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포연등축제로 너무 바쁜 시기에 템플스테이 와서는

제대로 수양도 못받고 가나 했더니

의외로 그 공허함을 능혜스님이 다 채워주시네~~

아~ 중생들과 함께 스스럼없이 어우러지시는 스님!! (감사합니다)

 

고정관념이란 벽이 있는 한 중생들 마음속으로 들어 올 수가 없지요.
함께여야...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이 같아지는 법을 깨닫고 갑니다.

 

 

좌중을 쥐락펴락하는 템플스테이 지도법사 능혜스님

 

때로는 소탈하고, 소녀같이 앳되다가 진지하고, 온유하고

밝았다가 장중하고, 호탕하고...스님의 향기와 사랑이 가득하더라~

 

 

수덕여관과 이응노화백....그리고 수덕사와 얽힌 이야기들

수덕사를 찾으면 선수행스님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는....

 



 

 

역사가 짧은 미국의 스케일 방대한 대단한 축제,

영국의 고전을 그대로 가져온 <르네상스축제>

르네상스축제는 아예 장소가 주마다 정해져있어 연중 한 달 동안 축제가 계속됩니다.

그러니까...어느 주는 땡스기빙데이에 어느 주는 한여름에 그렇게 한 달 동안 치러지는 행사입니다.

뉴욕주 로체스터에는 한 여름에 이뤄졌지요.

무거운 옛 전통 옷을 차려입고도 시원한 숲속이라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했습니다.

여기저기 옛날 역사를 재현하고 노래판 춤판이 어우러지는데...

숲 속 의자에 많은 인파가(5~600명) 모여앉아 자지러질 듯 

와르르 와르르 웃음이 넘어갈 듯 웃어젖히는데 발걸음이 다가갔지요.

수녀 한 분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아마도 말만 꺼내기 무섭게 좌중이 그렇게 즐거워 할 수가 없는 광경을 보고는

아....대중과 함께 하는 자리~ 저 것이 진정한 종교의 전파가 아닐까?

생각했던 그 기억이 다시금 일었습니다.

 

 

끝나고 스님이 커피를 사주신다.

안 그래도 템플스테이 마지막에는 주지스님과 차를 마시며

말씀을 듣는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ㅋㅋ

우리 같은 중생들에겐 커피가 제 격이지 뭐~

일행들이 들어서자 스님께 평소 즐겨 드신다는 에스프레소를~~? 오잉?

스님< 너무 아침이라...>

맑은 목소리~ 갱상도 사투리로 간단히 사양~

날름 내가 청한다.

그 퇴주잔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제게 주시면 안 될까요?

찬 우윤데...(일행이 줄을 선 관계로) <예 좋아요>

찬 라떼?를 받아들고 돌아서는데....케이크도 마련되어 있다.

<ㅠ.ㅠ 케이크 먹으려면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제 격인데....>

<예, 여기 이거 드세요>

얼른 두 잔째 가져다주시는 ....감사 감동을~~

 

수덕사 일주문 밖

일주문 밖에 예전 매표소로 쓰이던 곳이 작은 찻집이 되었다.

매표소는 더 밀려 나 있다고 한다.

 

 

 

석가탄신일 열흘을 앞두고 수덕사로 향했습니다.

여행의 주목적은 사진인지라 내포 연등축제를 겨냥하여 수덕사 템플스테이를 신청했지만...

이를 어쩌지요? 예산을 돌며 구경하고는 밤늦게 도착한 수덕사~ 공양시간도 끝나고 내포 연등축제로 바람 부는 한 데서 지쳐갔지요. 덕숭총림 수덕사가 큰집인지라 스님들 모두 정신이 없으신 와중에 밤10시 넘어 도착하여 씻고 나니 다들 절집인지 제집인지 모르고 잤습니다.

 

우리들 일행을 고려하여~ 다음날은 아침 공양을 끝내고 자유롭게 수덕사를 촬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초파일을 앞 둔 터라 경내에는 연등이 신록 사이로 꽃처럼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난 후 능혜스님(템플스테이 담당스님)의 안내에 따라 설명을 차근차근 들으며 경내를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시기상 때가 때인지라 ~~

물론 저희들도 빡빡한 일정에 약간의 무리가 따르고 해서 조금 다른 템플스테이 형식이었습니다.

 그래서...저희들은 더 좋았다고 할까요?

여여한 수양은 못했지만...저희들이 알고자 했던 수덕사의 궁금증은 웬만큼 다 풀렸습니다.

 

천년고찰 수덕사 절집은 구석구석이 아름다웠습니다.

 

 

법고각에서 바라본 금강보탑↗은  남북통일과 민족화합을 염원하는 의미.

