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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나를 되돌아 본다.
평생 나는 많은 직업을 가졌었지만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하지 못하고 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 오늘을 살고 있다.

아주 오래 전 우리나이로 18세 정확하게 태어난지 16년 7개월 되던 때
나는 첫 사업을 시작했다. (내 아들은 14년 5개월 16일만에 프로바둑에
입문 개인 사업자가 됐으니 나보다 빠르다)

미국 유학과 박사학위 받을 때까지의 장학금 및 체제비 일체를 받을 수
있는 모든 혜택을 포기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든 나는 6개월 정도 부산의
건설회사에서 일하다 울산에서 소금공장을 인수하여 첫 사업을 시작
했지만 7개월 정도 됐을 때 사고로 몸에 부상을 입었다.

이건 내가 가야할 길이 아니라고 판단한 나는 조용히 글이나 쓰면서
살겠다고 낮에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밤에는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수백편의 시와 3,000매 이상의 원고를 채워서 신춘문예에
응시하기 전 친구들에게 보여줬다.

내 글을 본 친구들이 사색이 되어 달려왔다.
그리곤 내게 술을 엄청나게 마시도록 하더니 내글을 전부 태워버렷다.
이유는 당장 이 글이 제출되면 당시의 중앙정보부로 끌려가서 살아나오지
못한다고,,, 글에는 이런 대목도 있었다. 박정희 같은 불한당이 정부를
전복하고 대통령이 되었는데 박정희 같은 독재자는,,,,,,,,,,,,,,,,,,,

,,,,,,,,,,,,, 친구들이 놀랠 수 밖에,,,,,,,,,


나는 야간대학에 진학했고 먹고 사는 일이 급해서 낮에는 건설회사에
취업을 했다. 내가 입사하면서 내세운 조건은 월급은 받지 않겠다.
숙소만 제공해 주고 최대한 빨리 건설업에 대하여 익힐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3개월후 나는 조그만 현장의 감독이 되었고 1년후에 현장소장
2년후엔 그회사 수십개 현장의 총괄책임자가 되었고 3년이 되던 해엔
설계,견적,입찰을 담당하는 회사의 두뇌로 자리 잡았는데 73년 22세에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자격증을 취득하자,,,,,,,,,,,,
사장님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너는 내가 붙잡고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니 큰 곳으로 가서 네 뜻을
펼치도록 하라면서 서울에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해 놨으니 내가 주는
건설장비를 가지고 가서 네 사업을 시작해라,
사장님은 덤프트럭 3대분의 건설장비를 주면서 나를 보내 주었다.

나는 우리나라 건설업계가 놀라도록 빨리 성장했고 28세에는 당시의
최고 기술인 지하철공사를 수주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나는 손을 뗐어야 했다. 약간의 모은 돈으로 원래 돈을 벌려고 한
이유인 내가 원하던 물리학의 공부와 나사에 연구원으로 가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하여 다시 공부를 시작했어야 했다. 그러나 욕심이 과하여
충분한 돈을 벌때까지,,,,,, 3년후 친구의 배신, 회사 정보의 경쟁사
유출로 나는 회사를 포기하기에 이르렀고 이 후 해외 현장을 전전한다.

돌아와서 결혼하고 다시 회사를 차리고 처분하고 도시락 두개를 싸들고
새벽 네시 남산 도서관으로 직행 법학과 씨름했고 대학원에 다시 진학
하여 법학을 전공하고 몇개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3대 안전기관의 하나를 설립하고 내분야 최고의 법인을
세우는 등 괄목할 성과를 거두었지만 내게 남은 것은 없다.
안전기관 역시 정말 힘들어 하던 인간을 도와 발탁하여 중책을 맡겼더니
정부와 손잡고 나를 배신하여 7년간의 긴 투쟁과 승리 후 허탈감으로
3년 이상의 방황이 시작됐다. 강산이 두 번 변한다는 10여년의 힘든
싸움이 나의 나아갈 길을 막고 내 모든 것을 빼앗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평생을 두집 살림을 해야하는 운명으로 직업도 항상
두개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민생고 해결용, 또 하나는 명예를 위하여
내게는 평생을 돌봐야 하는 형님이 계시다. 그 형님 때문에 어머니가
내 집에 계시지 못하는 것이고 나는 두집의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어쩌면 불합리하다 하겠지만 내가 해야할 당연한 일로 아직 한번도
짜증 내본적이 없다. 내 아내 역시 마찬가지고 내가 이혼을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른 여자라면 어림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방황 후 재건하는 사무실은 이제 안정을 찾아간다.
이제 이대로 내버려 두어도 평생 여유롭게 살지는 못할지라도
궁색한 삶은 면할 수 있다. 내 직업엔 정년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다시 병이 도진 것이다.
무언가 부딪치고 개척해야 하는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도전,
그건 평생의 숙제로 어차피 풀지 못하겠지만 이 병이 나를
살아 숨 쉬게 한다. 어차피 나는 첫 사업을 시작하던 18세에서
멈추어 있으니까?

