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문캠프>를 다녀왔습니다.

예천이 용궁이란 전설을 왜 가졌는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용트림을 하고 있는 건 분명했습니다.

안동을 위시하여 김천 영천 예천이 유교의 민본사상이 깊은 고장입니다.

그런고로 매너리즘에 사로잡혀서 많은 볼거리와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토리텔링을 못하다가 이제야

제대로 알려보겠다고 다짐을 한 듯 합니다.


인문학 분야의 저명인사들을 활용한 셀럽(celeb)마케팅의 일환으로 개최하는 <인문캠프>를 시작되었습니다.


1회 셀럽은 신문사 언론인 출신 작가로 <칼의 노래 ><자전거여행>등이 제가 즐겨 읽고 독후감을 써 본 그의 글입니다.

그나마 작년? 그의 책 <공터에서>를 사다놓고 절반만 읽았습니다.

 나와 비슷한 연배지만...제 느낌에는 과거 민족사가 어렵고 진부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글 속에는 불현 듯 빛을 내는 주옥같은 글귀들을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이런 <인문캠프> 정보에 어두웠던 제 자신을 실책했습니다.



제가 환호를 지르며 달려 간 2회는 안도현시인님이랍니다.

얼마나 가고싶었으면 1박 2일 집을 비우면서....한 달을 비워도 될 만큼 남편을 위한 반찬을 첩첩히 준비해두고 나왔지요. ㅎ~



실은 김훈씨에 비해 안도현시인님 글은 그다지 접해보지 않았습니다.

이제 안도현씨에게 마구 접근해 볼 계기가 됐습니다.
<너에게 묻는다> 라는 시와 소설<연어>등의 저자 안도현님 을 초청했습니다.
예천시는 또 저희들을 객석으로 초청했습니다.


향후 예천, 고향으로 들어와 사시겠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1961년 예천에서 태어난 안도현시인은 집안의 장남으로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랐나봅니다.

(안도현님의 어머니와 닭계장 이야기를 직접 듣고...

그는 이리 원광대를 졸업하고

교직에 섰다가 본의 아니게 휴직기를 맞아 고난을 겪고 장수에서도 교편을 복직,  회복했다가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을 공부하고 지금은 우석대학교(교수)에 계시네요.

.........................................................................................

1981년 대구매일신문 "낙동강: 등단

2007년 제2회 윤동주문학상 문학부문

2005년 제 12회 이수 문학상

경력 민주통합당 중안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


..



7월 6일 우리가 찾은 예천은 때마침 용궁 순대축제로 예천 용궁역앞 장터는 시끌벅적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이만여 관광객이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네요!

플래카드가 내걸리고 전통시장은 손님맞이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예천시의 내노라하는 용궁순대 잔치가 떡 -벌어졌군요.

용궁이니 용왕님도 어련히 계실까마는....용궁하고 순대는 또 무슨 상관일까요?

전...그건 아직도 잘 몰라요,  ㅎ





안도현시인님 글을 먼저 공부해야했습니다.

그 명성이야 두루 알고 있었지만 부끄럽게도 정확하게 아는 게 별로 없었거든요!

집으로 달려오자...안도현님의 국경을 넘어 셰계적인 우화 Top5 안에 <연어>라는 이 동화가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 그리고 <갈매기의 꿈>등과 함께 스테디셀러로 그렇게나 유명하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습니다.

백만부나 팔렸다는군요.


안도현시인은 1990년대  '민중시인'으로

소설같은 동화, 동화같은 소설로  은은한 울림을 주며, 세상을 날카롭게 통찰하는 눈을 가지신 분

이라고 그렇게 되어 있군요!


저 블로그 역시나 그냥 <이요조` s 나비야 정산가자>에서 <이요조` s 창작실버동화 청산나비>로 바뀐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부끄러웠어요.

동화도 제대로 모르면서 실버동화를 써보겠다고 덤볐으니...

도서관에서 얼른 연어를 찾아 대출해왔지요.

