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좀 그렇다.
오늘은
마음이 좀 그렇다.
괜히 아침 밥상머리에 앉아…
아이들 다 보내고 나면 항상 어머님이랑 단 둘이다.
생선 살 두어 번 발라 드린 것까진 분위기 좋았었는데,
이야기 끝에 내가 발끈해 버렸다.
그냥 묵은 감정이 폭발 한 것이다.
참 세상 좋아졌다.
며느리 제, 화난다고 시어미 앞에서 감히 언성을 높이고….
어머니께 그런 게 아니었는데, 되게 서운하신 모양이다.
내 남편은 고명 아들이다.
시누이 하나 없어 외로우셨는지….
시 어른들께선 불쌍한 양딸을 하나 삼으셨다.
나, 시집 온 후의 일이다.
잠깐. 그 고모의 얘기를 하기 전,
내가 아이를 둘만 낳고 그만두자
시 어른들께선 난리가 나셨다.
더구나 우리집안에 적어도 셋은 되어야 한다 시며…..
어른들 말씀을 순종해선지 우리집의 간구를 아셨는지
우린 또 하나의 아들을 보게 되었고…
나는 세 아이의 양육으로 너무 힘들고 지칠 때,
그 고모를 우리집으로 보내주셨다.
셋째 아이를 도맡아 기르게 되고,
그때 나는 큰 아들녀석의 잦은 병치레로
거의 병원에서 살았다. 입원 퇴원 다시 입원,
우리 막내는 말을 더디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늙은 고모를 엄마라 부르고
밤이면 같이 자며 우유를 먹이는데…
낮엔 그저 업거나 유모차에 태워 한바퀴 휘~~
돌아다니는 게 일상이 되어있었다.
아이는 누가 말을 잘 건네지 않아 자연 말이 더뎌지고
나이 많은 대리모에게서…
엄마의 따뜻함은 모르고 자라났다.
그 걸 깨닫고도 어쩔 수 없어 한동안 망서리다
드디어 아이를 그녀에게서 떼어 내는 날,
그래도 그녀는 첫 정이라….
아이 땜에… 울면서…울면서….제 자리로 돌아갔다.
명절이면 꼭꼭 우리집을 정말 친정처럼 와 주었고
나는 우리 친정어머니처럼…(이상스레 잔상이 그녀에게 묻어나서)
여느 땐 엄마처럼, 여느 땐 친 동기간처럼,
정말 잘 대해 주었다.
내가 동떨어진 객지로 와서 자리잡고…….
그녀는 고향이랄 수도 없는 우리 시가 동네에서
독거 노인으로 외롭게 지내다가..
작년 봄에 급한 전화가 왔다.
그녀가 다니던 교회에서였다.
이상하니 와 보라는 것 이였다.
우리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생각하며 먼 길을 서둘러 내려갔다.
고향에서 아버님 돌아 가시고 시어머님을 모시고 와 있었으니…
전화로만 안부를 물었지 그렇게 자주 볼 처지는 아니었다..
갑자기 그럴 수 있을까?
풍과 치매가 함께 와서 병원에 입원을 시켜두었는데…..
간호 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형님 그냥 나 따라가자”
잘 일어 설 수도 없던 환자가 그 말은 귀에 들어와 침대에
걸터앉아 신발을 찾는다.
차 뒤에다 누이고 싣고 오며…
어둑한 곳에다 차를 세우곤, 아빠를 내 보내고
기저귀를 갈아 주었다.
우리 막내는 병 든 고모를 보고
제 어미마냥 손을 주무르고 애타 하는데
그 애의 생모인 내가 그녀를 어찌 모른 채 할 수가 있으랴~~
그런 감상도 잠시, 너무 힘이 들었다.
나도 허리가 시원찮은데……
이게 웬 업일까 싶어 남몰래 우는 날이 늘어만 갔다.
데리고 왔으니…갖다 버릴 수도 없고……
바닥에 등이 딱 들러붙은 듯 너무 무거워 일으키다가…
“오 하나님, 아버지, 주여~~~”
소리만 스무 번도 더 되게 부르짖어야 겨우 일으켰다.
