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에 대해서 내가 아는 건 춘향전이 전부였다.

신분을 뛰어넘어 목숨과도 바꾸려 했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고장 남원!!

춘향전을 아니 당연 1광한루가 연상되고 (광한루(廣寒樓) 보물  제281호)
27년 전 진주에서 그 때는 이리라 불리는 익산으로 이사를 가면서 스쳐지나가고

이리와 진주를 자주 왕래하며 남원 고개를 넘을적마다 한양으로 길 떠나는 이도령을 생각했다.

그 때마다 저 도시 깊숙한 곳 어디메쯤 광한루가 있을거라 상상만했다.

 

남원 땅을 밟지 않았다 생각했는데 막상 추어탕 골목을 들어서자 나지막했던 옛집 골목집에서

15년 전 쯤 남원 추어탕을 먹고 갔던 기억이 불현듯 났다.

이제사 알고보니 바로 광한루 옆이었는데 말이다.

 

남원하면 영화에서나 드라마에서 많이 보아온 춘향전과 그네를 뛰는 아름다운 광한루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어서 아름다운 고장이라 믿고 늘 가보고 싶어 했는데...

인사동 백상미술관에서 모 전시회를 관람했는데....출신화가들이 남원이었다.

아직도 모아놓은 도록을 뒤지면 나올 것 같은 기억의 그림들은 유화로 남원의 아름다운 풍경들이었다.

 

그랬던 남원을 올 해 연거푸 두 번을 가 볼 기회가 생겼다.

해서 사진도 저녁에 찍은 사진과 비오는 날 찍은 두 종류의 사진이 모아졌다.

테마공원 지리산 뱀사골 혼불문학관 허브밸리 한꺼번에 다 몰아 쓰자니 숨이 차고 나누자니

맛집까지 10꼭지의 엄청난 글들이 나오겠다.

 

 

                    두 번의 방문에 해설사가 다 없었다.

아예 해설사가 필요 없었을까?

사랑의 화신들이 사는 곳! 즉 청춘남녀 사랑의 전설 같은 광한루라서?

 

 

 

                   광한루는 아마도 외지에서 오는 관광객이라면 꼭 가봐야 할 첫 손가락을 꼽을 장소다.

누각중에 가장 빼어나게 아름답다는 광한루! 너무 알려져서 외려 잘 가지지 않을 장소이기도 하다.

춘향선발대회도 TV를 통해 다 봤으니, 관광팀들 몇몇이 늘 보던 그저 그런 곳이라고 외면,

빼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에도 그런식의 외면을 늘 당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능소화가 곱게 핀 광한루 담을 잘 돌아서 간 것까지는 좋으나 얼른 그 뜻을 가늠할 수 조차 없는 ...

아니 예서로 씌어 얼른 읽어내지도 못할 <청허부>란 뜻은 도대체 뭘까?

어디에도 광한루라는 대표적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검색을 해보니 그제야 아하....

우아한 곡선과 자연스런 풍우판등을 가진 청허부는 들어오면서부터 우리나라 전통 건축문화와 자연스럽게

접하게 해주는 곳이다.

정면의 중앙에는 일중(一中) 김충현이 쓴 청허부란 현액이 걸려 있는데 「청허부」는 하늘나라 옥경의

광한 청허지부」에서 따온 것으로 이 문이 월궁의 출입문임을 상징하고 있다. 고 되어있다.

 

                  그럼 청허부 곁에 있는 저 사자인지 호랑이인지 또는 화마를 막아주는 해태인지 모를 석상의 의미는?

집에 와서 검색을 해보니 남원 시내를 내려 보는 견두산이 있단다.

마치 개머리처럼 생겨서 좋지 않은 기운을 준단다.

그래서 ...조선시대 당시 전라감사였던 이서구인가 하는 사람이 호석을 세웠다는데

막상 그 사진은 찍질 못했다.

사진을 찾아보니 무척이나 해학적으로 생겼다.

호랑이가 어찌 이리 생겨서 개는 커녕 쥐새끼도 안 무서워하게끔 친근하게 생겼다.

 

                    2광한루원의 아름다운 돌다리 오작교를 건너보고....

물고기 밥을 주는 사이좋은 현대판 춘향과 몽룡도 스리슬쩍 카메라에 담아보고

첫 번째 방문에는 춘향극이 공연되었는데....오늘은 비가 와서 취소되었다 한다.

첫 날은 그럴 일이 좀 있어서 창극에 집중을 하지 못했는데, 정말 아쉽다.

