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이면

실패한 그린 아니라고 내 놓을 수가.....?

아무리 연마중이래도 ....좀 그렇다.


아직은 내 그림의 패턴조차

형성되지도 않았는데...


아무튼 열심히 그리자.

노력은

타고난 재주도 앞지른다 했으니...


그런데 어쩌다가 어쩌다가

붓을 잡으니~~


9년전에는 블로그도 열심이고 그림도 열심이고

그러다 둘 중의 하나

결단을 낸다는 게 그리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지금은

둘 다 죽었다.

그러나 모든 여력이 미진한 나는

그리고 싶은 여린 실낱같은 열정만...

해도 해도 안 될 것 같은

저물녘에 서서..



 

 그냥....메밀꽃을 그려봤다.

비공개로 날짜설정이 다 돼서 제목도 없이 노출되었다.

나중에 내가 잘 그리게 되면 비교가 되겠지?


 


 

 

 이효석

장편소설보다 단편소설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이국에 대한 동경을 소설화했다. 호는 가산(可山).

이시후(李始厚)의 맏아들로 태어나 가정 사숙(私塾)에서 한학을 배웠다. 1920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 1925년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학과에 입학했다. 재학시절 조선인학생회 문우회에 참가하여 기관지 〈문우〉에 시를 발표했고, K. 맨스필드, A. 체호프, H. J. 입센, T. 만 등의 작품을 즐겨 읽으며 문학관의 정립에 힘썼다. 당시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들과 비슷한 경향의 소설을 써서 유진오 등과 동반자 작가로 불렸다. 1930년 경성제대를 졸업하고 이듬해 조선총독부 경무국 검열계에 보름 정도 근무하다 경성(鏡城)으로 내려가 경성농업학교 영어교사로 근무했다. 이때부터 작품활동에 전념하여 1940년까지 해마다 10여 편의 소설을 발표했다. 1933년 구인회에 가입했고, 1934년 평양숭실전문학교 교수가 되었다. 1940년 아내를 잃은 시름을 잊고자 중국 등지를 여행하고 이듬해 귀국했으며, 1942년 뇌막염으로 언어불능과 의식불명 상태에서 죽었다.

 

봉평문학관 입구는 책꽂이 형태로 디자인되었다.

입구 천정은 메밀꽃 소설의 중요 부분....

문학관에 올라서면...이효석 동상~

메밀꽃 필 무렵의 산실 그대로....

#그리고 문학관 안에는

물레방앗간,

비록 얽은 곰보지만  떡 벌어진 남정네,  허생원의  러브스토리가 시작되던 팔려갈 성처녀를 달래주던.....

▲'봉평장터' '장터 표식비'▼

 

◀본래 봉평장터에 있던거란다.

가산공원으로 옮겨 복원하고 봉평장터엔 정작에 표식비만 있다.

허생원이 속으로 은근히 흠모했던 주모 충주댁!

허생원과 충줏집이 실제 인물이라는 것이 알려져 있다.

 

 

여름 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여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마을 사람들은 거지 반 돌아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무꾼 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 있으나, 석유병이나 받고 고깃마리나 사면 족할 이 축들을 바라고 언제까지든지 버티고 있을 법은 없다. 춥춥스럽게 날아드는 파리 떼도, 장난꾼 각다귀들도 귀찮다. 얼금뱅이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온갖 피륙을 팔던 가게)의 허생원은 기어코 동업의 조선달에게 나꾸어보았다.

드팀전의 허 생원과 조 선달이 장을 거두고 술집에 들렀을때 벌써 먼저 온 동업의 젊은 녀석 동이가 계집을 가로채고 농탕치고있었다. 허 생원은 괜히 화가 나서 기어코 그를 야단쳐서 쫓아내고 말았다. 장돌뱅이의 망신을 시킨다고 말이다. 그런데 뜻밖에 그는 얼마 후 되돌아와서 허 생원의 나귀가 발광을 하고 있다고 일러 주는 것이었다. 허 생원은 어이가 없었다. 얽음뱅이요 왼손잡이인 허 생원은 계집과는 인연이 멀었다. 때문에 장돌림을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건만 아직 홀몸이었다. 그러므로, 자신과 늘 함께하는 나귀의 신세가 느꺼웠던 것이다.
밤이 들어 허 생원은 조 선달과 동이와 함께 나귀를 몰고 다음 장으로 발을 옮겼다. 봉평장으로 가기 위해서다. 달이 환히 밝았다. 달밤이면 으례, 허 생원은 젊었을 때 봉평에서 겪었던 옛일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개울가에 모밀꽃이 활짝 핀, 달 밝은 여름 밤이었다고 한다. 그는 멱을 감을 양으로 옷을 벗으러 방앗간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우연히 울고 있는 성 서방네 처녀를 만나서 어쩌다가 정을 맺었던 것이다. 그녀는 봉평서 제일 가는 일색이었다. 그는 오늘도 기이한 인연에 얽힌 이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동행을 하다가 허 생원은 이날 밤 동이가 아버지를 모르고 자라난 사생아임을 알게 되었다. 더욱이 그의 어머니의 고향은 봉평이라 했다. 허 생원에게는 맺히는 것이 있었다. 동이 어머니가 제천에서 홀로 산다는 말을 듣자 그는 놀라 개울에 빠지게 된다. 이튿날 그는 동이를 따라 제천으로 가 볼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문득, 그는 나귀를 몰고 가는 동이의 채찍이 동이의 왼손에 잡혀 있음을 똑똑히 보았다. 아둑시니같이 어둡던 그의 눈에도 이번만은 그것이 똑똑히 보이는 것이 었다.

