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 홍매

 

절집 매화를 만나보고 내려오는 길에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녀온지 벌써 10일째!

가슴에 뿌듯한 무게로 안겨왔었나봅니다.

 

또 글을 재빨리 쓰지 못하고 미적거리고 있는 제 폼새가~~

느낌이 많아 심지어 울컥 했던 감흥이 있던 여행은 함부로 발설하지 않고 묻어두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귀한 여행기를 많이 놓쳤구요!

 

요즘은 글 쓰기가 자꾸 힘들어지는군요!!

컴텨에 앉으면 서너꼭지도 줄줄 나오긴 하는데....

내일 또 여행 떠닙니다. 아침에 예약해두고 다녀오겠습니다.

 

새 여행지를 만나러 가는 전날밤이면  앞서 다녀온  여행지의 감흥이  퇴색되어 뒤안길로 묻혀버릴까봐 저 역시나 두렵습니다.

여행전날 밤이면 꼭 이렇게 몇 자 서두를 떼봅니다만...오늘은 제자리 걸음입니다.

다녀와서 꼭  써봐야지요.

 

자연 정원이 일품인 선암사 절집 오래 묵은 홍매화를....

우선 사진 몇 장만 올리고 떠납니다.

 

진달래 붉게 핀 (바로 윗 사진)물안개 피어오르는 경치를 보고는 .....

제가 묵었던 그날 밤 절집의 내밀하고 슬펐던 이야기에 그만 다시금 먹먹해졌습니다.

 

그 사연은 다음 이야기로 미루고...

지금은 자정입니다.

오늘은 그 썰을 풀기엔 너무 힘들 것 같아 잠자리로 들려합니다.

다음 글은 필히 절집 '선암사' 이야기를 풀려합니다.

 

 

 

 

 

 

 

비속에 선암.. view 발행 (2)

키가 큰 나무도 울고....키 큰 어느 부부도 울 던 밤!! 봄비가 여름 장맛비처럼 사정없이 내립니다. 우산을 썼지만......

2014.04.14 17:57

 

*승선교*
 
선암사의 부도(浮屠)를 지나 경내에 이르면 내를 가로지르는 다리 가 있다
보물 제 400호 (1963.09.02 지정)  문화재 399호 | 문화재 401호 문화재(400)로 지정된 "승선교"

 

 

천연기념물 488호 선암사 홍매화

 

 

 

 

 

 

 

봄이 오고 있었습니다.

매화꽃소식에 버선발로 달려갔더니 매화꽃은 아니 피고

분명 봄이 오는 소리는 개울물 흐르는 소리로 먼저 오고 있더군요.

그 물소리를 녹음해 오지 못한 게 얼마나 후회스럽던지....

 

 

내일 아침 일찌감치 순천 갑니다.

이 글이 올라갈 즈음에 전 KTX를 타고 서대전에 내려

순천을 향하는 S트레인(남도해양관광열차)에 몸을 싣고 있겠군요!!

 

순천은 보름 전에 다녀왔더니

매화꽃은 봉오리인 채 배시시 수줍은 웃음만 베물고 있었습니다.

아쉬움에

매화꽃 제대로 핀 모습 보러 다시 떠납니다.

나머지 글은 다녀와서 쓸려고요!

 

 

선암사삼인당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선암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연못.
전라남도 기념물 제46호. 장변과 단변이 2.2:1의 비를 갖는 기다란 계란 모양의 연못 속에, 장변 11m, 단변 7m의 크기를 갖는 계란 모양의 섬이 저부(底部) 가까이 4m의 거리를 두고 위치해 있는 중도형(中島形) 타원형 연못이다.
이와 같은 특이한 양식의 연못 형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찾기 힘든 것이다.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정원에서는 직선적인 방지중도형(方池中島形)의 연못 양식이 지배적이었고, 통일신라시대에 조성한 불국사의 청운교·백운교 앞의 구품연지(九品蓮池)는 정타원형 못이다.
통도사의 구룡지(九龍池)는 구품연지와 비슷한 타원형 연못이기는 하나 모두 정형적인 정타원형 윤곽선을 가지고 있으며, 중앙에 가로지른 다리가 놓여 있는 것이다.
이상의 점에서 볼 때 선암사의 삼인당은 조선시대의 양식으로 보기는 어렵고, 조성연대는 훨씬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까 추정된다.
선암사의 사적에 의하면, 이 연못은 신라 경문왕 2년(862)에 도선국사가 축조한 것이며, 연못의 장타원형의 안에 있는 섬은 ‘自利利他(자리이타)’, 밖의 장타원형은 ‘自覺覺他(자각각타)’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불교의 대의를 표현한 것이라 한다.
‘三印’이란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을 뜻한 것으로, 이 연못은 불교의 이상을 배경으로 한 ‘삼인당’이라는 명칭과 독특한 양식 등이 선암사에서만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호법장승

선암사 길목에는 호법장승(불법 지키는)이 서 있다.