 

금강보탑은 성역화 중창불사 중 조인정사를 해체하면서 전탑좌대가 발견된 그 자리에 2000년 화강암으로 조성되었다.
3층석탑인 금강보탑 기단부의 면석에는 문수 보현 관음보살 등을 부조해 보살의 자비를 상징하고 사천왕상은 이를 지켜주는 의미로 함께 부조되어 있다. 기단부의 귀부분에는 사자상을 조각하여 세웠다.

금강보탑

대웅전/목조 건축물로 고려시대에 유행된 주심포 양식이고 정면 3칸, 측면 4칸 규모의 맞배지붕이다.

 

수덕사의 설립은 학계에서 대체적으로 백제 위덕왕(554~597) 재위시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나,
건축된 연도가 기록등에 의해 확실한 대웅전(국보49호)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건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후 조선시대에 와서는 重修記에 의하면 중종 23년(1528), 영조 27년(1751)~46년(1770), 순조 3년(1803)에 색채보수, 부연과 풍판의 개수등 4차례 보수한 기록이 있다.
1937년부터 1940년까지 만공스님 대에는 대웅전 전체를 해체보수하였고 이때 포벽에서는 고려.조선 양시대에 걸쳐 그려진 벽화가 발견되어 주목을 끌었다.
현재 대웅전 건물 내부 대들보에 남아있는 금룡도는 우아한 색채와 생동감있는 필치의 걸작으로 고려 불교미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대웅전 기도

 

관음바위에서 바라본 대웅전

 

 

아무런 설명이나 사전 지식 없이 대웅전 측면이 너무 아름다워서 사진을 여러장 찍었다.

그랬는데,,,,역시~

 

목조 건축물로 고려시대에 유행된 주심포 양식이고 정면 3칸, 측면 4칸 규모의 맞배지붕이다. 측면의 맞배지붕과 노출된 목부재의 구도는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건축된 연도가 확실하고 조형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 건축사에 매우 중요한 건축물이다.

 

라는 설명을 듣고는 나도 이제 아주 청맹과니는 아니구나 하는 기쁨이 생겨났다.

 

비바람을 막기위해 풍판대신 길게 나온 측면 목부재의 구도가 아름답습니다.

 

대웅전 앞으로는 통일신라만 고려초에 제작된 삼층석탑

 

충청남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03호인 수덕사 3층 석탑

수덕사 3층 석탑은 조인정사(祖印精舍) 건물 앞쪽에 놓여 있는 화강암으로 만든 일반형 3층석탑으로 2중 기단을 가지고 있다.
상층 기단은 4매석을 조립하였으며 각 면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撑柱)가 표현되어 있다.
탑신부는 2층 탑신과 초층 옥계석이 약간 파손되었으나 다른 부재는 완전하다.
옥계와 탑신부는 각각 1석으로 되어있으며 1층은 5단의 옥개받침을 하였으나 2·3층은 3단의 옥개받침만을 가지고 있다.
상면에서는 1단의 받침으로 그 위에 탑신을 받고 옥개석은 반전이 심한 편으로 고려시대 석탑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탑은 3층 옥개석과 노반이 1석으로 되어있고 그 위에 보륜과 보개가 남아 있는데 전체적으로 균형미를 갖춘 탑이다.

 

 

초파일 영가를 위한 백등~

 

 

보랏빛 붓꽃(아이리스)

 

아침 안개에 묻힌 수덕사 절집

 

가지런히 이마를 맞대고 두런거리는 듯한

절집 지붕들~

 

관음바위와 관음보살

 

관세음보살의 화현인 덕숭낭자 전설

아주 오랜 옛날 수덕사 절터였던 이 곳 동네에는 참한 아가씨가 있었답니다.

총각들이 색시 삼으려 줄을 섰다는군요!

처녀는 제안을 했답니다.

내일 아침까지 긴 불경을 외워오는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막상 그 중 하나인 청연과 혼인 첫날밤 버선만 놓은 채 바위 안으로 사라졌답니다.

그 뒤로 버선을 닮은 버선 꽃이 피는 나무(골담초)가 자라났다는 능혜스님 이야기와

 

검색을 해보니(약간 다른 이야기~)

 

첫 눈에 반한 수덕도령의 청혼에

 덕숭은(지금의 덕숭산)수덕총각에게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의 모실 절집을 지어달라고 했고

양반이자 부잣집 아들인 수덕도령은 절을 지었는데,,,

오로지 마음은 짝사랑하는 덕숭아가씨 뿐인

마음으로 건축을 서둘러서

몇 번이나 화재로 소실하고

드디어 불심으로

아름다운 절은 짓고

첫날밤을 치르려는데...

버선 한 짝만 남겨두고는 바위 속으로 사라졌다는.....

그리고 버선꽃이 피었다는 전설이~

 

 

 골담초 여린 꽃몽우리를 본 듯한데 사진에는 안 보이는군요!

 

 

 

관음의 버선꽃, 바위는 관음바위,  버선꽃은 바로 골담초!

