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버나드 쇼를 좋아한다.

아니 그의 유난한 독설을 좋아하는지 도 모른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

아! 버나드 쇼여~~ 당신은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멋진 분이십니다.

 

 

폐렴구균 예방주사 맞은 날, 추석명절 전 전날....

서금서금한(약간 시든) 열무 열 단을 사와서 다듬고 데치고 나물하고 김치담고 시래기 말리고나니 온 만신이 쑤신다. 특히 어깨하고 팔뚝이~~

 

오늘은 10월1일 전국적으로 독감백신 예방주사를 시작하는 날이다.

새벽부터 내리는 비는 멈출줄 모른다. <주룩주룩~~>

12시 동네의원에서 주사를 맞고 오늘은 비가 청승맞게 오니 뜨끈한 칼국수나 한 그릇 땡깁시이더!  캤는데....

기압골 탓인가? 명절증후군 탓인가? 열무탓인가? 등짝 어깨가 모질시리 쑤셔온다.

요즘 늘 파스로 등짝을 도배하고 다녔건만,  아마도 지난 밤  기압골에 그만 날개쭉지가 기여코 꺾여 ㅠㅠ (1004 ↓)

 

12시 20분 의원 점심시간이 1시라니 시간이 참 애매하다.

그렇다고 4~50분을 남푠을 기다리게 할 수도 없고~ 일단 외식을 약속했으니 점심 식사부터 끝냈다. 또 다시 어중띈 시간이다.

집으로 가자니.....다시 나오기 귀찮고 병원을 재차 찾은 시간은 1시20분, 진료시간까지 40분이나 남았다.

 

실로 얼마만에 (손에)들어보는 책이던가?

 

간호사에게 <눈-요깃꺼리 아무꺼나~~>책을 한 권 빌려 핫팩이 깔린 뜨뜻한 물리치료 침상에 누웠다.

양미간에 칼주름을 곤두세워 그렇지....아직은 돋보기 없이도 가능하다.

이뻐지길 아예 포기하면 무서울 게 읍따!

불가능이 없단 말씸!!

 

 

<아프니까 청춘이다>

나이가 계란 두 판하고도 다섯개가 남아 지공선사가 된 나하고는 상반된 이야기지만....원문에 진입도 하기 전

48살 된 김난도라는 작가의 프롤로그에서 나는 후두둑 마구 떨어진 밤을 줍듯이 허겁지겁 재미나고도 소중한 이야기들을 누가 볼세라, 누구에게 들킬세라 은밀한 안주머니에다 쑤셔넣는다. 

반질반질 윤이나는 알밤들이다.

 

나이를 시간에 비유했었다.

자기(작가) 책상에는 건전지를 빼버린 시계가 있단다.

해마다 생일이 되면 18분을 앞당겨 놓는단다. 처음엔 그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

하루를 24시간 인생 평균수명을 작가는 80에다가 놓고 계산을 하면 ~~~

 

하루는 24시간

 

인생시계의 계산법

24시간은 1,440분/80

1년은 18분이 된다.

1년이면 하루의 18분이 지나고 10년이면 3시간씩 가는 것으로 계산하면

 

 

나의 시간은 현재 저녁 7시 30분이다.

이제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린 시간이다.

어찌보면 희망이 없고 어찌보면 편안한 휴식만 남았다.

노동을 끝내고 샤워를 하고 저녁식사를 마치고 소파에 기대어 TV를 보거나 가족들과 즐기면 될 시간이다.

나는 여기서 또 억지를 부려본다.

 

칫!!  여름의 낮과 겨울의 낮, 그 길이는 다르다 모~~

여름의 낮은 아직도 환하다. 쓸만하다. 그렇다고 겨울의 일찍 찾아온 어둠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운명처럼 주어진 24시간의 하루라면

어떤 이는 화사한 봄날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여름 천둥 번개치는 날, 또는 오늘처럼 음산하게 비 오는 날, 그래서 어둠이 일찍 찾아 온 날~

무더운 여름,  매서운 칼바람의 겨울,  그 하루를 부여받더라도 제 할 나름!