호밥장승은 밤나무로 빗어졌다고 한다.

 

선암사 승선교(仙岩寺 昇仙橋)는 보물 제400호로, 길이 14m, 높이 4.7m, 폭 4m로 숙종 39년(1713) 호암화상이 6년 만에 완공한 다리이다.

기저부에 별다른 가설이 없고 홍예(虹預) 전체의 문양은 반원형을 이루고 한 개의 아치로 이루어졌다.

다리 중심석 아래에 석재가 조그맣게 돌출되어 있다.

고통의 세계에서 부처의 세계로 건너는 중생들을 보호 수용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돌다리로 선암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다. 자연 암반 위에 장방형의 돌을 쌓아 반원형을 만들고 그 옆으로 냇가에 있는 돌을 쌓아올렸다. 아치형 내부 천장의 용머리 돌출 장식은 다리 붕괴를 막는 수호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축조 연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벌교홍교가 지어진 조선 영조 이전일 것으로 추정된다.

“관음보살 알현 소원과 승선교”

조선시대 숙종 24년(1698) 호암스님이 관음보살을 알현하고자 백일기도에 들어갔다. 스님은 소원한 바를 이루지 못하자 낙심하여 벼랑 밑으로 몸을 던지려 했는데, 때마침 여인 하나가 나타나 스님을 구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스님은 그녀가 관음보살이라 여기고 원통보전을 지어 관음보살을 모시고 절 입구에 아름다운 다리를 세우니 그것이 승선교이다.

상세설명

선암사의 부도(浮屠)를 지나 경내에 이르면 시냇물을 건너야 되는데 그 건널목에 놓인 다리가 승선교이다. 시냇물의 너비가 넓은 편이라서 다리의 규모도 큰 편인데, 커다란 무지개 모양으로 아름답게 놓여있다. 기단부(基壇部)는 자연 암반이 깔려 있어 홍수에도 다리가 급류에 휩쓸릴 염려가 없는 견고한 자연 기초를 이루고 있다. 다리의 아래부분부터는 길게 다듬은 돌을 연결하여 무지개 모양의 홍예(虹霓)를 쌓았으며, 그 짜임새가 정교하여 밑에서 올려다보면 부드럽게 조각된 둥근 천장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홍예를 중심으로 양쪽 시냇가와의 사이는 자연석을 쌓아 석벽을 이루고 그 윗부분에도 돌을 쌓았는데, 모두 주변의 냇돌을 이용하였다. 다리 한복판에는 용머리를 조각한 돌이 밑으로 삐죽 나와 있어 장식적 효과를 주고 있는데, 예로부터 이것을 뽑아내면 다리가 무너진다고 전해오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 불에 타서 무너진 선암사를 중건할 때 이 다리를 놓은 것으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 숙종 24년(1698) 호암대사가 관음보살의 모습을 보기 바라며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그 기도가 헛되자 낙심하여 벼랑에서 몸을 던지려 하는데, 이 때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하고 사라졌다. 대사는 자기를 구해주고 사라진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을 세워 관음보살을 모시는 한편, 절 입구에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를 세웠다고 한다. 무지개 모양으로 건설한 양식은 곧 보성 벌교 홍교(보물 제304호)와 같은데, 2개가 모두 지역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으므로 양식상 공통점이 있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다만 돌을 쓴 방식이나 마무리수법이 오래된 양식이며, 그 구조 또한 보다 웅장한 느낌을 주는 것으로 미루어 영조 때에 만들어진 벌교홍교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로 등록된 선암사의 해우소

 

내가 느낀 절집 해우소의 느낌은 외관은 아름다웠고 내부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이 낭패를 어찌하랴~

배변구가 크고 높아서 빠질까 무서워서 앉아 정호승님의 싯귀처럼 울기는 커녕 이 큰덩치가 덜덜 떨렸다.

나중에사 다시 확인한 바로는 여자화장실 세군데 중에 제일 첫 군데가 큰 어른용이고  그 다음이 작고 그 다음은 더 작아 어린이용으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절집에는 어린이들도 드나드는 곳인데... 지레 큰 배변구만 보고 겁을 먹었던 내 자신이 멋적다. 사진을 좀 더 제대로 찍질 못한 게 제일 큰 아쉬움 중에 하나다. (지난번 방문 글에서...)

 

 

정호승님의  ‘선암사 해우소'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620살 되신 홍매화는 빗속에 봉오리를 머금고 있었다.

