 

'조 영남'

 

그는 간혹 이 '얼척없는' 짓을 잘 한다.

그는 여기 저기...이 것 저것 아는 것도 많다.

박학다식하다.

노래를 부르는가 하더니...언제부턴지...그림을 그리더니...자기 미술을 일러 자칭

캐치미술(저급미술/미술의 엄연한 한 장르)이라 칭하더니...

미술에 관한 책도 내더니...신문이고 잡지고 여기저기...칼럼 글도 쓰며 종횡무진이다.

 

며칠 전 어디 어느? 글에서 읽었는지,

입양된 딸과 살림도우미 할머니와 함께 사는데...그 할머니에게 "얼척없다"는 말을 자주 듣

는다고 에필로그로 씌어져 있었다.

'응?  그라믄 경상도 아주메?'

'우리 엄니도 그런 사투리 자주 쓰시는데...

어이없다는 말 대신에 ' 사용하시는 듯 그, 얼척없다는.?.' 해서 찾아봤더니

얼척없다 : 오픈국어 분류 :  사투리 > 전라도 

나는 사투리나..속담 해학적인 걸쭉한 욕들에 관심이 아주 많다. 아니 사투리를 좋아한다.

해서 나도 아직 사투리를 벗어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지방사투리를 능수 능란하게 구사하는 질박한 문학작품들이 많았었다.

가난하지만...순박한 삶의 민초들을 그려내는 데는 사투리 그 이상 우리에게 잘 다가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메스미디어의 발달로 지방색은 두드러져 드라마에서 왜 꼭...가정부는 XX지방사투리를

시키느냐는 말의 분분 서부터...
관권을 부여 쥔..대통령에 따라 그 지방색이 난무한다는...설이고 보면,

..............각설하고

 

잘못 알고 있는 게 많다는 거다.
경상도와 전라도 말의 운율이 달라 그렇지 같은 사투리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왜 사전에는 딱히 전라도 그렇게 표시해두었을까?
경상도 쪽으로도 귀를 기울인 다음...명시하면 어땠을까?

인터넷을 접하면서 사투리에 관심을 갖고 면밀히 드려다 볼라치면 오보가 더 많음을
보게 되었다. 즉 전라도 사투리라고 국한된 게.....내(경상도) 어릴 적,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쓰시던 사투리가 많았다는 사실을...
지금은 다 잊었지만...그런 사투리가 한 두 개가 아니었다.

더 연구하고 더 자세한 자료가 아니면 올리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은 나만의 욕심일까?

 

 

.

홍화문 [弘化門]   이미지이미지(1개) 동영상동영상(0개) 사운드사운드
서울 종로구 와룡동에 있는 창경궁의 정문. 보물 제384호. 우진각지붕집.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중층 ...

 

 

"맷돌의 손잡이"라는 유래와 "기와지붕의 구조물"

 

 

그런데,

어처구니가 맷돌의 손잡이...

단지 그 어처구니에 국한된 말이라고만 생각하면 큰 코 다친 다네요.

하나의 어처구니가 또 있었으니,

 

어처구니는 상상의 동물로 절이나 궁궐 등
사방에 매달려 있는 원숭이 모양의 동물을 말한다는군요.


옛날 어느 임금님께서 궁궐을 새로 지으셨는데
처마 쪽 지붕 용마루부분에 동물의 모양으로
어처구니를 만들어 놓아야하는데 그 어처구니를 만들지 않고 건물을 완공시켜 사용을

하다가 그만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새 궁궐은 불에 타 버려 재만 남게 되자
사람들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런 재앙이 발생했다고 믿게 되고 그 후로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면 마치 그 어처구니가 없어서 생긴 재앙과 같이 생각하고 어처구니없다는

말을 하게 되었다 하는군요  글쎄~`  믿거나 말거나.......

 


 글:사진/이요조

 


해금 연주자 '꽃별'의 2nd 앨범./수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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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픈 아부지,
.
그리운 어무이,
 
 
 
우린...2남3녀,  모두가 다섯이다.
예전부터 우린...가칭...[독수리오형제]라 불렀는데....
요즘에사 누가 기밀을 누설했는지 리바이벌된 독수리오형제 야그가 다시금 
떠 돌기 시작한다.
우린 만나면 늘 싸운다.
형제간에 싸움질이냐고? 오우 노!!
각기 하나씩 델꼬 들어 온 [非 독수리 오형제派]랑 곧잘 싸운다.
저들이 [독수리오형제]알기를 물로보고 깔고 뭉개려든다.
서로 자기네 패꺼리가 더 잘나고 똑또카다고....
맨날 해봐야 승산없는 싸움질을....흐~~
 
.
지난 달, 다 모여서 각자 집에 있는 사진들 모두 내어 놓기로했다.
속속,,,발굴되어 햇빛을 보러 나오는 사진들~~
세상 차암 좋아졌다.
집집마다 디카로 찍어서 홈페지로 올리니..
곰팡내 나는 사진은 아직도 무궁무진한데...
이제 독수리오형제도 옛사진의 추억을 공유하자는 것이다.
미니홈페이지가...이젠..독수리 오형제들의 후손들로 설왕설래한다.
자판도 못 두들기는 독수리 3代째인 넘이 ...이모, 외삼촌...
할아버지...이모할머니 홈페이지까지 들어와선 '어바바브'라며 찍더니
어느새 제대로 찍기도 하는...[바보]라는 두 글자..
독수리오형제 차세대들은...분명 지구를 지키는 사이버특공대 후손들이다.
마악...우주로 뻗쳐나가는...
 
현재 상황판 스코어는
열심히 알까서 새끼를 키우거나
(그 손자 독수리 대표 하나가 바보라 자판을 두둘기는..)
짝을 찾아 혈안이 돼있다거나
아직까지 책상 모서리에 이마를 찧고 있는 넘들....넘들,
도합
1번째 (여) 독수리 /3 (여1 남 2)  독수리손자세대(여2 남1)
2번째 (여) 독수리/3 (여1 남 2)
3번째 (남) 독수리/2 (남 2)
4번째 (여) 독수리/2 (여1 남 1)
5번째 (남) 독수리/2 (남 2)
웃기는 게...
막내는 한 방에 스트라잌이다. 쌍둥이,
울엄니가 그리도 아들 타령이시더니..
남동생들은 아들만 둘 다 두었다.
 