한 보름 만에 행인지 불행인지 숨을 거두고….
그녀의 영정 앞에,
우리 막내는 밤을 꼬박 새우며…무릎 꿇고 울며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더 가슴이 아렸다.
아이들에게 험한 꼴 보이기 싫어 우린 새벽녘에 벽제로 향하고…
우리는 그녀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그런 사연이 있는 그녀 얘기가 거론이 된 것이다.
친 핏줄이 아니면 어쩔 수 없는가 보다.
그 당시 본가와 우리집을 오가며…
말질(이간질) 했던 걸 어머니께서 흘러 간 이야기랍시고
말씀 하시길래…
자라나온 가정도 없었고 …
배워 온 것도 없었길래….
대충은 알고는 있었지만….
오늘 아침 무엇이 쿡하고 치민다.
내가 그릇이 작음이다. 내가 더 못났기 때문이다.
불쌍하고… 아는 게 없어 더욱
불쌍한 忘者를 상대로 화를 내다니….
어머닌 내 속도 모르고 며느리가 감히 화를 낸다고
보따리를 사시겠다고 으름장을 놓으시고…..
너무 힘 든다. 산다는 게 뭔지……..
“형님아~ 나, 형님 얼마나 좋아 했는데……
좋아했기에, 배신감도 약간 느껴 지더라고…
형님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도 잠깐 잊었어,
어머님은 이제 화 가라앉히시고 주무시고 계셔,
무조건 잘 못했다고 빌었지 뭐~~
형님아 올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따~~
이젠 봄이야. 봄이 돌아 왔어~~
그런대로 형님이랑 나랑은 참 궁합이 맞았었는데….
그치? 형님아?
죽어서 한 마리 새가 되었을까?
아님 한 줄기 바람이 되었을까?
형님아~ 종열이는 올해 대학 들어 가~
다, 형님 공이지 뭘,미안해, 형님아~
만약에 바람이 되었다면 이 봄날에
나에게로 찾아 와 주렴 형님아~~”
종여리가(형님은 날더러도 이렇게 불렀지?)
오늘은
마음이 좀 그렇다.
괜히 아침 밥상머리에 앉아…
아이들 다 보내고 나면 항상 어머님이랑 단 둘이다.
생선 살 두어 번 발라 드린 것까진 분위기 좋았었는데,
이야기 끝에 내가 발끈해 버렸다.
그냥 묵은 감정이 폭발 한 것이다.
참 세상 좋아졌다.
며느리 제, 화난다고 시어미 앞에서 감히 언성을 높이고….
어머니께 그런 게 아니었는데, 되게 서운하신 모양이다.
내 남편은 고명 아들이다.
시누이 하나 없어 외로우셨는지….
시 어른들께선 불쌍한 양딸을 하나 삼으셨다.
나, 시집 온 후의 일이다.
잠깐. 그 고모의 얘기를 하기 전,
내가 아이를 둘만 낳고 그만두자
시 어른들께선 난리가 나셨다.
더구나 우리집안에 적어도 셋은 되어야 한다 시며…..
어른들 말씀을 순종해선지 우리집의 간구를 아셨는지
우린 또 하나의 아들을 보게 되었고…
나는 세 아이의 양육으로 너무 힘들고 지칠 때,
그 고모를 우리집으로 보내주셨다.
셋째 아이를 도맡아 기르게 되고,
그때 나는 큰 아들녀석의 잦은 병치레로
거의 병원에서 살았다. 입원 퇴원 다시 입원,
우리 막내는 말을 더디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늙은 고모를 엄마라 부르고
밤이면 같이 자며 우유를 먹이는데…
낮엔 그저 업거나 유모차에 태워 한바퀴 휘~~
돌아다니는 게 일상이 되어있었다.
아이는 누가 말을 잘 건네지 않아 자연 말이 더뎌지고
나이 많은 대리모에게서…
엄마의 따뜻함은 모르고 자라났다.
그 걸 깨닫고도 어쩔 수 없어 한동안 망서리다
드디어 아이를 그녀에게서 떼어 내는 날,
그래도 그녀는 첫 정이라….