 

 

선암사는 오랜 세월 자연 그대로의 정원이 빼어나다.

선암사는 신라시대 아도화상의 ‘비로암’ 창건설과, 도선국사 창건설을 가진 사찰로서,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중창되면서 천태종 전파의 중심사찰이 되었다.

경내에는 대각국사의 부도로 추정되는 보물 제1117호 ‘선암사대각암부도’ 등 보물 14점을 비롯하여 다수의 중요문화재가

산재해 있어 역사적·학술적으로 가치가 크다.

어간문

대웅전의 정중앙에있는 문으로 다른 사찰에는 정중앙문에도

         사람의 출입이 가능하지만 선암사에는 부처님처럼 깨달은 분 만이 어간문을 통하여

         통과할수 있다고 하여 어간문을 만들지 않았다한다.

 

 사진을 보면 큰스님 뒷쪽으로 사람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문턱이 아주 높다.

 

 

순천 선암사 동ㆍ서 삼층석탑
(順天 仙巖寺 東ㆍ西 三層石塔)
 
 
지정번호 보물 제395호
(1963년 9월 2일 지정)
제작시기 신라

 이 부분의 본문은 순천 선암사 동ㆍ서 삼층석탑입니다.
순천 선암사 동ㆍ서 삼층석탑(順天 仙巖寺 東ㆍ西 三層石塔)은 절 안의 승선교를 지나 마당에 들어서면 대웅전 앞에 좌우로 서 있는 2기의 삼층석탑으로 보물 제395호이다.
2단으로 이루어진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규모와 수법이 서로 같아서 같은 사람의 솜씨로 동시에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자연스런 정원이 무척 아름다운 선암사!

선암사는 지금 한창 새 단장 중이었습니다.

매화꽃 활짝핀 모습...다시 만나보고 오겠습니다.

 

 

이 요조

 

 선암사, 새벽예불을 드리다.

 

 

 

 

 템플스테이 첫날 밤 잠자리를 배정받았습니다,
진봉스님께서는 그저 남,여 방만 따로 배정해주려 하시지만 나름 여행자들의 내밀한 사정들을

잘 아는 터라...진봉스님 등뒤로 돌아가서 간절한 말씀을 드려본다.

<실은 스님, 부부 방이 필요합니다>
<부부가 왜요?>
<대화가 절실히 필요해서요!>
<그러지요~> 선선히 허락하신다.
그러자니 또 한 부부가 걸린다. 그렇게 방은 애초에 두 개에서 5갠가 6개로 늘어나고
산사의 윗채까지 어두운 밤길을 벌써 접어든 사람도 있고 나머지는 승합차를 타고 올라갔다.

새벽예불을 드릴 사람은 해우소 옆에 있는 요사채로 인도되었기에

인솔자인 나도 새벽예불을 함께 해야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에  뚝 떨어진 산사 별채까지는 올라가지 않았더니 방 하나는 새벽이 되도록 냉골이었다 한다.
늘 뜨뜻한데서 편히 잠자고 생활하다가 절집 냉골방에서 온기 보시를 한 셈이다.
참으로 죄송스러웠지만...새벽예불 드릴 사람들이 (7~8명)묵은 방은 무척 따뜻했다.
........

 

황사경보가 내릴 정도로 심란한 날씨였다.
서울은 낮하늘이 밤같이 어두워지면서 황사비도 흩뿌리며 외출하기가 무서운 공포속의 하루였다 한다.
이 곳은 순천만에 머무는 오후에 잠시 흐리더니  밤새 바람이 유난하다.
산사에서 밤내내 나뭇가지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의 울음소리를 듣느라...잠을 설쳤다.
잠깐 잠이 들었는가 싶은 순간 새벽 3시 인경에 접어들자 순라꾼처럼 목탁을 두드리며 조용히 예불 참여자들을 깨웠다. 

그 게 <도량석>이란다.

 


 

새벽 3시 목탁소리가 하루의 시작을 알립니다.
도량석을 하는 이유는 산사의 모든 생물체를 깨우는 행위입니다.
대웅전 앞에서 시작하여 도량을 한바퀴 돌아 다시 대웅전 앞으로 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30분 정도 소요됩니다.

도량석의 시간은 사찰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새벽예불은 금고의 종성으로부터 시작하여 불전사물을 치고 불전사물이 끝나면 50여분간 새벽예불이 진행됩니다.
사찰에 사는 비구.비구니는 물론 우바새.우바니까지 전대중이 참석합니다.

 


절집을 누비고 다니던 밤 바람은 우리처럼 늦은 잠에 빠졌고 산사의 새벽날씨는 한겨울처럼 쨍하게 추웠다.  밤새 윙윙대며 불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황사를 멀리 일본까지 쓸어 보내느라 그렇게 밤내내 청소를 했었나보다.