울엄마 아부지..두 분이 만나 독수리 오형제를 낳으시더니
곧,,,독수리오형제를 따블로 불리시고
딱...한-타스의 손자 독수리들을,
곧이어 
제짝을 다 데불고 오면 
24?
우와
국력은 인력이다.
우리 모두 힘껏 많이 나읍시다!! 
(구래야 지구를 슈파슈파 지키지요~)
 
슈파 슈파 슈파 슈파 슈파
우렁찬 엔진 소리 독수리 5형제 
쳐부수자 알렉터. 우주의 악마를.
불새가 되어서 싸우는 우리 형제
태양이 빛나는 지구를 지켜라.
정의의 특공대 독수리 5형제!
초록빛 대지의 지구를 지켜라
하늘을 날으는 독수리 5형제!
우주를 누비는 독수리 5형제!
윗 사진은 막내 여동생에게서 나온 사진인데...지는 이 사진이 젤 좋단다.
세 자매가 같은 간땅꾸를 입은 모습이.....크흐~~
 
사진에서 아직 막내 독수리는 요람에서 잠자는 중이다.
너무 애기라...늘 빠져있는 것 같다.
 
우리 아부지는 내가 스무살이 훨 넘도록도

날 무릎에 뉘이시고 귀지를 후벼주시던 분이셨다.

난 아부지 식사머리에 드러누워 신문을 읽는 처녀로 자랐다.

그 게 이상한 건지도 몰랐다.

그냥 그 게 정상인 줄로만 알았다.

울 아부지

차츰 연세 들어가시면서

그 표정이 얼마나 기가 막히게 정감이 있는지...

중학교 때...난 [노틀담의 꼽추] 영화를 보고 영화속 꼽추에게 연민을 느끼고 

집에 와서 가만히 보니..영낙없는 울 아버지 얼굴이랑 비슷해 보였다.

그래서 난 안소니퀸을 무지 좋아한다.
그 표정에는 사랑하는 내 아버지의 사랑이..
그 모습이 녹아있다.
/남들이야 뭐라든...내가 그렇다면 그런거다 모....

.

 

 

우리 어머니는 

유난히 헤엄을 잘 치셨는데....

그 덕에 우린 모두 수영복을 차려입고 여름만 되면 바다로 자주 나갔다.

흐~~ 물모자를 쓰긴 썼는데...한껏 뒤로 제껴 썼으니....

참참...늘 튜브를 타고 노느라...오히려 바닷가에 살면서도 맥주병이었다.

우리 모두가..../믿기지 않는 사실

 

[바다 가까이 사는 우린 맥주병이고...강 가까이 자라시던 부모님은 수영선수시고...]

 

 

.

 

 

나는 우량아였다한다.

이미 뱃속서 부터~~

그래서 중년부인들이...굵어진 허리로 모여서서

[난 처녀적 안이랬어요~~] 그 소리 차마 듣기 민망해서~~

[난..지금이 젤루 날씬하다 모..]로 멘트를 바꿔버렸다. 오래전에,

거..아줌마들...그 소리 좀 이제 그만합시다.

 

★(별표, 중요하니께)

여기서 내 자랑하나 하고 넘어가야지~~

우리 아버지의 자식사랑이 극진하셨다.

너무 그러시니 오히려 천성이 찬 어머니는 냉냉하셨고

맨위로 (맏딸)언니 하나가 더 있었다는데...

아파서 실패보시고, 또 태어난 언니는 천성으로 몸이 약했다 한다.

그 때 구하기 힘든 마이신인지...페니시린인지? 암튼

아픈 언니를 그렇게 또 겨우 구해내시고...

 

나를 잉태하신 어무이...

태몽이 대단터라시며...아들일 것이라는 착각하에

나는 뱃속서 부터 보약을 얻어 마시는 행복하고 귀한 존재가 되어 버렸단다,

(그러니..내게 우찌 다이어트가 멕히냐고요~~)

발길질도 우찌나 세던지...아들에 아들이라는 확신만...

그 덕에 나는 목욕통(나무 조각을 돌려서 엮어 만든)도 새 것,

호사는 다 부렸다한다.

 

그래서 태어난 아인 섭섭하게도 그 걸(?) 두고 나오더란다.

언니가 애기일 적에는얼마나 징징짜고 보채고 극성인지....

엄마가 힘드셨다는데...

나는 배만 부르면 울지도 않더란다.

 

지금도 누가 내 다리를 굵은 무시다리라고 나무라면

난 일격에 가하는 한 소리를....

[야~~ 그러지 마러, 한 남자가 이 다리를 월매나 사랑한줄 아냐?]

울 아부지는 건강한 내 다리를 참 이뻐라 하셨다.

[치마 짧게 입혀라]가 당부셨다한다.

[큰애는 다리가 삐적말라 약하니 좀 길게 입히고..

요조는 다리가 통통하니..짧게 입혀라~]

얼마나 건강한 게 한이 맺히셨으면....

유달리 건강해서 아버지의 이쁨을 많이 받은 내가

터억하니 고추밭에 터까지 팔아놨으니...

 

초딩때 아버진 심심하시면 말을 씹히셨다.

[요조야 요조야...니가 맨 처음 한 말이 뭐게?]

[음마 아니믄 아빠겠지...]

[ㅎㅎㅎ~~ 마시따(맛있다)라는 말부터 하던데....]

힛~

얼마나 돼지처름 잘 먹었으면...

아마도 이 게 앞으로 엄마의 요리편지 나부랭이나 쓸려고

맛으로 승부한 대단한 여걸 이요조의 시원이었음을...

