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호국영령의 달이다.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영령을 기리는 현충일이 있고 우리에겐 잊을 수 없는 아픈 상흔의 6,25 전쟁이 있었던 달이다.

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인민군이 북위 38˚선 이남으로 무력 침공함으로써 남한과 북한 간에 발생한 전쟁으로 62주년이 되었다.

전쟁을 이야기로만 전해들은 아이들은 6,25에 대한 참상을 알지 못한다.

 

용산구에 있는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았더니 애 어른 할 것 없이 많은 관람객들로 붐볐고 또한 볼만하게 잘 전시된 곳이라 여겨졌다.

관람료는 무료이고 10인 이상이면 해설사의 도움을 청하면 좋고 아니면 해설사가 있는 단체관람에 슬쩍 묻혀 해설을 들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왜 전쟁 박물관이 아니고 기념관이라고 할까?

 

전쟁기념관이라는 이름이 정해진 이유는?

첫째, 전쟁이 북침이 아닌 남침인데 왜 기념이 될 수 있는가? 라고 생각하시는 부분에 대한 답변입니다. “기념”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뜻 깊은 일을 잊지 아니하고 생각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기념하는 대상의 긍정․부정적 의미를 떠나

기억하고 의미를 찾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사업회에서 ‘전쟁’과 ‘기념’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전쟁을 찬양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사실로서 전쟁을 잊

지 않고 기억하게 하고 그 교훈을 인식시킴으로서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기념관 회랑에 새겨진 17만 명의 전사자 명단도 이들 호국영령들의 위업을 기리고 넋을 추모하기 위한 것입니다.

 

둘째, 다른 많은 이름 중에서 전쟁기념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전쟁기념관 명칭제정은 기념관 설립준비 당시부터 전쟁기념관, 호국기념관, 군사박물관 등의 명칭을 놓고 각 계층별 설문조사와 공청회 등 다양한 여

론 수렴 과정을 거친 결과 전쟁기념관이 가장 적절한 것으로 의견이 모아져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에 상정되어 결정되었습니다. 제정이후에도 명칭변경관련 언론보도와 민원이 여러 차례 있어 설문조사 등을 통해 적절성을 검토한 결과 현재의 명칭이 기념관 건립목적과 사업성격

에 가장 부합된 것으로 판단하여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외국의 예를 보면 영국을 비롯한 프랑스, 독일, 미국, 스페인, 호주 등 선진 각국에서는 대부분 WAR MEMORIAL 또는 WAR MUSEUM이라는 명칭을 사용 하는데 우리말로는 전쟁기념관 또는 전쟁박물관이라는 뜻으로 전쟁기념관이라는 용어를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 알고 보니 이제야 이해가 간다.

전쟁기념관은 우리 반만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호국의 전당이다.

이곳에 와서 전쟁의 스토리를 눈으로 보고  우리 국민의 하나 됨을 익히고 목숨 바쳐 이 나라를 지켜 온 선조들의 애국심이 후손들에게 가슴으로 느껴져 길이 전해진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이다.

 

6월 시작되는 무더위와 장마 속에 전쟁기념관으로  역사적 체험을 가족 나들이로 계획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임진왜란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추운겨울 살을에이는 삭풍속의 1,4 후퇴 피난민의 모습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 주민을 괴롭히는 인민군들

인민군에 끌려가지 않으려 숨어지내는 남자들

광안에 그 바닥에도 피신처를 만들고 숨어지내던 사람들

피난처에서는 비록 천막이지만 학교를 세우고 교육을 멈추지 않았다.

야외수업과 천막교실

부상자속출

어린이들은 거지꼴이나 진배없었고

끼니조차 때우기 어려웠다.

피난민들의 비참한 생활상

화장실도 당연 모자라 줄을 서고

어린이들도 비위생적으로 길러졌다.

집이라고는 노숙자나 별반 다름없었으며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아버지는 짐꾼(지겠꾼) 노릇이라도 해야만 했다.

사랑하는 가족의 전사통보를 받고 애통해 하는 가족들

꿀꿀이죽으로 연명하고

전쟁통에 고아가 된 아이들도 부지기수!

남편을 잃은 부인들은 아이들을 위해 길거리에서 풀빵장수등....닥치는대로 일을 했다.

군부대에서 나오는 짠밥으로 다시 끓여 가난한 자들은 주린배를 채우기도 하고...

전쟁시절 피난민들의 생활은 고달픔이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한다.

유엔군 전사자 추모비

 

 

 

 

시대별 구분

그밖에도 시대별로 잘 구분되어있었다.

고려시대 고구려시대, 그 시대에는 어떤 전쟁이 있었으며 무기는 어땠을까? 궁금증을 풀어준다.

 

 

 

 

 

 

 

 

 


▼실외에도 비행기 장갑차등이 전시돼있어 볼거리가 많다. 

