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기온이 28도 까지 오르고 그리도 덥더니.
오늘은 날씨가 을씨년스럽다.
빈 집에 갔다.
누구는 밭에다 파종했다고 자랑이 늘어졌는데….
난 게으름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메주 만들고 남은 씨알 좋은 콩을 골라 들고 빈 집으로 향했다.
개나리의 만개로
길목이 눈이 부시도록 노랗다.
집에 가 보니,
어제 하루 더웠다고
한 그루 진달래는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만개한 진달래 꽃 사이로 호박벌?(뚱뚱한)이 잉잉대며
달콤함에 푹 빠져 있었다.
등나무도 싹을 틔우고 있었고,
수국도, 딸기도….회양목은 보일까말까 한 꽃술을 피우고….
철쭉도 꽃몽오리를 빼 물고 있다.
홍매화도 붉은 꽃망울을 내 비치고…..
라일락도….꽃봉오리와 함께 잎을 매달고 있었다.
완연한 봄이다.
얼마 전, 제대한 놈이 따라가 주려고
오후 4시, 학원 가기 전 까진 와야 된다더니…
막상 잠자리에서 못 일어난다.
마침 남편이 그 쪽으로 서류 전달 할 일이 있고
안해주면 못 할 처지임을 아는지라...
선뜻 함께 가주겠다 한다.
예전에는 집안 일이라면 물 한 컵도 못 마시던 이가,
언제나 나무등걸처럼 우직할 줄로만 알던 마누라의
허리가 작신 부러져 나간 뒤론….
좀 거드는 척이라도 한다.
빈 집에 며칠 전 함께 들릴 때,
개집 부근을 청소해 주면 좋으련만
구두 버린다고 못한다더니…오늘은 웬 일일까?
하도 비워둔 집이라….
실내 주방 수도꼭지가 막혔다.
옥상탱크 물 찌꺼기가 해동하면서 내려오다 끼였나 보다.
“여보~~ 바늘~~”
꼭지 샤워기에 뭐가 끼어서 뚫으려나 보다 하고 찾아주고 돌아서 나오려는데
“여보~~ 헌 칫솔~~”
몇 번을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 보면….
막상 내 일을 못하고 만다
“휴~~ 내사 마~~ 앓느니 죽지…”
바깥에서 다른 일을 하느라 바쁜데
“우리 밥 먹고 하자”
아~~ 두 식구래도 다시 밥을 해서 찬을 마련하기가 그리 쉬운가
나는 방금 사 온 돼지고기를 압력솥에다 살짝 돌려내고
갓김치를 꺼내고….
된장찌개 끓이고…..
동치미를 썰어놓고...
만약에 말이다.
이 나이에,
좋은 사람이 생겨서 이렇게 따로 밥 한끼 차려 내 놓으라면 나는 못할 것이다.
이쁘게도 보이고 싶을텐데...
어느 세월에 이런 일을 마구하나??
마치 정신 없는… 멋이라곤 없는 아낙,
이리 뛰고…저리 뛰고…
온김에 말려 두었던 무우청도 꺼내 삶아가야하고...
한참 묵은 검은 콩도 챙겨가서 콩자반도 만들고...
집에 아마 물엿이 없을테니...
우선 여기 것 가져가야하고.......
별일도 아닌 것 같은데…..언제나 나는 일이 걸다.
그래, 향수~ 정지용님 詩에서처럼 사철 발 벗은 아내처럼…..
화장도 않고 나온 나는 영락없는 시골 아낙이다.
일에 부대껴~ 억척으로 제몸 하나 아낄 줄 모르며~~
아무런 멋도 낭만도 없다.
제대로 된 밭도 아니면서
그래도 농사를 모르는 내겐 언제나 버겁다.
우리집 후문 쪽,
삼각형으로 이상한 자투리 땅이 있는데….
길이 2차선에서 4차선으로 넓혀 지면서
도로에 빼앗기고….이상한 꼴이 되었다.
땅 주인은 한 사람이 아니었다는데…. 건물도 지을 수 없고 어중간한데다
법적 소송까지 붙었단다.
우리가 사면 좋지만 그 곳에다 더 코 빠트리고 싶지가 않다.