눈보라 폭설속을 걷거나 따뜻한 온돌발 화로에 가족과 둘러 앉아있거나....

내게 주어진 하루는 그런대로 태어난 생일처럼 약간 더웠다. 일했으면 힘들었을테고 녹음 그늘에서 쉬었으면 더할 나위없는 평안이었을테다.

아! 그리고 보니 인생은 다 제 할 나름!!

운명은 제 스스로 헤쳐 나아가는 거~~

 

요즘 돌이켜 생각하면 이 나이가 편안하고 여여해지는 그런 제 2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나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자주 불면증에 뒤척인다. 그렇듯이 잠은 새벽 1시나 늦으면 2시에도 들 수 있다.

의외로 잠 들기까지 내 소중한 시간이 넉넉해질 수 있다. 하루가 24시간 말고도 25시...아니 하루가 26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주어진 내 운명의 시간은 거스르거나 비켜 갈 수 없는........

 

시방,  내게도 영판 어둠이 내렸다.

난 어둠이 내린 창문의 커튼을 내리고 마음의 평정을 얻는다.

질병이 없는 ,,,,,파티를  준비하고 즐기는 그런 멋진 밤이었으면~

 

 

이내 2시 오후 진료시간이 시작되었다.

나는 조금 보던 책을 덮고 물리치료를 받는다.

이래서 어케 파티를 열어?  ......건강하자!!  건강하자!!!

 

.

..

.

.

.

.

 

.

.

.

.

.

.

.

.

.

.

못다읽은 책은

간호사가 빌려줬다.

근데...집에서 과연 읽을 수가 있을까?

의문이다. 다 읽으면 다시 보태서 써봐야지~~

집으로 오는 길에

싱싱한 열무 한 단을 또 사왔다.

 

 

 

 

 

 

오늘 밤부터 비가 온다기에 옷을 정리하고 빨아서 말려 둘 것들을 세탁기에 한 번 더 돌립니다.

비가 온다니 이 따가운 햇볕과도 잠시나마 이별한다는 생각에 갑자기 살가워집니다.

오전에는 이불을 내다 걸었고 오후 느지막이 지는 햇살 안타깝게 부여잡고 빨래를 넙니다.

 

 

 

어젠 매실주를 따라내고 그냥 둔 매실을 버릴까 하다가 따가운 햇살에 말려보기로 했습니다.

좁은 마당에 내려서면 매실주 냄새가 은은합니다.

이미 술은 따라낸 것이지만....그냥 빈병에 그저 들어있었던 매실 알갱이였던 거지만 소쿠리에 받치자니 한 컵 정도나 액체가 나옵니다.

것도 아까워 <여보 이 거 맛 한 번 봐요!!> 했더니 맛을 보고 찡그립니다.

술 못 먹는 내가 맛을 보니 음식 요리할 때 사용해도 될 것 같습니다.

작은 생수병에 따르니 반 병 좋이 됩니다.

 

 

 

날씨가 너무 무더워 요즘은 냉커피를 탑니다.

오늘아침도 찬 물에 냉커피를 타고는 얼음 없이 조금만 마시고 한 잔 가량 남았습니다.

오늘부터 갈근(말린 칡)을 끓여 물로 마십니다. 6리터 큰 주전자로 끓여서 여기 저기 물병에 넣어 식혔습니다.

잠이 들면 잘 자는데 들기까지가 괴롭습니다. 밤이 무서울 지경입니다.

여성 갱년기에 특히 좋다니 갈근을 넣고 물을 가득 끓여냈습니다.

 

 

 

 

 

<아! 여기 갈근차 끓여서 담아둔 게 있었군!> 매실주를 아까워 패트병에다 담아둔 것을 착각했습니다.

빛깔이 비슷합니다.

그리고는 그 커피를 패트병에다 붓습니다. 어차피 제가 마실 것이니 뭐 어떻습니까?