영주 부석사의 의상대사의 지팡이라는 조사당앞에 철망에 가려 보호된 나무(선비화)도 골담초!
골담초와 불교는 무슨 연관이...?


 

비구니승만 기거하는

 석남사처럼 왼쪽으로 같은 계곡물이 있는 수덕사!

 

목수국이 아름답다.

절집에 가면 요맘때쯤 목수국이 초파일 앞두고 한창이다.

그래서 불두화인 줄 알고 있었는데....

석가모니의 곱슬머리를 닮았대서 佛頭花란다.

 

 

사월초파일경 즈음에 만개하는 불두화

절집에 가면 불두화가 연등과 함께 만개해 있는 초파일 풍경이다.

 

 

충청남도지정 문화재자료 제181호인 수덕사 7층석탑

 

 

 

 

 

사진을 찍어 올리다보니 어떻게 대웅전서부터 아래로 거꾸로 나열되었습니다.

수덕사는 완만한 덕숭산의 구릉을 따라 삼단과 석축을 쌓고 가장 위쪽에 대웅전을 배치한 전형적인 산지형 가람으로

도입·전개·결과의 연속성과 상승효과를 통한 대웅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앞글

수덕사 템플스테이 (솔숲 풍광이 너무 좋아!)

http://blog.daum.net/yojo-lady/13746993

 

 

 

 

 

 

수덕사 소나무

 

 

천년고찰이 아니라

천년하고도 오백여년의 (백제)고찰입니다.

여태 뭘 하고 다녔는지 한 갑자 훌쩍 넘겨서야

수덕사 절집에 처음 당도했습니다.

 

수덕사 절집 이야기에

앞서 템플스테이를 여러 군데 다녀봤지만

수덕사만큼 완벽한 템플스테이 수양관 건물은 처음입니다.

 

요즘은 창호가 좋아...

절간의 고풍스러움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문고리의 열고 잠금이

용이한데다가 방충망 블라인더까지 완벽합니다.

방충망 귀퉁이는 적당히 떨어져서

배고프다 앵겨 붙는 모기 한두 마리에게

보시를 해도 좋을 텐데...

 

 

너무나 방음이 잘 돼서 불만입니다.

밤에는 불을 꺼도 새어 들어오는 괴괴한 달빛과

어디선가 흐르는 개울물소리~ 

시끄럽게 울어대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뒤섞여 들어와

이리저리 뒤척이며

세상에서 살아 온 나날을 곰곰 되짚어보며

자성의 시간을 가져도 좋을텐데...

 

 

샤워실도 중간 마루가 있어 옷을 벗고 입고

선반에 두기까지 ..... 아주 편리합니다.

방안에 일자로 뻗은 나무 옷걸이도

아주 좋습니다.

.

.

여기까지는 그저 행복한 불만입니다.

.

.

.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개키려고 창문을 여니

지난 밤 오후에 도착해서 미처 보지 못했던

소나무가 그려진 천하제일의 그림이 창틀 프레임 안에 가득합니다.

 

작금에도 숱한 선인들이 줄을 잇는 도량의 이유를 알만합니다.

아침에 자유 시간에 대웅전 뒤뜰을 거닐다가

아침안개 자욱한 소나무 숲의 정경에

넋을 잃었습니다.

 

청령포소나무 숲이 다들 좋다지만

섬 안의 평지에 있는 소나무와

산비탈에 기대어서서  비스듬한 몸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아픈 허리 짚어가며

안간힘쓰며 자란 듯 서있는 소나무가 무척 아름답습니다.

 

아침을 여는

소나무와 마주하려니

마치 도량 깊은 스님과 마주한 기분입니다.

송화가루 나르는 솔향과 동안 견뎌 온 인고와

그 모든 것을 품어내 주고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굳건히 잘 견뎌 온

자태로  선문답을 하는 듯 서있습니다.

 

 

이 요조

 

 

 

 

 

 

 

입구에 서 있는소나무는 아니지만 느티나무 같은...

 

수덕사 일주문에 붙은 문패같은 QR코드 마저 멋지다.

수덕사 www.sudeoksa.com  
수덕사 템플스테이 sudeoksa.templestay.com
신청자작성
수덕사 템플스테이 www.sudeoksa.com/templestay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위치, 템플스테이 소개, 프로그램 및 참여신청 등 안내.

 

 

제가 어처구니없는 바보 같고 .. 빙충이 같아서 안 쓸려고 했는데...고백합니다.

예산은 소나무가 아직은 재선충 피해도 없어 보였는데 이 좋은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소나무에이즈에 걸린다면?
소나무는 이리 잘났다 멋있다 해놓고는 수덕사 마당에서 이게 웬일 입니까?
소나무 재선충 매개체인 솔수염하늘소를 만났습니다.

깜짝 놀라서 죽일까 하다가....에에이~~~ 절집에서 살생을?