안주해야 하나? 다시 뛰어야 하나?

답은 이미 내려졌다.

버려진 10년을 되 찾기 위하여
내게 안주하는 삶이란 있을 수 없다.
새로운 삶에 다시 도전하고 이루도록 노력해야겠지,,,,,,,

그것만이 나를 지킬 테니까?

당분간 카페에 들리지 못합니다.
항상 즐겁고 유익한 날들이 되소서,,,,,,,,,

_勳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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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운해 <자료출처:지리산통신>

남도기행 2박3일(셋쨋날)

님..보셔요

보내주신 남도기행 2박3일 계획해주신 일정표대로
일산에서 땅끝마을 그리고 완도
완도에서 보길도 그리고 구례 지리산까지,

화엄사에서 노고단과 뱀사골 실상사 그리고 일산으로 돌아온
여정에서 보고 느낀 조국의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피력하고자 자판을 두드립니다

늦은 아침 빗소리와 천둥 번개 소리에 잠이 깹니다
간밤에 마신 찬이슬이 깊은 숙면을 취하게 하는 수면제였나 봅니다

어제밤에는 오래도록 별을 기다렸는데 온통 석탄처럼 캄캄할 뿐
하늘은 무심도 하셨습니다

님께서 자랑하시던 고향의 아름다운 별밭이 내게는 그저
어두운 밤하늘 뿐........
간밤에 별들이 숨은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비구름이 온통 별들을 감춰 버렸었나 봅니다
늦은 아침을 산채나물과 재첩국으로.. 남도의 음식은
정갈하고 맛깔스럽고 깊은 맛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천천히 체크 아웃을 하고,,빗속에서 화엄사로 향합니다
울창한 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고 계곡의 물들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흐르는 화엄사 입구를 빗 속에 우산을 받쳐들고 걷는 그길은
산사의 아침을 더욱 운치있게 해줍니다

빗 속에서 마주 대하는 이름모를 야생화는 다소곳하게
머리 숙이며 인사를 합니다 안녕?..

수백 간 규모의 그곳 화엄사는 웅장한 대웅전과 여래전 범종 등등..
국보급 보물만도 여러 점..아름다운 노송 ,적송,울창한 대숲,
부처님의 모습도 여러 모습..손을 마주 잡으신 분,양손을 모두 드신 분..
한없이 자애롭고 측은한 모습으로 바라보시는 모습..

우리는 빗 속의 화엄사를 뒤로하고,,성삼재 쪽으로 향합니다
가는 길에 천은사를 지나고..해발 1100 키로미터의 성삼재를
곡예 운전을 하면서 오금이 저리는 자연 앞의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오릅니다
천은사 지나면서부터 그치기 시작한 비는 오를수록 청정한 하늘로
변하였습니다

하늘은 아주 가깝게 손에 닿을 듯이 가깝습니다
시암재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산아래 운해를 바라봅니다

우리는 지금 산 위 구름 속에서 신선처럼 떠 있습니다
저 아래 보이는 저곳은 우리가 그리도 아둥바둥하며 사랑과 미움을
반복하고 욕심과 번뇌를 버리지 못하고 지극히 인간답게 사는 곳이구요

이곳은 신선의 영역 같습니다 웬지 낯선 이방인 같습니다
다시 더 높이 올라 성삼재..
아..그곳은 정말 무아지경..구름 속의 산과 산사이의 운해..
그리고 운해의 바다..피어오르며 사라지는 영원의 구름연기여..
나는 그곳에서 잠시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착각 속에 빠져봅니다
어제 아름다운 지리산의 별밭은 보지 못하였지만 주님은 오늘 저에게
이 운해를 보여주십니다

다시 산아래로 내려옵니다
하늘아래 첫 동네라는 심원마을을 지나
구비구비 심산유곡을 지나 뱀사골 상류를 만납니다
골짜기가 뱀처럼 심하게 곡류하는데서 유래되었다는 이름..
장장 총길이 14키로미터 울창한 수림..100 여개의 크고 작은 폭포와 소..
잠시 발을 담근 계곡의 물은 섬뜩 하리만치 냉기가 감돌고..
계곡의 물빛은 쑥색..

