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위를 떨치던 무더위도 한 풀 꺾였나요?
오늘 아침은 어찌나 써늘한지 옷을 다 껴 입었어요.
가을...

가을이 왔나봐요!


그렇게나 기다리던 가을인데 왜 이렇게 오스스하지요?

사람마음은 참 간사해요.
가을은 이래서 옆구리가 시린 계절인가봐요!

지난 영주 부석사 여행 때 담아온 사진 몇 컷이예요.
가을을 예고하는...
아니 가을이 물씬 풍겨나는 사진 맞아요.

벌개미취와 무지개,  코스모스와 나비,
고추잠자리~ 붉은 백일홍! 방아깨비

 

청솔모는 잘 익은 잣송이를 물고가다가 떨어트렸나봐요.
연인들이 잣을 주워서 잣을 까고 있는 모습을...ㅎ~

청솔모도 이제 스를 월동준비를 해야 하나봐요!!

 

더위가 한 풀 꺽이면 이내 소슬한 가을!

가을은 바쁜 사람들에겐

채 느끼기도 전에 저만큼 가버리고마는....계절,

이 좋은 계절이 아쉽게 사라지기 전에

여행 한 번 떠나보심은 어떨까요?

파아란 하늘 흰 구름이 떠 있는 자연의 품으로 떠나요.

 

39333

영주 부석사 여행길에 / 이요조

 청솔모 사진이 여엉,,,,그래도 올려보았어요!

 

 

 

 

 

 

 

 

 

 

 

영주 팸투어 1박2일 여정길에 하룻밤 신세 진 숙소, 성균관 영주선비문화수련원

 

지난 밤 소백산자락을 둘러보고 피곤에 지친 일행이 묵을 수련원이다.
고택체험은 두어 번 해보았지만 한옥으로 된 수련원은 처음이다.
거의 9시가 다 되어 방배정을 받아선지 더구나 선비촌 가까이 문화수련원 '성균관'이 있어선지 도시의 불빛은 없다.
그저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들어왔다는 기억!! 이층누각의 솟을대문 '조영루'가 턱하니 버티고 섰다.
조영루를 들어서니 또  대문이 있고 담장안에 한옥은 한 채 마다 그 이름을 달리하고 있다.  담교제, 예관 등 등....우리가 묵을 곳은 예관(禮館)이었다.  

피곤에 지쳐 하룻밤 잘 묵고나니 다음날 아침 둘러 본 그 곳은 지난 밤 과거로 되돌아 간 듯....아침 이슬도 청량하게 솟아오르는 태양에 반짝이는 ....선조들이 거닐던 바로 그 곳 처럼,

 

 이른 아침 떠오르는 태양의 조명은 신비하다. 새로운 에너지를  다시 충전시키는 힘이다. 시작이다.

조양루(朝陽樓)

아침 햇살이 비치는 누각이라!! 그 이름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조양루 솟을대문 이층누각이 위용을 과시하듯 성균관

이 부분은 해설사가 따로 없어 애석하지만 설명 할 아무런 자료가 없다.

 

밤늦게 연수원 숙소에 들며 몇 컷~ 

 

 

  연수원 생활관 ~  

 

 우리가 묵을 방은 예관

아침에 일어나 방문 밖 풍경

선비촌 고택체험엔 에어컨은 없단다. 그 곳은 예전 그대로 체험해보라는 뜻으로~~  성균관문화연수원은 각방마다 에어컨 비치 

다른 건 아쉬움이 없는데....거울이 없다.

방에 냉장고가 없는대신 바깥에 정수기가 놓여있고   욕실 입구에 등을 어떻게 끄나.....고심했는데 이런 우리 방 안에 있다. 아무런 표시도 없이~~

 

화장실 내부  

 

욕실내부/ 마당이 마사토라 밟아들어오는 모래가 많다.  