다음날 아침은 가을하늘처럼 푸르고 청명했다. 이 세상에 이유가 없는 게 어디 있을까?

우리가 이렇듯 무슨 인연으로 순천하고도 선암사까지 흘러 들었는지....

 

새벽 도량석에 모두는 졸린 눈을 비비고 바깥으로 나섰다.

절간에 늦게 들은지라 어디가 어딘지도 모른채 소리만 듣고는 홀리듯 따라갔다.

요란한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가보니

추워서인지 문은 닫기고 벽 위에는 창으로 터진 곳에서  나는 소리!!

새벽을 깨우듯 하는 대단한 소리의 발원지를 찾았건만 보이지 않아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다.

엊저녁 진봉스님께 법고시간에 맞춰 사진을 찍겠다는 허락을 받았지만 법고를 두드리는데 그리많은 인원들이 시각을 기다리며 오랜시간을 숙연히 기다리는 줄 몰랐다. 

순서는 먼저 금고의 종성으로 불전사물을 치고...법고를 친다고 하는데  감히 어줍잖은 취재로 카메라 들이대기가 그렇다.

후레시없이 몇 장 찍었지만 워낙 캄캄한 밤중인데다 따뜻한 방에서 금방 나온 추위에다가 사진은 모두 흔들려서 사용불가였다.

새벽예불하는 대웅전을 찾아가느라...더듬거리다가 갔더니 스님들은 연신 108배를 하신다.
난 또,,새벽예불을 드리겠다는 참관자들이 불교신자들인 줄 알았다. 7~8명 중에 보살은 단 한 분~ 이 어이없이 생뚱맞은 발상은  어디에서 왔는지?  모두는 108배도 제대로 드릴 줄 몰라 허둥지둥~ 곁눈짓으로 스님들  따라하기에도 급급하다.
절 한번에 유체이탈, 방석이탈~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일배드리고 날 때마다 커다란 방석자리를 벗어나기 일쑤다.

스님들은 한 눈이 아니라..반 눈에도 처억하니 알아보셨을터~~108배 드리는 폼새 하나로도 몇년차 신자라는 걸 아시고도 남을터인데...
오늘 새벽 템플스테이 예불참여자는 <ㅉㅉㅉ!!! 고단할텐데...걍~ 더 자지 왜 새벽에 깨어서 나왔니?>

그런 말을 들을 정도의 말짱 .....노랑 병아리들이다.

그것도 걸음마도 제대로 못떼면서  절집에 왔으니 절집에서 하는 예식을 따르려는....천진난만한 애기들 같이 ,,,

부처님 보시기에 얼마나 기특하며 귀여웠을까?~~ ㅎ`ㅎ`ㅎ`

꿈보다 해몽이다.
  

 

대웅전을 찾아 더듬대며 나섰다. 밤동백이 화사하다.  

 

예불 준비를 하는지 문이 활짝 열리고...

우리는 소리나는 곳으로 뭔가에 이끌리 듯 '

몽유병자들 처럼 선잠에 취한 듯  어찔어찔대며 몰려갔다. 

금고의 종성인가?

비록 문도 닫기고 담장이 가로막았지만...그 소리의 울림은 아직도 공명음으로 이명인 듯 남아있다.

새벽을 깨우는 소리였다. 그리고 종루의 불전사물이 끝나고(후래시없이 사진이 흔들렸음) 우리는 대웅전을 찾아들었다. 

 보물인 삼층석탑이 있는 대웅전 마당이 캄캄하다.

 

선암사에는 세가지가 없다하여

 선암사 三無 

첫째--사천왕문

          일반적으로 사찰 일주문을 들어서면 사천왕문이 있으나 선암사에는 사천왕문이 없다.

        이유인즉 두가지설이 있는데,

    1. 조계산의 주봉이 장군봉이라 장군이 지켜주기 때문에 불법의 호법신인 사천왕을 굳이 만들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2. 일주문과 범종루사이가 너무 협소해서 사천왕문이 들어설자리가 없어서 만들지 못했다는설이다.

 

둘째--주련

       주련이라하면 대웅전기둥이나 벽에 세로로 써 붙이는 글씨로 기둥(柱)마다.

        시구를 연달아 걸었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내용은 부처님 말씀이나 선사들의 법어가 주 내용인데

       주련은 부처님께 다가가기 위한 또 하나의 관문이라한다.  이러한 주련이 선암사 대웅전에는 없다.

       선암사는 개구즉착(입을열면 들린다)라고 하여서

       곧 깨달으면 말이 없다는 뜻으로해서 주련을 달지 않았다한다.