오래간만에 가보고 싶어 동행하려나, 동이?
나귀가 걷기 시작하였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오랫동안 아둑신이같이 눈이 어둡던 허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걸음도 해깝고 방울 소리가 밤 벌판에 한층 청청하게 울렸다. 달이 어지간히 기울어졌다.

#메밀꽃은 아직 씨도 뿌리지 못했지만...

메밀꽃이 없는 봄 5월 27일엔 하지감자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이 감자 캐고나면 메밀을 심는다.

2년전 왔을 때, 똑같은 장소에서 찍었던 메밀풍경이다.(비교~)

여기저기 메밀꽃으로 하얗게 뒤덮힐 늦여름~~

그리고 하이얀 눈으로 완전 뒤덮힐 겨울풍경이 상상되는 곳!!

아! 겨울에 오고싶다. 겨울 봉평을 보고싶다.

문학관에서 내려오다보니 나 혼자 물레방앗간 뒷길로.....호오~

물레방앗간에서 하룻밤 정분으로 허생원은 ,,,,

성처녀는 동이를 잉태하고....

이 섶다리는 올 여름이면 큰 물에 쓸려 떠내려 갈테고

여름지나 다시  동네 사람들은 힘을 모아 새 섶다리를 엮고 ....메밀축제를 연다.(2년 전) 

눈에 보이는 이 곳 모두가 하얀 메밀꽃밭이 된다.

문학관에서 내려다 본 '효석문화마을'

5월의 봉평은 하얀메밀꽃 대신 층층나무꽃과 흰철쭉이 반겨주고 있었다.

 

# 효석의 생가와 집필처였던 집

이효석의 생가.

▲생가엔 효석님이 태어나고 

▼아래 보이는 붉은 벽돌집은 집은 평양에 거할 때 집모습 그대로 복원한 거라는데,

이 집에 살 때가 가장 행복했노라는.... 많은 창작품들이 탄생되고....

메밀꽃 필무렵도 이 집에서 쓴 작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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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필 무렵' 허생원과 나귀
 <메밀꽃 필 무렵>에는 주인공 '허생원'과 함께 그와 정서적으로 융합하는 동물로 '나귀'를 상징적으로 등장시켜 이 소설의 예술성을 한껏 높이고 있다. 즉, 주인공 '허생원'의 성격이나 작품상의 효과를 위해서, '나귀'의 과거 내력이나 초월적 운명과 함께, 그 형태상의 외모나 행동의 양상까지도 유사하게 설정된 것이 그것이다.
이리하여 양자 사이엔 공통점이 있게 되며, 정서적인 융합까지도 가능했기 때문에 서정적 정감을 더 한층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소설의 주제를 이끌어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나귀'의 목 뒤 털과 눈곱 낀 젖은 눈은 바로 '허생원'의 모습이요, 암나귀를 보고 발광한 늙은 '나귀'의 행위는 충주집을 찾아간 '허생원'의 행위와 부합되고, 단 한 번의 일로써 강릉집 피마에게 새끼를 보게 한 '나귀'의 운명은 '허생원'이 성서방네 처녀와 단 하룻밤의 인연에서 동이를 얻게 된 것과 같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허생원'과 '나귀'의 등식 관계가 단순한 묘사 관계에 머물지 않고, 주제와 결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원초적인 삶과 본능의 세계를 추구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의 합일점을 발견하고, 거기서 인간의 참된 모습을 찾으려는 이 작품의 기본 관념과 일치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인간 심리의 순수한 자연성을 허 생원과 나귀를 통해 표출하고 있는 낭만주의적인 소설이다. 강원도 땅 봉평에서 대하에 이르는 팔십리 공간적 배경으로 삼아, 그 길을 가는 세 인물의 과거사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본연적 사랑을 드러내고 있다. 늙고 초라한 장돌뱅이 허생원이 20여년 전에 정을 통한 처녀의 아들 동이를 친자로 확인하는 과정이 푸른 달빛에 젖은 메밀꽃이 깨알깨알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밤길 묘사에 젖어들어 시적인 정취가 짙게 풍겨나온다. 낭만성과 탐미주의 성향이 어우러진 이효석 문학의 대표작이다.
서정주의적 경향이 많으며 암시와 추리를 통해 주제를 간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대화 형식으로 플롯이 진행되며 반복되는 지명(地名)으로 의식과 감정을 고조시킨다. 낭만주의적인 경향이 많으나 파장 무렵의 시골 장터의 모습이나, 주인 허 생원을 닮은 나귀의 모습이나, 메밀꽃이 하얗게 핀 산길의 묘사같은 것은 뚜렷한 사실성을 가지고 서술되었다.
허 생원이 동이가 친자(親子)라는 것을 확인한 후의 모든 기쁨은 독자의 상상력에 유보되어 있다. 물론, 확인하는 과정의 중요한 단서가 된 '왼손잡이'가 과연 유전이냐 하는 의문은 걷어 치우고라도 허 생원과 친자로 예상되는 동이가 모두 장돌뱅이라는 사실은 부전자전(父傳子傳)의 동일성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모티브는 김동리의 [역마]에도 나타나 있다.

이 작품은 김유정과 같은 고향인 봉평에서 오래 살았다는 황일부 노인에 의해 거의 모든 등장인물, 특히 허 생원과 충줏집이 실제 인물이라는 것이 알려져 있다.

 

 

물레방아

 

 

메밀꽃이 없는대신 박물관에

가상의 메밀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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