다시 남하하여..우리는 산내라는 작은 마을로 들어섭니다
님이 멜로 보내주신 그곳 실상사..그곳을 꼭 보라하셨지요
편지에 있는 실상사는 만수천을 건너 님이 어린시절에는
징검다리로 건너셨다는 그곳에는 다리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다리 건너에는 한 뿌리에 세 그루가 같이 자리하고 있는 신기한
오래된 커다란 정자나무와 돌장승 두 분이 실상사 입구를 지키고
서 계셨습니다
얼굴은 두 눈이 튀어나오고, 뭉툭하고 커다란 코에 벙거지모자를 쓰신 돌장승..

평평한 길을 지난 그곳에 천년 사직을 담은 실상사가 오랜 침묵 속에
이끼낀 늙은 나무들과 많은 보물들과 보수하지 않은 오랜 세월
그 모습으로 오염되지 않은 모습으로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보물들이 있었습니다.
보물은 청동으로 만든 아주 커다란 좌불상,빼어나게 아름다운 동탑,
쌍탑 ,,보기드문 조각의 석등,동종 등등..

극락암 가는 길..오랜 세월 속에 이끼 낀 담장 기왓장 위에 피어있는
버섯과 들풀,담쟁이는 한없는 연민과 그리움이 무심한 흔적이 배어있었습니다.

졸졸 흐르는 작은 도랑물이 풀숲 사이로 작은 연못 속으로 흘러 들어가고
그곳에는 잉어들이.. 연꽃이 붉게 피어 있었습니다.
대숲 속에서는 서늘한 기운이 ,바람이 불어오고..그곳 도랑물가에는
검은 날개에 몸체는 연두빛 아름다운 물잠자리가 나비처럼 날개를 접고
우아하게 앉아 있더이다

님..기억하시나요?
어린시절 그곳으로 소풍을 가셨다 하셨나요?
참으로 아름답고 정감이 드는 사찰이었습니다

아참,,그리고 절집에 수양회온 초등학교 어린아이들이 적토로,황토로
흰색 티셔츠을 염색하는 아름다운 모습도 보았답니다.
염색하여 입은 옷도 보았는데 제주도의 감물들인 그 색이었습니다

기수를 돌려,,인월에서,남원으로 광한루를 보고..전주에서 .삼례로
호남고속도로를 타고...대전에서 경부고속도로를 만나..일산으로
아름다운 조국을 ,,남도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님의 배려와 우정에 감사를 드립니다



2001,8.15 일산에서 현정드림.




눈덮힌 뱀사골 <자료출처:지리산통신>







<해골의 속삭임>


내가 X레이같은 눈을 가졌고,
너도 X레이같은 눈을 가졌다면,
나는 네 속을 꿰뚫어 볼 수 있고,
너도 내 속을 속시원히 볼 수 있지.

그렇지만 너무 잘 보여서 좋을까?
과연 우리 마음이 통할까?
난 네 입술을 보아야 키스가 하고싶고
넌 내 눈을 보아야 내 맘을 짐작할 수 있지않아?

기껏 보이는 것이래야 희미한 얼굴윤곽속에
두개골과 눈구멍, 콧구멍, 옥수수같은 이빨과
턱뼈 움직이는 것밖에 없지않아?
그래, 좀 우습다. 그치?

사실 난 이게 어려웠댔어.
네 표정이 너무 잘 보이는 거있지?
그리고 어려운게 또 있어.
얼굴에 내 마음이 바로 뜨는 거있지?

그래서 난 편해,
재밌기도 하고.
해골인 나와 해골인 네가 마주 보고 있는게...
턱뼈만 벌어졌다 다물어졌다 하는게...

네 얼굴을 볼 수 없으니
네 말이 더 크게 들려.
그리구 여긴 잡음이 없으니
네 말이 더 또렷이 들려.

난 내 맘을 들키지 않고
네 말을 들을 수 있지.
표정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네 말을 음미할 수도 있지.

너도 그래?
하긴 너도 좀 별종이었지.
내가 이따금 얼마나 당황했다구.
그렇지만 지금은 편해.

아까부터 뚫어져라 보고있으려니
네 얼굴이 보일듯해.
너도 내 얼굴이 보이니?
이제 키스해도 될까?


