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공무도하가 고조선 때에 진졸(津卒)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麗玉)이 지었다고 전하는 노래 저자 : 여옥 장르 : 노래 출전문헌인 《고금주(古今注)》에 의하면, 어느 날 곽리자고가 강가에서 백수광부(白首狂夫)의 뒤를 따라 물에 빠져 죽은 어느 여인(곧 백수광부의 아내)의 애처로운 광경을 보고 돌아와 여옥에게 이야기하였더니, 여옥이 그 여인의 슬픔을 표현한 노래를 지어 공후()에 맞추어 부른 것이라 한다. 연대적으로 보아 한국 문학사상(文學史上)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왔으나 확실한 제작 연대와 원가(原歌)는 알 수 없고, 이 노래의 한역가(漢譯歌)인 듯한 4구(句)로 된 한문 표기의 짧은 노래가 전한다. 그 한역가는 다음과 같다. '公無渡河 公竟渡河 墮河而死 公將奈何(임은 건너지 말 것이지, 임은 물을 건너다가, 물에 빠져 죽으시니, 임은 마침내 어이 하리요)' 《해동역사(海東繹史)》에 의하면, 백수광부가 물에 빠져 죽으니 그의 아내는 통곡하여 울다가 슬피 공후를 타며 노래를 부른 후 자기도 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 내용에 따라, 원작자(原作者)는 백수광부의 아내이며 이를 노래로 정착시킨 사람이 여옥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또 전하는 가사가 시경체(詩經體)인 것으로 보아 당시 중국에서 성행한 시경체가 한국에도 영향을 준 것이라 보기도 한다. 《공후인(引)》은 악곡(樂曲)의 명칭이고 작품명은 《공무도하가》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공후인》으로 통칭하고 있다. 한편, 기록에 나오는 조선이 중국의 지명을 가리키는 것이어서 중국의 악부시(樂府詩)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백수광부의 처 公無渡河 (공무도하) 저 님아 물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 (공경도하) 임은 그예 물을 건너셨네. 墮河而死 (타하이사) 물에 쓸려 돌아가시니 當奈公何 (당내공하) 가신님을 어이할꼬. 정병욱 번역 그대 건너지 마오 그대 그예 건너네. 물에 빠져 죽으니 이제 그대 어이하리.
전광용 번역 그대여 물을 건너지 마오. 그대여 그예 물을 건너다가 물에 빠져 죽어지면, 장차 그대는 어찌하리오. 박성의 번역 '공무도하가'의 한역의 예 公無渡河 公竟渡河 墮河而死 當奈公何 - 해동역사 公無渡河 公竟渡河 墮河而死 將奈公何 - 대동시선 公無渡河 公而渡河 公墮而死 將奈公何 - 청구시초 公無渡河 公終渡河 公淹而死 當奈公何 - 연암집 요점 정리 작자 : 백수광부의 아내(원작자는 백수 광부의 처이며, 곽리자고의 부인 여옥이 이를 노래로 정착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가사명일 경우 '공무도하가'로, 곡조명일 경우 '공후인'으로 구분한다.) 갈래 : 개인적 서정시 형식 : 4언 사구체의 한역 시가 연대 : 고조선(古朝鮮) 성격 : 직서법으로 직정적(直情的)이고, 절박한 호소의 절규적 표현 별칭 : 곡명은 ‘공후인’ 구성 : 4언 4구체의 한역시가. 주제 : 임을 여읜 슬픔, 남편의 죽음을 슬퍼함, 물에 빠져 죽은 남편을 애도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함. 임과의 사별로 인한 슬픔 출전 : <해동역사권 22 악가 악무조> 의의 : ①‘황조가’와 함께 우리 나라 최고(最古)의 서정 가요. ② 집단 가요에서 개인적 서정시로 넘어가는 시기의 과도기 작품. 내용 연구 河(하 ): 물 竟(경) : 마침내, 끝내 墮(타) : 휩쓸리다, 떨어지다 而(이) : 어조사 이. 여기서는 접속사로서 '그리하여'의 뜻 公(공) : 여기서는 남편, 곧 백수광부를 이르는 말. 그대, 당신, 임 無(무) : 여기서는 금지사(禁止辭)로서의 뜻. ∼하지 말라. 竟(경) : 마침내. 기어코. 드디어. 그예, 끝내 墮河(타하) : 물에 휩쓸리다. 여기서는 '물에 떨어지다'로 풀이하지 말 .것 而(이) : 順接(순접)의 접속사, 그리하여 當(당) : 마땅히, 이제 奈∼何(내∼하) : ∼을/를 어찌하는가. ∼을/를 어찌할 것인가. 奈(내) : 어찌 何(하): 어찌 奈公何(내공하) : (돌아가신) 임을 어찌할 것인가. (돌아가신) 임을 어찌할꼬. 公無渡河(공무도하) 그대는 물을 건너지 말라. - 죽음의 만류