연어의 가장 아름다운 생이...마지막 알을 낳고 삶을 종료하는 순간이라는...그 글이 삶과 죽음, 종족보존!  

우리네 인생과 별 다름없다는 것을 잔잔하게 깨닫게 해주는 글입니다.

그림도 좋군요, 동양화를 공부하신 한병호 선생님의 그림이 살아있습니다.



안도현시인님은 차분하지만 약간 피곤하신 듯...

(참여하러 한양서 내려오신 분들과 예천관광지를 함께 들러보는 이벤트도 계속하셨다네요)

세상을 예리하게 바라본 통찰력 있는 이야기거리를 내심 기대했건만 저으기 속내를 절제하시는 듯 했습니다.




따끈한 신간이라면서 오신 객석에 계신 운좋은 몇 몇 분들에게 돌아 간 <남방큰돌고래>는 당첨자에게 선물로 돌아갔습니다.

부러움을 받은 신간을 잠깐 빌려 흔들리는 버스에서 몇 컷 찍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다음날 곧장 달려간 도서관에서 대출하렸더니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는군요.

<연어>의 세계를 확장한 환상적인 돌고래 이야기, 연어보다는 글도 많고 좀 더 철학적 사유의 세계를 열어준다는데 얼른 읽고 싶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인문캠프>가 예천용궁역광장 앞에서 열렸는데....

제가 그 날 낮에 가 본 곳!

선몽대가 얼마나 좋은지....이런 장소에서 서로 툭 터놓고 예기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혼자만의 생각이겠지만 말입니다.

그랬다면 아마도 격의없는 전정한 이야기가 오가지 않았을가요?

저도 맘껏 질문하고,

쥐꼬리 만큼이라도 더 배워오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ㅎ~~


잠깐 선몽대의 여름경치를 좀 감상하고 가실까요? 너무 좋았어요!






 7월 6일 첫째날은 용궁역 앞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바로 대형 스피커 앞에 앉아서 아가씨의 소프라노에 귀가 따가웠고 질문자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내세우기 바빴고,

화장실에 터져 냄새는 진동했고...장소는 좁고 불편했고...

그래도 꾹 참고 다들 견뎌주고 있었습니다. 음력 유월 초나흘 초승달이 반짝이며 ...저도 귀 기우려 동참했습니다.




<인문캠프>의 즐거운 한때



하늘은 무척이나 쾌청했습니다.

용문사에도 들렀습니다.


용문사의 목어를 찍어 일러스트레이터인 지인님깨 보냈더니 영락없이 똑 같은 그림 그려둔 것을 보내왔군요!

어느 게 실물인지 모를 정도군요.



용문사 절집으로 주차장에서 옆으로 들어갔다가

계단 정중앙부로 내려오니 눈이 부리부리하지만 정겨운 사천왕도 만나고

강아지풀이 꽃보다 더 예쁜 자연과도 만나집니다.

시간만 나면 이곳 절집 아랫길이 더 좋았는데...

시간이 축박해 갈 길을 재촉했습니다.



둘째날 인문학 캠프는 초간정입니다.

못다한 이야기는 초간정에서 나누실 모양입니다.

시낭독과 여기서도 노래가 한층 분위기를 고조시킬 모양입니다.


초간정1 ">/경북문화재자료 제143호  조선시대 정자


<초간정> 앞에 선 "안도현시인"




의자없이 여기저기 쪼그리고 앉으라니 영 불편했습니다.

저같은 허리통증환자는 엄두도 못 낼 자세입니다.

.

.

초간정에 얽힌 이야기나 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7년전...초간장을 처음 만나고

홀딱 반했지요.


그해 추석날 ...갓 시집 온 며느리를 데리고 고향(창녕) 선산을 돌보고

시가 일가분들께 인사 시키고 예천 초간정에 붙어있는(민박)에서 하루를 묵어갔습니다.

문화재와 붙어있으니, 초간정에서 묵어가는 거나 진배없었습니다.