커피 빛깔이 곱게 번집니다.

<음 등산갈 때 조금씩 마시면 아주 좋을 농도야~>

짐짓 만족해하며 냉동실에 넣습니다.

얼려서 산에 갈 때 가져가야지~~~

 

 

 

결혼한 두 아들 들에게 <우리에겐 이제 일없으니 집에 있는 필요한 책들은 다 가져가라> 해놓고는

웬일로? 지난밤? 지지난 밤인가? 딸에게 책을 부탁 했더랬습니다.

세상 참 살기 좋아졌습니다. 전 딸에게 책을 주문하고 미국에 있는 딸은 엄마에게 바로

그 다음날로 책을 받아볼 수 있게 해주니....

책 이름은 ‘기탄잘리’ 입니다.

제가 소녀 적에 아주 즐겨 읽었던 책이름은 <타골의 명상>이란 제목의 이름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 목사님 아들이던 요즘말로 교회오빠가 제게 준 선물이었습니다.

타고르의 신과 인간관계를 마치 연인들의 戀詩처럼 아름답게 표현한 시집입니다.

 

 

 

 

 

 

 

포장된 책을 뜯으며 뭔가 시원한 마실 게 생각나서

오전에 넣어둔 냉커피 생각이 났습니다.

아직 완전 얼진 않았지만 얼음을 더 넣고....한 모금 마시니 웬걸...냉커피가 아니라...매실줍니다. <에퉤퉤>

마침  옷장정리를 하다가 늦은 빨래를 넣은 세탁기가 나를 부릅니다.

이불 걷어내고 오후 늦게야  넘어가는 햇살에 빨래를 너는데 삼식님 덥다고 짜증이 대단합니다.

많은 빨래를 대충 널어놓고 책을 보러 들어오다가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얼굴이 빨갛게 부어올랐습니다.

눈 뜨기도 불편합니다.

내 얼굴이 이 모양인데도 울 삼식님 날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나봅니다.

 

 

 

 

 

 

 

 

서글픈 마음으로 책을 엽니다.

글 각각 번호가 매겨진 글들....

펼치는 순간 어떰 이리도 내 마음 같은지...

소녀 적 헤지도록 닳고 닳도록 읽었던 책을 이제 눈 어두워 다시 잡았습니다.

정신도 깜빡거려  냉커피쯤으로 알고 마신 게 술이었다니, 참으로 한심할 노릇입니다.

어쩜 내 마음을 이리도 대신 표현해 주는지 눈물이 그렁거려집니다.

<나, 완전 늙었나보네!>

 

 

 

 

 

 

 

얼마 전에는 내 핸드백에 무거운 아이패드가 늘 들어있었는데

이젠 제 핸드백에는 타고르의 ‘기탄잘리’가 들어있을 것입니다.

전철을 자주 타고 외출하거든요.

 

 

 

이 글은 음주원고입니다.

아! 이제야 고만해지는군요!

왠지 바보 같은 심정을 글로 마구 쓰고 싶어지는 거 있지요!

취중에 글로 수다를 한참 떨고 났더니

좀 전에는 스스로 보기에도 거북살스럽던 얼굴 붓기도 빠지고 불쾌해진 얼굴도 본색을 찾았군요!

카테고리 책속의 산책길이 아니라 책속의 주책길이 되었습니다.

 

 

이제 빨래 걷어오고

저녁 준비해야지요!

 

 

 

........................................................................................................................................................`13, 8, 22 17:50

 

요즘 시대에 선동적이거나 비평적인 글들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우리들의 창조적인 정신이 퇴색해가는 건 아닐지...

무더운 여름이 가고 가을이 다가옵니다.

이 가을에 당신도 '기탄잘리'에 한 번 빠져 보십시오!