이 노래의 첫 구절인‘公無渡河’는 곧 사랑하는 남편이 황급히 물 속으로 뛰어들려는 순간을 노래하였다. 이 경우에 '물', 즉 저 임이 건너지 말아야 할 물은 충만한 깊이 곧, '公'으로 표현된 '사랑'을 의미한다. 公竟渡何(공경도하) 그대는 기어이 물을 건너도다. - 2, 3행 '임의 죽음' '公竟渡何'에서 '竟'과 결합되는 '河'는 사랑의 종말을 뜻함과 동시에 임의 부재를 의미한다. 이 경우에 물은 사랑을 뜻한다기보다는 물 위에 깔려 있는 임의 환상이요, 물 속에 잠겨 있는 임의 추억이다. 墮河而死(타하이사) - 2, 3행 '임의 죽음' 물에 빠져 죽으니 '墮河而死'에서 '河'는 임의 부재라는 소극적인 뜻이 아니라, 죽음의 의미로 확대되고 있다. 當奈公何(당내공하) 어쩌면 좋아. 장차 어찌할 것인가. - 임의 죽음을 슬퍼함 서정적 자아의 심정이 집약된 구절로 서정적 자아의 탄식과 원망의 애절한 울부짖음이 폭발하고 있다. 이 극한적인 비극적 심리의 폭발이 곧 배경 설화에서와 같이 여인의 자살을 몰고 온 것이다. 그리고 이 구절은 처용가의 '아아! 엇디하릿고, 청산별곡의 '잡사와니 내 엇디하리잇고', 또한 시조의 종장에서 흔히 보는 '∼어떠리'에 관류하는 일련의 전통적인 표현 형식이다. 이 노래의 미적 특질은 비애미이고, 서정시로 볼 수 있는 이유는 슬픔의 정한이 나타나 있기 때문이며, 이 노래가 '황조가'와 같은 점은 형식에 있어서 동일하며, 이 작품의 중심 소재는 물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노래로 부른다면 애절하고 처절한 발라드곡(포퓰러송 가운데서 센티멘틀한 러브송 종류)에 해당한다. 전통적 한과 체념의 정서와 관련이 있다. 이 작품에 중심 소재는 물이다. 주요한의 '불놀이', 고려 가요의 '서경별곡', '공무도하가', 강은교의 '우리가 물이 되어'의 물의 차이점은? 불놀이 | 좌절 -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내고 좌절에 잠겨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 서경별곡 | 이별 - 사랑하는 임을 배에 싣고 떠나간다. | 공무도하가 | 죽음 - 자신의 만류에도 빠져 죽는 죽음의 이미지 | 우리가 물이 되어 | 물 - 재생과 합일, 화해의 이미지 |
이해와 감상 이 노래에서 우리는 전통적인 한국의 여인상을 발견할 수 있다. 남편의 죽음을 보고 뒤따라 죽는 아내의 모습에서 기다림과 한(恨), 체념에 묻혀 살아 온 인종(忍從)의 한국 여인, 정렬(貞烈)의 여심(女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흔히 우리 민족의 정서를 한(恨)이라고들 하는데, 이 한은 이별과 죽음에서 온다. 우리 나라의 서정시에서 이별을 다룬 것이 많은 것은 우리 나라의 경우 오랜 옛날부터 한의 정서가 싹터왔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 서정시의 출발이라 할 이 노래는 한국적 정서인 한(恨)의 원류(原流)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노래의 중요한 제재인 강물이 훗날 고려 가요 속요의‘서경별곡(西京別曲)’이나 정지상(鄭知常)의 ‘송인(送人)’등 많은 이별가에 등장하고 있음은 이런 연유에서 일 것이다. 이 노래에 대해서는 신화적 차원에서 해석되기도 한다. 즉 백수광부는 주신(酒神)이며, 그의 아내는 악신(樂神)의 성격을 지닌다는 것이다. 그래서 백수광부의 행동은 황홀경에 든 신, 또는 무당의 행동이며, 이 행동은 강물에 뛰어들어 죽음을 이기고 새로운 권능을 확인하는 의식의 하나라고 보기도 한다.