작은큰통.2002.6.5.



"Beksinski's powerfully unique paintings are
such as I have never before seen"

** 벡진스키의 그림읽기**
(열린마당 카페 별장 갤러리에서 옮겨 옴 No:498)







스코틀랜드 선술집 간판 <자료출처:네이버 생활과 디자인>

오래 전에 직장에 다닐 때 영국에서 일이지요.
영국은 대영제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많은
유물들을 세계 각국에서 약탈하여 가지고
그것을 대영제국 박물관에 전시를 하였더군요.

세계의 유명한 유물 중 이집트의 피라밋부터
미이라까지 정말 많은 것을 빼앗아간 대단한
민족이지요.
바이킹의 후예답게!!!!
3000년 전 알프스 얼음 속에서 박제된 양치기
소년의 시체까지 전시를 하고 있더군요.

그러나 지금도 영연방은 전세계 올림픽처럼
100여 개가 되는 소속 국가들이 모여서
체육대회를 한다지요.

그리고 런든 시내에는 수많은 공원과 몇 백년된
유물들이 고스란히 보존된것을 보면 부러움이--

그 중에서도 그들의 음주문화는 Pub이라는 주막에서
시작된다지요.
저두 고풍스런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2차로 가끔씩 펍에 가기도 했지요.
거기에서 맥주와
감자튀김 정통 스테이크를 안주로---

중세풍의 낡은 탁자와 의자들, 한쪽에는 당구대와
화살던지기 과녁이 붙어있고, 벽난로와 투박한
맥주잔들이 놓여있는 곳에서 일하고 온 농부나 공장에
갔다오는 사람이나 맥주잔에 감자튀김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았었지요.

개인주의인 영국이지만 이펍 때문에 이웃 간의 정을
나누고 산다고 하는군요.
꼭 우리나라의 대포집 문화처럼--

이펍은 서민들의 사랑방으로 유명시인도
찰스왕세자도 애용했다고 하더군요.

이런 문화속에 비틀즈가 탄생하고,
이펍 때문에 영국인을 인간미 넘치게
한다지요.

영국에선 교회와 펍 없는 마을이 없다고 합니다.
전국에 7만여 개의 펍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양 산업에
속하여 줄고 있다고 하더군요.

펍은 퍼블릭하우스의 준말로서 17세기 전에는 우리나라
주막처럼 숙박과 술집을 겸하였는데 17세기 이후는
술집으로 분리 되었다 합니다.

우리도 힘들고 가슴이 답답할때 저렴한 술집에서 마음을
달래듯 이런 분위기를 비교하면 삼겹살과 소주 그리고
2차로 호프집과 같다고 할까요?

세상사는 것은 한국이나 영국이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삶이 힘들때 형편에 맞게 술한잔 할 수 있는 친구와
호주머니에 따라 벗하고 마실 수 있는 곳은
정말 한국이 최고이지요.

오늘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월드컵 때문에
한국 특집을 내면서 '아시아의 아일랜드인'이라고 칭하며
'정열적인 한국.... 음악, 춤, 술을 즐긴다고 소개했지요.











덮어 쉬운 썩은 이가 아파 치과에서 치료를 한지가 벌서 한 달이 되었다
신경치료를 모두 끝내고 오늘은 이빨의 본을 뜨는 날이다

어제 치료를 모두 마치고 의사 선생님은 상품, 중품, 하품의 종류별 덮어 쉬울 이빨샘플을
보이면서 어떤 걸로 할 건지를 결정하라 하였다

경제권이 아줌마에게 있는 나로서는 이럴 때가 제일 난감하다
잠시 머뭇거린 나는 의사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중품으로 덮어 쉬울 것으로 약속했다

퇴근 후 아줌마의 눈치를 살피면서 덮어 쉬울 이빨에 대해 얘기를 하던 난 아줌마의
따발총 세례를 받았다

자기(아줌마)가 해넣은 이빨은 20년이 지나도 괜찮은데 무슨 놈의 이빨이 6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수리를 해야 하느냐면서 제일 낮은 하품의 재질로 하라는 것이었다

마음 한구석 섭섭함이 자리잡고 있었으나 한편으론 이빨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여
짧은 기간에 다시 이빨을 해넣어야 하느냐는 소리가 듣기 싫어 묵묵부답으로 아줌마의
소리에 두꺼비처럼 눈만 껌벅이며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의사선생님과의 약속을(중품에서 하품으로 변경) 내입으로 다시
번복하는 것이었다