음핫핫하 ㅎ~~~

 

아들일거라는 확신 때문에 보수동(지금의 부용동)사거리

꽤나 이름난 조산소(그 당시로 치면 병원)에 가서 나았는데...

병원에서 난리도 아니었다네...이런 건강한 아인 첨 본다고,

출산 후..운듯 만듯 하더니...쭈욱 쭉...소리가 나서 보니까...

글쎄 제 주먹을 쭐떡 쭐떡~ 빨고 있더라는..../믿거나 말거나~~전설이올시다.

엄마등에 엎혀서 자다가 내려졌는지...부수수한 모습,

아직 뛰뚱이는 애긴데도 언니만한 체격,

구래선지 아직까지도 너부데데한 큰바위얼굴~~

 

.

사진 뒤엔 아버지가 만년필로 쓰신 글씨가...

용두산공원, 요조 8세 ..경호......단기.......4月

.

옛날 유모차....木馬

막내 여동생

우리 형제들이 번갈아 자주 끌어주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언니 집에도 사진이 꽤나 있던데....

이달 말에 부산, 내려간김에 내가 챙겨와야지~~

참..잊은 것 또 하나,

저희 아버님 함자는 이, 봉짜 현짜시고

저희 어무이  함자는 배, 대짜 금짜시다.

독수리 10형제가 아무리 머리를 맞대도 함짜에서

모임회의 명칭을 따 오기가 좀 머시기했다.

 

[봉대회?][봉금회?]

[현금회??][현대회?]

[대봉회] 그래 이 걸로 하자....

우먼파워시대니...우리 어무이도 아버지 앞에 함자로 서시누나~~

어무이요~ 아부지요~~[대봉회] 우야든동...사이좋게 잘 살겠씸더~~
걱정마시이쏘~~
 
이질(姨姪)들,
.
보면 볼수록 기분 좋아지는 사진! 
언니네 아이들
막내는 코도 이마도 깨 먹고 뭐가 좋은지...
둘은 결혼했고 막내는 낼 모레 상견례가....
오지랖 넓은 이모인..나도 참석이당~~

[야들아 뭐가 그리도 존노?]

 
하늘 / 박두진 詩 서유석 曲 양희은 & 서유석 노래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멀리서 온다 
멀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온몸이 가슴으로 스며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에 
호흡 호흡따가운 햇볕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의 내가 능금처럼 내마음 익어요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멀리서 온다 
멀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온몸이가슴으로 스며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에호흡 호흡라~~~~~~~~~~
 
   

 

                                  화려했던 지난 날의 해상호텔인 '플로텔'

 

 

 

 

태풍'매미'에 떠밀려 어이없이 쓰러진'플로텔'

 

 

 

부산 부산 해운대에 국내 최초의 해상호텔인 '플로텔'이 생겼다고 -

떠들석하더니...어느날 매미에 그만 그 위상을 접고 

비스듬히 누워버린 모습이

TV 화면에 큼지막하게 잡혔더랬습니다.

국내 최초의 해상호텔을 국내 최초의 좌초호텔로 만들었습니다.

 

요트경기장을 거쳐 해운대로 진입하다보면 우측에 한국까르푸 해운대점이랑

한화리조트가 보이고 바로 앞의 바닷가에 플로텔의 흉물이 머리를 드러낸채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언제 휘황한 불빛으로 나방이 같은 관광객들을 끌어 들였는지도

망각한 듯...그렇게 죽은 屍身처럼

지지대로 가로 질러져서 세워둔 모습이 차마

보기에 안쓰러웠습니다.

 

 

 
 
 
태풍 좌초 해상호텔 인양
[연합뉴스 2004-06-03 15:36]

3일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인근에서 지난해 태풍 `매미'때 좌초된 해상관광호텔 인양작업이 진행되고 있다./조정호/지방/ 2004.6.3. (부산=연합뉴스)

ccho@yna.co.kr

 

 

 

★上 이미지는 모두 검색

☆下이미지는 2004년 9월 19일밤에,

 

 

부산, 친정식구들을 만나 (해운대)

9월 19일  밤바다 바람이나 쐴 겸 나왔더니...이 곳 까지 다다랐습니다.

흉칙한 몰골...

시신의 모습이 이렇다고 할까요?

훅-풍기는 썩은 비린내.... 배는 정작에 일으켜 세웠지만...

모두 삭고 썩고...녹 나 있었습니다.

굵은 철제 빔으로 지지대로 여러군데 지탱해 두었더군요.

불꺼진...으스스한....선창가....

제 카메라도 후래쉬가 안좋아 덩달아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해 주는군요.

전생은 화려했다는데...

내세는 기약할 길이 없답니다.

회생하려고 기를 쓴다지만...워낙에 돈으로 갖다 발라야 한다는데,

뭐 자본이 딸린다나요.

에궁..걍 버리시지..깊은 바다로, 물고기들의 놀이터나 되게...

더 큰 ...태풍에도 꿈쩍 않는 그런 해상호텔이 들어선다는 말도 있고....

루머만 무성하답니다.

아무튼... 여러사람 울게 만든 해상호텔, 페리스 플로텔(Ferris Flotel) 

그 화려한 전적은 어디로 날려 보낸거야?

아무리 화무는 십일홍이라지만.

십일도 못 가서 매미에 꺾이다니.... 에고 통재라~~~ 

 

 

.

페리스 플로텔(Ferris Flotel) 입구, 멀쩡한 현판만 어둠을 지키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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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광안대교를 돌아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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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X  』 ▲검색 이미지 사용/a,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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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새로지은 서울 驛舍 내부

..

b/KTX  플랫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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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k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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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역방향 좌석

 

 

 

추석연휴를 일주일 앞두고 부산을 다녀올 일이 생겼다.
마침 KTX도 타 볼 겸....기대하는 마음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연휴를 며칠 앞둔 탓인지...거의 텅-빈 객차에서 촬영은 그런대로 하기쉬웠다.