정병욱교수는 설화 속의 백수광부는 희랍 신화에 나오는 디오니소스와 로마신화에 나오는 바카스에, 그의 처는 주신을 따라다니는 악신 님프에 비교해 볼 만하다고 하면서 물을 매개로 하여 사랑과 죽음이 결합된 이 노래는 사랑과 죽음을 서로 바꿀 수 있다는 강렬한 애정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장덕순 교수는 '當奈公何(당내공하)'에서 남편을 따라 죽어야 한다는 여인의 의지를 찾을 수 있어 이 노래는 결국 '정렬의 여심'을 노래한 것이라고 한다. * ▲gif자료이므로 click해서 크게 보세요! 심화 자료 '공무도하가'의 배경 설화 한치윤의 해동역사에 의하면 진나라 최표의 '고금주'에 조선의 뱃사공 곽리자고(곽里子高)가 아침 일찍 일어나 배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 때 머리가 허옇게 센 미치광이〔백수광부(白首狂夫)〕 한 사람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술병을 쥐고는 어지러이 흐르는 강물을 건너고 있었다. 그 뒤를 그의 아내가 따르며 말렸으나 미치지 못해 그 미치광이는 끝내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이에 그의 아내는 공후를 뜯으면서 공무도하(公無渡河)의 노래를 지었는데, 그 목소리가 아주 슬펐다. 노래가 끝나자 그의 아내는 스스로 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이러한 광경을 처음부터 목격한 곽리자는 돌아와 자기 아내 여옥(如玉)에게 이야기하면서 노래를 들려주었다. 여옥은 그 말을 듣고 슬퍼하며 공후를 뜯으면서 그 노래를 불렀다. 듣는 사람들 중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여옥은 이 노래를 이웃에 사는 여용(麗容)에게 전하였고, 널리 퍼지게 하였으니 이 노래를 이름하여 '공후인'이라 하였다. 공후인 서양의 하프와 비슷하며, 틀 모양에 따라 와공후(13현)·수공후(21현)·대공후(23현)·소공후(13현) 등으로 구분된다. 공후는 본디 서역계의 악기로 중국을 통해 한국에 들어왔는데, 언제 어떠한 경로로 전래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현재 이 악기들은 연주법을 잊어버린 채 악기의 모습만이 국립국악원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문헌상의 기록도 거의 없어 그 흔적을 찾기는 힘드나, 중국 《수서(隋書)》에 의하면 삼국시대에 고구려와 백제의 일부에서 공후가 쓰였다 한다 해동역사 신활자본. 85권 6책. 조선 정조 ·순조 때의 사학자(史學者) 한치윤(韓致奫)이 편술한 본편 70권과 그의 조카 한진서(韓鎭書)가 보충한 속편 15권 6책으로 되어 있다. 한국의 서적은 물론, 중국 ·일본 등 외국서적 550종에서 자료를 뽑아 편술한 것이다. 권1∼16은 세기(世紀)로, 단군으로부터 고려까지의 역대 왕조를 편년체(編年體)로 서술하고, 권17은 성력지(星曆志), 권18∼21은 예지(禮志), 권22는 악지(樂志), 권23은 병지(兵志), 권24는 형지(刑志), 권25는 식화지(食貨志), 권26∼27은 물산지(物産志), 권28은 풍속지(風俗志), 권29는 궁실지(宮室志), 권30∼31은 관씨지(官氏志), 권32는 석지(釋志), 권33∼41은 교빙지(交聘志), 권42∼59는 예문지(藝文志), 권60은 숙신씨고(肅愼氏考), 권61∼66은 비어고(備禦考), 권67∼70은 인물고(人物考), 속편 15권은 모두 지리고(地理考)이다. 원래 필사본으로 전하던 것을 조선고서간행회(朝鮮古書刊行會)에서 양장(洋裝) 4책으로 간행하였고, 또 1913년 광문회(光文會)에서 한장(漢裝) 6책으로 간행하였다. (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창작연대 미상의 고대가요. 