조선 중기의 학자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의 후손으로 초간정과 맞닿은 이 곳에서 묵어갔습니다.

추석이래도 늦더위로 많이 더웠는데 모기장을 치고

밤새 정자를 감돌아 흐르던 물소리,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온가족이 하룻밤을 묵어갔던 추억울 잊지 못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방청소를 하느라 방문을 열었더니

바로 초간정 마당입니다.

이런 행운이...

.

.

얼굴이나 한 번 뵙고 가려고

초간정 맞은편에 위치한 안채에 들어갔더니,...

처음엔 의아해 하다가 이내 기억해 내시고는 화들짝 반갑게 맞이해주신다.

그동안 건강이 좋지 않았다가 이제야 회복했다는...그녀!

.

어언

7년의 세월이 흘러간 것입니다.

.

예천여행은 

내겐 정말이지 용궁을 다녀온 것처럼

그렇게 신비롭습니다.


.............................................................................................................................................................................................................







  1.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43호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전20권)을 저술한 조선 중기의 학자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가 1582년(선조 15)에 지은 정자이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린 것을 1612년(광해군 4)에 고쳐 지었지만 병자호란으로 다시 불타 버려 1642년(광해군 2)에 후손 권봉의가 다시 세웠다. 현재의 건물은 1870년(고종 7) 후손들이 새로 고쳐 지은 것이다. 정자는 용문면 원류마을 앞 굽이쳐 흐르는 계류 옆 암반 위에 막돌로 기단을 쌓고 지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면에 사각기둥을 세우고 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집이다. 내부에는 왼쪽 2칸에 온돌방을 만들어 사방으로 문을 달고, 그 외의 부분에는 대청마루를 깔고 사방에 계자난간을 둘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 정자의 현판을 잃고 근심하던 종손이 오색영롱한 무지개가 떠오른 정자 앞 늪을 파보았더니 거기서 현판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두산백과 [본문으로]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

 

국내에서도 마음을 설레게 하는 아름다운 여행지가 다양하게 있다는 걸 해외로만 빠지는 여행객들은 이런 재미를 알란가 모르겠다.

초간정은 울창한 수림과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있는 명승지다.

국도변에서 차를 내려서서 고개를 내밀어 발돋움하면 바로 아름다운 초간정이 보인다.

발아래 돌계단을 밟고 내렸다가 다시 올라가면 초간정을 휘감아 소리를 내며 흐르는 냇물위로 난 다리를 지나 해묵은 송림의 숲 그늘에 땀을 식히면 초간정으로 들어가는 길이 좌측으로 나있다. 

 

초간정의 터는 큰 반석이었다.

그 반석을 두고 물길을 돌아 흐를 수밖에 없었다.

그 큰 반석위에 밑돌을 쌓아 수평을 이루고 정자를 놀렸다.

아마도 큰 물이 나도 든든한 반석이 있어 끄떡없을 천혜의 정자자리가 아닌가!

 

옛날에는  물론 큰길도 없는 심심산골이었을 테다.  초간정 [草澗亭] 草澗亭舍  풀草에 산골물澗 정자亭짜니....

그런데 권문해의 호가 역시 초간이다.

검색을 해보니 어떤 글은 처음 지어질 때 초가로 지었다고도 전해지는데...조금 의문이 생겼다.

가까운 봉화에는 정자가 무려 101개나 있다는 그런 시절에 과연 초간은  호처럼 초가로 지었을까?

 

그에 대해서 검색한 것을 간략하게 요약해보면

 

조선시대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을 집필한 학자 초간(草澗) 권문해(1534~1591)와 그의 아들 권별(1589~1671)의 일기집이 나란히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한국국학진흥원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조선시대 일기는 적지 않지만 부자(父子)가 대를 이어 기록한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고 설명했다.