서울 부산 간 채 세 시간도 안 걸린다는 말에 사뭇 기대가 컸었다.
광명 역까지, 20분 대전까지 45분? 동대구까지 두 시간도 채 못 걸린 것 같았다.
잘 찍진 못하지만..사진을 좋아하는 나는 가을 들판을 찍어보려 차창에 카메라를
들이대려면 어느새 터널 안이더니...그예, 셀프카메라 모습까지....
KTX기관사들이 시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말에 수궁이 갔다.

동대구를 벗어나자 시속 300Km 라는 KTX는 그 절반으로(새마을호 속도) 줄었다.
동대구까지만 KTX 선로가 깔렸다더니 그래선가 보다.

KTX가 아직은 완벽한 상태는 아니지만,
불편한 점은 역시 시정되어져야 한다고 본다.

일반기차와는 달리 중간을 나눠서 반은 정방향 반은 역방향으로 좌석들이 아예 고정배치되어 있는 게 특징이다.

역방향의 좌석, 여행길에  그 것도 아주 빠른 속도의 바깥 풍경이 휙휙~~ 스쳐간다고
생각만 해도 어지럽고 피곤하다.


보통 기차는 방향에 따라 좌석을 일일이 돌려놓을 수 있다.
일반기차는 좌석의 각도를 젖히기도 또는 여럿의 동행이 있을 때,
의자를 180도 빙-돌려 마주앉아 화기애애 담소도 피우며 가기도 하는데,


KTX는 고속철도라 미세한 잡음이나 진동을 줄이려 의자를 고정시켰다 한다.
의자가 뒤로 거의 젖혀지지도 않고 불편하기 이루 말 할 수 없다.
공기의 저항을 줄이려 차체의 너비를 좁힌 탓인지 의자 폭도 좁고, 통로도 좁으니
우등고속 버스가 차라리 그리울 지경이다.


그런데...
이런 낭패가 있나?
도대체 시승식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나,  KTX 제작진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반사거울을 태연스레 모르는 채 하고있는 것인지...관음증이라도 유발시킬 속셈인지?
선반을 유리로 끼웠는데...그 선반유리가 거울 효과를 내어 승객들 모습을
낱낱이 선명하게 비춰주고 있지 않은가?

어떤 옷을 입고 앉아 책을 읽는지..무얼 마시는지....지금 잠을 자고있는지....
역방향이 있기에 그 모습은 더 적나라했다. 뻥긋하다보면..반사유리로 눈도 마주칠 상황이다.

[이런...고얀 일이...]
내가 앉은 좌석이 중앙 지점이어선 지...역방향은 그저 앉아서도 승객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조금 고개만 뒤로 젖혀 위를 보면 뒷 방향 좌석에 앉은 승객들까지
양방향 정방향 중앙 위치에서는 좌석 끝까지 
다 개인의 행동 모습이 다 보인다.  역시 나도 누군가에게 비쳐지고 있다는 생각에
손 짓 하나의 움직임에도 행동에 제한을 받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KTX도 서울 부산 간이.. 세시간도 채 소요되지 않는다 하여 식당 칸을 생략했고
KTX에서 한 중년신사가 패스트푸드점 먹거리를 사들고 올라탔다.

묘하게도 정방향과 역방향, 공유 테이블이 있는 가운데 자리다.
치킨냄새 푹푹- 풍기는 먹거리를 올려놓고 보니.. 같은 좌석 맞은 편에 휴가? 가는 군인 둘이 앉아있다.

함께 먹자고 권유하는 듯 하였으나...
뒷좌석에 있는 내게까지 풍기는 냄새... 그 군인들 얼마나 심기가 불편했을까?
물론 도시락에서 풍기는 냄새도 마찬가지겠지만...

 

 

세계 유수한 고속철도와 어깨를 겨루며 태어난 KTX,
화장실 변기 색깔에 왜 속이 뒤틀리는지...마치 양서류의 보호색 같기도 한,
왜? 하필이면 그런 칼라를 선택했는지?


정확하게 세 시간만에 부산에 도착했다.

 

........................


상경 시에는 해운대역이 출발지라 KTX는 새벽출발 뿐이고 주간에는 새마을호가 있어
그냥 새마을호를 타기로 했다.
우연인지, 내게 새삼 비교의 기회가 주어졌다.
물론 새마을도 객차에 따라 그 시설이 현저히 다르기도 하지만...

최고의 새마을호  식당차도 덩달아 아예 사라졌다.

아무튼 이래저래 불편한 중에.. 이런~~....일 보게~~

새마을은 잠깐씩...KTX가 지나칠 때마다 길을 비켜주느라 지체를 한다.
귀하신 KTX  길을 비켜 드리느라...4시간 30분 걸리던 새마을호가  5시간 10분 걸렸다.
그럼 도대체 과연 빠르지도 않고 싸지도 않은 새마을호의 정체성은  뭐란 말인가?


KTX 증후군은 ,
콩나물 (Kongnamul) 시루, 늘어난 운행시간(Time), 비싸진 (eXpensive) 운임을 뜻하는 것으로
일반열차 탑승객들의 고초를 그대로 드러낸 신조어다


KTX출현으로 인해...새마을호는 더 느려지고...궁극적으로 비싼 운임료를 내고 타야하는
KTX 증후군이 아니고 무엇일까?


역방향 좌석이야 공학적으로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친절을 앞세우기 전
거울이 되어버린  선반 유리라도 조속히 시정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며,


 

신칸센이나 떼제베 못지않은 KTX 가 됐으면

2004년 9월 마지막 날, 이요조

 

 

 

..

우등고속의자 보다 못한 좌석 (젖힘의 각도도 거의 없고 비좁은)

..

순(정)방향과 역방향을 가르는 중간 공유 테이블자리

..

이해가 가지않는 화장실 변기 색깔

..

절대공간 부족에서일까? 한군데다 몰아넣은,,,, 세면대+화장실

..

▲화장실 세면소가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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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선반 반사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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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젖힘이 없어 꽂꽂한 자세로 잠을 청해 보지만...