꾸욱 참았다가 동료들 세 사람에게 물어보니 셋 다 죽이지 그랬냐고 바로 대답을 합니다.
너무나 머쓱해져서...바보 같아서 차마 블로그에는 안올리려 했습니다.
예전 우리집 마당 머루나무에 주홍날개매미 떼를 보고 추워서 얼어 죽겠다고 따스한 집안으로( http://blog.daum.net/yojo-lady/13745541)

모셔 들여놨던 바보같은 기억이 다 납니다.
 
아! 죽이고 올걸~~
 

솔수염하늘소딱정벌레목 하늘소과곤충이다. 해송수염치레하늘소라 부르기도 한다.쇠약하거나 말라죽은 소나무에 알을 낳아서 번식하며,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소나무의 속을 먹으면서 자란다. 성충도 소나무의 껍질을 씹어먹으며, 소나무재선충의 숙주노릇을 한다. 재선충은 스스로 움직일 힘이 없기 때문에 솔수염하늘소의 번데기무리주변에 모여 있다가, 성충이 된 솔수염하늘소가 이동할때 같이 이동하는 것이다. 솔수염하늘소의 재선충보유율은 평균 70%이며, 평균 15,000마리의 재선충이 숙주에 기생한다. 방제방법으로는 벌채작업을 통한 서식지 제거,유충제거등이 있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다음글

천년고찰 덕숭총림 수덕사의 오월! (템플스테이)
http://blog.daum.net/yojo-lady/13746994

 

 선암사, 새벽예불을 드리다.

 

 

 

 

 템플스테이 첫날 밤 잠자리를 배정받았습니다,
진봉스님께서는 그저 남,여 방만 따로 배정해주려 하시지만 나름 여행자들의 내밀한 사정들을

잘 아는 터라...진봉스님 등뒤로 돌아가서 간절한 말씀을 드려본다.

<실은 스님, 부부 방이 필요합니다>
<부부가 왜요?>
<대화가 절실히 필요해서요!>
<그러지요~> 선선히 허락하신다.
그러자니 또 한 부부가 걸린다. 그렇게 방은 애초에 두 개에서 5갠가 6개로 늘어나고
산사의 윗채까지 어두운 밤길을 벌써 접어든 사람도 있고 나머지는 승합차를 타고 올라갔다.

새벽예불을 드릴 사람은 해우소 옆에 있는 요사채로 인도되었기에

인솔자인 나도 새벽예불을 함께 해야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에  뚝 떨어진 산사 별채까지는 올라가지 않았더니 방 하나는 새벽이 되도록 냉골이었다 한다.
늘 뜨뜻한데서 편히 잠자고 생활하다가 절집 냉골방에서 온기 보시를 한 셈이다.
참으로 죄송스러웠지만...새벽예불 드릴 사람들이 (7~8명)묵은 방은 무척 따뜻했다.
........

 

황사경보가 내릴 정도로 심란한 날씨였다.
서울은 낮하늘이 밤같이 어두워지면서 황사비도 흩뿌리며 외출하기가 무서운 공포속의 하루였다 한다.
이 곳은 순천만에 머무는 오후에 잠시 흐리더니  밤새 바람이 유난하다.
산사에서 밤내내 나뭇가지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의 울음소리를 듣느라...잠을 설쳤다.
잠깐 잠이 들었는가 싶은 순간 새벽 3시 인경에 접어들자 순라꾼처럼 목탁을 두드리며 조용히 예불 참여자들을 깨웠다. 

그 게 <도량석>이란다.

 


 

새벽 3시 목탁소리가 하루의 시작을 알립니다.
도량석을 하는 이유는 산사의 모든 생물체를 깨우는 행위입니다.
대웅전 앞에서 시작하여 도량을 한바퀴 돌아 다시 대웅전 앞으로 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30분 정도 소요됩니다.

도량석의 시간은 사찰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새벽예불은 금고의 종성으로부터 시작하여 불전사물을 치고 불전사물이 끝나면 50여분간 새벽예불이 진행됩니다.
사찰에 사는 비구.비구니는 물론 우바새.우바니까지 전대중이 참석합니다.

 


절집을 누비고 다니던 밤 바람은 우리처럼 늦은 잠에 빠졌고 산사의 새벽날씨는 한겨울처럼 쨍하게 추웠다.  밤새 윙윙대며 불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황사를 멀리 일본까지 쓸어 보내느라 그렇게 밤내내 청소를 했었나보다.

다음날 아침은 가을하늘처럼 푸르고 청명했다. 이 세상에 이유가 없는 게 어디 있을까?

우리가 이렇듯 무슨 인연으로 순천하고도 선암사까지 흘러 들었는지....

 

새벽 도량석에 모두는 졸린 눈을 비비고 바깥으로 나섰다.