  

 갑자기 우리가 갔음일까 배수구엔 오래묵은 머리카락들이 치우려해도 따로 둔 휴지통이 없다.

sorry!  바깥 정수기 옆에 휴지통이 있네요!....하지만 정수기 바로 옆에 .... 이건 좀 아니잖에~ ㅎ

 

 고단한 몸인데도 아침 6시에 습관처럼 눈이 뜨이다. 아직은 미명이다.

 

 조양루 바깥에서 바라 본 '성균관'

 일행중 부지런한 이는 벌써...

 눈 부신 아침 햇살이다.

 이슬에 젖는 것도 무시한 채.....뭔가 카메라를 열심히 드려대는 열정이 그의 등에서도 느껴진다.

 쇠뜨기풀에 맺힌 이슬을 담다.

 닭의장풀 꽃잎에서 하룻밤을 유한 녀석도....

옴 몸이 이슬에 젖은 외다리 방아깨비!! 

ㅎㅎ 거꾸로 매달려 잠 든 나비, 늦잠자는 중.... 어차피 일찍 일어나야 이슬 때문에.....?

 해당화

 나팔꽃! 아침마다 새로이 피어나는 꽃!! 아침꽃 맞다.

 무궁화 한 나무에 두 가지 칼라톤이?

연이 자라는 연못 

 정자의 그림자를 담아보다. 아침식사를 하기위해 선비촌 저잣거리로 내려섰다.

저잣거리 이야기는 또 나중에....

성균관 영주선비문화수련원 054-631-9888  

 

   

 

 서원의 소나무도 공부를 한다? 라는 뜻의 소혼대 소나무도 서원 담장너머로 기울어져 있다.

 

가을이라 하지만 아직은 녹음이 짙은 초가을,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경북 영주시에 있는 소수서원1을 다녀왔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2으로 유교의 이상을 간직한 민족정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공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임금이(조선 중종37년) 이름을 지어 내린 사액서원이자 사학(私學)기관이다.

 

소수서원명륜당, 일신재, 직방재,등이 한참 보수공사중이어서

그렇게 구석구석 상세하게는 살펴볼 수가 없었지만....

어느 한 군데 할 것없이 아주 문화재적 가치가 많고 그 이야기가 무궁무진한지라

감히 어느 부분서 부터 풀어서 필설로 이어가야 할지 난감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나마 다녀온 그 감흥마저 사라지기 전에

미흡하나마 느낌대로 차근차근 요약해야겠다.

 

 

이 곳은 소수서원의 공원, 즉 공부를 하던 유생들이 잠시 머리를 식히던 곳으로,

소혼대(消魂臺)라 불리워지며

유생들의 머릿수대로 소나무가 심겨져 있다한다.

 

 

옮겨쓰자면, 유생들이 공부하며 머리를 식히던 자리로서 <안연소혼자 유별이이의>이라는

이별을 노래한 옛 詩 <별부>에서 따온 이름이다.
고려말 안축의 <죽계별곡/竹溪別曲>에 보이는 <숙수루/宿水樓>의<별대>로 比定이 되는 흔적이 남아있다.

 

 

조선시대 최고의 학부다.

국가가 지원했으니 공립의 대학교인 셈이다.

소수서원 이야기를 해설사님을 통해서 절반은 듣고 절반은 흘려도...

얼마나 무궁무진 재미가 나던지...석달하고도 열흘을 다뤄도 끝간 데가 없을 지경이다.

나는 언제나 뒷이야기가 관심사다.

 

 

 

  소수박물관3


박물관 또한 영주의 귀중한 유물과 유적을 체계적으로 보존 전시함으로써
지역문화의 활성화와 생동감 있는 역사 체험을 위한 공간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었다.

 

 

사액[賜額]4 으로 받은 현판

소수서원(紹修書院) -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

 

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린 서원. 흔히 서적, 토지, 노비 등도 동시에 하사하였으며,

조선 명종 때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 서원에 ‘소수 서원’이라 사액한 것이 시초이다. 

 

 

 

 현판(탁본용)을 탁본뜨다.
 