▲ 옥외전시장

전쟁기념관에는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호국문화공간이자 휴식공간으로 최고의 기념관  그 곳을 찾아보는 호국의 달로 맞이해 보자

 

 

기념관에는 볼거리도 많다.

우리 민족의 정서를 이끌어오고 있는 화랑정신, 백의민족정신, 그리고 우리 국토와 태극기, 금수강산, 우주의 신비 등을 상징적으로 담아 호국의지를 표현하였다. 1993년 작가 서승원의 작품이다. 호국의지를 구성하는 이들 요소들은 애국충정과 민족적 결속을 의미한다. 이들은 하나의 공간안에서 서로 조화(Harmoney)를 이룬다. 실제의 그림을 컴퓨터를 이용, 확대하여 천장 원통형 면에 설치하였다.

 

* 개인의 느낌으로는 호국영령의 혼들이 눈동자처럼 우리 민족을 지켜보고 보호해주는 모습으로 생각되는

 느낌이 들어 아주 좋았습니다.

 



 


보다 아늑하고 쾌적하게 리모델링한 의무실수유실이 실내전시실 입구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찾아오시는길

기차

- 서울역에서 지하철 4호선타고 삼각지역(1번 출구) 하차, 도보 5분 거리

 

지하철

- 4호선 삼각지역 1번 출구에서 도보로 5분 거리, 6호선 삼각지역 11,12번 출구에서 도보로 3분 거리


- 1호선 남영역에서 내려 도보로 10분 거리

 

시내버스

- 전쟁기념관 정문/후문앞, 국방부 앞에서 내림
- 정문 110B, 740, 421 - 파랑간선
- 삼각지역 149, 150, 151, 152, 500, 501, 502, 504, 506, 507, 605, 750A, 750B, 751, 752 - 파랑간선
 6001 - 공항버스, 용산03 - 마을버스

 

승용차

- 이태원, 반포방면에서는 동문으로 진입
- 노량진, 신촌, 서울역 방면에서는 북문으로 진입

 

전쟁기념관은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유모차와 휠체어를 구비하고 있습니다.

기념관 안내데스크에 신분증을 맡기시면 무료로 대여해 드립니다.

다만

유모차는 안전사고 방지와 다른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24개월 미만 유아에게만 대여해 드리고 있으며,

유모차와 휠체어 모두 실내 전시장에서만 사용 하실 수 있습니다.

 

주말처럼 이용객이 많을 때에는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

차량을 이용하여 오시는 관람객께서는 가지고 오실 것을 권합니다.

관람 시간 

09:00~18:00 (17:00까지 입장 가능)

 

관람요금/무료

 

주차요금

구분  요금


소형차
(15인승이하)  - 관람 및 일반차량 : 2시간까지 2,000원
- 웨딩홀 하객차량 : 2시간까지 2,000원
- 초과 30분당: 1,000원


중/대형차
(16인승이상)  - 관람 및 일반차량 : 2시간까지 10,000원
- 초과 30분당: 3,000원


기념관 주소 : 140-021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29(용산동1가)
문의전화/FAX : (02)709-3139, 3114 / (02)709-3100
단체관람예약 : (02)709-3139
단체식사예약 : 뮤지엄카페(한식,분식,양식) (02)709-3221~2

 

 

 

 

전쟁기념관 캐릭터 '무돌이'

 

 

 

 

 

▲포로수용소내의 일상▼

 

 

거제도 포로수용소

 

 

굳이 월드컵이 아니더라도

저녁 9시 뉴스시간이 되어 그제야

-아! 오늘이 6,25였어?- 하는 게 태반사가 되어버린 오늘이다.

 

일부에선 주먹밥을 만들어 나눠 먹어보는 행사로 기껏 육이오를 회상시키고들 있지만...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가보신 분들은 그 적나라한 참상에 뭔지 모를 회한에 찹찹함을 느끼실 것이다.

육이오 발발한지(1950년) 어언 내 나이와 같은 만 56년 째,

실은 전후세대처럼 나 역시나 전쟁을 모르는 것은 사실이다.

그저 초등학교때, 육이오가  다가오면 반공 포스터 그리기나 글짓기, 웅변등 행사를 했었고 각 교실마다 칠판위에도 뒤 게시판 위에도 반공,방일 이란 네,글자가 크게 터억하니 붙혀져 있던 시절이었다.

육이오날에는 운동장에 모여서서  전교생이 다들 함께 목청껏 군가처럼 부르던 노래가 있었으니~

 

아아 잊으랴 !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치며 의분에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의 겨레 !

 

그만큼 요즈음 젊은 세대나 더더구나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에게 이 노랫말 조차도 납득시키기엔 많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부끄러운 일이다.

치욕을 생각하는 일은 두 번 다시 그런 실수를 하지 말자는 데 있다.