 

셋째--어간문

        어간문이란 대웅전의 정중앙에있는 문으로 다른 사찰에는 정중앙문에도

         사람의 출입이 가능하지만 선암사에는 부처님처럼 깨달은 분 만이 어간문을 통하여

         통과할수 있다고 하여 어간문을 만들지 않았다한다. 

 

참조/맨위엣 사진을 보면 큰스님 뒷쪽으로 사람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문턱이 아주 높다.

 

 

 

문화재로 등록된 선암사의 해우소 

 

내가 느낀 절집 해우소의 느낌은 외관은 아름다웠고 내부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이 낭패를 어찌하랴~ 배변구가 크고 높아서 빠질까 무서워서 앉아 정호승님의 싯귀처럼 울기는 커녕 이 큰덩치가 덜덜 떨렸다.

나중에사 다시 확인한 바로는 여자화장실 세군데 중에 제일 첫 군데가 큰 어른용이고 그 다음이 작고 그 다음은 더 작아 어린이용으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절집에는 어린이들도 드나드는 곳인데... 지레 큰 배변구만 보고 겁을 먹었던 내 자신이 멋적다.

사진을 좀 더 제대로 찍질 못한 게 제일 큰 아쉬움 중에 하나다. 

 

 

정호승님의  ‘선암사 해우소'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사진빌려옴

 


 

 

 

 단 하나 건진 사진은 겨우 쭈그르트리고 앉아 찍은 글귀는 <파리야 극락가자>

 쪼그리고 앉으면 저 창살로 바깥 수풀의 녹음이 보인다.

 

정일근 ‘선암사 뒷간에서 뉘우치다’

 

템플스테이의 새로운 경험은 단 며칠일지라도 사람의 시야를 바꿔놓을 수 있다. 음식을 먹고 나면 단무지로 그릇을 닦아 깨끗이 비운다. 발우공양이다. 오체투지(五體投地)로 탑돌이를 하노라면 온몸은 땀에 젖고 옷은 흙투성이어도 마음은 가뿐하다. 촛불을 켜 들고 범종 소리를 들으면 온몸에 전율이 울려 퍼진다. 깨달음은 해우소(解憂所)에도 있다.

‘무위도식의 오후, 불식(不食)을 했다면 선암사 뒷간으로 찾아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녁 예불시간 뱃속 근심이 큰 장독에 고인 물처럼 출렁거려 뒷간에 앉는다. 사실 나는 내 죄를 안다. 그리하여 범종소리 따라 한 겹 한 겹 밀려와 두꺼워지는 어둠에 엉덩이를 깔고 뉘우친다…뒷간 무명(無明) 속에 발 저리도록 쪼그리고 앉아 진실로 뉘우친다// …근심은 버리려 하지 말고 만들지 말아라. 뒷간 아래 깊은 어둠이 죽비를 들어 내 허연 엉덩이를 사정없이 후려친다…나는 내 몸의 작은 뒷문 하나 열지 못하고, 단 몇 푼의 근심조차 내버리지 못한 채 선암사 뒷간에 쪼그리고 앉아 뉘우친다.’

 

해우소에 쪼그려트리고 앉아 울긴 커녕 후들거리는 다리로 바깥에 나오자니

내 스스로 심히 부끄럽고 안쓰럽다. 

밤 적막을 깨트리며 쫄쫄쫄~~ 물 흐르는 소리로  돌확이 대신 울어주고 있었다. 

   

공양간엔 불이 환하다. 벌써 스님들 아침 발우공양할 시간이 다가오나보다. 

나무도 공양을 하려는지...길다란 그림자로 계단을 올라  공양간 안 깊숙한 곳까지 기웃대고 있다.

 

하룻밤 절집에서 신세지며 묵고는 가지만 우예된 심산인지 잠은 한 숨도 못잤다.

안그려도 버릴 게 너무 많은데 입으로 먹고 또 눈으로도 잡다히 너무 많은 걸 포식하여 도저히 편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채 버리지도 못하고 뛰뚱거리며 산을 내려오는 내 뒷자태를 보며 누군가 희죽 웃었을테다.

비웃었을까? 아니다. 하물며 그악스런 파리도 극락가자는데 ....

이 못난 중생에게도 어찌 그 흔한 덕담 한 말씀 없었으랴!!

 

 

글/나비야 청산가자/이요조 

 

 

  선암사 지도법사 (템플스테이) 진봉스님 

 

 난생 처음 발우공양 체험

 

산사(山寺)는 티없는 무욕(無欲)의 땅이다. 고요하고 깨끗하다.