물론 돈도 없지만……
마침 후문이 있는 관계로 우리 땅처럼 되어 있어서 그저 생긴 거나 진배없다.
마당에 연못이라고 목욕 함지박 타원형 큰 것을 넣고
내가 직접 내 키 만큼 괴석들을 올려 쌓은 인공 폭포~~~
용량이 큰 여과기(수족관)에 돌 틈새로 호스를 연결해서 만든,
내가 만들었다면 아무도 믿지않는 폭포?
물 소리가 듣고 싶었다.
담장 코너에다 이 것을 한 여름 나 혼자서 만들고는
더위를 먹고는 한 사나흘 얼마나 앓았던지…..
만들긴 비록 한나절 이였지만…
먼 곳 계곡 까지 가서 날라온 돌들….
남의 눈치 보며 하나씩 둘씩 날라다 모은 내 정성…..
면장갑을 끼고 시멘트를 만졌지만….시멘트 독이 스며들어
한 참을 고생했던 내 손 바닥…..
그 것을
남편은 엎어버리자 한다.
그 것 땜에….옆 자리에 있는 오엽송이 죽었다고 늘 타박이다.
그러고 보니 옆자리 대추나무도 빗자루 병에 걸려 회생 불능이다.
내가 새 집으로 이사 올 때 5천원 주고 사서 심은 묘목인데….
대추 알이 얼마나 굵고 단지….
나는 베어내는 것도 큰 일이지만
너무 아까워서 인터넷으로 나무병원으로….찾아 보았지만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일명 대추나무 에이즈, 또는 그저 미쳤다고 표현하는….
너무 안타까워… 밑 둥 에다 거름을 정성스레 묻곤 하였더니
잎은 오그라지진 않아도 열매를 맺지는 못하였다.
대문 앞에… 아주 나무줄기가 잘 생겨 사다 심은 대추나무 마저
빗자루 병이 옮아 버렸다.
연못(? )은
얼음이 녹고 나니 물이 썩어 고여있다.
남편 말대로 별 쓸모가 없긴 없었다.
실내에도 금붕어를 기르고 있었으니까,
장마 때만 되면 큰 지렁이들이 그 깊은 물속에 엄청나게 빠져 있었다.
비만 오고 나면 죽은 지렁이 건져내기….
아니면…새끼 쥐들이 바위를 타고 놀다가
익사하는 곳으로….
해서 늘 눈치가 보이는 연못 청소는 두 말도 않고 내가 늘 했었다.
집을 거의 반년을 비워두었으니…..
음식 쓰레기 나올 일도 없고….
당연히…. 새끼 쥐의 죽음도 없었다.
여태 얼음덩이로 있었던 물이라…
지렁이의 시신도 없었다.
작은 방개하나와 알 수 없는 버러지 한 마리뿐……
작년 가을에 떨어졌던 대추나뭇잎이 새파랗게 건져졌다.
뒷문을 나가보니
남편의 곡괭이 질이 제법이다.
아니었으면 억세게 내가 하던 일인데…..
나도 얼른 내 일을 미루고 나가서 흙을 고르는 남편 뒤로 다가가
나무 꼬챙이로 흙을 꼭꼭 찔러 구멍을 내고 거기다 콩을 심었다.
작년에는 배 고픈 까치가 지켜 보았다가 거의 다 파 먹었었다.
올 해는 콕콕 정성스레 묻었다.
또 그 까치가 있나 해서 두리번거려 보았다.
그 때… 이 동네 참견 장이 아줌마가 나타났다.
“아니 콩은 모심기 때 심는데….”
“그럼 어떡해요?”
“할 수 없지 뭐, 비닐 씌워야지”
“에게게~~ 요따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고추 모는 한 달을 더 있어야 한단다. (늘 하면서… 늘 모름)
그 말을 듣자
남편은 얼씨구나 하고 나머지 땅 파기를 포기했다.
때 마침 빗방울이 후드둑 떨어졌다
그 것도 일이라고 술 한 잔 해야겠단다.
아까 삶았던 돼지 수육에다 갓김치, 참이슬로 거나하게 취한 남편,
빗길에 조심스레 운전해 오는 내 곁에서 고단한지 한 잠에 빠져 코를 골고 있었다.
2001/4/11일
글/이요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