절간에 늦게 들은지라 어디가 어딘지도 모른채 소리만 듣고는 홀리듯 따라갔다.

요란한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가보니

추워서인지 문은 닫기고 벽 위에는 창으로 터진 곳에서  나는 소리!!

새벽을 깨우듯 하는 대단한 소리의 발원지를 찾았건만 보이지 않아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다.

엊저녁 진봉스님께 법고시간에 맞춰 사진을 찍겠다는 허락을 받았지만 법고를 두드리는데 그리많은 인원들이 시각을 기다리며 오랜시간을 숙연히 기다리는 줄 몰랐다. 

순서는 먼저 금고의 종성으로 불전사물을 치고...법고를 친다고 하는데  감히 어줍잖은 취재로 카메라 들이대기가 그렇다.

후레시없이 몇 장 찍었지만 워낙 캄캄한 밤중인데다 따뜻한 방에서 금방 나온 추위에다가 사진은 모두 흔들려서 사용불가였다.

새벽예불하는 대웅전을 찾아가느라...더듬거리다가 갔더니 스님들은 연신 108배를 하신다.
난 또,,새벽예불을 드리겠다는 참관자들이 불교신자들인 줄 알았다. 7~8명 중에 보살은 단 한 분~ 이 어이없이 생뚱맞은 발상은  어디에서 왔는지?  모두는 108배도 제대로 드릴 줄 몰라 허둥지둥~ 곁눈짓으로 스님들  따라하기에도 급급하다.
절 한번에 유체이탈, 방석이탈~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일배드리고 날 때마다 커다란 방석자리를 벗어나기 일쑤다.

스님들은 한 눈이 아니라..반 눈에도 처억하니 알아보셨을터~~108배 드리는 폼새 하나로도 몇년차 신자라는 걸 아시고도 남을터인데...
오늘 새벽 템플스테이 예불참여자는 <ㅉㅉㅉ!!! 고단할텐데...걍~ 더 자지 왜 새벽에 깨어서 나왔니?>

그런 말을 들을 정도의 말짱 .....노랑 병아리들이다.

그것도 걸음마도 제대로 못떼면서  절집에 왔으니 절집에서 하는 예식을 따르려는....천진난만한 애기들 같이 ,,,

부처님 보시기에 얼마나 기특하며 귀여웠을까?~~ ㅎ`ㅎ`ㅎ`

꿈보다 해몽이다.
  

 

대웅전을 찾아 더듬대며 나섰다. 밤동백이 화사하다.  

 

예불 준비를 하는지 문이 활짝 열리고...

우리는 소리나는 곳으로 뭔가에 이끌리 듯 '

몽유병자들 처럼 선잠에 취한 듯  어찔어찔대며 몰려갔다. 

금고의 종성인가?

비록 문도 닫기고 담장이 가로막았지만...그 소리의 울림은 아직도 공명음으로 이명인 듯 남아있다.

새벽을 깨우는 소리였다. 그리고 종루의 불전사물이 끝나고(후래시없이 사진이 흔들렸음) 우리는 대웅전을 찾아들었다. 

 보물인 삼층석탑이 있는 대웅전 마당이 캄캄하다.

 

선암사에는 세가지가 없다하여

 선암사 三無 

첫째--사천왕문

          일반적으로 사찰 일주문을 들어서면 사천왕문이 있으나 선암사에는 사천왕문이 없다.

        이유인즉 두가지설이 있는데,

    1. 조계산의 주봉이 장군봉이라 장군이 지켜주기 때문에 불법의 호법신인 사천왕을 굳이 만들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2. 일주문과 범종루사이가 너무 협소해서 사천왕문이 들어설자리가 없어서 만들지 못했다는설이다.

 

둘째--주련

       주련이라하면 대웅전기둥이나 벽에 세로로 써 붙이는 글씨로 기둥(柱)마다.

        시구를 연달아 걸었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내용은 부처님 말씀이나 선사들의 법어가 주 내용인데

       주련은 부처님께 다가가기 위한 또 하나의 관문이라한다.  이러한 주련이 선암사 대웅전에는 없다.

       선암사는 개구즉착(입을열면 들린다)라고 하여서

       곧 깨달으면 말이 없다는 뜻으로해서 주련을 달지 않았다한다.

 

셋째--어간문

        어간문이란 대웅전의 정중앙에있는 문으로 다른 사찰에는 정중앙문에도

         사람의 출입이 가능하지만 선암사에는 부처님처럼 깨달은 분 만이 어간문을 통하여

         통과할수 있다고 하여 어간문을 만들지 않았다한다. 

 

참조/맨위엣 사진을 보면 큰스님 뒷쪽으로 사람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문턱이 아주 높다.

 

 

 

문화재로 등록된 선암사의 해우소 

 

내가 느낀 절집 해우소의 느낌은 외관은 아름다웠고 내부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이 낭패를 어찌하랴~ 배변구가 크고 높아서 빠질까 무서워서 앉아 정호승님의 싯귀처럼 울기는 커녕 이 큰덩치가 덜덜 떨렸다.