아이 땜에… 울면서…울면서….제 자리로 돌아갔다.
명절이면 꼭꼭 우리집을 정말 친정처럼 와 주었고
나는 우리 친정어머니처럼…(이상스레 잔상이 그녀에게 묻어나서)
여느 땐 엄마처럼, 여느 땐 친 동기간처럼,
정말 잘 대해 주었다.
내가 동떨어진 객지로 와서 자리잡고…….
그녀는 고향이랄 수도 없는 우리 시가 동네에서
독거 노인으로 외롭게 지내다가..
작년 봄에 급한 전화가 왔다.
그녀가 다니던 교회에서였다.
이상하니 와 보라는 것 이였다.
우리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생각하며 먼 길을 서둘러 내려갔다.
고향에서 아버님 돌아 가시고 시어머님을 모시고 와 있었으니…
전화로만 안부를 물었지 그렇게 자주 볼 처지는 아니었다..
갑자기 그럴 수 있을까?
풍과 치매가 함께 와서 병원에 입원을 시켜두었는데…..
간호 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형님 그냥 나 따라가자”
잘 일어 설 수도 없던 환자가 그 말은 귀에 들어와 침대에
걸터앉아 신발을 찾는다.
차 뒤에다 누이고 싣고 오며…
어둑한 곳에다 차를 세우곤, 아빠를 내 보내고
기저귀를 갈아 주었다.
우리 막내는 병 든 고모를 보고
제 어미마냥 손을 주무르고 애타 하는데
그 애의 생모인 내가 그녀를 어찌 모른 채 할 수가 있으랴~~
그런 감상도 잠시, 너무 힘이 들었다.
나도 허리가 시원찮은데……
이게 웬 업일까 싶어 남몰래 우는 날이 늘어만 갔다.
데리고 왔으니…갖다 버릴 수도 없고……
바닥에 등이 딱 들러붙은 듯 너무 무거워 일으키다가…
“오 하나님, 아버지, 주여~~~”
소리만 스무 번도 더 되게 부르짖어야 겨우 일으켰다.
한 보름 만에 행인지 불행인지 숨을 거두고….
그녀의 영정 앞에,
우리 막내는 밤을 꼬박 새우며…무릎 꿇고 울며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더 가슴이 아렸다.
아이들에게 험한 꼴 보이기 싫어 우린 새벽녘에 벽제로 향하고…
우리는 그녀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그런 사연이 있는 그녀 얘기가 거론이 된 것이다.
친 핏줄이 아니면 어쩔 수 없는가 보다.
그 당시 본가와 우리집을 오가며…
말질(이간질) 했던 걸 어머니께서 흘러 간 이야기랍시고
말씀 하시길래…
자라나온 가정도 없었고 …
배워 온 것도 없었길래….
대충은 알고는 있었지만….
오늘 아침 무엇이 쿡하고 치민다.
내가 그릇이 작음이다. 내가 더 못났기 때문이다.
불쌍하고… 아는 게 없어 더욱
불쌍한 忘者를 상대로 화를 내다니….
어머닌 내 속도 모르고 며느리가 감히 화를 낸다고
보따리를 사시겠다고 으름장을 놓으시고…..
너무 힘 든다. 산다는 게 뭔지……..
“형님아~ 나, 형님 얼마나 좋아 했는데……
좋아했기에, 배신감도 약간 느껴 지더라고…
형님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도 잠깐 잊었어,
어머님은 이제 화 가라앉히시고 주무시고 계셔,
무조건 잘 못했다고 빌었지 뭐~~
형님아 올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따~~
이젠 봄이야. 봄이 돌아 왔어~~
그런대로 형님이랑 나랑은 참 궁합이 맞았었는데….
그치? 형님아?
죽어서 한 마리 새가 되었을까?
아님 한 줄기 바람이 되었을까?
형님아~ 종열이는 올해 대학 들어 가~
다, 형님 공이지 뭘,미안해, 형님아~
만약에 바람이 되었다면 이 봄날에
나에게로 찾아 와 주렴 형님아~~”
종여리가(형님은 날더러도 이렇게 불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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