이름 모를 백수광부(白首狂夫)의 아내가 지었다고 한다. 원가(原歌)는 전하지 않지만, 그 한역(漢譯)인 〈공후인 謙隸引〉이 진(晋)나라 최표(崔豹)의 ≪고금주 古今注≫에 설화와 함께 채록되어 있다. 이 노래와 설화를 최초로 수록한 책은 후한(後漢)말 채옹(蔡邕)이 엮은 ≪금조 琴操≫이지만 ≪고금주≫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것을 조선시대 문인들이 ≪해동역사 海東繹史≫·≪대동시선 大東詩選≫·≪청구시초 靑丘詩抄≫·≪열하일기 熱河日記≫ 등에 옮겨 전하기도 한다. 노래는 다음과 같다.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公無渡河) 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公竟渡河) 물에 빠져 죽었으니,(墮河而死) 장차 임을 어이할꼬.(將奈公何) 이본(異本)에 따라서는 제2구의 ‘竟’(경)이 ‘終’(종)으로, 제3구의 ‘墮河’(타하)가 ‘公墮’(공타) 또는 ‘公淹’(공엄)으로, 제4구의 ‘將’(장)이 ‘當’(당)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도 있다. 최표의 ≪고금주≫에 기록된 이 노래의 배경설화는 다음과 같다. 공후인은 조선(朝鮮)의 진졸(津卒) 곽리자고(涇里子高)의 아내 여옥(麗玉)이 지은 것이다. 자고(子高)가 새벽에 일어나 배를 저어 가는데, 머리가 흰 미친 사람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호리병을 들고 어지러이 물을 건너고 있었다. 그의 아내가 뒤쫓아 외치며 막았으나, 다다르기도 전에 그 사람은 결국 물에 빠져 죽었다. 이에 그의 아내는 공후(謙隸)를 타며 ‘공무도하(公無渡河)’의 노래를 지으니, 그 소리는 심히 구슬펐다. 그의 아내는 노래가 끝나자 스스로 몸을 물에 던져 죽었다. 자고가 돌아와 아내 여옥(麗玉)에게 그 광경을 이야기하고 노래를 들려주니, 여옥이 슬퍼하며, 곧 공후로 그 소리를 본받아 타니, 듣는 자가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여옥은 그 소리를 이웃 여자 여용(麗容)에게 전하니 일컬어 공후인이라 한다. 이 노래는 채록자·채록양식·창작지역 등이 중국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작품이라는 견해가 대두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창작지역인 중국의 직례성 조선현(直酪省 朝鮮縣)이 고조선 이래로 한인(韓人)들이 잔류하면서 독자적인 문화양식을 유지하던 곳이어서, 〈공무도하가〉의 원작자가 반드시 중국 사람이라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즉 지역적인 특성을 고려할 때 원작자는 충분히 우리나라 사람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러한 점에서 〈공무도하가〉를 우리의 고대가요로 보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다. 오히려 중국 쪽에 이런 노래가 전해지고 기록된 것은 우리 노래가 그만큼 널리 전파되어 있었던 증거라고 보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공무도하가〉는 관련된 사연이 특이해서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관련설화는 고조선시대에 백수광부와 그의 처를 주인공으로 하는 비극적 사건을 담은 단순설화가 초기 형태였을 것이다. 