. 

다들 목고개가 아플 것임

 

★☆★☆★☆★☆★☆★☆★☆★☆★☆★☆★☆★☆★☆★☆★☆★☆★☆★☆★☆★☆★☆

 

 

『 새마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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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 검색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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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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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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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면대 따로 분리/손만 씻는다거나 화장을 고치러 구태여 화장실까지 안가도 되는 점이

더, 위생적이지 않을까?

.

 

친절만 외치지말고 고속도로 휴게실 화장실처럼 액자라도 하나 부착해 보심이 어떨까? 

별로 깨끗하지도 않은 멀건 공간 벽면이 어색한.....방향제라도 달던지,

 

.

..

새마을호도 그보다는 적게 반사되지만...동일 방향이라 머리끝 부분만 보임...

ㅎ~~ 앞자리 대머리 노신사 한 분, 유난히 밝게 비추이지만....그렇게 폐해를 끼칠 정도는 아님.

.

정방향으로 가는 새마을호...내리는 가을비를 바라보며..운치를 더한 여행길,

 

★ 친절 배려/새마을호

 

한가지 역무원의 친절 하나 덧 붙이자면...해운대에서 출발 당시는 거의 빈-좌석이었다. 97% 수준,

그 넓고도 빈 좌석을 두고  일행도 아닌 딱 두사람만 나란히 앉게 되어 여간 어색하고 불편한 게 아니었다.

내가 안(창)쪽이었는데, 창문이나 제대로 되었으면 있겠는데... 창이 시야에 걸리는 지점이다.

그래서 옮겨 앉았다. 다른 좌석 창쪽으로....

요즘 국철 티켓은 전철표처럼 자동개찰을 하는데...해운대역은 작은 역이라 그 게 마련되어있지 않았다.

중간에 역무원의 승차권 검색이 있었고...

내 자리가 아님을 알고....내가 좀 불편해서 그랬다고 ..좌석임자가 오면 즉시 비켜주겠노라 이야기했다.  그러시냐며...기록해가는 듯 하더니...

내 자리는 서울 역 오도록 다른 좌석은  계속 한 번쯤이라도 단거리 손님이  탔다가 내렸지만  내가 무단 점유한 좌석은 끝끝내 아무도 타지 앉았다.

작은 배려가 고마웠다.


★ 고발껀/새마을호 

화장실 바닥엔 칠이 벗겨져 있었고 작은 바닥하수구 구멍에 누군가 담배 꽁초를 비벼 넣었다.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의... 요즘은 전체가 금연구역인데...꽁초로 쑤셔박은 하수구와 칠이 벗겨진 바닥...구역질이 났다.

사진을 찍었다가 차마 올리지 못했다.

차마 부끄럽고 더러웠다. 사진 자체만으로도...

 

.................................................................................................

 

결론(conclusion)

 

KTX  출현으로 새마을호는 무궁화호로 무궁화호는 통일호로 격하되었다는 점이다.

서민들의 발인 무궁화호는 증편을해도 시원찮을 판에...줄이다 보니 무궁화호를 늘 타던 사람들은 입석표 구하기도 더 어려워졌다 한다.

 

그러자니...노후된 차량에다 콩나물시루에다 시간은 전보다 더 느려터지고...

어찌 짜증이 나지 않을까....

 

물론 뭐든 과도기엔 설왕설래가 있다지만...지금 당장 서민들은 돈을 더 벌지 않으면 교통문제도 전처럼 해결하지 못할 [KTX 증후군]만 남은 셈이다.

 

철도청홈페이지를 잠깐 살펴보니..처음에는 외국에도 역방향좌석이 있는데 민원은 그다지 없고 유독 동양인들이 싫어한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에서도 민원으로 골치가 아픈...역방향좌석, 해서 그 걸 고치려 예산을 잡고 한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읽었으나, 반사거울에 대한 조치는 없었다.

 

 

 

글:사진/이요조

 

 

이규석-기차와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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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동안...그와 함께 늘, 이른 아침 산행을 했다.

산어귀 동네  이면도로 바닥에 석필로 정성껏 그려진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아! 오랜만에 보는 그림.....

석필은 또 어디서 났으며... 사방치기하며 놀았던 기억이 아슴하다.

바로 옆에는 여식아이의 그림인 듯....

예쁜 여자아이 그림이 있고... 앙징한 여자아이가 춤 추듯 외발을 들고 나풀나풀 뛰었을...

아마 나, 역시나 깨금발로 폴짝거리며 뛰었을.....그랬던 적이  있었을...추억,

사방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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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사방치기

놀이 방법
1. 번호 순서대로 목지를 넣고 ⑧까지 깨금발이나 양발로 갔다가 되돌아 온다.

2. 이 때 목지 옆에서 주울 때는 깨금발로, 목지가 ③과 ⑥에 있을 때는 ①②나 ④⑤,⑦⑧은 양발이다.

3. ⑦⑧에서 되돌아 올 때는 그 자리에서 동시 뛰기로 뒤를 돌아 발이 ⑧⑦로 바뀐다.

4. 차례로 던져 돌아나온 다음에는 처음 출발한 자리에서 뒤로 돌아 목지를 머리 너머로 던져 하늘에 목지가 들어가면 마지막으로 ⑦⑧에 양발을 딛고 돌아 나오면 이긴다.

5. 목지가 금에 닿거나 밖으로 나가거나 뛰다가 발이 금에 닿으면 죽는다




비행기사방치기
놀이 방법

1. 놀이방식은 네모 사방치기와 같다.

2. ㉠∼㉣까지 목지를 놓는다.

3. ㉣㉤과 ㉦㉧에 목지가 없을 때 동시에 딛고 나머지는 깨금발로 통과한다.




사방치기
놀이 방법



1. 마당이나 공터에 양쪽으로 7칸씩 14칸이 되도록 네모를 그린다.