무책임한 약속(?)은 제쳐 두고 라도 신체구조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인
이빨의 교체를 하면서 그것도 매년 교체하는 것도 아닌 것을
좋은 것으로 교체한다면 몰라도 나쁜 것으로 교체하겠다니 정말 쫀쫀한 사내로구나 하는
생각이 미치자 알 수 없는 울화가 배속 깊숙한 곳으로부터 꿈틀 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줌마의 약속대로 나쁜 것으로 이빨을 해넣겠다는 대신에 아줌마가 먼저
치과에 들려 내가 한 약속을 취소하고 선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이빨을 해넣지 않겠다고
완강히 버티었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이란 것을 인식한 아줌마는 선 듯 내키지는 않았으나
약속을 해 주었다


그리고 나서 오늘 오후 늦게 근무중 잠시 나와 이빨의 본을 뜨기 위해 치과 문을 들어서니
간호사 아가씨가 의미 있는 미소를 보낸다

순간 아줌마가 다녀갔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이빨의 본을 뜨고 나서 병원을 나서려는데

“중품에서 하품으로 이빨을 맞추었고 요금은 전부 얼마” 라는
간호사 아가씨의 한마디에
난 허겁지겁 병원문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가만히 셈을 해보니 중품에서 하품으로 이빨 재질을 바꾸어 놓고서 다시 의사선생님과
타협하여 5만원을 깎은 금액이 아닌가!!

순간 이빨의 본을 뜨면서 연신 빙긋이 웃던 의사선생님의 모습이 내 눈에 아른거리며
내 마음은 활화산으로 타오르고 있었고
내입 속에 맴돌고 있는 한마디는 허공을 향해 힘껏 힘껏 메아리 치고 있었다

어이고 이놈의 ×망구 야 !!!
어이쿠 이놈의 할 ×구 야 !!!
어이크 이놈의 할망 ×야 !!!

내 못산다
재발 내 체면 좀 살리도고
아무리 돈도 좋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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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오월의 마지막 날이네요

오늘부터 월드컵이 시작되는 날이군요

님들
우리집 처럼 티격태격 싸우지 마시고
한마음으로 화합하여 함께 응원합시다

좋은 하루를 여십시오

2002.05.31 –길벗-






강심을 막아
허리잘린 물빛
잠시 지나치는
바람만 멈추어 선다

앞서간 저 물길
여기에서 멈췄을까?

탐욕에 찌꺼기
허상의 헛된 꿈 잠들어
행복에 이상까지 잠들어
물빛마져 저 서럽다
가던길 구비돌아
흰 서름 방울 고이고
빈 갈대숲 마음껏 유린하던
바람끝만 따스하다

꽃 가지 향기묻혀
몇번이고 몇번이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말라버린 잎새하나
눈에 새겨 넣기에도
작은 가슴은 서럽다 한다

이제는
그 흔하게 널려진 죄 까지
이 밤엔 사랑하고 싶다

잘려져 흐르지 못해도
비켜 흘러가는 저 물살처럼
그져...
가슴으로만 바라보고
세상을 살아가라 한다며
아지랑이 따스한
세상을 부려 놓는다면...





..














아름다운 그대의 울이고 싶다

지친길을 걷다가 언제든
쉬어갈수있는 벤치로

별이 빛을 발하기위해
풍경이 되어주는 어둠이라도

그대가 즐겨읽는 책의 밑줄로
혹은 그대가 부르는
삶의노래 낮은화음으로

그대에겐 사소하지만
그대와 관련된 그 어느것 하나도
사소한 것일수 없는 나이기에
그대 있음으로 나는
그 주위의 울이고 싶다

지상에서 영원까지
언제나 그대 지키는 울이고 싶다

미오










*아차산에서 본 불암산, 수락산전경



수락산 품에서 하루를... 열마당 친구분들과 함께



.. 여보세요 저 윤비 ....인데? "
" 아 예~ 지금 가고 중 입니다 "

출발하자 마자 수미님과 확인 통화를..하고
시계를 홀끔거리며 11시에 약속한 수락산 역 만남의 장소로 향했습니다

역 개찰구를 나가서 둘러보니 만남의장소 팔각 의자엔
꽤 많은 등산객들이 각자의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직 일면이 없었던 조은님을 찾을수가 없네....