나중에사 다시 확인한 바로는 여자화장실 세군데 중에 제일 첫 군데가 큰 어른용이고 그 다음이 작고 그 다음은 더 작아 어린이용으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절집에는 어린이들도 드나드는 곳인데... 지레 큰 배변구만 보고 겁을 먹었던 내 자신이 멋적다.

사진을 좀 더 제대로 찍질 못한 게 제일 큰 아쉬움 중에 하나다. 

 

 

정호승님의  ‘선암사 해우소'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사진빌려옴

 


 

 

 

 단 하나 건진 사진은 겨우 쭈그르트리고 앉아 찍은 글귀는 <파리야 극락가자>

 쪼그리고 앉으면 저 창살로 바깥 수풀의 녹음이 보인다.

 

정일근 ‘선암사 뒷간에서 뉘우치다’

 

템플스테이의 새로운 경험은 단 며칠일지라도 사람의 시야를 바꿔놓을 수 있다. 음식을 먹고 나면 단무지로 그릇을 닦아 깨끗이 비운다. 발우공양이다. 오체투지(五體投地)로 탑돌이를 하노라면 온몸은 땀에 젖고 옷은 흙투성이어도 마음은 가뿐하다. 촛불을 켜 들고 범종 소리를 들으면 온몸에 전율이 울려 퍼진다. 깨달음은 해우소(解憂所)에도 있다.

‘무위도식의 오후, 불식(不食)을 했다면 선암사 뒷간으로 찾아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녁 예불시간 뱃속 근심이 큰 장독에 고인 물처럼 출렁거려 뒷간에 앉는다. 사실 나는 내 죄를 안다. 그리하여 범종소리 따라 한 겹 한 겹 밀려와 두꺼워지는 어둠에 엉덩이를 깔고 뉘우친다…뒷간 무명(無明) 속에 발 저리도록 쪼그리고 앉아 진실로 뉘우친다// …근심은 버리려 하지 말고 만들지 말아라. 뒷간 아래 깊은 어둠이 죽비를 들어 내 허연 엉덩이를 사정없이 후려친다…나는 내 몸의 작은 뒷문 하나 열지 못하고, 단 몇 푼의 근심조차 내버리지 못한 채 선암사 뒷간에 쪼그리고 앉아 뉘우친다.’

 

해우소에 쪼그려트리고 앉아 울긴 커녕 후들거리는 다리로 바깥에 나오자니

내 스스로 심히 부끄럽고 안쓰럽다. 

밤 적막을 깨트리며 쫄쫄쫄~~ 물 흐르는 소리로  돌확이 대신 울어주고 있었다. 

   

공양간엔 불이 환하다. 벌써 스님들 아침 발우공양할 시간이 다가오나보다. 

나무도 공양을 하려는지...길다란 그림자로 계단을 올라  공양간 안 깊숙한 곳까지 기웃대고 있다.

 

하룻밤 절집에서 신세지며 묵고는 가지만 우예된 심산인지 잠은 한 숨도 못잤다.

안그려도 버릴 게 너무 많은데 입으로 먹고 또 눈으로도 잡다히 너무 많은 걸 포식하여 도저히 편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채 버리지도 못하고 뛰뚱거리며 산을 내려오는 내 뒷자태를 보며 누군가 희죽 웃었을테다.

비웃었을까? 아니다. 하물며 그악스런 파리도 극락가자는데 ....

이 못난 중생에게도 어찌 그 흔한 덕담 한 말씀 없었으랴!!

 

 

글/나비야 청산가자/이요조 

 

 

  선암사 지도법사 (템플스테이) 진봉스님 

 

 난생 처음 발우공양 체험

 

산사(山寺)는 티없는 무욕(無欲)의 땅이다. 고요하고 깨끗하다.

무심코 지나쳤던 별과 달이 유난히 빛난다. 고즈넉한 산사 풍경은 그 자체로 해탈이다.

 

황사가 봄 하늘을 희뿌옇게 뒤덮는 3월 20일, 여행팀들은 선암사로 찾아들었지요. 

선암사는 송광사와 함께 순천을 대표하는 사찰이지요. 

 

 

순천만을 탐방하고 저녁 공양시간에 맞추어 가느라 순천 동천을 옆에끼고 한 40분 넘게 달려간 것 같습니다.

하늘은 황사로 뿌얬고 바람은 이리저리 불었지요. 이 날 서울은 밤하는처럼 캄캄하고 비도 왔다지요.

이 곳은 잠시잠깐 이랬습니다.

황사를 피해 나들이를 잘 온 셈입니다. 산사에서 하룻밤 묵고나니 그 다음 날은 하늘이 얼마나 높고 파란지

마치 맑은 가을 같았지요. 