무심코 지나쳤던 별과 달이 유난히 빛난다. 고즈넉한 산사 풍경은 그 자체로 해탈이다.

 

황사가 봄 하늘을 희뿌옇게 뒤덮는 3월 20일, 여행팀들은 선암사로 찾아들었지요. 

선암사는 송광사와 함께 순천을 대표하는 사찰이지요. 

 

 

순천만을 탐방하고 저녁 공양시간에 맞추어 가느라 순천 동천을 옆에끼고 한 40분 넘게 달려간 것 같습니다.

하늘은 황사로 뿌얬고 바람은 이리저리 불었지요. 이 날 서울은 밤하는처럼 캄캄하고 비도 왔다지요.

이 곳은 잠시잠깐 이랬습니다.

황사를 피해 나들이를 잘 온 셈입니다. 산사에서 하룻밤 묵고나니 그 다음 날은 하늘이 얼마나 높고 파란지

마치 맑은 가을 같았지요. 

 

 

선암사에 당도하니 타고 온 차는 버리라는군요.

속세의 홍진에 물든 껍질을 벗듯 타고 온 차를 버리고 주차장에 있는 선암사 셔틀버스를 이용해서 산길을 올랐습니다. 봄이라 좀 길어진 낮이 산사를 오르는 일순간에 까무룩 저물어버리는군요. 

당도하자 날이 어두운데도 만나지는 사찰의 첫 풍모에 그만 반했지요. 

꾸밈없이 자연스럽게...천년 고찰의 모습 그대로 인 듯 선암사는 경내의 가람배치나 풍경도 그리 권위적이지 않고 평온한 느낌이 들었지요.  사실은 알고보니 태고종과 조계종과의 소송에 태고종은 그대로 답보상태로 숱한 세월 명맥만 유지해 온 아픈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 게  훗날 더 나을지도 모를일입니다. 요즘 돈으로 짓는 사찰들은 시멘트에다가 단청을 입히고...기와도 무늬만 기와지 강판같은 것으로 그럴 듯하게 꾸미고들 있는 것에 비하면 오감의 느낌이 전혀 다릅니다. 

 

 

  발우공양[鉢盂供養]

 

발우는 승려의 밥그릇을 뜻하며, 발우공양은 승려가 식사하는 행위를 말한다. 발우의 유래는 옛날 부처가 가섭이 모시던 용을 밥그릇에 가둬 항복을 받아낸 일이 있는데, 그 밥그릇에서 유래한다. 그래서 항용발(降龍鉢)이라고도 한다. 중생의 뜻에 따라 양대로 채우므로 응량기(應量器)라고도 한다. 발우는 모두 4개로 구성된다. 작은 그릇이 큰 그릇 속에 차례로 들어간다. 제일 큰 그릇은 밥그릇, 두번째는 국그릇, 세번째는 청수그릇이며, 가장 작은 그릇은 찬그릇이다. 밥그릇은 무릎 왼쪽 바로 앞에 놓으며 국그릇은 오른쪽 앞에 놓는다. 찬그릇은 밥그릇 바로 앞에, 물그릇은 국그릇 바로 앞에 놓는다. 목탁이나 종으로 공양을 알리면 모두 대중방으로 와서 조실이나 주지가 중앙문에 앉고 좌우로 순서대로 가부좌한다 /daum 사전

 

발우가 참으로 정갈하게도 얹혀있습니다.

발우공양, 늘 매스컴을 통해 듣고 보고했지만 제가 직접 겪어보기는 처음입니다.

공양은 발우공양과 상공양이 있다네요 상공양은 쉽게 말하자면 덜어먹는  뷔페식이라 생각하면 되구요.

스님들도 매끼니 발우공양이 아니고 아침만 발우공양을 하시고 점심 저녁은 상공양으로 편히 드신다는군요.

 

 

태고종은 조계종과는 사뭇 다른 게 많았습니다.

그 중에도 비구니(승) 비구(승)가  한 사찰에서 도량을 닦으시는 모양입니다.

일반인의 편견이겠지만 단아하고 갸날프고 아릿다운 비구니스님을 보니 왜 그리 가슴이 저릿하도록 아리는지 모를 일입니다.

제일 친하면서 유일한 제 친구도 나이가 오십들어 운문사로 들어갔거든요,.  그렇게 나이 들어 운문사로 들어갔으니~~

발우공양하는 내내 친구를 생각했습니다. 눈물이 핑~~ 돌기도 했습니다. 

 

 

 공양을 마련해주시는 비구니스님들의 손길이

 저희들 눈에는  마치 승무를 감상하듯....나붓나붓하였습니다.

조신조신.....바라보는 저희들이 외려 숨이 터억 막혀왔습니다.