 

 

 

경북예천의 금당실마을의 초간정은 1582년(선조 15)에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전20권)을 저술한 조선 중기의 학자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가 창건하였다는데 처음에는 조그마한 초가집으로 초간정사(草澗精舍)라고 하였는데, 임진왜란의 병화로 폐허가 되어 터만 남겨졌다가   후손이 권문해를 추모하기 위하여 재건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870년(고종 7) 후손들이 새로 고쳐 지은 것이라 한다.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43호로 지정되었다.

 

영남제일의 정자 청암정

가까운 곳 봉화의 안동 권씨의 청암정과 연대도 비슷하고 그 느낌도 비슷하다.

 http://blog.daum.net/yojo-lady/13745212 

 

 

 영남 최고 정자, 청암정은 냇물을 끌어들여 그 물이 거북처럼 생긴 바위에 세워진 청암정을 돌아나가게  만들었고 亭內에는 청암수석(靑巖水石)이라 새긴 허목(許穆)이 쓴 편액(篇額)이 (88세 되는 해(1582년) 걸려있어 옛날 시골 연못의 모습을 지금껏 보여주고 있다. (경북 봉화 닭실마을) 

 

초간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면에 사각기둥을 세우고 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집이다. 내부에는 왼쪽 2칸에 온돌방을 만들어 사방으로 문을 달고, 그 외의 부분에는 대청마루를 깔고 사방에 계자난간을 둘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 정자의 현판을 잃고 근심하던 종손이 오색영롱한 무지개가 떠오른 정자 앞 늪을 파보았더니 거기서 현판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권영기가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초간정 정자는 용문면 원류마을 앞 굽이쳐 흐르는 계류 옆 암반 위에 막돌로 기단을 쌓고 지었다.

자연스레 굽이쳐 흘러내리는 물과 잔잔히 면경지수로 있는 물을 다 볼 수가 있다.

즉 물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지형에 따라 정자를 돌며 굽이쳐 흐르는 물소리를 내다가 시치미 뚝 떼고 모여서 소근대듯...잔잔하다가...

자연 속에 참으로 살아있는 정자가 아닌가!

옛말에 물 좋고 반석 좋고 정자 좋은 곳 없다 했거늘, 이 셋을 다 만족하는 곳은 잘 없단 말인데.

바로 이 초간정은 그 셋을 다 만족시켜주고 있었다.

초간정은 기암괴석과 주변의 경관이 조화를 이루어 관광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 요조

 

차에서 내려 바라 본 초간정은

울창한 송림 숲 속에 마음 설레게 만드는 자태로 서 있었다.

큰 물이 나도 반석이 있어 끄떡없을 천혜의 정자터!

팔작지붕의 선이 곱다.



초간정 입구 송림숲길

 

초간정을 감돌아 흘러 들어가는 물

 

초간정의 내력을 읽고

 

 

 

 

 

 

 

 

 

사진으로는 물이 하 맑아

물길인지 흙길인지 모를 정도다.

 

 

소나무 숲 사이로 흐르는 바람소리!  물소리~

여기에서 시 한 수 읊어도 좋겠고

이 무더운 여름이 하나도 덥지 않겠다.

 

 

덧문 다 열어 놓으면

든든한 반석위에 지은 정자!

물이 감돌아 흐르는 정자, 물소리에 잠긴 정자!

여름에 미만한 곳 어디 있으랴!!

 


 



초간정 바로 옆에 마치 한 몸인 듯 거슬림 없이 붙어있는 가옥 한 채,

 

한옥체험민박이라고 씌었다.

 

마치 초간정에 묵어가듯

바람소리 물소리를 함께 느껴질 것이다.

 

아마도  초간정을 관리하는 후손이 하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음 여행길에는 반드시 여기에 묵어서 초간정의 물소리 바람소리를 들어보는 권문해의 .초간정(草澗亭)의 매력에 흠뻑 빠져볼 일이다. 


 

 

 

 

 

 

 

 

 

 

 

 

 

 

예천은 醴(단술예)泉(샘천) 이라고 쓴다고 한다.

