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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나를 되돌아 본다.
평생 나는 많은 직업을 가졌었지만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하지 못하고 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 오늘을 살고 있다.
아주 오래 전 우리나이로 18세 정확하게 태어난지 16년 7개월 되던 때
나는 첫 사업을 시작했다. (내 아들은 14년 5개월 16일만에 프로바둑에
입문 개인 사업자가 됐으니 나보다 빠르다)
미국 유학과 박사학위 받을 때까지의 장학금 및 체제비 일체를 받을 수
있는 모든 혜택을 포기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든 나는 6개월 정도 부산의
건설회사에서 일하다 울산에서 소금공장을 인수하여 첫 사업을 시작
했지만 7개월 정도 됐을 때 사고로 몸에 부상을 입었다.
이건 내가 가야할 길이 아니라고 판단한 나는 조용히 글이나 쓰면서
살겠다고 낮에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밤에는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수백편의 시와 3,000매 이상의 원고를 채워서 신춘문예에
응시하기 전 친구들에게 보여줬다.
내 글을 본 친구들이 사색이 되어 달려왔다.
그리곤 내게 술을 엄청나게 마시도록 하더니 내글을 전부 태워버렷다.
이유는 당장 이 글이 제출되면 당시의 중앙정보부로 끌려가서 살아나오지
못한다고,,, 글에는 이런 대목도 있었다. 박정희 같은 불한당이 정부를
전복하고 대통령이 되었는데 박정희 같은 독재자는,,,,,,,,,,,,,,,,,,,
,,,,,,,,,,,,, 친구들이 놀랠 수 밖에,,,,,,,,,
나는 야간대학에 진학했고 먹고 사는 일이 급해서 낮에는 건설회사에
취업을 했다. 내가 입사하면서 내세운 조건은 월급은 받지 않겠다.
숙소만 제공해 주고 최대한 빨리 건설업에 대하여 익힐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3개월후 나는 조그만 현장의 감독이 되었고 1년후에 현장소장
2년후엔 그회사 수십개 현장의 총괄책임자가 되었고 3년이 되던 해엔
설계,견적,입찰을 담당하는 회사의 두뇌로 자리 잡았는데 73년 22세에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자격증을 취득하자,,,,,,,,,,,,
사장님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너는 내가 붙잡고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니 큰 곳으로 가서 네 뜻을
펼치도록 하라면서 서울에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해 놨으니 내가 주는
건설장비를 가지고 가서 네 사업을 시작해라,
사장님은 덤프트럭 3대분의 건설장비를 주면서 나를 보내 주었다.
나는 우리나라 건설업계가 놀라도록 빨리 성장했고 28세에는 당시의
최고 기술인 지하철공사를 수주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나는 손을 뗐어야 했다. 약간의 모은 돈으로 원래 돈을 벌려고 한
이유인 내가 원하던 물리학의 공부와 나사에 연구원으로 가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하여 다시 공부를 시작했어야 했다. 그러나 욕심이 과하여
충분한 돈을 벌때까지,,,,,, 3년후 친구의 배신, 회사 정보의 경쟁사
유출로 나는 회사를 포기하기에 이르렀고 이 후 해외 현장을 전전한다.
돌아와서 결혼하고 다시 회사를 차리고 처분하고 도시락 두개를 싸들고
새벽 네시 남산 도서관으로 직행 법학과 씨름했고 대학원에 다시 진학
하여 법학을 전공하고 몇개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3대 안전기관의 하나를 설립하고 내분야 최고의 법인을
세우는 등 괄목할 성과를 거두었지만 내게 남은 것은 없다.
안전기관 역시 정말 힘들어 하던 인간을 도와 발탁하여 중책을 맡겼더니
정부와 손잡고 나를 배신하여 7년간의 긴 투쟁과 승리 후 허탈감으로
3년 이상의 방황이 시작됐다. 강산이 두 번 변한다는 10여년의 힘든
싸움이 나의 나아갈 길을 막고 내 모든 것을 빼앗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평생을 두집 살림을 해야하는 운명으로 직업도 항상
두개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민생고 해결용, 또 하나는 명예를 위하여
내게는 평생을 돌봐야 하는 형님이 계시다. 그 형님 때문에 어머니가
내 집에 계시지 못하는 것이고 나는 두집의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어쩌면 불합리하다 하겠지만 내가 해야할 당연한 일로 아직 한번도
짜증 내본적이 없다. 내 아내 역시 마찬가지고 내가 이혼을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른 여자라면 어림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방황 후 재건하는 사무실은 이제 안정을 찾아간다.
이제 이대로 내버려 두어도 평생 여유롭게 살지는 못할지라도
궁색한 삶은 면할 수 있다. 내 직업엔 정년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다시 병이 도진 것이다.
무언가 부딪치고 개척해야 하는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도전,
그건 평생의 숙제로 어차피 풀지 못하겠지만 이 병이 나를
살아 숨 쉬게 한다. 어차피 나는 첫 사업을 시작하던 18세에서
멈추어 있으니까?
안주해야 하나? 다시 뛰어야 하나?
답은 이미 내려졌다.
버려진 10년을 되 찾기 위하여
내게 안주하는 삶이란 있을 수 없다.
새로운 삶에 다시 도전하고 이루도록 노력해야겠지,,,,,,,
그것만이 나를 지킬 테니까?
당분간 카페에 들리지 못합니다.
항상 즐겁고 유익한 날들이 되소서,,,,,,,,,
_勳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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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나를 되돌아 본다.