끊어진 한강철교

이렇게 포로들을 생포하고,

거제도 포로들의 폭동을 나타낸..

뒷간, 화장실이다. 엉덩이를 내놓고 볼일보는 중, 똥짐을 져다가 버리는....

국군들

포로수용소 원래 건물의 흔적... 가시돋힌 유월의 꽃 엉겅퀴는 그 사연을 알듯도 싶다.

수용소 옛터에 서서  평화로운 거제시가지를 내려다보며...한 컷!

 

 

이순신드라마를 끝내고 직접 일본으로 그 해전에 참전했던 후손들을 찾아 인터뷰한 것을 보았던 적이 있다.

선조 할아버지가 이순신에게 참패하고 가까스로 무인도에서 해초만 먹고 근근이 생명을 부지하셨단다.

얼마나 치욕적인가?  치욕앞에 스스럼없이 자결하기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아닌가?

그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을 기리기 위해,  그 후손들은 아직도 해초만 먹는 날로 정해져 있다한다.

 

민족사 최대의 비극인 한국전쟁은 어떠한 전쟁이었는지?

이 전쟁은 왜 일어났는지, 이 전쟁이 우리 민족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으며 우리의 앞날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지?

우리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던 북한은 누구인지? 그들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던 우리는 누구인지?

얼마나 부끄러운 날인가?

강대국들의 틈새에서 첨예한 이데오르기의 전쟁이었지만 우리가 우리에게 무자비하게 행한 비극을,


지금은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 시점이다.

엄마 젖을 떼면 일어나서 걸어야하고 걷다가 달려야 한다.

세상은 변했고 우리는 6,25를 치욕의 날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625 !,  단 하루만이라도 소박한 밥상을 차릴 일이다.

 

 

글/사진: 이요조

 

아래 사진들은(이해를 돕기위해서) 거제시청 홈페이지에서 발췌~~





 

 

포로수용소 전경

 

감시초소

 

입구(옛모습 복구 재현)

 

 

옛모습을 재현해서 지은 건물이라는데...막사도 있었고

또는 일본가옥형태의 유난히 창문이 많은 건물도 있었다.(아마 미군이나 국군이 사용한 듯한) ...무척 추울 것 같았던....

주방모습

 


 

(거제포로수용소 DAUM검색)
위 치 : 경남 거제시 신현읍 고현리


관 리 청 : 거제시 시설관리공단

개 요 : 거제시청이 위치한 신현읍 고현리에 있는 6.25 당시의 가장 큰 포로 수용소 유적이다.
거제 계룡산(554m) 동쪽 자락을 따라, 복원된 옛 고현성과 그 옆 시청 건물을 지나면 고현
중학교 담벼락 좌측 언덕에 포로수용소 경비대 건물 잔해가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유적관내에는 전시실, 영상실, 기념품 판매소가 설치되어 있으며, 전시실에는 포로의 발생,
배경, 생활사, 포로유품, 폭동, 석방등이 전시되어 있고

영상실에는 당시 촬영한 필름과 포로출신 인터뷰를 통하여 10분간 포로에 대한 내용을 상
영하며 상징조형물은 "전쟁, 분단 그리고 화합"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전쟁 당시의 상황은
찌그러진 철모에 생긴 총알 구멍을 보면 치열했던 전투를 추측할 수 있으며, 전쟁으로 인
해 사로잡힌 많은 포로들이 이곳 거제도에 수용되었다. 철조망을 걷어내는 국군과 북한군
의 모습은 한민족간의 화합으로 통일을 이룩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당시 포소수용소 막사는 공산포로들의 지휘본부역할을 했던 78수용소의 입구를 그대로 재
현시켜 형상화 하였고, 64야전병원은 경비병과 포로폭동등으로 부상당한 포로의 의료를 담
당했던 곳이다.
당시 17만여명의 포로들의 음식을 배급하는 취사장과 그 내부를 볼 수 있는 곳이며, 노천
변소아래 놓여진 변기통은 당시 극렬했던 친공포로들이 인민재판으로 반동분자를 색출, 그
자리에서 곤봉과 돌멩이로 쳐죽여 토막난 시체를 담아서 고현만에 다 버리는 도구를 사용
하기도 했던 비참한 생활상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중공군 포로 막사 앞에 서있는 사자상은 중국포로들이 의전행사나 기념일이 있을 때 사용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사자상이다.
6.25당시 사용하던 M463-7를 비롯하여 헬기, 8미리곡사포, 지휘용 장갑차, 함포등이 당시
경비본부와 탄약고가 함께 전시되고 있다.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연상케하는 기존 유적
지의 잔해들이 연계되어 볼 수 있다