예천(醴川:甘泉)은 즉 감천이다.

전설의 새 봉황은 오동나무에 살면서 예천(醴川:甘泉)을 마시고 대나무열매를 먹는다.  

 

수컷은 봉(鳳), 암컷은 황(凰)이라고 하는데, 5색의 깃털을 지니고, 울음소리는 5음(音)의 묘음(妙音)을 내며,
뭇새의 왕으로서 귀하게 여기는 환상적인 영조(靈鳥)이다.


비룡산(240m) 회룡포전망대에 올라 회룡포를 바라보며 어쩌면 봉황처럼 귀한 전설이 내재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한 눈에 훤히 내려다보이는 뭍속의 섬, 누군 한 삽만 뜨면 .....섬이 되는...하고 필설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더 높은 공중에서 바라보는 상상을 해보면 마치 어미 자궁속 양수에 뜬 태아처럼 

탯줄로 든든하게 이어져 귀히 숨쉬고 있는 것 처럼 보일테다.

진정코...

 

하트산이 낳았을까? 회룡포를?? ㅎㅎ

                                                                                                                                                                이 요조

물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는 예천의 뿅뿅다리를 아이들처럼 뛰며 건넜다.

예천, 이 뿅뿅다리만 건너보고 되돌아간대도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예천 한 공무원이 여기에 이런 다리를(공사장에 가면 있는 구멍이 뽕뽕 뚫린 철판)  놓자고 했는데...

의견이 분분타가 다리를 놓게 되고 그리고는 이 다리가 대박 났다는 것이다.

물이 조금 불으면 구멍이 숭숭 뚫린 곳으로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뿅뿅 ♬ 물소리가 들려 그렇게 불리워졌다 한다.

 

뿅뿅다리에 물이 좀 차있는 곳이 있대서 나는 기대감을 잔뜩 안고 운동화를 벗고 샌들로 바꿔 신었으나

물이 뿅뿅 소리를 내며 솟아오르는 구경은 아쉽게도 못했다.

 

비룡산 회룡포 전망대에 올라 내성천을 350' 휘감아 돌아 나가는 육지속의 섬마을 회룡포를 한 눈에 감상한 뒤,

비룡산을 하산 제 2 뿅뿅다리를 건너 마을 둘레길을 돌아나와 제 1뿅뿅다리를 건너 예천 시내로 들어가 예천의 맛집,

용궁의 명물 '용궁순대와 오징어불고기'를 맛보고 왔다.

 

 

 

뿅뿅솟구치는 이 느낌을 어쩜 좋아!!

조만간에 좋은 몇몇 사람들과 뭉쳐 다시 한 번 더~~

그리 바쁠 것도 없이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영주에 내려서 이 좋은 경치를 함께 하고싶다는 생각이 마구 뿅뿅 솟구치는 회룡포!!

 

 

전망대 바로 아래에서 내려다 보이는 제 2 뿅뿅다리

고즈넉한 제 2 뿅뿅다리

회룡포 마을 안

수돌이(물이 돌아나가는) 회룡포

제 1뿅뿅다리도 보인다.

비룡산을 올라 전망대에서 회룡포를 감상한 후 하산길에

하트산을 만났다. 겨우 (하트산) 포토존에서 한참 빗나가서 한 장 찍긴 했지만,

이 사진은 어케 찍었는지...??

 

 

제 2 뿅뿅다리를 건너서~

제 2 뿅뿅다리

여자들은 물이 흐르는 다리위가 불안하여 좀 무섭다는데....

나는 마냥 재미있기만 하다.

강물이 다리위를 넘어 흘렀다는 증거

 

주차장이 가까워 일반 관광객들은 제 1 뿅뿅다리만

구경하고 가나보다. 다리가 비좁을 정도!!

 

 

주차장이 인접한 제 1뿅뿅다리 부근에는 식당도 있어 멀리서 달려온 여행객들의 시장끼도 잠재울 수가 있다.