이것이 후대에 이르러 곽리자고와 여옥이 개입하여 복합설화로 변화된, 〈공후인〉 악곡의 설명설화로 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설화 속의 백수광부의 죽음에는 경험과 초경험의 연속성이 여전히 세계 해석의 중심 기반에 놓인 주술적·신화적 세계관이 투영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반면, 아내의 죽음에는 경험적 현실이 오히려 세계 이해의 중심문제로 떠오르는 불연속성에 기초한 현실적·역사적 세계관에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노래를 둘러싼 설화문맥은 노래 형성기의 이중적인 세계인식이나 전환기의 사유를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공무도하가〉의 주제는 설화문맥에서 본 바와 같이 ‘임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며, 중심소재는 ‘강’ 또는 ‘물’이다. 이 노래가 세계에 대한 근원적 물음으로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은 고대가요로서 이 노래가 지닌 의의가 매우 크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 노래는 죽음을 철저히 경험적 현실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아내의 비극적 의식을 극적 독백화법으로 표출하고 있다. 따라서 노래에 나타난 미의식은 비극미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이 작품에서 ‘현실적인 것’은 남편의 익사이며, ‘이상적인 것’은 남편이 강물에 빠져 죽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다. 그러나 작품의 실제 어조(語調)에서는 후자에의 신념을 처음부터 포기한 상태에서, 즉 ‘이상적인 것’에 대한 지향이 애초부터 열세한 상황에서 ‘현실적인 것’에 대한 저항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상적인 것’이 불리한 상황에서 불리한 쪽을 추구한다는 것은 비극적 갈등일 수밖에 없고, 그 결과는 ‘현실적인 것’으로 인한 깊은 상처 내지는 파멸만 남을 뿐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 구현된 미(美)는 신화적 숭고 내지는 주술적 숭고의 파탄으로 초래된 비극미라 할 수 있다. 〈공무도하가〉에 표출된 이러한 동일성의 상실은 세계의 연속성에 대한 믿음의 상실에서 비롯된 한국 서정시의 출현 문제와 직접 잇닿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은 이 노래가 신화적 질서 혹은 주술적 힘의 숭고함이 이미 흔들리기 시작한 신화시대 말기의 사회상과 세계관을 반영하는 작품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고 하겠다. 이럴 때 신적(神的) 인물의 신성성이 의심된다던가 주술능력이 실패한다던가 할 경우는 비극적인 파멸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 가요는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國文學論攷(徐首生, 文理堂, 1965), 韓國古典詩歌의 硏究(金學成, 圓光大學校出版局, 1980), 증보판 한국고전시가론(정병욱, 신구문화사, 1988), 韓國文學槪論(成基玉 外, 새문社, 1992), 韓國文學槪論(金承璨·金埈五 外, 三知院, 1995), 公無渡河歌小攷(梁在淵, 국어국문학 5, 1953), 謙隸引異攷(崔信浩, 東亞文化 10집, 서울大學校 東亞文化硏究所, 1971), 謙隸引의 新考察(金學成, 冠嶽語文硏究 3, 서울大學校, 1978), 公無渡河歌의 해석(金聖基, 韓國文學史의 爭點, 集文堂, 1986), 公無渡河歌의 性格과 意味(鄭夏英, 한국고전시가작품론 1, 集文堂, 1992).(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강승희-새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