개장시간 : 3월-10월 : 09:00~18:00
11월-12월 : 09:00~17:00

입 장 료
-----------------------------------------------------------------------------------
입 장 료 | 주 차 료
-----------------------------------------------------------------------------------
구 분 어 른 학생군인 어린이 | 구 분 이륜차 승용차 화물차 버 스
-----------------------------------------------------------------------------------
개 인 3,000 2,000 1,000 | 1회(3시간) 500 1,000 3,000 3,000
단 체 2,000 1,500 800 | 체류(숙박) 2,000 3,000 10,000 10,000
할 인 1,000 1,000 500 |
-----------------------------------------------------------------------------------
비고 : 1) 입장료의 할인 대상은 거제시민과 만65세 이상인자
2) 주차요금은 기준시

문 의 :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전화:055-639-8125 / 팩스:055-639-8128)

현지교통 : 마산이나 진주를 기점으로 하여 거제(장승포)행 직행버스(수시운행)
이용, 고현에서 하차후 포로수용소 유적지까지 도보(30분) 또는 시내
버스(시청 방면)/택시(약 2,000원) 이용

※ 계룡산 통신대유적(도보탐방코스)
- 거제시청(고현성) 조금 지나 계룡사/계룡산 등산로 이정표를
따라 정상부 능선까지 1시간, 능선마루~옛 통신대 유적 15분 거리,
백병원앞 큰길까지 하산 소요 시간 45분, 왕복 총 2시간 소요

도로안내 : 1) 서울-대전-(대전~통영간 고속도로)-진주분기점-(남해고속도로)-
사천I.C.-사천-(33번 국도)-고성-(14번 국도)-통영-거제
2) (경부고속도로) 서울-대전-대구-(구마고속도로)-마산-(14번 국도)
-고성-통영-거제
3) 호남 방면에서는 (남해고속도로)-사천I.C.-고성-통영-거제 순으로
찾아간다.

현지숙박 : 신현읍내(고현리 일원) 숙박시설 다수

주변명소 : 고현성, 삼성조선소, 거제 계룡산, 옥산금성, 거제자연예술랜드,
구천계곡, 거제자연휴양림, 거제해금강, 옥포대첩기념공원, 청마
유치환 생가 등

 

여행자 tip


거제도 여행은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이용 해금강과 외도공원을 둘러보심이 관광의 백미입니다.

 산악 해변길도 드라이브보다는 트레킹하기에 더 없이 좋았고, 몽돌해변도 좋았지만,

 거제대우조선소를 들린 일이 제겐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아 흐뭇합니다. 거제 대우조선소견학은 예약을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길을 지나치다가 정문에다 차를 세우고는 혹시? 견학할 수 없냐고 물었습니다. (고작 인원 셋)


정문에서 어딘가로 전화를 하더니, 어여쁜 안내양이 딸린 승합 차량 한 대가 정문으로 나왔습니다. 주차장까지 우리차를 파킹하게끔 잘 안내를 한 뒤, 우리는 그 차에 올랐습니다.


안내 아가씨의 세세한 설명에  조선소 과정에 대해서 금방 다 훤히 알아질 정도였습니다.

정말이지 예상치 못했던 유익한 견학관광이었습니다.


제일 큰 선박인 'LNG' 가스 운반선이 거대하더군요.

거제도하면 포로수용소를 떠올리던 오명에서 이제는 세계굴지의 조선소로 자리매김한 웅비한 대한민국의 실체를 보고 왔습니다.

거제 대우조선소 가시려면 미리 예약하고 가시면 됩니다.

 

▼아래 사진은 힘이 쎈 '골리앗'에서 따 온 명칭으로 '골리앗크레인'으로 대우조선해양의 입지적인 존재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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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대우조선해양(주)
소재지 아주동
요약정보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큰 1백만톤급 도크와 900톤 골리아스 크레인을 비롯한 초대형 첨단설비를 갖추고 130만평의 부지 위에서 연간 40척 이상의 대형 선박과 각종 육해상 플랜트, 특수선을 생산하는 대우조선해양은 경영 투명성과 수익성 측면에서 조선업계 1위를 기록하고 있고, 매년 세계 최우수선박을 배출하는 한편 액화천연가스 운반선의 건조와 시장 점유율에서 세계 1등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지역사회의 공헌도가 높은 거제의 자랑스러운 향토기업이다.
홈페이지 http://www.dsme.co.kr/
 

 

대우조선해양 ☏ 견학안내 예약 055-680-2264

거제시청 홈페이지: http://www.geoje.go.kr/   거제관광투어도 있음  거제시 관광진흥과

055-639-3198
GO

 

▼ 샵블로그를 클릭하시면 지도를 볼 수 있어 유용합니다.

관련업소 샵블로그 바로가기

거제, 포로수용소

055-639-3551
GO
대우조선해양

055-680-2264
GO
거제시 관광진흥과

055-639-3198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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