오토캠핑장에 자전거 대여소에

가족들과 함께 지내기에 좋은 장소다.

회룡포 내성천은 한국의 최우수하천으로 뽑혔다.

 

 

전국녹색길 베스트 10 선정

행정안전부가 '우리마을녹색길 베스트 10'을 선정해한 길이다

 

 

 

 

 

 

 

 

 

 

예천은 醴(단술예)泉(샘천) 이라고 쓴다고 한다.

샘물이 단 게 아니라....혹 술이 진짜로  단술처럼 달짜근했던 곳은 아닐까?

밀밭 근처도 못가는 나 역시 이 단술을 마시고 예천에 취했으니~~

 

 

지난 8월 2일 오후 6시 개막식이 열리고 '나그네 반기는 酒 한사발' 이라는 주제로

'2013 삼강주막 막걸리축제' 열렸다.

 

 

예천에 가보지도 않아 예천 소식을 알리 없는 나는 한 십년 전 쯤

여성지 월간잡지에서 삼강주막에 관한 글을 접하게 된다.

 

언제부턴가 상업화보가 절반도 더 넘어서 소비만 부추기는 것 같아 외면했는데

병원 대기실에서 혹은 미용실에서 그 때 당시는 마냥 기다리던 은행에서 보았음직한 잡지에서

내 뇌리를 선명하게 관통하던 .... 실로 멋진 글이었다.

 

마지막 주막..마지막 주모 이야기!!

보통은 이야기에서나 혹은 TV 옛 시절 극중에서나 보던 주막, 막연히 알고 있던

다 쓰러져 가는 마지막 주막을 마지막 역시 수명이 다 한 듯한 노주모를 불러다 함께 참으로 신선하게도 소개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예천 여행을 가서도 삼강주막도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진지 오래~~

마침 축제장에 들어서자 내 뇌리의 어두운 골방에서 쏟아지듯 나오는 그 활자와 이미지의 기억들...

마치 어제 그 글을 보고 오늘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온 듯하였으나 마지막 주모 <유 옥연>할머니는 아니 계시고 부엌 토방에는 빗금 그어놓은 곳에 혹여 손상될까봐 아크릴판을 덧댄 것과 그 사이 경북 민속자료 제 134호로 지정되었다는 것이 다르다.

물난리가 나서 곧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다는 그 기사와는 달리 말끔한 모습으로 단장되었다.

 

들돌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었는데....나루터 짐을 운반할 젊은 일꾼들은 들돌을 너끈히 들어 보이는 정도에 따라 품삯이 정해졌다 한다. 들돌의 무게는 어림잡아도 쌀 한가마니는 더 되어 보였다.

 

아주 자그마한 삼강주막 구조는 너무나 치밀하고 알뜰해서 일반 가정집과는 달리 문이 4개나 있어 사방으로 나갈 수 있는 주막으로서 용이한 구조다.  아마도 혼자서 많은 주막손님을 접대하려면 문이 다 있어야 이 방, 저 방을 하나처럼 훤히 알고 주문을 받고 셈을 치룰 수 있게 한 심산일 테다.

나루터 뱃사공들은 뱃삯을 가을에 마을주민들로부터 쌀로 받아 주막집 외상을 갚으면 세로로 된 외상금에 가로로 빗금을 그어 완료되었음을 표시했다고 한다.

 

 

 예로부터 이 곳은 서울로 가는 길목으로 장사하던 배들이 낙동 강을 오르내렸다.
또한 문경새재를 가기위해 이 곳 삼강 나루터를 꼭 거쳐 갔으며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여 상거래가 번성하였다.
그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주막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어 주막으로 운영되고 있다.

 

여기 저기 주막 축제를 기웃대며 시음한 막걸리만으로도 얼굴이 불콰해졌다. 

노란 루드베카아 꽃사이로 축제가 술처럼 무르익는 것을 바라보며  배추전, 두부, 도토리묵에 막걸리 한 잔 술에 취기가 서려  삼강주막에 들린 여행자의 행복한 노곤함을 느꼈다.

