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는 제자 승수에게 >
사랑하는 제자 승수야!
네가 정든 모교를 떠나 서울로 대학에 진학한지도
벌써 6년이란 세월이 흘렀구나. 다시 한번 세월의
무상함을 절감해본다.
진달래꽃. 철쭉꽃이 만발하여 호수와 함께
어우러진 모교의 정경은 변함없이 한 폭의
그림처럼 여전히 아름답단다.
각설하고, 승수야! 너와 나의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1996년 3월 신학기에 내가 맡은
3학년 4반에 배정되어 온 너는 유난히 나를 긴장시켰었지....
너의 신상명세서 (이름은 이승수, 나이 19세, 인문계. 자연계를
통틀어 전교 수석늙으신 홀어머니 슬하의 막내.
40이 넘도록 결혼도 못하고 객지로 전전하는 형이
있음. 13평 임대 아파트에 거주. 어머님은 60이 훨씬
넘었으나 파출부로 생계를 유지. 너의 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물리학자가 되는 것)이것이 너의 전부를
알 수 있게 하는 자료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시사철 자전거로 통학하는 싸이클 맨, 우리 학교에서
싸이클 맨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너였으니까.....눈길을 달려오다 넘어져 피투성이가 된
너를 데리고 병원에갔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구나!
언제나 때가 잔뜩 낀 교복차림. 겨울에도 플라스틱 도시락을
싸와 난로 위에 데워 먹지도 못했던 너!
이런 너의 모습이 안타까워 월급날에 큰 맘 먹고
보온 도시락을 사주었었지.
부끄러운 듯 씩 웃는 너의 모습은 천사의 미소!
바로 그것이었구나.
나는 너를 서울의 K대 물리학과에 꼭 보내리라고
굳게 다짐을 했었다.
가정환경도 좋지 않은 네가 네 꿈을 펼칠 수 있는
것은 그 대학을 가는 길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 학교는 고교 평준화가 해제되어
중위권 학교.중위권 학교에서 서울의 K대에 진학하는
것은 정말 어려웠었지...
그러나 기적이란 것도 있으니까, 너와 내가 최선을
다한다면 분명히
하늘도 우리를 도우실 거야......
"승수야! 힘내라! 너는 단순한 내 제자가
아니라 내 아들이란다.
아버지를 믿고 열심히 하렴”네가 어려워 할 때마다 널
불러 격려를 잊지 않았구나. 많은 사연과 추억을 남기면서
우리들의 고3은 그렇게흘러갔구나.
대학수학능력시험 결과가 발표되어 200점 만점에
155.7을 얻은 너였었지.
서울의 K대에 가기는 좀 어려운 점수였지만 본고사도
있으니까 여기서 만회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본고사 준비를 위한 난관은 참으로 험난한 길이였구나.
본고사를 지도해 주실 선생님을 선정하는 게
참으로 어려웠었다.
모두가 꺼릴 수밖에 없는 게 선생님도 공부를
많이 해야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심청이 젖동냥하듯 여러 선생님을
찾아다니며 " 우리 승수 좀
가르쳐 주십시오”하고 애걸복걸하고 선생님을
선정하실 수 있었구나.
넌 수학과 영어를 아주 잘 봐서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었지....
그날의 감격을 어찌 글로 쓸 수 있겠느냐!
각고의 1년이 주마등처럼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었다.
이곳 지방신문에서도 큰 관심을 가지고 보도해주었었지.
사랑하는 제자 승수야!
너의 합격을 필두로 우리 3학년 4반은 52명 전원이
대학에 합격하는 경사가 나기도 한걸 기억하겠지?
우리는 하면 된다는 굳은 신념아래 오직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었다.
우리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가 해냈다는
걸 보여주었구나.
이런 경사스런 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난관이 우리를 기다렸었지.
합격만 하면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는데.......
등록금 일백오십만원. 파출부 홀어머니의
수입으론 어림도 없는 액수였다.
내가 저금통장을 털어 100만원을 내놓고
동문들이 모금을 해서 50만원을 만들어
우선 등록을 했었구나.
졸업식장에서 내가 너에게 장학금으로
주었던 100만원을 전달하는 날,
너와 나는 사나이의 진한 눈물을 흘렸었지.
교직생활 27년 넘게 하면서 너처럼 있는 정, 없는 정 다
쏟아 붓기는 처음이란다.
사랑하는 나의 제자! 아니 나의 아들, 승수야!
졸업을 한 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업에
전념한다는 너의 소식은
늘 반가웠었다.
이젠 군에 가 으젓하게 군 복무를 하고 있을
너를 생각하면 참으로
대견하고 든든하구나!
사랑하는 나의 제자 승수야!
2002년 5월 15일 스승의 날에는 어떻게 휴가를 내어
우리 3학년4반에서
꼭 만나자! 이 못난 스승도 이젠 많이 늙었구나.
흐르는 세월을 뉘라서 막겠니?
옛날을 회상하면서 텁텁한 막걸리라도
한잔 마시면서 사제지간의 정,
아니 부자지간의 정을 나누지 않을래?
넌 단순한 내 제자가 아니라 내 아들이란다!
못난 스승, 아니 못난 아비는 오늘도
너를 위해 기도한단다.
우리 승수, 잘되게 해달라고...
국토방위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다시 대학원에 진학하여
훌륭한 물리학자로써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이다.
- 다시 찾아오는 스승의 날 5월에, 교정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