저희를 위해 마련하신 공양은 소찬이지만 정갈하고 담백했습니다.

 저희들은 모두 공양이라는 이름의 퍼포먼스에 함께 동참한

행위예술중입니다.

 지도법사, 진봉스님이 발우를 펴십니다.

모두들 처음인지라 다들 따라하기도 무척 어렵습니다. 

비구니스님의 고운 손길이 일일이 도움을 주십니다. 

 펴기도 어려운 발우~

스님들의 발우는 나무로 깎아만든 것이고 저희들 것은 메라민입니다. ㅎ~

잘못해서 스님의 발우를 가지고 온 것과 비교를 하니

스님들이 사용하는  발우는 정말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저는 갠적으로 

발우를 따로 설거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제일 궁금했더랬습니다.

청수를 나눠주시면 그릇과 수저를 먼저 조용히 헹굽니다. 

 밥을 받으면 머리까지 들어서 감사의 예를 표합니다.

제게 건네주시는 밥입니다. 

전체의 밥을 먼저 나누고는 가반(加飯)하라고 권하시는 중입니다. 

익일 비구(승)님의 공양수발은 가반시 총알처럼 스쳐 지나가십니다.

말씀도 웅얼웅얼.,....가반하십시요가 아니라....더 달라면 안돼로 들립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

웃자고 하는 소립니다.

그만큼 비구니스님과 비구스님의 공양수발 느낌은 천양지차입니다. 

아버지가 차려주시는 밥과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밥, 그랬습니다. 

국은 따로 나오고 찬은 이렇게 4찬이 나왔습니다.

순두부가 간이 슴슴해서 담백하고 다음날 아침 냉이 향이 아주 좋았습니다. 

다음날 된장국은 된장에 콩알이 그대로 보입니다.

아마도 이 큰 절에 메주를 쑬 때 일일이 손으로 다 만든 것 같았습니다.

기계로 만들면 콩딱지가 없거든요.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래서 더 진짜를 먹고 왔다는 자랑입니다. 

 

 김도 직접 구웠는지 맛있다고 다음날 아침에는 다들 욕심을 냅니다.

아~~ 저 무서운 단무지...@.@ 

 

 

 

 밥을 주시는 스님의 뒷태를 보세요. 두 발은 가지런히 모으셨습니다.

전 저런 자세로 다섯분에게만 밥과 국을 퍼주고나면 그로키상태가 될 것 같습니다.

소식으로 드신 분들이...대단도 하십니다.

물론 속세의 저는 과잉으로 늘어난 뱃살이 저런 자세를 유지하기에도 힘들고요! 

 "감사합니다"

 각자 찬들을 먹을 만큼씩만  조용히 덜어서 담습니다.

요 정도로 먹어야 심신이 가벼울 것 같은 

이 발우는 제 공양발우입니다.

많이 먹어서 축척되어 거꾸로 독이되어 나를 치는 병이 없을 것 같습니다. 

 

 죽비를 세 번 치시면 공양 발원문을 합송합니다.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있고, 한 알의 곡식에도 만인의 수고로움이 담겨있습니다.

이 음식을 감사한 마음으로 먹겠습니다. ----

 

공양을 준비하고 공양하는 곳을 후원이라 하고(식당)
  공양간은 밥을 하는 곳이군요. 공양간은 주방을 뜻하는 말임을 배웁니다.

 공양주 스님들은 임무완수를 다 하신 듯....커튼을 닫아 가리고  공양이 끝나기를 기다립니다. 

큰사찰에는 공양주스님이 여럿이고  작은 사찰에는 신자들이 도맡아하는 공양주보살들이 있다는군요.

요즘 작은 일반사찰에는 공양주보살을 구하기 어려워 중국동포를 쓰기도 하지만

사람 구하기 어려워 곤욕도 치른답니다. 

 이 공양은 다음날 아침공양입니다. 냉이두부 향이 좋습니다.

단무지는 하나 남겨두어야 합니다. 

김이 맛있다고 욕심 부리는 옆사람 발우입니다.

김으로 뒤덮혔습니다.  제 것 다 먹고 한 장 더 달라고 무언으로 말했더니

죽어도 안줍디다 ㅠ,.ㅠ 

 깨끗이 다 먹은 후에는 단무지 하나를 남겨 그릇을 닦습니다.

깨끗이 돌려 닦아냅니다.

전 이 물을 마시는 줄 알았는데 마실물은 따로 받습니다.....

이 물은 버리는데 진봉스님이 받아온 양동이에 찌꺼기가 있으면

그 줄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나눠 마셔야 한다시는 엄포에 윗물만 버리고 찌꺼기는 단무지와 함께 먹었습니다. ㅠ.ㅠ;;

발우를 깨끗이 닦아서 처음처럼 차례대로 잘 쌉니다. 