 

아!!....좋타!

 

 

이번에는 내 비록 비룡산에 들어 회룡포를 돌아오는 간단한 올레길을 돌아보고 떠난다마는(40분)

내 다음에는 전국녹색길 베스트 10 선정에 선정된 삼강주막에서 시작되어 삼강주막으로 돌아오는 13,65KM(4시간)를 꼭 완주해 보리라.

마치 쉼 없이 감돌아 흐르는 저 강물처럼 나도 삼강에 몸을 섞듯 그리 바쁠것도 없이 천천히 그렇게 뮬 흐르듯 유유자적하게 걸어보리라!

 

 

 

 

 

 

                                                                                                                                이 요조

 

 

삼강주막 약1900년 무렵

 

 

낙동강과 내성천과 금천, 세 물길이 합류하는 곳이라서 三江 이라 붙여진 이름이 나루터도 삼강나루터,

자연스레 주막이름도 삼강주막이라고 불리었다.

 

경남 김해에서 올라오는 소금과 쌀을 싣고 온 상인과 보부상들의 허기진 배와 마음을 채워주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100년 넘게 명맥을 유지해 오던 주막의 2대채 주인이자 마지막 주모인 <유 옥연> 할머니가 지난 2005년 90세로 세상을 뜨고 주인 잃은 주막은 2007년 말에 복원되면서 엣것을 기리는 축제와 더불어 길손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글자를 몰랐던 할머니는 손님들의 외상거래를 빗금을 그어가며 표시를 했고한 잔이면 짧은 금을, 한 주전자는 긴-금을 다 갚으면 가로줄로 그어 지웠다고 한다.

 

주로 가을이면 추수하고 외상값을 곡식으로 다 걷어 들이면 부엌의 벽은 다시 황토로 발라 새로운 장부로 거듭나곤 했다는 것이다.

 

이 주막은 규모는 작지만 그 기능에 충실한 집약적 평면구성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건축역사 자료로서 희소가치가클 뿐만 아니라 옛 시대 상을 읽을 수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의의를 간직하고 있다.

2005년에는 역사, 문화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 134호로 지정되었다.

 

500년이 넘은 고목 회화나무도 함께 있다.



 

 

 

 

 

 

 

 

 

주모!! 배추전 하나 더!!

주모....도토리묵 추가요!!

허고싶은데 축제라서 정신이 고마 항개도 읍따!!

시원하고 허기를 달랴 줄 막걸리 한 사발에

아삭하고 고소한 배추전 @.@

술,,아니 밀밭이라고 근처도 몬가는 나도 취해 부렀다.

아무리 몬먹어도 여그서 안 묵어보마....어디서 묵어보나??

 

 

수많은 축제 인파로 대충 차려질 것 같은 주안상이 에븝 정갈하다.

아마도 평소에 들린다면 이 보다 더 맛난 주안상을 대하지 않을까? 싶다.

 

 

 

 

 

삼강주막으로 향하는 길목

 

 

 


막걸리축제 오프닝!

경북 예천군(군수 이현준)과 세계유교문화재단(이사장 김상철)은

8월2~4일(3일간)까지 삼강주막(예천군 풍양면)에서 '삼강주막 막걸리축제'를 개최했다.

 




▲주막에 관한 여러가지 글들은 CLICK~하시면  크게 감상하실 수가 있습니다.


 

삼강주막에서 강을 끼고 비룡산을 올

내성천이 감돌아 흐르는

회룡포끼고 돌아나오는 올레길이 참말로 좋다.

 

삼강주막을 들려보는 것도 좋지만

막걸리 한 사발에 배추전을 안주로 꼭 드셔보시라 권하며....

 

 

 

전국녹색길 베스트 10 선정

행정안전부가 '우리마을녹색길 베스트 10'을 선정해한 길이다.