 

 

 

서문에 버스가 대기한다기에 나왔더니 너무 일찌감치 나왔나보다.

버스는 없고 비는 내리고 남원 춘향골 전통목기 골목을 구경했다.

추석이 다가오는데 아무래도 곱게 다듬어 반질거리는 제기가 눈에 띈다.

남원목기로 25만원이란다. 꽤 괜찮은 것 같다.

제기보다 나무로 깎은 작은 상이 마음에 든다.

아! 이제야 사진으로 보니 초등학교 4~6학년 때 ,,,여느 아이들과는 다르게

어머니께 유일하게 목기에다 밥을 사달라는 부탁을 했던 나의 도시락처럼 생긴 

목기도 보인다.  오래전에...글로 그림으로도 그렸는데...

                   

다음에  또 갈 기회가 된다면.....소장하고 싶은 작은 상과 내 추억의 찬합을 꼭 구입해야겠다.

<도시락의 추억 '목기찬합'   http://blog.daum.net/yojo-lady/582430>

 

 

 

남원여행 후기글은 생각날 때 마다 하나씩 쉬엄쉬엄 올리려한다.

오랫동안 내 가슴에 여운을 ....지리산 뱀사골을 서서히 핥고 지나가는 물안개마냥

그렇게 천천히...

 

 

 

                                                                                         글: 사진/ 이 요조

 

 

 

청허부앞에 이 석상은 뭘까? 무슨 의미를 담고 있을까? 검색을 했더니~

 

견두산(본래는 호두산·수지면 고평리 소재)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 인데, 이 산에는 들개들이 많이 살았고
이놈들이 떼를 지어 울고 나면 반드시 남원에 큰 불이 나거나 호환이 나더라는 것이다.
영조 때 관찰사 이서구가 이를 풍수로 해결하였으니, 호두산 이름을 개란 뜻의 견두산으 로 바꾸고 개의 천적은
호랑이이니 호석을 고을에 세워 견두산을 향하게 하면 그 재앙을 피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실제로 호랑이 새끼를
개호주 라부르는 것을 보면 호랑이는 개의 천적인 것이 틀림없는 모양이다.
이 호석은 원래 광한루 앞 구시장에 있었으나 지금은 새로 만들어 광한루안 완월정 옆에 설치되어 있다.

 

 

 

달나라를 즐기려는 풍류의 누각 완월정

 

월궁의 출입문을 상징한다는 청허부를 지나 연못에 정자다리가 걸쳐있는 완월정이 한 눈에 들어온다.

완월정은 지상인이 천상의 세계를 꿈꾸며 달나라를 즐기려고 지은 수중누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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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과 몽룡이 사랑을 맹세한 오작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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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누(樓)란 사방을 트고 마루를 한층 높여 자연과 어우러져 쉴 수 있도록 경치 좋은 곳에 지은 건물을 말한다.이 건물은 조선시대 이름난 황희정승이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으로 처음엔 광통루(廣通樓)라 불렀다고 한다. 광한루(廣寒樓)라는 이름은 세종 16년(1434) 정인지가 고쳐 세운 뒤 바꾼 이름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인조 16년(1638) 다시 지은 것으로 부속건물은 정조 때 세운 것이다.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누마루 주변에는 난간을 둘렀고 기둥 사이에는 4면 모두 문을 달아 놓았는데, 여름에는 사방이 트이게끔 안쪽으로 걸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또한 누의 동쪽에 있는 앞면 2칸·옆면 1칸의 부속건물은 주위로 툇마루와 난간을 둘렀고 안쪽은 온돌방으로 만들어 놓았다. 뒷면 가운데 칸에 있는 계단은 조선 후기에 만든 것이다.춘향전의 무대로도 널리 알려진 곳으로 넓은 인공 정원이 주변 경치를 한층 돋구고 있어 한국 누정의 대표가 되는 문화재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본문으로]
  2. 광한루원 명승 제33호신선의 세계관과 천상의 우주관을 표현한 우리나라 제일의 누원이다.원래 이곳은 조선 세종 원년(1419)에 황희가 광통루라는 누각을 짓고, 산수를 즐기던 곳이었다. 1444년 전라도 관찰사 정인지가 광통루를 거닐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여 이곳을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칭한 후 ‘광한루’라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1461년 부사 장의국은 광한루를 보수하고, 요천의 맑은 물을 끌어다가 하늘나라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만들었다.호수에는 지상의 낙원을 상징하는 연꽃을 심고,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에 가로막혀 만나지 못하다가 칠월칠석날 단 한번 만난다는 사랑의 다리 ‘오작교’를 연못 위에 설치하였다. 이 돌다리는 4개의 무지개 모양의 구멍이 있어 양쪽의 물이 통하게 되어 있으며, 한국 정원의 가장 대표적인 다리이다.1582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철은 광한루를 크게 고쳐 짓고, 은하수 연못 가운데에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상징하는 봉래·방장·영주섬을 만들어 봉래섬에는 백일홍, 방장섬에는 대나무를 심고, 영주섬에는 ‘영주각’이란 정자를 세웠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왜구들의 방화로 모두 불타버렸다.현재의 광한루는 1639년 남원부사 신감이 복원하였다. 1794년에는 영주각이 복원되고 1964년에 방장섬에 방장정이 세워졌다. 이 광한루원은 소설 『춘향전』에서 이도령과 춘향이 인연을 맺은 장소로도 유명하여, 1920년대에 경내에 춘향사를 건립하고 김은호 화백이 그린 춘향의 영정을 모셔 놓았다. 해마다 음력 5월 5일 단오절에는 춘향제가 열린다. [본문으로]
◎ 이름: 이요조
2004/4/16(금) 01:01 (MSIE6.0,WindowsNT5.1) 211.227.65.179 1024x768