2. 편을 나눈 다음 이긴 편부터 한 사람씩 차례대로 한다. 이때 진 편에서는 심판이 되어 상대방이 금을 밟는가 또는 막자가 밖으로 나가는가,엉뚱한 칸에 막자가 들어가지 않는가 등을 눈여겨 본다.

3. 사방치기는 먼저 ○이 그려진 첫칸에 자신의 막자를 놓은 다음 두발로 들어가서 깨금발(앙감질)로 막자를 찬다.

4. 막자가 밖으로 나가거나 금에 물리면 다음 사람이 나와서 막자를 차고 (1), (2), (3), (4), (5), (6)이 새겨 있는 어느 한칸에라도 막자가 들어가면 정해진 규칙에 의해 사방치기를 한다. 예를 들어 (1)번 칸에 막자가 들어갔다고 하자. 그러면 한발은 (1)번 칸을 밟고 다른 한발은 대각선 방향의 ○(1)번 칸을 밟은 다음 막자를 주워서 ×가 표시된 (2)번칸으로 간다. 그리고 ×(2)번 칸에 막자를 놓고 깨금발과 두발을 번갈아가면서 막자를 차고 나간다. 즉 칸을 통과하는 요령은 아래의 ×는 깨금발이고 ○는 두발을 땅에 댈 수 있다. 이와 같이 막자를 차고 나가는 도중에 금에 물리거나 밖으로 나가고 있고 ○(7)번까지 무사히 들어가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이 새겨진 막자를 놓고 찬다.

5. 두 번째 막자를 찼을 때 (2)번에 들어가면 한발은 (2)번 칸을, 다른 한발은 ×(2)번 칸을 밟은 다음 ○(3)번 칸에 막자를 놓고 위와 같은 요령으로 차고 나간다. 또한 (3)번에 막자가 들어가면 한발은 (3)번을 밟고 다른 한발은 ○(3)번을 밟은 다음 ×(4)번에 막자를 놓고 차면서 간다. 이와 같은 요령으로 (4)번에 막자가 들어가면 한발은 (4)번 칸을, 다른 한발은 ×(4)번 칸을 밟은 다음 ○(5)번에 막자를 놓고 차면서 통과하고, (5)번에 들어가면 한발은 (5)번 칸을, 다른 한발은 ○(5)번 칸을 밟은 다음 ×(6)번 칸에 막자를 놓고 통과하면 된다.

6. 이상과 같이 ○이 새겨진 칸에 막자를 놓고 찼을 때 (1)~(5)번 사이에 막자가 들어가면 항상 대각선 방향으로 엇갈리게 칸을 밟은 다음 막자를 차고 나간다.

7. 사방치기의 마지막 과정인 (6)번 칸에 막자가 들어가면 (6)번 칸으로 가서 발등에 막자를 올려 놓는다. 그리고 눈을 감고 막자를 올려놓은 발을 차올려서 허공에 뜬 막자가 땅에 떨어지기 전에 받으면 한 '통'이 난 것으로 인정된다. 한 통이란 (6)번 칸을 성공해서 전 과정을 끝마친 것을 의미한다.

8. 또한 받기에 성공하면 계속해서 막자를 차올려서 받는데, 한번 받을 때마다 죽었던 자기편 한 사람이 희생된다.

9. 한편 통이 나기 전에 사방치기를 하는 편에서 모두 죽으면 진 편이 들어와서 사방치기를 한다. 어느 한편이 다시 시작할 때는 처음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막자가 들어가서 성공한 칸은 제외하고 나머지 칸에만 막자를 넣고 차고 나가면 된다.

내용출처 : http://www.suyoung.es.kr/pl/pl-6b-0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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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룩쉴즈님...

제 칼럼 돌복을 보고 예쁘다고 꼭 같은 걸 좀 구해달라 주문하셔서...

전 또,...저희 교회 권사님 한복집에다 주문을 하고...

역시 똑 같은 것은 없다는 군요.

위엣 것은 미색연노랑 저고립니다.

오늘 제 사진이 모두 그렇군요. 오만원입니다. 조바위에 한복 상의에는 돌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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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 대례복 같지요?

칼라가 좀 그렇게 나왔군요.

조바위대신 '아얌'입니다. 팔만원이라는군요.

위엣 한복도 .....제 종손녀 한복 못잖게 예쁘구요.

아랫것도 그(돈)만큼... 예쁘기도 해 보입니다만.... 둘 중 하나 선택해주시면

내일 바로 택배로 부치겠습니다.

 

 



< 출처 : 천녀유혼 ~ 인간의 길 O.S.T >

백석님의 詩 한편으로 줄거운 민족명절, 추석인사를 대신합니다.

 

*남신의주, 유동에 사는  박시봉, 방에 세들어 사는....이라는 뜻입니다.

편지로 치면 발신인 주소인 셈이지요.  백석, 화자가 사는.../이요조

 

 

 

 

 

 

출처: 백석 홈페이지
http://limaho.hiho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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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

 

                                                                                  백 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학풍, 1948. 10>

 

백석(白石 ; 1912∼?) 시인. 본명은 기행. 평북 정주 출생으로 1935년 시 '정주성'을 조선 일보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고, 1936년 시집 <사슴>을 출판하였다. 1947년을 전후하여 '적막 강산' 등을 발표하였으나 이후 행적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백석의 시는 평북 지방의 방언을 통해 향토적이고 토속적인 분위기를 강하게 풍긴다.

백석의 시 세계 백석의 시 세계의 주인공은 공동체의 품속에 깊이 잠겨 있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 세계에 잠겨 있는 만큼 그러한 공동체적 세계로부터 멀어져 있는 현실의 자신과 모순되어 있는 상태를 심화시킨다. 바로 이 모순이야말로 백석의 시를 의미 있게 만드는 창조적 힘인 것이다.