 공양이 끝나면 죽비소리에 맞추어 다시 합송을 합니다.

 -이 공양의 고마움을 마음에 새겨 사회 대중을 위해 살아가겠습니다.-

죽비 3번 합장 후 일어서서 발우 장소에 가서 자기 자리 번호에 공양그릇을 넣어둡니다.

 

 선암사 지도법사이신 진봉스님의 가르침따라ㅡ

죽비소리의 차례따라 발우공양 체험 잘 하였습니다.

 

공양

공양시간이 되면 소종이 울리고 모든 대중스님들이 공양간으로 모여 발우공양을 합니다,

발우란 양에 알맞은 그릇이라는 뜻으로 4개의 그릇에 각각 밥, 국, 반찬, 청수를 담습니다.

똑같이 나눠 갖는 평등, 낭비없는 절약, 공동체 단결과 화합 등을 이루는 마음으로 고양을 합니다.

공양의 시작은 죽비에 맞추어 시작하고 자기의 공양그릇에 담긴 모든 음식은 한톨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야 합니다.

식단은 마늘 등 자극적인 오신채가 없는 채식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순천만 데크목 탐방로 

 

일주일 밖에 안남았는데 공지글 이제사 올립니다.

이번 투어는 서울발 순천에서 농촌에서 점심식사후 체험학습하고 순천만탐방을 하고 선암사 탬플스테이를 합니다. 그리고 홍매화축제를 보고 서울로 향합니다.

물론 팸투어 여행카페 회원들로 구성되지만 지난 순천만 제 글을 보고 출사를 가시고 싶다며 아쉬워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블로그님들이라면 몇몇 분 더 초청하기로 합니다.

경비는  선암사 탬플스테이를 진봉스님께서 아주 낮게 책정해주신 가격 그대로만 30,000원 입니다.

저희팀은 선암사에 저녁에 들었다가 발우공양하고 다음날 오전 10시경에 나서는 계획입니다.  날씨가 좋다면 편백나무숲 걷기 명상도 있을 예정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매화축제장에서는 각자 매식입니다. 5,000원 정도면 훌륭하다고 합니다.

그외 버스비와 농촌체험비는 순천시 지원입니다. 선암사에서는 홍매화시화전도 있으니 아마튜어 예인들의 많은 참여도 부탁드린다는군요~

 

1차 다녀온 후기글입니다.

 

순천만에 가면 누구나 사진작가가 된다.  http://blog.daum.net/yojo-lady/13745611
순천만, 철새들의 보금자리      http://blog.daum.net/yojo-lady/13745612
순천 개랭이 마을 <고들빼기>농촌체험   http://blog.daum.net/yojo-lady/13745605

 

주최/Daum Cafe 농촌체험, 팸투어 함께 떠나요   http://cafe.daum.net/traveler.

준비물/세면도구

 

 행사일정표

 

선암사 탬플스테이와 홍매화축제가 마음에 무척 듭니다 (개인적으로)

 

 

 

 

3월중 투어 또 하나!

투어 또 하나

3월25일 공주,부여 금산 일정있습니다. (서울발 3월25일 서울시청 옆 프레스센타 오전9시출발) 프로그램 다양~ 특히 금산, 만인산 트레킹으로 봄나들이 즐겨보세요~~~

회비는 만원입니다.(점심과 음료수)

주최/Daum Cafe  김치와 된장 이야기   http://cafe.daum.net/MomKimchi 

 

 

 

☎ 016-382-1919  이요조

☏ 070-8628-7676 이요조

☏ 070-7449-7365 이요조

 

여행자보험/닉과 본명 그리고 주민번호를 비공개 댓글이나 쪽지로 주세요!

 

................................................출발지............................................

 

서울역에서 한정거장 더 북쪽으로 오면 시청입니다.

시청 4번출구로 나오셔서 직진 작은 건널목 하나 건느시면 바로 그 곳이 한국언론재단 프레스센터입니다.

차량은 (동신버스) 

차에다 짐을 두시고 프레스센터 화장실을 이용하시면 좋습니다.

  

 

지도는 오른쪽 "스카이뷰" 를 눌러서 보시면 더 알기 쉽습니다. 

 

서울시청 4번출구로 나오셔서 직진(50~70m)

한국프레스센터 앞에 버스대기합니다.

순천발은

정각 08:00시 출발하오니 늦어도 7시 45분까지 전원 도착해주셔야 해요.

일시 3월20일 8시출발

화장실은 지하철을 나와서 4번 출구 부근에 있습니다만

버스에 자리 잡으신후 프레스센터 화장실을 이용하시면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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