찬합  

                       찬합






    [도시락]

    요즘 아이들 좀은 측은하다.
    도시락을 모르니...
    그에 대한 추억거리도 당연 사라질 게 아닌가?

    겨울이면 갈탄이든 나무든
    뜨겁게 달아오른
    난로 위에 포개 포개 얹혀지던
    도시락~
    김치 냄새가 진동을 하던...
    가방 속에서 책을 늘 김치 물로 물들이던...

    나는 좀 유별났다.
    윗 그림은 나의 초등에서 중학교 1학년?까지 사용한 목기 도시락이다.
    아마도 다른 아이들 같으면 줘도 안 들고 다닐텐데...

    우리 나이에는 양(은)철도시락 세대였다.
    필통도 주로 양철이었다.
    양 쪽으로 '영도다리'처럼 뚜껑을 열어젖히던...
    늘 달그락거리는 연필심이 잘 부러져 나가고...
    나는 고학년 언니가 경주 수학여행지에서
    사다 준 불국사, 다보탑이 그려진 나무 필통을
    좋아했듯이...

    어느 날,
    차단스에 고이 간직한 목기찬합을 가리키며 거기에다
    오늘부터 (점심)밥을 싸 달라고 생뚱맞은 주문을 했다. 초등 4.5학년 때쯤?

    도시락 무게만도 실히 나갔다.
    어머니는 괴팍스런 딸아이의 주문도 마다않고 아예 이 도시락이 들어가게끔 아주 예쁜 주머니를 만들어주셨다.

    그 당시 반찬은 늘 굴비 알 베인 가운데 토막이었는데도
    난 그 게 영 싫었다. 약간 창피스럽기까지...

    아마도 지금 그 굴비는 백화점에 가면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의
    가격대가 아니고는 구경도 못할 노릇인데...

    그 당시엔 계란이 더 귀했다.
    난 어기차게 계란 반찬을 졸라댔지만

    대신 장아찌 종류를 자주 사주셨다. 된장에 박은 깻잎 장아찌 고추장에 박은 마늘쫑등...
    아 참 또 있다.
    내가 즐겨 먹는 싸리버섯, 그 것은 정말 먹기 좋았다.
    닭고기랑 함께 볶아놓으면 난 고기는 안 먹고 버섯만 골라 먹었다.
    버섯이 더 고기 맛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도시락 찬은 정말이지
    웰-빙, 그 자체였는데.....

    중등 1학년 때까지도 들고 다녔던 기억이 나는 데
    어느 날인가 그만 깨박치고 말았다.
    원통형 제작이라(로구로) 뚜껑에 금이 가고 만 것이다.

    아! 아까운 내 도시락!
    그리고는 어디로 사라졌지?
    내 추억의 도시락...

    고집쎄고
    뭔가 유별난 것을 지향했던..나의 전유물
    내 기억 속의 멋진 도시락, 목기 찬합이여~~

    엄마나 이모가 점심때쯤에 갖다주시는 적도 있었지만
    밥이 지금의 보온도시락만큼은 아니어도 한겨울에도 차지않았으며
    봄가을에는 제법 미지근하게 보온도 잘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어머니의 포근하게 만들어주신 도시락 주머니 탓도
    있겠지만....

    아! 어머니~~~



    이 요조


     
                       
굴비


나무필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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