순수한 옛 마음을 되찾아 줄 것입니다..............................................................................................................이 요조

 

 

 

 

라빈드라나드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소설가
출생1861년 05월 07일
출생지인도
경력시집 차이탈리 간행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 1861년 5월 7일 ~ 1941년 8월 7일)는 인도의 시인이자 철학자이다. 인도 콜카타에서 15형제 가운데 열넷째아들로 출생하였다. 영국 런던 대학교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niversiy Collge London: UCL)에 유학와, 법학과 문학을 전공하였다.1913년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29년, 일본을 방문하였다.타고르는 이 밖에도 방글라데시의 국가와 인도의 국가를 작사·작곡하였으며, 그가 시를 짓고 직접 곡까지 붙인 노래들은 로빈드로 숑기트(Rabindra Sang...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22일 집을 나서며

책을 읽을 시간이나 날라나?

미심쩍어하면서도 짐 속에 습관처럼 챙겨넣었다.

통영 한산도로 출발하면서 이왕지사 읽지않은 책중에서

토영이 배출한  문장가 박경리님의 유고시집을 챙겨넣었다.

 

떠난지 이튿날까지 책은 한 줄도 읽지 못하고...

제목만 목에 가시처럼 걸렸다.

눈도 어둡고  챙겨야할 돋보기도 짐이다.

읽을거리를 챙기는 습관도 이젠 놔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사흘 째 되던 날,

이 곳은

 한산도하고도 작은 섬, 추봉도!

일행은 모두 낚시를 나가고

여름휴가 막바지 주말 바닷가는 쓸쓸하고도 고즈넉하다.

tv에선 올림픽의 꽃인 남자마라톤 마지막 중계로 적막을 깨트릴 뿐,

드문드문 삽화와 함께 있는 책을 집어든다.

나는.... 

방 깊숙히  쏟아지듯 디미는 햇빛을 피해

데구르르 굴러 벽에 가차이 붙어 누웠다.

 

유고시집, 고인의 딸이 마지막 어머니의 글을 정리한 책이다.

<어머니의 마음을 읽어가면서  슬프고도 또 슬펐다>는 서두문에

내, 엄마인 것처럼 괜히 콧날이 시큰거리다가...

 

이런!  갑자기 난데없는 

 벌레가 바로 얼굴 옆 베륵박을 슬금슬금 기어다니는 게 아닌가.

화들짝 놀라서 책에서 눈을 떼니...

 

아니~~ 망막이 노화되어 생기는 그림자가 아닌가?

마치 벌레, 날파리 같은 게 슬슬 기어다니는 듯한.....

순간 나도 모르게 한숨이 인다.

그래 이젠 책도 손에서 놔야 할 때가 온 게 아닌가~  싶은 생각에...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언젠가 나도 떠날 때가 되어 마치 내가 내게 이르는 말처럼
행간의  언어들이 내 가슴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며 되살아난다. 

   

내겐 함께 운동하고 산책하는 메이트가 있었는데

나이는 너댓살 더 많아 언니같기도 한 그녀는

늘  습관처럼, 입버릇처럼 그랬다.

<이젠 슬슬 삶을 정리해야 할 단계인가봐,

사진도 찍기싫고,  살림살이도 예쁜것에 시들하고

버려야 할 것만 보여....>

정리해야 할 삶의 일들이 자꾸만 떠 오른다는...

그 때 그 이야기를 듣던 나는 그녀가 아주

어른스럽고 한편으로는 멋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던 그녀는

지난 해 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등졌다.

http://blog.daum.net/yojo-lady/1058627

 

미리 알았던 것일까?

갈 때를 안다는 것은 행복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처럼 갑자기 발병해서 죽더라도

어느정도는 부끄럽지않게 살아야겠다.

 

제 자리를 치우고 간다는 거....

내가 잠시 앉았던,

소풍자리를 깨끗이 치우고 간다는 거...

 

문득 감정이 밀물처럼 몰려와서

방바닥에 엎디어 책을  읽다말고  마려운 오줌처럼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졌다.

외딴 민박집  방에 엎디어 모처럼 볼펜을 굴려 글을 긁적인다.

 

대문을 열면 바로 앞이 바다다.  