평생 나는 많은 직업을 가졌었지만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하지 못하고 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 오늘을 살고 있다.
아주 오래 전 우리나이로 18세 정확하게 태어난지 16년 7개월 되던 때
나는 첫 사업을 시작했다. (내 아들은 14년 5개월 16일만에 프로바둑에
입문 개인 사업자가 됐으니 나보다 빠르다)
미국 유학과 박사학위 받을 때까지의 장학금 및 체제비 일체를 받을 수
있는 모든 혜택을 포기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든 나는 6개월 정도 부산의
건설회사에서 일하다 울산에서 소금공장을 인수하여 첫 사업을 시작
했지만 7개월 정도 됐을 때 사고로 몸에 부상을 입었다.
이건 내가 가야할 길이 아니라고 판단한 나는 조용히 글이나 쓰면서
살겠다고 낮에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밤에는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수백편의 시와 3,000매 이상의 원고를 채워서 신춘문예에
응시하기 전 친구들에게 보여줬다.
내 글을 본 친구들이 사색이 되어 달려왔다.
그리곤 내게 술을 엄청나게 마시도록 하더니 내글을 전부 태워버렷다.
이유는 당장 이 글이 제출되면 당시의 중앙정보부로 끌려가서 살아나오지
못한다고,,, 글에는 이런 대목도 있었다. 박정희 같은 불한당이 정부를
전복하고 대통령이 되었는데 박정희 같은 독재자는,,,,,,,,,,,,,,,,,,,
,,,,,,,,,,,,, 친구들이 놀랠 수 밖에,,,,,,,,,
나는 야간대학에 진학했고 먹고 사는 일이 급해서 낮에는 건설회사에
취업을 했다. 내가 입사하면서 내세운 조건은 월급은 받지 않겠다.
숙소만 제공해 주고 최대한 빨리 건설업에 대하여 익힐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3개월후 나는 조그만 현장의 감독이 되었고 1년후에 현장소장
2년후엔 그회사 수십개 현장의 총괄책임자가 되었고 3년이 되던 해엔
설계,견적,입찰을 담당하는 회사의 두뇌로 자리 잡았는데 73년 22세에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자격증을 취득하자,,,,,,,,,,,,
사장님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너는 내가 붙잡고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니 큰 곳으로 가서 네 뜻을
펼치도록 하라면서 서울에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해 놨으니 내가 주는
건설장비를 가지고 가서 네 사업을 시작해라,
사장님은 덤프트럭 3대분의 건설장비를 주면서 나를 보내 주었다.
나는 우리나라 건설업계가 놀라도록 빨리 성장했고 28세에는 당시의
최고 기술인 지하철공사를 수주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나는 손을 뗐어야 했다. 약간의 모은 돈으로 원래 돈을 벌려고 한
이유인 내가 원하던 물리학의 공부와 나사에 연구원으로 가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하여 다시 공부를 시작했어야 했다. 그러나 욕심이 과하여
충분한 돈을 벌때까지,,,,,, 3년후 친구의 배신, 회사 정보의 경쟁사
유출로 나는 회사를 포기하기에 이르렀고 이 후 해외 현장을 전전한다.
돌아와서 결혼하고 다시 회사를 차리고 처분하고 도시락 두개를 싸들고
새벽 네시 남산 도서관으로 직행 법학과 씨름했고 대학원에 다시 진학
하여 법학을 전공하고 몇개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3대 안전기관의 하나를 설립하고 내분야 최고의 법인을
세우는 등 괄목할 성과를 거두었지만 내게 남은 것은 없다.
안전기관 역시 정말 힘들어 하던 인간을 도와 발탁하여 중책을 맡겼더니
정부와 손잡고 나를 배신하여 7년간의 긴 투쟁과 승리 후 허탈감으로
3년 이상의 방황이 시작됐다. 강산이 두 번 변한다는 10여년의 힘든
싸움이 나의 나아갈 길을 막고 내 모든 것을 빼앗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평생을 두집 살림을 해야하는 운명으로 직업도 항상
두개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민생고 해결용, 또 하나는 명예를 위하여
내게는 평생을 돌봐야 하는 형님이 계시다. 그 형님 때문에 어머니가
내 집에 계시지 못하는 것이고 나는 두집의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어쩌면 불합리하다 하겠지만 내가 해야할 당연한 일로 아직 한번도
짜증 내본적이 없다. 내 아내 역시 마찬가지고 내가 이혼을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른 여자라면 어림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방황 후 재건하는 사무실은 이제 안정을 찾아간다.
이제 이대로 내버려 두어도 평생 여유롭게 살지는 못할지라도
궁색한 삶은 면할 수 있다. 내 직업엔 정년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다시 병이 도진 것이다.
무언가 부딪치고 개척해야 하는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도전,
그건 평생의 숙제로 어차피 풀지 못하겠지만 이 병이 나를
살아 숨 쉬게 한다. 어차피 나는 첫 사업을 시작하던 18세에서
멈추어 있으니까?
안주해야 하나? 다시 뛰어야 하나?
답은 이미 내려졌다.
버려진 10년을 되 찾기 위하여
내게 안주하는 삶이란 있을 수 없다.
새로운 삶에 다시 도전하고 이루도록 노력해야겠지,,,,,,,
그것만이 나를 지킬 테니까?
당분간 카페에 들리지 못합니다.
항상 즐겁고 유익한 날들이 되소서,,,,,,,,,
_勳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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