어떤 느낌으로 알수 있으려나 했는데 ...알수가 없어
다시 휴대 폰 날렸지요

어머나~
바로 앞에서 ...
아가씨처럼 날씬한 ... 조은님 이 벌떡 일어서면서 활짝 웃으신다
우리 두사람은 동시에 손을 내밀어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11시 정각에 휴~
멋쟁이 우리 수미님
짙은갈색 선글라스에 완벽한 등산복 차림새로 나타나셨습니다
수미님은 저랑 등산 3번째 이니 구면이지요

김밥 추가로 2줄 배낭속에 보충해 넣고 ...랄랄라

살랑이는 미풍 연회색 하늘은
등산하기에 최적인 날씨였습니다

오월의
싱그런 잎새들은
지천명의 나이를 잊게하는 마술을 걸었고

산 입구에 들어서니
흐드러진 아카시아 꽃 향기
온 몸 속에 스며들며 어서오라 마중나왔다 했습니다

수락산은 바위가 많은 아기자기한 산이지요
어느 코스를 선택하던 싫증이 나지 않고 재미있게 등산을 할수 있지요

"오늘 코스는 깔딱 고개를 넘어 장암으로 내려온다" 로 정하고

조은님 복장을 보니 아무래도...?? 걱정이
그냥 간편한 운동화 에 진 바지 차림 그리고 손에든 가방도..

물소리 정겨운 곳 자리잡아 일차 휴식을...하는데

아이구 맙소사~
조은님 양발 훌떡 벗고 보여주시는
양쪽 엄지 발가락 모습이 말씀이 아니다

발톱 깎은후에 일어나는
까시라기를 잘 못 건드려 덧 이나서 정말 아프게 생겨 있었다
미안해 하시면서 중도 하차의 이유를 밝히고 내려 가셨다

수미와 나
오늘 수락산 작살내자~
이렇게 멋-진 뇨자가 그 품(수락산)에 안기겠다고 스스로 찾아왔는데
이늠의 수락아~
대접이 소홀했단 봐라...후훗 마음 팡팡 다잡고 올랐습니다

헉헉대는 가쁜숨 ~
싸알한 옹달샘물로 목축이며 달래고
헛디뎌지는 발은 "그래도 넘어간다" 라고 부추키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구름도 쉬어가는
깔딱고개 그 깔딱고개
숨한번 크게 몰아쉬고

푸~ 깔딱~ !!!!!!!!

으~아~ 아~
넘어서는 이 만족감 ~~
등산하는 사람만 느끼는 기쁨입니다

내려가는 곳곳은 수락산의 진 면목을 보여주는 비경입니다

병풍처럼 둘러선 바위아래 속마음까지 꺼집어 내어 헹구고픈
수정처럼 맑은 물가에 우리 두사람 퍼질러 앉았습니다

소금쟁이
친구하자 조르르 달려오고
지저귀는 새 소리는
비올라의 음악 시새움 하듯 더 이쁘게 들려주고

녹음사이로 사알짝 빗금되어 들어온 작은 햇살
두사람 곁에 잠시 머물며 잘놀다 가라 했지요

벗은 발 풍담 담그으니 으 그그그 ~
아직 차겁다... 마주보고 까르르 ...ㅎㅎㅎ

가져간 김밥 쑥떡 오이 참외 오렌지 쵸코렛 다 먹어치우고
같이 오지못한 님들 생각에 둘이만 즐기는 아쉬움을 얘기했고요

초록의 수락산 품에 푸근히 안기운 우리 두사람
잠시 도끼자루 썪는줄 모르는 신선이 되었습니다

하산
하는 길 넓은 암반위로
굽이굽이 지는 장암 계곡은 더 수려 합니다
하얗게 핀 찔래는 왜 그리 정겨운지요
찔래꽃 노래 크게 함 불렀지요

발걸음 재촉하며
석림사 절아래 00이씨 집성촌에 세워진 노강서원
잠시 기웃거려 들여다 보고 지하철 장암역으로 가는 시간
4 시가 넘어 있었습니다

귀가길 지하철안
마주보이는 창밖 너머 도봉산 만장봉

우뚝한 웅장한 자태로
돈독해진 우리두사람의 우정에...장하다며
든든한 웃음으로 배웅해주고 있었습니다

창밖을 바라보던 수미님 내손을 살그머니 잡으며

" 나 있지~ 꿈속에서 나온거 같애"

저는 그 손에 더 힘을 주어 꽉 잡았습니다

.............

가까운님들 다음 산행 땐 함께합시다

2002.5.14

- 송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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