 

실제 현판이나 비석의 탁본은 아니고 탁본이 어떤 것인지 일러주기 위한 양각의 글씨에 손 쉽게

먹물 방망이로 두드리기만 하면 되었다.

실제 (비석이나 돌에서)탁본을 뜨면 음각위에서 행해지므로 글씨는 하얗고 종이에 먹을 자근자근 묻히면 되겠다.

무슨 탁본이든 그 자체에 바로 먹물을 발라 뜨지는 않는다.

먹물도 화학품이므로 오랜세월 풍화에 시달려온 모든 사물은 독한 먹물에 바스러지기 쉽상이기 때문이다.

사진이 발달하지 않던 옛시절에 탁본을 통해 귀한 글씨를 채탁해 서첩으로 꾸며 글씨 연습에 이용하기도 하고,

표구를 해서 걸어두기도 했다 한다.

 

 

 

탁본요령

 

1/탁본판,수건, 솔에는 절대 먹물을 묻히지 않는다.
2/탄본판에 종이를 얹고 분무기로 적당히 물을 뿌린다.(지면이 매끈한 쪽이 윗부분)
3/수건으로 물기를 제거한다.
4/탁본판의 글씨가 도드라지도록 수건으로 꾹꾹 눌러준다.
5/작은 글씨나 세밀한 부분은 솔로 가볍게 두드린다.
6/먹물을 묻힌 솜방망이를 다른 솜방망이나 종이에 두드려 농도를 엷게 조절한다.
7/솜방망이로 탁본판 글씨를 따라 골고루 두드려준다.
8/완성이 되면 살며시 떼어내어 말린다.

 

 

오른쪽 敬(공경할 경)자 이야기도 아주 재미있다.

소수서원을 가로질러 흘러내리는 물 가 바위에 새겨진 '敬' 글을 탁본해 두었다.

이  한 글자에 아주 재미나고 비밀한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한다. (다음글로~)

 

 

실은 솜방망이 둥근 자국이 나지 않게 깔끔하게 떠야 옳은데...

 

 

탁본의 떠 오는 게인의 의미는 글을 쓴 사람의  글씨를 직접 뜨므로

글씨속에 내포된 정신세계까지 엿보려 함이다.

그런데..마지막 '명종대왕'의  중요한 낙관을 제대로 못찍었다는 점이다.

 

 

흔히들 낙관을 서예나 그림을 그리고 찍는 도장만을 이름하는 줄 흔히 알고있지만

 낙관은 (낙성관지/落成款識)를 줄인 말입니다.

글씨를 쓴 사람의 연대와 호등을 간단하게 쓰는 것을 총칭 아우러 말함입니다.

 

 

소수서원 이야기를 생각나는대로 연이어 쓸 생각입니다.

 

글/사진:이요조

 

  1.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임금이 이름을 지어 내린 사액서원이자 사학(私學)기관이다. 조선 중종 37년(1542)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안향을 제사하기 위해 사당을 세웠다가, 중종 38년(1543)에 유생들을 교육하면서 백운동서원이라 하였다. 명종 5년(1550)에는 풍기군수 이황의 요청에 의해 ‘소수서원’이라 사액을 받고 나라의 공인과 지원을 받게 되었다. [본문으로]
  2. 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린 서원. 흔히 서적, 토지, 노비 등도 동시에 하사하였으며, 조선 명종 때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 서원에 ‘소수 서원’이라 사액한 것이 시초이다. [본문으로]
  3. 영주 소수박물관은 유교와 관련된 전통문화유산을 체계화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유교의 이상을 간직한 소수서원을 통하여 민족정신의 뿌리를 찾아가기 위한 공간인 셈이다. [본문으로]
  4. 1550년(명종 5) 이황(李滉)이 풍기군수로 부임해 와서는 조정에 상주하여 명종(明宗) 임금의 친필로 된 `소수서원(紹修書院)`이란 편액(扁額)을 받는데 이를 사액(賜額)이라고 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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