 

 

선암사에 당도하니 타고 온 차는 버리라는군요.

속세의 홍진에 물든 껍질을 벗듯 타고 온 차를 버리고 주차장에 있는 선암사 셔틀버스를 이용해서 산길을 올랐습니다. 봄이라 좀 길어진 낮이 산사를 오르는 일순간에 까무룩 저물어버리는군요. 

당도하자 날이 어두운데도 만나지는 사찰의 첫 풍모에 그만 반했지요. 

꾸밈없이 자연스럽게...천년 고찰의 모습 그대로 인 듯 선암사는 경내의 가람배치나 풍경도 그리 권위적이지 않고 평온한 느낌이 들었지요.  사실은 알고보니 태고종과 조계종과의 소송에 태고종은 그대로 답보상태로 숱한 세월 명맥만 유지해 온 아픈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 게  훗날 더 나을지도 모를일입니다. 요즘 돈으로 짓는 사찰들은 시멘트에다가 단청을 입히고...기와도 무늬만 기와지 강판같은 것으로 그럴 듯하게 꾸미고들 있는 것에 비하면 오감의 느낌이 전혀 다릅니다. 

 

 

  발우공양[鉢盂供養]

 

발우는 승려의 밥그릇을 뜻하며, 발우공양은 승려가 식사하는 행위를 말한다. 발우의 유래는 옛날 부처가 가섭이 모시던 용을 밥그릇에 가둬 항복을 받아낸 일이 있는데, 그 밥그릇에서 유래한다. 그래서 항용발(降龍鉢)이라고도 한다. 중생의 뜻에 따라 양대로 채우므로 응량기(應量器)라고도 한다. 발우는 모두 4개로 구성된다. 작은 그릇이 큰 그릇 속에 차례로 들어간다. 제일 큰 그릇은 밥그릇, 두번째는 국그릇, 세번째는 청수그릇이며, 가장 작은 그릇은 찬그릇이다. 밥그릇은 무릎 왼쪽 바로 앞에 놓으며 국그릇은 오른쪽 앞에 놓는다. 찬그릇은 밥그릇 바로 앞에, 물그릇은 국그릇 바로 앞에 놓는다. 목탁이나 종으로 공양을 알리면 모두 대중방으로 와서 조실이나 주지가 중앙문에 앉고 좌우로 순서대로 가부좌한다 /daum 사전

 

발우가 참으로 정갈하게도 얹혀있습니다.

발우공양, 늘 매스컴을 통해 듣고 보고했지만 제가 직접 겪어보기는 처음입니다.

공양은 발우공양과 상공양이 있다네요 상공양은 쉽게 말하자면 덜어먹는  뷔페식이라 생각하면 되구요.

스님들도 매끼니 발우공양이 아니고 아침만 발우공양을 하시고 점심 저녁은 상공양으로 편히 드신다는군요.

 

 

태고종은 조계종과는 사뭇 다른 게 많았습니다.

그 중에도 비구니(승) 비구(승)가  한 사찰에서 도량을 닦으시는 모양입니다.

일반인의 편견이겠지만 단아하고 갸날프고 아릿다운 비구니스님을 보니 왜 그리 가슴이 저릿하도록 아리는지 모를 일입니다.

제일 친하면서 유일한 제 친구도 나이가 오십들어 운문사로 들어갔거든요,.  그렇게 나이 들어 운문사로 들어갔으니~~

발우공양하는 내내 친구를 생각했습니다. 눈물이 핑~~ 돌기도 했습니다. 

 

 

 공양을 마련해주시는 비구니스님들의 손길이

 저희들 눈에는  마치 승무를 감상하듯....나붓나붓하였습니다.

조신조신.....바라보는 저희들이 외려 숨이 터억 막혀왔습니다.

저희를 위해 마련하신 공양은 소찬이지만 정갈하고 담백했습니다.

 저희들은 모두 공양이라는 이름의 퍼포먼스에 함께 동참한

행위예술중입니다.

 지도법사, 진봉스님이 발우를 펴십니다.

모두들 처음인지라 다들 따라하기도 무척 어렵습니다. 

비구니스님의 고운 손길이 일일이 도움을 주십니다. 

 펴기도 어려운 발우~

스님들의 발우는 나무로 깎아만든 것이고 저희들 것은 메라민입니다. ㅎ~

잘못해서 스님의 발우를 가지고 온 것과 비교를 하니

스님들이 사용하는  발우는 정말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저는 갠적으로 

발우를 따로 설거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제일 궁금했더랬습니다.

청수를 나눠주시면 그릇과 수저를 먼저 조용히 헹굽니다. 

 밥을 받으면 머리까지 들어서 감사의 예를 표합니다.

제게 건네주시는 밥입니다. 

전체의 밥을 먼저 나누고는 가반(加飯)하라고 권하시는 중입니다. 