'고향'은 타관에서 떠도는 자의 절절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백석의 향수는 단지 고향의 풍물이나 인정 세태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시적 소재들은 보다 깊고도 지속적인 고향의 삶의 역사와 관련을 맺으려 할 때에만 선택된다. 풍속이나 이야기로서의 설화가 시 속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풍속과 이야기야말로 유랑자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이면서 동시에 바로 그에게 발견되는 것이기도 하다. 유랑자에게 있어서 가장 그리워지는 대상은 가족공동체인데, 백석은 유랑의 여로 속에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의 공동체적 삶에 대한 향수를 떠올리고 있다. <신범순, '백석의 공동체적 신화와 유랑의 의미'에서>

< 이 시의 제목은 편지봉투에 적힌 발신인의 주소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즉 '남신의주 유동에 살고 있는 박시봉이라는 사람의 집에 세들어 살고 있는 이 (시인;시적자아)가 보낸 편지'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편지형식의 시는, 자신의 근황과 내면을 표현하기에 적당하기때문에 일찍이 1920년대 말 임화의 '우리 옵바와 화로 '같은 작품에서도 시도된 이래 여러 시인들의 시에서 채택되었던 것으로 결코 낯선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시의 문맥으로 미루어 볼때, 시적 자아는 '박시봉'이라는 목수의 집에 임시로 세들어 살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객지에 나와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슬픔과 어리석음으로 얼룩진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회한(悔恨)에 젖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런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운명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운명론적, 수동적인 세계관에 빠져드는 기미를 보여 주기도 한다. 하지만 마지막 행에 이르면 시적 자아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처럼 굳세고 깨끗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다.>

`남신의주 유동에 사는 박시봉씨네'라는 뜻의 제목을 가진 이 시에는 곤궁하고 난처한 시절을 만나,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지고, 깃들일 터전을 잃은 사람의 심사와 그와 같은 난국을 벗어나려는 정신적 노력이 잘 드러나 있다. 시인은 아마도 어느 겨울을, 아는 사람의 집에 얹혀 산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삿자리를 깐 방에서 시의 화자는 자신의 우울한 형편을 돌아보며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한다. 그것은 먼저, 공간이 비좁다는 것을 지시하는 것이겠지만, 그의 머릿속이 복잡하여 공간이 갑갑하게 느껴진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이 시의 중반부는 회한과 비탄으로 끝없이 추락하는 화자의 내면이 절절하게 드러나 있는데, 이와 같은 바닥에 이른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내면의 정돈, 상승과정이 이 시의 전개에서 백미를 이룬다. 스스로의 삶에 대해 불가항력인 운명을 냉정하게 바라보며, 그 어떤 초월적인 힘을 인정함으로써 일단 안정을 기하게 된다. 그것은 추락의 마지막 단계로서 체념이 아니라, 새로운 일어섬의 전 단계로서의 방법적 체념, 곧 침잠인 것이다. 속마음을 가라앉히면 바깥풍경이 제대로 보인다. 화자는 눈 덮인 자연을 바라보면서 눈 맞는 나무, 눈 맞는 잎새를 새롭게 주시한다. 혹독한 계절을 맞아 잎들은 시들고 앙상한 가지가 하염없이 눈을 맞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자세를 가다듬는 것이다.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는 화자가 꿈꾸는 강한 삶의 태도, 스스로 기대하는 미래의 또다른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언뜻 보아 맥없는 말을 끝없이 늘어놓은 것처럼 보이는 이 시는, 조용히 음미하며 읽을 때 도약을 꿈꾸는 서정적 내면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해설: 이희중]

 

백석의 시에 나타난 '고향'의 이미지

백석의 시에서 '고향'의 모습은 그 자신의 유년 시절 체험을 통해서 풍부하고 다양하게 그려진다. 그는 어린 소년을 시적 자아로 내세우고, 시적 자아의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고향과 고향 사람들과 풍습(민속)을 다양하게 그려 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재현된 백석의 '고향'은 '여우난 곬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친족 간의 우애와 정이 넘치는 공동체적인 제의(祭儀)의 공간으로 나 타난다. 뿐만아니라 그 '고향'은 인간과 자연, 귀신과 사람들까지도 화해롭게 공존하고 있는 동화적인 공간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화해와 공존의 세계를 그려 내기 위해서 그가 흔히 제시하는 것이 바로 공동체적인 제의인 것이다. 따라서 백석의 시에는 이러한 제의와 관련된 풍성한 음식, 놀이, 민속 등 현대화의 과정에서 상실된 민중들의 민족적인 생활 세계의 모습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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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나무 이미지* 헛개나무(호깨나무)도 갈매나무과라네요. 그럼 잘 아시겠지요. 산 뽕나무 비슷하기도 한..

 

 

 

白石 [1912.7.1~1995. 1. (83세)]


시인
본명 기행.
평안북도 정주 출생.
오산중학, 일본 도쿄 아오야마학원 졸업.
조선일보사 출판부 근무.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하여 문단에 데뷔하였다.
방언을 즐겨 쓰면서도 모더니즘을 발전적으로 수용한 시들을 발표하였다.
《통영》 《고향》 《북방에서》 《적막강산》 등 대표작은 토속적이고 향토색이 짙은 서정시들이다.
지방적, 민속적인 것에 집착하며 특이한 경지를 개척하는 데 성공한 시인으로,
광복 후 고향에 머물렀다가 1963년을 전후하여 협동농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북방정서를 통해 시화(詩化)했다.
본명은 기행(夔行).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1918년 오산소학교를 거쳐 오산중학교를 마치고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으로
일본 아오야마 학원[靑山學院]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귀국하여 조선일보사에 입사,
〈여성〉에서 편집을 맡아보다가 1935년 8월 〈조선일보〉에 〈정주성 定州城〉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36년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있었으며 만주 신징[新京]에 잠시 머물다가
만주 안둥[安東]으로 옮겨 세관업무를 보기도 했다. 해방 후 고향 정주에 머물면서 글을 썼으며,
6·25전쟁 뒤에는 북한에 그대로 남았다. 1936년에 펴낸 시집 〈사슴〉에 그의 시 대부분이
실려 있으며, 시 〈여승 女僧〉에서 보이듯 외로움과 서러움의 정조를 바탕으로 했다.
〈여우 난 곬족〉(조광, 1935. 12)·〈고야 古夜〉(조광, 1936. 1)에서처럼 고향의 지명이나
이웃의 이름, 그리고 무술(巫術)의 소재가 자주 등장하며 정주 사투리를 그대로 썼는데,
이것은 일제강점기에 모국어를 지키려는 그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사슴〉 이후에는 시집을 펴내지 못했으며 그뒤 발표한 시로는
〈통영 統營〉(조광, 1935. 12)·〈고향〉(삼천리문학, 1938. 4)·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학풍, 1948. 10) 등 50여 편이 있다.
시집으로 1987년 창작과비평사에서 〈백석시전집〉과 1989년 고려원에서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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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가 흐르는 한자] 千 慮 一 得 (천려일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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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千 慮 一 得(천려일득)