 

강변길 코스 총거리 13.65km 약 4시간
삼강주막▶비룡교▶야외무대및광장▶사림재▶용포마을▶제2뿅뿅다리▶

회룡포▶제1뿅뿅다리▶회룡교▶성저교▶성저마을▶원산성▶범등▶비룡교▶삼강주막

                

  생태계, 살아있네!

                 예천 물돌이동 회룡포를 가려고

 

장안사가 위치한 비룡산을 올라 전망대에서 바라보고 회룡포 뿅뿅다리를 걷기위한

올레길을 걷는 중이었다.

 

회룡포 주차장에서 장안사가 있는 비룡산, 회룡대(전망대)를 지나 제 1뿅뿅 다리를

건너 회룡포 마을을 통과 제 2 뿅뿅다리를 건너 주차장으로 돌아 나오는 2.5km 의 거리로

약 40분이 소요되는 올레길 코스다.

 

비가 온 뒤라 숲길은 습했고 작은 계곡물은 쏟아져 내렸다.

아! 발밑에 녹 슨 철사같은 이게 뭐지? ....아! 연가시다.

영화에서 본 그 무서운 연가시!!

사람몸에 기생하여 자라나면서 점점 물을 많이 마시게 하다가 물로 뛰어들어 죽게 만들던

기생충 '연가시' (철선충)

그러나 일주일 전 교육방송에서 다큐 '기생충'에서 보고는 연가시가 그리 무섭진 않고 신기한

기생충인 걸 한 눈에 알았다.

 

크기는 10∼90cm고 직경은 2∼3mm 이하다.

가늘고 길어서 철사처럼 보인다. 철선충이라고도 한다.

물속에 사는 모기 유충이 연가시 유충에 감염되고, 모기가 자라서 지상으로 이동해 사마귀나

메뚜기에게 잡아먹히면 연가시에 감염된다.

감염되어 중간숙주가 된 곤충을 물가로 유인하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해 자살을 유도한다.

 

동물성 먹이를 먹는 곤충,  주로 사마귀를 숙주로 삼아 몸속에 기생하면서 다 자라게 되면

숙주의 뇌를 조종....(이 부분이 경악할 노릇)

스스로 물속으로 들어가 자살하게 조종한다.

그런 후 숙주의 생식기나 배설구를 통해 몸을 빠져 나온다.

 내가 만난 이 연가시는 갓 태어난 길이 정도다.

 

연가시는 태어나면 짝짓기를 하는데 마치 실타래처럼 여러 마리가 엉겨있다.

기생충 다큐를 설명하는 박사는 이 연가시(엉킨 철사 덩어리처럼 보이는)를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설명을 하고 있다.

물론 다큐는 외국? 제작이고 박사도 외국인이다.

(에구 징그러~~)

연가시는 사람 몸에는 기생할 수가 없다고 한다.

 

회룡포를 돌아 나오는 숲길에는 생태계가 살아있었다.

회룡포 이야기는 밤새워 해도 하지 못할 정도로 내겐 좋은 추억을 선사했다.

어느 글에선가 그랬다.

 

 

내가 물을 좋아하는 원인은...

내 몸속에도 연가시가 있어선지 나를 물가로만 자꾸 부른다고, (헐~)

오늘도 역시나 물가에서 놀다왔고 내일도~~

 

 

 

 

 

 

 

 

 

 

 

 

 

물가자리에서 만난 연가시

 

 

 

  

아래  더 보기 사진은 다소 중복되는 듯이 보이지만

연가시 생태계를 이해하는데 다소 도움이 될 것 같아

연가시의 움직임도 더 리얼해 보일 것 같아 다 올려 봅니다.

더보기

 

더보기
 

 

 

 

 

 

 

 

 

 

 

 

 

 

 

 

 

 

 

 

 

 

 

 

회룡포 마을 안길에서 떨어진 감

제 2 뿅뿅다리를 건너와서

물가 잡초 속에서 찍은 나방이들

 

거꾸로 매달린 호랑나비같은 나방이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