투명하고도 잠잠한 리아스식해안의 바다가 강인 듯 싶은 곳!

그 맑고 투명한 물에 안긴듯한  민박집을 통채로 빌렸더니 주인은 며칠 어디로 가버렸다.

간간이 들려오는 갈매기의 호들갑스러운 울음소리만 없다면

여기가 깊은 산사인지 착각할 정도로  조용한 오전나절이다.

눈부시게 방안까지 침범하는 태양빛이지만

하나 무섭지도 않다.  벌써 가을 볕처럼 고슬고슬하니 상쾌하다.

 

<이야기가 고마 오데로 흘렀누~~>

 

책을 읽기전 책을 만지기 좋아하는 나는....

 

마치 장님처럼 책을 쓰다듬어 느낀다.

손으로 먼저 느끼고, 눈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느끼고,

그리고 표지 디자인과 종이질감과  때깔과 글꼴까지도...

그런 걸 눈여겨보는 버릇이 있다.

 

홍수처럼 마구 난무하는 인쇄물은 싫어도

언젠가는 나도  참한  내 책을 내겠다는 욕망일 것이다.

나, 어쩌자고....

버리고 무시해야 할 오욕칠정들,

비우고 또 비워내야만 할 것들.....

무소유가 즉 소유임을 깨달아야 할  한 갑자의 나이가 바로 코 앞인데,

 

박경리!

그녀의 글은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된 매끈한 농작물이 아니라

그냥 텃밭에서  생긴 그대로  툭툭 분질러서 따 온 호박이고, 상추고, 풋고추였다.

 

한산도 하고도 추봉도 민박집에 엎디어 누워 나는 제대로 된

글 쓸  종이가 없어 책 겉표지 안쪽에다 내 마음을 쓰노니~

 

어제는 바다에 지는 노을이 아름다웠고

오늘은 오전  풋풋한 태양빛에 가을 고추처럼 뒹굴거리며

굽굽했던 나를 말리노라~

햇살이여!

내 수피 골골이 쓸데없는 물기를 걷우어 가다오!!

제발!!

 

 2008년 8월 24일

 

 

 

 

 

몽돌해수욕장의 돌멩이

 

 

 

 

 

그 날...나는 절반의  시집을 읽고 접어두었던 거....

부산으로 가서  하루를 더 쉬고 올라오는 상행선 기차안에서야 마저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아는 박경리는 할머니였다.

언제나 텃밭에서 머물던 머리가 하얀, 글쓰는 후속들이 머물면

마치 혈육의 할미처럼 따뜻한 밥에 푸성귀, 된장으로 밥을 차려내던...문단의 할머니!!

책속의 그녀는 인테리신여성이었고.....

그녀가 진주여고시절...친구에게 건넸다는 만화같은 그림도,

서른 두 해의 멋진 아름다움도~~

 

담배를 손에 든.....흰고무신을 신은 그녀의 근영近影은 그런 모든 것 다 버리고...홀가분하게 훌훌 떠났을 것이다.

 

2008년 8월 26/이요조

 

 

 

옛날의 그 집 


                                        -박경리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일 잘하는 사내


              박경리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

젊은 눈망울들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깊고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

내 대답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울었다고 전해 들었다

왜 울었을까


홀로 살다 홀로 남은

팔십 노구의 외로운 처지

그것이 안쓰러워 울었을까

저마다 맺힌 한이 있어 울었을까


아니야 아니야 그렇지 않을 거야

누구나 본질을 향한 회귀본능

누구나 순리에 대한 그리움

그것 때문에 울었을 거야.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양장본)
카테고리 시/에세이/기행
지은이 박경리 (마로니에북스, 2008년)
상세보기

 

 

 


'이요조의 그림입문 > 이요조의 詩畵集'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개  (0) 2005.07.05
지렁이 키우기  (0) 2005.07.02
매미를 보셨나요?  (0) 2005.07.01
파리  (0) 2005.07.01
모기  (0) 2005.06.3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