     


    慮-생각 려 背-등질 배 陣-진칠 진 謀-꾀할 모 稷-곡식신 직 虛-빌 허

     

     

    漢(한)의 韓信(한신)이 趙(조)의 20만 대군을 궤멸시킴으로써 유명한 ‘背水陣’(배수진)의 고사가 나왔다. 물론 여기에는 韓信의 뛰어난 計策(계책)도 있었지만 趙나라의 실수도 큰 몫을 했다.

     

    韓信이 趙를 치려고 하자 趙의 廣武君(광무군) 李佐車(이좌거)는 成安君(성안군) 陳餘(진여)에게 3만 명의 군대만 보내주면 韓信이 쳐들어오는길목을 끊어놓겠다고 했다. 그러나 成安君은 이 말을 듣지 않고 결국 大敗하여 죽고 만다.

     

    양국의 전쟁이 한창 치열할 때 韓信은 陣中(진중)에 천금의 현상금을 내걸고 李佐車를 생포하도록 했다. 李佐車라면 趙王(조왕)의 뛰어난 謀士(모사)로 전쟁의 승패는 그를 잡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어느 날 부하가 그를 묶어 바쳐옴에 따라 韓信은 의외로 쉽게 그를 생포할 수 있었다.

    韓信은 李佐車를 깍듯이 모시고는 上座(상좌)에 앉혀 스승으로 모셨다. 韓信이 물었다.

     

    “이제 우리는 북으로 燕(연)을, 동으로 濟(제)를 칠 계획이오. 어떻게 해야 승리할 수 있겠소? 삼가 高見을 듣고 싶소.”

     

    “예로부터 敗戰(패전)한 장수는 用兵(용병)을 말하지 않으며, 亡國(망국)의 大臣(대신)은 社稷(사직)의 存立을 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본디 背水陣은 그가 즐겨 사용하던 방법. 韓信은 그의 입을 열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워낙 집요하여 李佐車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지혜로운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반드시 한 번 실수는 있는 법이고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반드시 한 번쯤은맞는 법입니다

    그래서 聖人(성인)도 때로는 미치광이의 말을 듣는 수가 있습니다

     

    智者千慮, 必有一失, 愚者千慮, 必有一得, 狂夫之言, 聖人擇焉

     

    이렇게 운을 뗀 그는 장단점을 들어가면서 韓信을 설득해 치는 것을 포기토록 하고 대신 先虛後實(선허후실·먼저 적을 안심시킨 다음 침)의 작전으로 燕을 달래게 해 燕나라는 저절로 복종하게 되었다.

     

    사실 ‘智者千慮’(지자천려)는 陳餘(진여)를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는 百戰百勝(백전백승)의 計策을 갖고 있었지만, 어쩌다 한 번 실수로 하루아침에 敗將(패장)이 되어 죽고 말았다.

     

    반면 ‘愚者千慮’(우자천려)는 李佐車 자신을 지칭한다. 비록 생각이 보잘것없지만 아는대로 말하겠다는 뜻이다. 이 때부터 千慮一得은 자신의 겸손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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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도

지혜로운 사람도 천 번의 생각 중에는 한 번의 실수가 있을 수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의 생각 중에 한 번의 소득은 있을 수 있다.

智者千慮에 必有一失하고, 愚者千慮에, 必有一得이라.
지자천려  필유일실      우자천려    필유일득

《사기(史記)》〈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날이 있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실수는 있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요즈음 젊은이들은 돌다린 줄 알았으면 안심하고 건널 일이지 두드려볼 필요가 뭐 있느냐? 약간은 희화된 반문을 한다. 빠른 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다운 반문이다. 그러나 실수는 항상 믿었던 데에서 생긴다. 젊은이답게 모험은 하되 조심, 조심 백 번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경우에는 지혜로움을 자처했던 사람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결정적인 답을 찾아내기도 한다. 어리석다고 무시할 일이 아니다. 어리석음의 이면에는 지혜의 보고인 천진함이 숨어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근본적으로 어리석음이란 없다. 오히려 영리함이 지나쳐 제 욕심에 제가 당하고 제 꾀에 제가 걸려 넘어지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지 처음부터 어리석은 사람은 없는 것이다. 지혜로움과 어리석음은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이다. 그리고 그 종이 한 장의 차이는 눈에 달려있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탐욕으로 눈이 가리게 되면 한 순간에 어리석은 사람으로 타락하고 마는 것이다.


智:지혜 지  慮:생각 려  失:잃을 실  愚:어리석을 우  必:반드시 필  得:얻을 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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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공부하는 입장이온데...

    고을님..물으셔서 제가 원본을 들고  나왔습니다.

    ㅎㅎ~~ 전, 좀 쉬운 글이라..저만 모르는 줄 알고....

    가슴에 새기려(외우려) 문간에다 걸어두었더니....오히려 다 함께..복습을, 감사합니다.

     

    이요조.

     

     

    * 맨 위의 이미지는 제 것이 아니고..

    사진 카페에서 하도 좋아 오래 전에 가져다 둔 것입니다.

    분위기가 맞는 것 같아 잠시 사용합니다.

    말씀 있으시면 즉시 거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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