익일 비구(승)님의 공양수발은 가반시 총알처럼 스쳐 지나가십니다.

말씀도 웅얼웅얼.,....가반하십시요가 아니라....더 달라면 안돼로 들립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

웃자고 하는 소립니다.

그만큼 비구니스님과 비구스님의 공양수발 느낌은 천양지차입니다. 

아버지가 차려주시는 밥과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밥, 그랬습니다. 

국은 따로 나오고 찬은 이렇게 4찬이 나왔습니다.

순두부가 간이 슴슴해서 담백하고 다음날 아침 냉이 향이 아주 좋았습니다. 

다음날 된장국은 된장에 콩알이 그대로 보입니다.

아마도 이 큰 절에 메주를 쑬 때 일일이 손으로 다 만든 것 같았습니다.

기계로 만들면 콩딱지가 없거든요.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래서 더 진짜를 먹고 왔다는 자랑입니다. 

 

 김도 직접 구웠는지 맛있다고 다음날 아침에는 다들 욕심을 냅니다.

아~~ 저 무서운 단무지...@.@ 

 

 

 

 밥을 주시는 스님의 뒷태를 보세요. 두 발은 가지런히 모으셨습니다.

전 저런 자세로 다섯분에게만 밥과 국을 퍼주고나면 그로키상태가 될 것 같습니다.

소식으로 드신 분들이...대단도 하십니다.

물론 속세의 저는 과잉으로 늘어난 뱃살이 저런 자세를 유지하기에도 힘들고요! 

 "감사합니다"

 각자 찬들을 먹을 만큼씩만  조용히 덜어서 담습니다.

요 정도로 먹어야 심신이 가벼울 것 같은 

이 발우는 제 공양발우입니다.

많이 먹어서 축척되어 거꾸로 독이되어 나를 치는 병이 없을 것 같습니다. 

 

 죽비를 세 번 치시면 공양 발원문을 합송합니다.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있고, 한 알의 곡식에도 만인의 수고로움이 담겨있습니다.

이 음식을 감사한 마음으로 먹겠습니다. ----

 

공양을 준비하고 공양하는 곳을 후원이라 하고(식당)
  공양간은 밥을 하는 곳이군요. 공양간은 주방을 뜻하는 말임을 배웁니다.

 공양주 스님들은 임무완수를 다 하신 듯....커튼을 닫아 가리고  공양이 끝나기를 기다립니다. 

큰사찰에는 공양주스님이 여럿이고  작은 사찰에는 신자들이 도맡아하는 공양주보살들이 있다는군요.

요즘 작은 일반사찰에는 공양주보살을 구하기 어려워 중국동포를 쓰기도 하지만

사람 구하기 어려워 곤욕도 치른답니다. 

 이 공양은 다음날 아침공양입니다. 냉이두부 향이 좋습니다.

단무지는 하나 남겨두어야 합니다. 

김이 맛있다고 욕심 부리는 옆사람 발우입니다.

김으로 뒤덮혔습니다.  제 것 다 먹고 한 장 더 달라고 무언으로 말했더니

죽어도 안줍디다 ㅠ,.ㅠ 

 깨끗이 다 먹은 후에는 단무지 하나를 남겨 그릇을 닦습니다.

깨끗이 돌려 닦아냅니다.

전 이 물을 마시는 줄 알았는데 마실물은 따로 받습니다.....

이 물은 버리는데 진봉스님이 받아온 양동이에 찌꺼기가 있으면

그 줄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나눠 마셔야 한다시는 엄포에 윗물만 버리고 찌꺼기는 단무지와 함께 먹었습니다. ㅠ.ㅠ;;

발우를 깨끗이 닦아서 처음처럼 차례대로 잘 쌉니다. 

 공양이 끝나면 죽비소리에 맞추어 다시 합송을 합니다.

 -이 공양의 고마움을 마음에 새겨 사회 대중을 위해 살아가겠습니다.-

죽비 3번 합장 후 일어서서 발우 장소에 가서 자기 자리 번호에 공양그릇을 넣어둡니다.

 

 선암사 지도법사이신 진봉스님의 가르침따라ㅡ

죽비소리의 차례따라 발우공양 체험 잘 하였습니다.

 

공양

공양시간이 되면 소종이 울리고 모든 대중스님들이 공양간으로 모여 발우공양을 합니다,

발우란 양에 알맞은 그릇이라는 뜻으로 4개의 그릇에 각각 밥, 국, 반찬, 청수를 담습니다.

똑같이 나눠 갖는 평등, 낭비없는 절약, 공동체 단결과 화합 등을 이루는 마음으로 고양을 합니다.

공양의 시작은 죽비에 맞추어 시작하고 자기의 공양그릇에 담긴 모든 음식은 한톨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야 합니다.

식단은 마늘 등 자극적인 오신채가 없는 채식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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